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꿈의 둘레길에서 보인다

<나 혼자 본다> 5. 이강소: 연하로 집을 짓고, 풍월로 벗을 사마 展

by per se

타데우스 로팍 (Thaddaeus Ropac)

20250613~20250802


시적인 전시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목이 아예 시의 한 구절이라니,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는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 중 한 구절이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고 허물없는 삶을 꿈꾸는 마음이 담긴 구절을 인용해 제목을 지은 전시, 어떨까요.

타데우스로팍의 이강소 展 전경. 오래 전 작품들 중 덜어뜨려 만든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저의 감상으로는 제목 그대로였습니다. 유유히 오가는 사슴이 있고, 주인을 기다리는 배가 있고, 물결인지, 하늘결인지, 바람결인지 모를 회색 붓질이 있습니다. 거친 듯한 터치 아래에 시간의 사포질을 받고 빛나는 장인의 노련함이 보이는 듯합니다.

<무제-88088> (1988)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배 한 척이 있습니다. 낯선 이가 지나다 본다 한들 노가 없어 타고 갈 수 없겠죠.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노를 가진 이가 와야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은, 이 배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외딴곳에 있는 듯합니다. 캔버스를 이분(二分)해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옅은 먹구름이 선을 그은 하늘인지, 해변을 삼키려 파도의 발톱을 잠시 오므린 바다의 모습인지, 혹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배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까요? 그어진 선 너머로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을까요? 무엇이든 다가와주길 바라고 있을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사는 것에 이미 익숙한 상태일지 생각해 봅니다.


<무제 (94095)> (1994)


야외의 무제 작품 역시 비슷한 느낌을 전합니다. 저 배에게 나아갈 길은 낭떠러지뿐입니다. 선택지는 그대로 있든가, 저 기둥 위에 올라서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저 배는 마침내 후자의 선택지를 이뤄내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을까요? 배, 그리고 적당한 여백은 이런 많은 질문을 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충분한 감상의 여지를 내어주는 것만큼 좋은 작가의 환대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제(94065)> (1994)

이 청록색 브론즈 조각은 조각 자체도 아름답지만 뒤로 보이는 사무실 풍경이 보는 맛을 더합니다. 책 혹은 기왓장을 쌓아 올린 듯한 조각 뒤로, 일종의 질서가 자리한 책장이 병풍처럼 보입니다. 새하얀 벽보다 이런 풍경이 오히려 작품의 청록색을 돋보이게 하죠. 전시 제목과도 어울리게, 자연스럽게 일상적 풍경의 일부가 됩니다. 작품 제목조차 없어서,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래된 책 탑이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유산이 되기도 하고, 먼 미래에서 발견될 타임캡슐 같기도 하죠.

<팔진도> (1981/2017)

갤러리 지하에서는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여덟 가지 전술 배치로 적을 교란했다는 8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팔진도>가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다양한 재료들이 돌덩이를 이고 있습니다. 조금 조심스럽지만 사이사이를 거닐어봅니다. 느낌은 교란당했다기보다 매혹당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배를 타고 다도해를 유랑하는 느낌과 비슷했죠(해본 적은 없음). 어떤 것은 너무 아슬아슬하고 어떤 것은 편안해 보였습니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다 보면 저 쪽 작품으로 건너기가 어려웠습니다. 매혹과 교란도 구분되지 않는 지경, 이런 게 진짜 교란인 걸까요?


전시를 다 본 뒤, 2023년이 화업 50주년이었다는 이강소 작가가 작년의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했던 답을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당장 할 일이 많아서 내일을 생각 못 하고 있습니다. 주관적 관습에서 벗어난 컬러 작업을 원만하고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을지 생각하는 중이고요. 조각도 일단락 짓고 싶습니다. 얼마 전 가스 가마를 전기 가마로 바꾸었는데, 올 겨울부터는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뭔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봅니다. 장작 가마도 힘들지만 가스 가마는 2~3일간 잠을 못하고 몹시 고생스러웠습니다. 하고 싶은 작업은 많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사진도 배우고 싶어요. 영상 작업도 다시 하고 싶은데 할 일이 많아서 못 하고 있어요.”
(2024년 8월 31일, 마리끌레르 인터뷰 中)


이 말을 읽고 나니 누군가 목덜미를 세게 잡고 지나간 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50년이 지나도 나 역시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50년이 지나면 그동안 내가 뿌린 씨앗이 틔운 열매만 편히 먹고살면 좋겠다 싶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는, 어디서 넉넉한 월세를 받고 있다면 건강 관리만 잘해서 더 많은 전시를 보고, 근처의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놀고 싶습니다. 아주 나태한 생각이죠. 그러고도 여유가 있다면 살롱도 열어보고, 후원도 하고, 재미있는 일들을 벌이고 싶습니다. 철저히 재미에 방점을 둔 미래 계획이죠.


그러나 그런 미래에 낭만이 있겠느냐 묻는다면,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낭만이라는 게 또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낭만은 그런 세계에 있지 않아서일지도 모르죠.

제가 생각하는 낭만은 꿈이 많은 자의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많은 꿈을 향해 꾸준히 걷는 사람입니다. 꿈을 쌓아두기만 하면 괴롭기만 하겠지요. 꿈을 위해 몸을 쓰다 보면 어느새 어딘가에 다다르고, 거기서 뒤를 돌아보면 낭만이 보이는 걸 겁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제가 생각하는 낭만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이 작가님처럼요. 나도 날마다 나를 채근해서, 부지런히 동경하는 그 모습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꿈꾸었던 낭만이 내 뒤에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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