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본다> 3. Ron Mueck 展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 지하 1층 5,6층 전시실
20250411~20250713
눈을 감은 한 남성의 두부(頭部)가 옆으로 뉘어 있습니다. 한 글로벌 스타는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이 조각 안쪽으로 머리를 넣고 본인의 머리인 것처럼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했었죠. 그가 아니면 나는 몰랐을 것입니다. 이 조각의 내부가 텅 비어 있음을. 그리고 그 작품의 작가 이름이 론 뮤익(Ron Mueck) 임을.
인스타그램에 수없이 박제된 이 전시의 인증숏을 보면서 ‘기 빨릴 것 같은데’라며 한숨짓던 인프제(INFJ) 인간을 미술관으로 향하게 한 건, 이 작품과 이 많은 사람들을 같이 보는 것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진짜 같은 텅 빈 껍데기를 둘러싼 사람들. 관람인지 인증인지 모를 사진 속에 담긴 진짜인 듯, 진짜 아닌, 진짜 같은 관람객들의 일상을 함께 보고 싶다는 마음.
‘언제쯤 사람이 가장 없을까’를 생각하는 건 무의미했습니다. 아침 오픈런으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술관 로비에는 사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인증숏을 찍는 이들은 사람과 순간 사이를 파고들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하긴 그들도 ‘나도 찍어야 되니까 빨리 비켜 주겠니?’라는 건너편의 시선을 오래 견디긴 힘들겠죠. 덕분에 저도, 기대보다 쾌적한 관람이 가득했습니다.
론 뮤익 작품 크기와 디테일은 이런 인파들 사이에서도 쉽게 관람객을 압도했습니다.
<침대에서>. 침대에 누운 거대한 여성이 피로를 가득 담은 눈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덮은 이불자락은 스치면 바스락 소리를 낼 것 같고, 이불속엔 그녀의 긴 한숨이 담겨 있을 듯합니다. 인물의 표정 주름과 흐릿한 잡티 등까지 새겨 ‘창조한 역사’가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죠.
<젊은 연인>. 모두가 뒤에 가서 이 남녀를 관찰하기에 나도 뒤로 가 보았습니다. 다소 강압적인 듯 아닌 듯 애매하게 여성의 손목을 잡은 남성의 손이 눈에 띕니다. 다시 앞으로 와 표정을 다시 보니 연인이라기엔 불편한 감정이 오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런 순간을 포착한 것일까, 상상한 것일까. 전체와 부분의 ‘갭 차이’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담아둔 점이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던 중 함께 이 작품을 보던 노부부는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자친구인 척해달라고 한 모양인데.”
“여자가 싫은가 보네.”
“아니면 납치당한 건데 아닌 척해달라는 건가?”
“그렇게 무서운 얘기는 아닐 것 같은데.”
“아이 작품으로 만들어서 경각심을 깨워주는 거지.”
“그런데 제목이 <젊은 연인>이잖아.”
“납치하다시피 데려와서 가스라이팅을 한 거겠지.”
“뭐... 결혼만 안 하면 되지.”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이 전시의 진수는 지하 전시실의 작업 과정을 다룬 사진들이었습니다. 거대하고 앙상한 작품 뼈대 앞에 널린, 과정이 낳은 잔해들. 그 앞에 등이 잔뜩 굽은 작가 론 뮤익의 뒷모습. 이 거대한 전시장에서 오로지 그것만이 실재하는 사실로 빛났습니다. 흔히 말하는 예술가의 고뇌라기보다는, 이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 노동집약적인 작업과 인내심을 요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였습니다.
‘저 미완성의 작품이 완성에 이르기까지 작가를 얼마나 괴롭혔을 것인가. 완성도의 끝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채근하고 비난했을 것인가. 혹은 이제 다 되었다고 작가에게 언제쯤 말해줬을 것인가. 작가는 그 앞에서 얼마나 괴롭고 기뻤을 것인가.’ 작가의 마음을 짐작해 봅니다. 실컷 쓰지 못할 이유 백 가지쯤 스스로에게 둘러대다가 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야 일에 몰두하는 나와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는,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과정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 과정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기 때문일까요. 론 뮤익이 이 풍경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사실과 비슷한 거짓을 좋아하지, 사실을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관람객과 통했다고 생각할까요?
전시 정보를 인스타그램이나 X를 통해 얻는 저는 흔히 말하는 힙한 인증숏으로 알려진 관람 후기가 다른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들처럼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자주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무얼 느끼긴 했을까 얕잡아 보기도 하고, 이건 모두 껍데기 같은 후기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함에 이끌려 그 전시에 찾아가고 말죠. 아는 것은 없어도 남의 후기에 질려 버린 채 ‘생눈으로 직관하지 않는’ 건 또 싫습니다. SNS의 문으로 직행하면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애써 미술관으로 향했더니 남는 게 ‘역시 별 거 없네’뿐이더라도, 미술관에서 내 생각을 들고 나서게 해 줄 나만의 경험은 오롯이 남을 테니까요.
물론 짐짓 혼자 진지한 척 늘어놓는 이런 말들도 결국 인스타그램 속 사진들처럼 모두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단지 나와 당신이 가서 보고 담을 풍경과 감상만이, ‘진짜’ 이야기겠죠. 그것이 휴대폰에 담은 사진에 비해 그저 그럴지라도, 오로지 그것 만이 진짜 아닐까요. 작품도 풍경도, 사실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