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볼 수 있는 것일까?

질문 9. 엄정순의 <보푸라기- 촉각적 사건>에서.

by per se

엄정순, <보푸라기- 촉각적 사건>에서.

20260225-20260328

학고재


여러 명이 있다면 그 여러 명이 모두 세상을 다르게 인식한다.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내 아이를 통해 그 사실을 더 분명하게 느낄 때가 많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이는 어려서부터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아이였다. 수많은 무질서와 혼란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 작은 규칙이라도 (이유가 자신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일지라도) 반드시 찾아내었다. 한글이 가진 자음과 모음이 어울릴 때의 규칙을, 숫자와 연산기호의 분명한 질서를 가르치지 않아도 이해하고 알아냈고 간혹 주변에서 그것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그런 규칙은 그에게 별 것 아니다. 10년도 더 전에 여행 갔을 때 묵었던 호텔의 방 호수와 현재 지인이 사는 집의 호수가 같다든가, 친할아버지의 전화번호부에 있는 알지도 못할 분의 전화번호 뒷자리와 내 지인의 전화번호 앞자리가 같다든가 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공통점과 차이점, 규칙과 불규칙을 알아내어 나에게 설명하고자 애썼다. 아는 것보다 표현하는 능력이 늦게 텄기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으나, 나는 이해하지 못한 순간이 훨씬 많았다. 실은 내 방식대로 관계 맺기에 수백 번 수천 번 실패하던 중이라 별로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좌절감에 젖어 있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숨만 쉬어도 “아, 이러저러한 걸 설명하고 싶었던 거야?”라고 알아차릴 수 있고, 그때 돌아오는 그의 미소를 나는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한다. 그가 또 다른 인식의 세계, 감각의 문을 하나 더 열어 준 셈이다. 물론 그가 찾아낸 규칙과 질서가 너무 사소하거나 많아서, 일상적으로는 귀찮다는 듯 호응할 때가 많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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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순 <보푸라기: 촉각적 사건>이 전시 중인 갤러리 전경. 코끼리 작품들 아래에는 많이들 만져본 듯, 하얀 가루가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다른 통로로 세상을 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만지지 마세요’가 가득한 전시장이 아닌 ‘만져보세요’가 붙어 있는 엄정순 작가의 전시에서, 나는 아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떠올렸다.

그의 대표작인 <코 없는 코끼리>들은 각기 다른 촉감, 각기 다른 느낌을 가졌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속담이 형상화된듯한 이 작품들을 만지는 관람객들은 어디를 만지느냐,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관람 경험을 갖게 된다. 한편으로 관람객들은, 한 다리가 없는 것도, 있는 것도 모두 ‘코끼리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하고 다소 특이한 모양새의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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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이 일어난 울 소재의 아크릴 작품 등 질감을 통해 세월을 알 수 있는 작품과 석판화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들

이전 다른 전시를 통해 보았던 코끼리 작품 외에, 전시 제목이 된 ‘보푸라기’ 작품도 전시도 되어 있다.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보푸라기의 뜻은 다음과 같다.


“2023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비롯된 이번 전시의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는 ‘보푸라기’는 신체적 접촉에 의해 생긴 결과물, 즉 촉각적 사건이다.
보푸라기는 반복된 마찰 속에서 우연적으로 형성되는 미세한 잔여물로 의도된 형상이나 명확한 이미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는 제도적 기록이나 언어로 포착되지 못한 경험이 남기는 흔적을 상징한다. 작가는 이 미세한 잔여를 통해 감상이 단순히 이미지를 해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신체적 경험과 시간의 축적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라짐과 흔적의 관계 또한 중요한 층위로 다뤄진다. 사라진다는 것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작품 속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경험은 명확한 이미지나 서사로 환원되지 않은 채 신체에 머문다. 이는 언어와 시각 중심의 기록 체계가 포착하지 못하는 기억의 방식이다.”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여러 장소와 여러 사람을 만난 작품들이 갖게 되는 다양한 층위의 경험이 작품 안에 축적되어 있고, 그것이 작품을 완성한다는 의미다. 그저 어딘가 스치고 해진 흔적이라 생각했던 보푸라기라는 말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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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2001-1>. 점자책들을 만지고 그 종잇장이 부대끼는 소리를 들으며 작품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갤러리 가장 안쪽에 설치된 1000권의 점자 교과서로 이루어진 <찰나 2001-1>이라는 작품이다. 이것이 순간 아이를 떠올리게 했던 바로 그 작품. 이 많은 책들을 아무리 더듬어도, 손끝으로 읽을 법을 배운 적이 없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그저 오돌토돌한 촉감을 가진 종이 뭉치들일뿐이다. 이 많은 책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풍경과 흐릿하게 종잇장들끼리 스치는 소리만 마음에 남을 뿐. 미술 작품은 무조건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뒤엎는, 시각 외에 다른 감각을 활짝 열어 작품을 느끼는 드문 순간이었다.


이 순간에도 아이는 내가 보지 못한 것 혹은 보려 애쓰지 않는 것들을, 갤러리 속 지난 사진들 속에서 포착하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이 웃고 있는지 어떤지는 별 관심이 없다. 그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그 옷이 지하철 몇 호선의 색과 같은지를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가 계속되는 나도 사람인지라 지칠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전시를 보고 한 번은 더 들어주기로 한다. 자신에게 국한된 감각을 때로 설득하고 공유하고 싶은 것이 너만의 사회성이라면.

여기 수많은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글 속에서 부러웠던 건, 현란한 수사나 미사여구보다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영역이 다를 뿐 (다소 저 세상 특이함일 뿐) 내 아이와 마찬가지다. 나에게도 다른 인식의 통로와 체계가 있지 않겠는가. 인간의 보편된 감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오감 그 너머의 감각이. 언젠가 내가 가진 언어 혹은 다른 도구로 그것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예술가라고 하긴 그렇지만, 모든 예술가는 그것을 꿈꿀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일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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