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0, <Dolce far niente>에서.
20260321-20260509
파운드리 서울
갈수록 그룹전을 보기 힘들다. 전시를 더 많이 보거나 미술 전문가들의 눈으로 본다면 다르겠지만, 개성 강한 작가의 개성 강한 작품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큐레이팅한 맥락으로 읽기도, 내 나름의 관람선을 따라 읽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가끔 그룹전을 꼭 보려 하는 것은 내가 찾아서 보는 것만 보는 세상, 내가 찾은 것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작성해 준 ‘취향 맞춤 큐레이션’을 따라보기보다 남의 시선을 느끼고 이해하고 싶을 때가 있어서다. 간혹 개인전을 열지 못한 젊은 작가들의 색다른 세계를 만날 수도 있다. 취향이 아닌 작품들 속에서 의외의 취향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 늘어놓고 보니 이렇게 장점이 많은데도 힘들어서 못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게 바로 게으름인 것 같다.)
물론, 쉽지 않다. 대체로 감정은 파편처럼 흩어지고, 하나의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다른 작품에 매료될 기회를 잃기도 한다. 사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룹전의 감상 경험은 매번 연습이다.
그래서 이런 전시는 서문을 꼭 한 번 읽고 감상한다. 이번 전시는 《Dolce Far Niente》.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지닌 고요한 힘을 주제로 전개되는 그룹 전시라고 한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뭘로 정의하는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 (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이라는 이탈리아의 개념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번 전시는 멈춤 (stillness)을 무기력함이나 비활동의 상태가 아닌, 감각과 인식이 응축된 현존으로 재정의한다. 이는 생산성, 속도, 효율성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동시대 조건에 저항하는 하나의 적극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참여 작가들은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순간들—행위와 행위 사이의 쉼, 목적 없는 시간, 몽상에 잠긴 순간, 말없이 함께 머무는 친밀한 시간—에 주목한다. 햇살이 스며든 공간, 멈춰 선 몸짓, 느릿한 일상의 장면은 극적인 연출이 아닌 사유의 장소로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관객에게 감탄을 요구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으며, 대신 머무르며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의미를 발견하도록 초대한다.
‘이런 순간들이 유용한가, 무용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 나에게 그 순간을 ‘사유가 있는 시공간’으로 해석해 주는 이 전시가, 궁금해진다.
앞서 말했듯이 여러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몇 있다.
먼저 엠 케트너의 작품. 긴 나무 안에 유약처리된 세라믹 타일이 삽입되어 있는데, 안에는 일상적이고 귀여운 그림들이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이동 보조 기구 사용 경험에 비추어 만든 것이라는데, 이동하는 동안에는 이 작은 그림들을 볼 수 없다. 멈추어 고개를 숙여야 보이는 이 그림들이야 말로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직관적으로 발견하게 해 준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집트 작가인 바심 마그디의 <13 Essential Rules for Understanding the World>라는 작품이었다. 전시 공간의 아래층에서 고요하게 목소리를 뽐내는 이 영상 작품은 촌철살인이 엿보이는 대사 및 자막과 그렇지 못한 귀여운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철학적인 이 작품은 아무것도 담보할 수 없는 빠른 변화의 시대 속에서, 모든 것을 관통하는 세계의 규칙을 찾고자 하는 관조적이다 못해 건조한 시선이 느껴진다.
‘Life is a tangled web of unexpected events. (인생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얽혀 있다.)’라는 규칙은 상대적으로 평범하다. 그러나 ‘Death will still take you by surprise. but You'll be more prepared than others. (죽음은 여전히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보다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규칙은 이집트의 정치적인 격변 이후에 전개된 작업인 만큼, 사회적으로나 이념적인 위협 속에 취약한 개인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소란한 상황 속에 가만히 꽃을 보며 떠올려보는 이 단순한 규칙들은 명상하는 마음으로 보기 좋다.
이외에도 다양한 작가의 사진, 조형, 회화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으나 똑같은 감도로 감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상관없다. 오래간만에 고요한 갤러리에서, 남의 알고리즘을 타고 새로운 탐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전시를 감상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는 동떨어진, 제법 치열한 탐구의 과정이다. 그러나 쉴만하면 휴대폰의 방해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쉼에 가깝다. 정보의 바다보다는 인간의 품이 포근하고, 아무리 날카로운 작품이라도 원치 않는 온라인 광고의 침투보다는 마음에 편안하게 스민다. 아무것 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전시 공간에서의 ‘무위(無爲)’의 순간이, 그래서 좋다.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