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8.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에서.
이우성,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20260318-20260426
갤러리현대
1년 전쯤 분명히 꽤 큰 용량의 휴대폰을 장만했는데, 벌써 저장된 공간이 부족하다는 메시지가 뜬다. 그 메시지를 처음 만난 건 한강 다리를 건너는 버스 안에서 창문을 조금 열고, 그 사이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느낌의 영상을 찍고 있을 때였다. 미세먼지가 가득한 지금으로 보면 참 그리울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퐁실퐁실 떠 있는 날이었다. 지극히 일상적이라고 말하지만 생각해 보면 만나기 쉬운 날씨도 아니었던 그날의 풍경을, 눈에만 담아도 모자랄 시간에 찍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풍경을 담는 행위를 수시로 한 뒤, 딱히 어디에 업로드하지도 않은 채로 저장 공간에 묵혀둔 채, 저장 공간을 정리하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그냥 지운다. 이게 무슨 의미 없는 습관인가 싶지만, 그렇게라도 박제하고 싶고 그러나 박제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너무 늦게 산에 오른 탓에 정상에 오르자마자 허겁지겁 내려오던 길에 검은 능선을 따라 타오르던 노을,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울음을 내뱉으며 내 옆에 뉘이던 나의 신생아, 차가 코너를 돌면 도로 끝에서 에메랄드 빛이 너울너울 나에게로 다가올 것만 같았던 제주의 어느 바닷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 많다는 건, 어쩌면 그 순간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특별함은 그 특별함마저 유한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 특별함을 오래 간직할 수 있을까. 요즘이라면, 저장공간을 늘려 어떻게든 담아본 영상을 오래 간직하고 가끔 꺼내어보는 게 최선일까.
갤러리 현대에서 만난 이우성의 작품들에, 그런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풍경으로만 놓고 보면 아주 일상적인 공간들이다. 도시의 거리, 강가, 바다 등 우리가 쉽게 만나는 다양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되, 빛과 색감이 강조되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준다. 순간을 특별하게 느끼는 포인트를 더욱 강조해 그린 듯하다.
다만 그 풍경 안의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생물이 바로 사람이라는 듯, 작품 속 우리 인간은 익숙한 배경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한다. 달리 보면 흔히 어떤 인상적인 풍경을 보고 ‘그림 같다’라고 하는데, 작품 속에서 가장 그림 같은 건 사람이다. 다만 그 그림이 만화에 가까울 뿐.
작품의 제목들도 작품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우린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었어>, <날이 샐 때까지 우리는>,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내가 보일 거야> 같은 말들은 어느 인디 밴드의 곡명처럼 읽히기도 한다. 제목이 설명적이고 혹은 ‘필요 이상으로 감성적인 건 아닌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모두 저 장면 속 저 인물들이 했을 법한 말들이다. 잠시 전시 서문을 참고해본다.
전시 제목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에서 ‘너’는 타인과 지금의 나, 타자화된 시간 속 나와 더불어 다중의 시간이 겹겹이 쌓인 장소, 그 안에 담긴 인물들, 이 모든 것과 연결된 ‘나’와 ‘우리’를 연결한다.
작가는 이렇게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했지만, 내가 발견한 것- 특히 만화적으로 표현된 인물들을 통해 만난 것-은 현재의 나와 그 순간을 영위하던 순간의 나 사이의 거리감이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가끔 꺼내어보는 그리운 풍경 혹은 기록들이, 그 순간의 풍경이 아니라 그 순간의 나인가 싶다. 한편으로 이런 행위 속에서도 의미 찾기를 시도하는 나 자신이 우습다. 묵묵히 걸어야 하는 일상 속에 좋았던 한 때를 떠올려보는 것이 생존 본능에 가까운 행위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좋았던 것을 좋았다는 말 한마디로 남기기엔 아깝고, 장황하게 설명하자니 그래도 부족하고, 이렇게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면 조금 나을까. 노을을 온몸으로 받고, 자연의 음영에 몸을 파묻고, 도시의 불빛을 병풍 삼아 지내는 오늘의 어떤 순간을 내일의 나는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영원한 것은 없다. 다만 영원은 그 거리감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쓸쓸한 방식으로.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품에 안고 살아가게 되는 아이러니야 말로 시간을 초월하는 각자의 작품이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