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것에도 의미가 있을까

질문 1, <최병소 : Untitled>에서

by per se


최병소 : Untitled

20260120 - 20260307

페로탕 서울


기억하려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지워진다는 말을 점점 많이 하게 된다. 전시를 본 기록을 남기는 지금도 어쩌면, 정작 담고 싶었던 것이 흘러넘쳐 어디론가 다 사라지는 중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중엔 남긴 것들 혹은 남아있는 것들이 정말 내가 나에게 새기고 싶은 기억이었는지 반문하게 될 때도 많다.

이번 최병소가 지운 것들을 들여다보며 든 생각이다. 작가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지워지지 않은 저곳일까, 지워간 자리일까. 멀리서 보면 그저 검거나 하얀 것인데, 들여다보면 하나하나 길이 아닌 것이 없다.

최병소 작가의 작품 전시 중인 갤러리 페로탕 1층 전경.

온통 덮었거나 혹은 일부를 덮은 흑연의 궤적은 아주 작고 가냘픈 실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하나라도 떼면 바스러질 낙엽 같기도 하다. 가을 나무가 온몸에 두른 바삭한 잎이 모두 열매라고 생각하면 이 모든 흔적이 다 작가가 공들여 맺어준 열매로 보인다. 떨구어냄으로 새로운 생명을 채울 여백을 만드는 행위. 여기 이 작품들이 모두 그 결과물이다. 언론과 권력을 위한 저항이라는 해석도, 과다한 정보를 지움으로써 정보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수행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역시나 해석은 보는 이의 몫일 거다.


화폭을 검게 덮은 작품은 많이 봤어도, 온통 흰 작품은 처음 볼 수 있었다.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공간 가득한 흑연의 향연이 눈에 들어오는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큰 액자 가득 흰 작품이다. 분명 지운 흔적인데 백색이다? 다 쓴 볼펜으로 빈 종이를 수없이 그은 작품이라고 한다. 무엇인가를 지운 작품들만 접해왔는데, 지울 것이 없는 것까지도 지웠다니. 그러면 채우는 행위가 되는 걸까 생각한다.

예술가라면, 창작으로 먹고사는 (그러나 실상 먹고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찾는 이가 있건 없건 백지 같은 시간을 무엇이라도 하며 보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을 떠 올렸다. 뿌연 시야 속에 무엇이든 되고 싶어서 과정이라도 되겠거니 하고 채우는 시간. 어떤 색인지 정의하거나 기록할 수 없어도 분명한 흔적으로 남는, 때로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시간. 그러나 그런 시간도 이렇게 남들 앞에 보란 듯이 서게 되는 날이 있다. 물론 이 작품을 만든 대가의 마음이 아마 이렇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혼자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무용해 보이거나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는 시간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색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다고.


최병소 작가의 작품 전시 중인 갤러리 페로탕 2층 전경.


2층에는 1층의 작품들과 결이 다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최병소 작가의 작품으로 처음 알게 되었던 LIFE, TIME, Arts 같은 볼드 텍스트가 남아 있는 작품들을 비롯해 신문 기사가 일부 보이는 작품들이다. 여기서 최병소 작가가 선택한 지운 것과 남긴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관람 내내 그것을 찾고 싶었지만 나는 실패했다. 어쩌면 그 사이의 의미를 찾는 것이 무의미한 건 아닐까. ART는 영원하다지만 어떤 ART든 모두 영원한지 의문을 품게 되고, 그 영원성이 빈부를 떠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지에 대해서도 반문하게 되었으니까. 또 본질을 잃거나 읽힐 수 없는 상태의 작품들에 붙여진 ART라는 딱지는 얼마나 공허한가. 한편 매거진 브랜드로 읽히는 TIME이 내용을 지운 순간 오히려 영원성을 띤 본래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런 생각 사이를 거닐다 보면 지우고 남긴 것의 기준점보다는 그저 지워낸 수행적 행위만이 의미를 갖게 된다. 많은 추상들이 그렇듯이 ‘어쩌다 이런 수행의 길을 택해서’ 이런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나 싶은, 그런 행위들. 파문이 되고, 물방울이 되고, 상처가 되며, 편안한 질서가 된 수행은 그 외에 어떤 것도 떠올릴 필요가 없는 작품이 되기에 위대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뇌는 적극적으로 필요 없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선별하여 지운다고 한다. 방금 꾼 꿈조차 기억에 잘 남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남아 있는 기억이 모두 내게 필요할까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와 뇌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아, 기억이 나를 할퀴는 순간도 많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현재의 내가 가진 도구로 정성스레 지우기 위해 애쓰는 것뿐이다. 현재와 미래의 다른 일들을 앞세워 그 기억을 미루어 두는 일을 포함해서 말이다.

덮으려 애쓰지 않아도 시간의 더께에 보이지 않게 된 기억과, 덮고 싶어도 덮이지 않아 애쓰게 하는 기억 사이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니. 그것만이 진실이라는 건 참 허무하고도 묘하게 위로가 된다.

최병소 작가가 남긴 흔적에서 안도를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가 지우면서 채워간 흔적들이 그렇게 말해준다. 인생에는 지운 흔적 자체가 남기고 싶었던 것이 되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겠다고, 그래도 어떤 순간이든 착실하게 쌓았다면 꽤 괜찮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는 가사처럼, 지워진 것도 지워진 대로 남은 것도 남은 대로 그런 의미가 있을 거라고. 무엇을, 끝까지 하고자 애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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