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을 부탁해

<나 혼자 본다> 4. 디토와 비토(Ditto and Veto) 展

by per se


대전 헤레디움(Heredium)

20250315~20250817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저 게스트들을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묶은 것인가 싶은 사람들이 같은 회차에 나란히 나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공통점이 없는 것 같은데 진행자들의 설명을 듣다 보면 ‘아, 이렇게도 엮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오죠. 초대 기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그럴싸하고 이해가 됩니다. 막상 생전 처음 보았다는 게스트들끼리 죽이 잘 맞아 웃길 때도 많습니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 데 모아놓은 그룹전도 이와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 라인업을 보면 흥분을 감출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작가의 작품들의 포진되어 있는데, 전시 제목을 보면 ‘응? 작품들을 이렇게 묶었다고?’ 싶어지는 경우 말이죠. 기획하시는 분들 입장에선 ‘거 너무한 거 아니요’라며 예능 프로그램에 빗댄 이런 비유를 질색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미술관을 찾는 이들의 태반은 저 같은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 전시가 딱 그랬습니다. <디토와 비토>. 디토(Ditto)는 반복과 동의를, 비토(Veto)는 거부와 반대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작가가 다룬 주제에 대해 어떤 면에선 수긍이 되고 어떤 면에선 거부감을 느낀다는 뜻일까요? 혹은 작가가 사회 문제에 대해 이런 의식들을 갖고 만든 작품들이라는 말일까요? 이 뜻은 이 단어들로 표현되어야만 했던 걸까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1층 전시장에 들어가는 순간, 나를 사로잡고 설득하는 건 오로지 작품의 아름다움과 기개뿐입니다. 데미안 허스트, 백남준, 앤디 워홀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죠. 닉 워커라는 작가는 처음인데, 미키마우스만큼 친숙해져버린 권총 문제를 다룬 재치가 돋보였습니다.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무제(역사회화) (2021)>

가장 좋았던 작품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라는 태국 작가의 작품이었습니다. 검은 파도를 엄청난 기세로 찢고 나오는 화염을 마치 위성사진으로 확대하고 편집한 듯 보이는 이 작품은, 사실 데님을 활용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합니다. 누구나 쉽게 입는 데님의 시작이 사실은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데님과 화염을 이렇게 배치한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작품 하나에 해체와 전복, 소멸과 재탄생이 담겨 있어 어쩌면 전시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 아닐까 합니다. 거기에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함과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이 작품의 스토리를 궁금하게 하는 점도 매력입니다.

2층에 올라서면 더욱 익숙한 작가의 작품들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전시 제목과는 무슨 관계일까, 더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유명한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인 건 알겠는데, <디토와 비토>라는 전시 제목과의 이 밀접한 관계를 내가 읽지 못한 것일까 하는 자책마저 생깁니다. 쿠사마 야요이, 록카쿠 아야코,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들이, 이 전시의 말미를 장식하는 이유를 정녕 내가 배움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가! 전시 설명에서는 ‘서브컬처와 대중문화’의 챕터에서 이 작품들을 소개해 비로소 이해에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설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 1층의 작품들에 대해 다소 무게가 떨어진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이런 저 자신이 쓸데없이 고매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죠.

제목이 뭐라고 이렇게 집착하느냐 하면, 저에겐 전시 제목이 그 전시의 인상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 택배 수신인 이름으로 ‘곽두팔’이나 ‘홍피살’ 같은 이름을 추천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전시의 의도를 이해하고 싶었는데, 그 점에서는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거장전은 당연히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작품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추려내는 과정 없이 하나하나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죠. 이 거장들의 향기를, 헤레디움이라는 국가등록 문화유산 건물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의 관람 경험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안 그래도 작품의 진심에 다가가는 일에 수많은 설명이 필요한, 그래서 이미 지쳐버린 초심자에게, 임팩트 있으면서도 단 번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좋은 전시 제목과 쉬운 전시 서문은 너무나 절실합니다. 관람객의 언어에 좀 더 가까운, 좋은 작품을 가슴 깊은 곳에 더 깊게 새겨주는 네이밍, 그리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있어보여서 관람을 더욱 선망하게 되는 네이밍- 어려울까요?

물론 지금 제 곁에서 누군가가 “지금 요만한 글의 제목조차도 아직 못 정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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