돈은 없고 갖고는 싶고

<나 혼자 본다> 25. 서울옥션: 책과 집의 시간

by per se

서울옥션 강남센터

20251113- 20251130


제목이 너무 직설적인가요. 그러나 아마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가장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가 그것일 겁니다. 물론 가진다고 해서 당장 작품을 어울릴만한 곳에 둘만한 공간을 갖추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반드시 대형이어야 그 고고함이 드러나는 작품을 보통의 아파트 너비와 층고는 감당할 수 없고, 내 살림 규모에 맞게 작은 작품을 데려다 둔다 해서 기존의 살림과 잘 어우러지기가 쉬운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것도 모두 사고 나서 생각할 일입니다. 보통의, 소위 말하는 ‘아직 뜨지 않은 작가’의 소형 작품도 거의 100만 원 내외인 것을 생각하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만한 공간을 갖추고 어느 정도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다만 제가 그런 것을 어쩌다 겨우겨우 몇 점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마저도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기는 합니다.

<책과 집의 시간> 전시 일부.

이렇게 갖고 싶은 것과 한계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마 이 전시를 보고 난 뒤이기 때문일 겁니다. <서울옥션>이라는 여유로운 공간에서 가끔 개최되는 기획전은, 장소적 특성을 살려 외부 자극의 방해 없이 오롯이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습니다. 이 큰 건물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자리에, 원하는 느낌대로 두고 연출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회화나 조각 작품이 아닌, 실생활에 쓰이는 가구들과 함께 배치된 작품들이라면 견딜 수 없이 그 마음이 깊어집니다. 아직 높은 안목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수없이 다니며 ‘본 건 있는’ 사람이, 내 생활 속에서 내 살과 맞닿는 가구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 순간을 좋아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동경하는 호사가 일상이 된다면-이라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물욕이라고 읽을 이 마음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순간이 참 자주도 찾아온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해 봅니다. 이런 어수선한 욕망을 전시 서문을 통해 조금 고급스럽게(?) 표현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은 세상 속의 나의 작은 우주이며, 가구와 책은 그 안에서 삶의 시간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나무의 질감, 종이의 숨결,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고요한 시간을 통해 ‘머무름의 미학’을 제안한다.” - 전시 서문 中


전시 서문의 제안이 감각적으로 구현된 전시장 안은 채도가 적당히 빠진 공간에 적당한 조도의 개별 조명, 그냥 가구라고만 부르기가 미안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지닌 가구들, 그리고 유명 인사들의 큐레이션으로 책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보통 가구와 함께 작품이 놓인 전시는 가구가 곁들임 반찬처럼 놓인 경우도 많았으나, 보기 드물게 기능적 역할과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집의 일부로 자리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했던 바로 그 테이블 - J.S.Bahk Trans201808_Low table.

여러 작품들 속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전시장 가장 안 쪽 룸에 위치한 가구- 영화 <기생충>의 소품으로 쓰였던 바로 그 가구입니다. 정보를 보기 전에 테이블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어? 익숙한데...’하면서 디테일을 뜯어보았습니다.

윤형근의 묵직한 작품 정면으로, 목재가 층층이 한 끝을 맞대고 계단을 이루는 작품입니다. 오르내리는 계단이 무한히 이어지는 느낌이지만 이것이 ‘테이블’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윗사람이 당연히 가장 위에 앉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계단임에도 불구하도 어딘가 ‘오르내림이 금지된’ 느낌을 가진 아주 냉소적인 가구입니다. 한편으로 바꿔 앉으면 그만인, 언제든 전복될 수 있는 것이 권위와 인간관계라는 메시지도 내포한 듯합니다. 모양새와 소재가 주는 기품이 오히려 완고함을 드러내는데,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여러 상상이 가능한 재미있는 가구였습니다. 가구를 보고 뒤를 돌아보면 기생충에 등장한 이 가구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데, 영화 속 인물들의 캐릭터와 앉은 위치를 매칭해 보면 흥미로움이 배가됩니다. 재치 있으면서도 품격 있는 가구죠.


말 그대로 책과 집이 이루는 풍경을 담은 전시. 그러나 이런 집은 아마 소수만이 누리는 호사일 것이다.

그 외에도 전시 공간의 각 섹션에는 거장들의 작품과 가구가 어울려 빛을 발합니다. 오토니엘의 유리구슬은 알 하나의 빛만을 바라보아도 시간이 잘 갈 것 같고, 길게 기대어 앉을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면 까무룩 잠이 잘 올 것 같습니다.

특별히 튀지 않는(?) 작품들과 편안한 목재로 만들어진 가구들은, 빛나는 일상의 순간을 완벽하게 연출한 듯하지만 누가 보아도 일상을 위한 예술적 연출인... 보통의 일상과는 거리가 먼 장면으로 보였습니다. 몇 천만 원 단위를 훌쩍 넘는 테이블에 김칫국물을 흘리고 아무렇지 않게 닦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요. 당연히 소수가 향유하는 생활임을 알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생활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마음은 의미가 있습니다. 똑같은 가구와 작품으로 만든 똑같은 연출은 어렵더라도 내가 원하는 안온한 순간에 어울리는 공간을 내 곁에 두고 싶다면, 아무리 넓은 공간을 소유한 사람이라도 일단 비우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 이런 순간은 과거의 흔적 위에 덧칠하거나 섞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소품 위주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조금씩 사서 내 공간을 꾸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과 어울리는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수납이나 기능과 같은 실용성을 떠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공간을 집 안 단 0.5평 한 모서리라도 두는 것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삶을 견딜 수 있는 도구로만 모든 공간을 채우기보다, 없어도 사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품고 살면, 그것들이 하게 되는 역할이 또 있어서 그것으로 견디는 순간도 오기 때문이죠.


물론 경제력이 점점 자라나는 욕망과 비례해 자라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슬프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런 취향이, 이런 발견이 더 소중합니다. 그래서 이런 전시 가운데 일상이라는 말의 옷을 입고 다가서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욕망의 부름을, 다 들을 수는 없지만 기억해보려고 합니다. 돈은 없고 갖고 싶은 마음이 내 주제에 허영이라 해도, 그 허영이 초대하는 새로운 세계 속에 사는 또 다른 나를 기대하면서요. 그렇게 일상이 삶의 의무를 닮아가기보다, 일상이 ‘내가 지향하는 것’을 닮아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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