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본다> 2. 정보영: Still light 展
정보영: still light 展
에브리아트 (Everyart)
20250619-20250719
기울어가는 햇빛이 드는 창가, 그 앞에 등대처럼 선 촛대 하나. ‘정보영 작가’라는 이름이 가슴 깊이 각인된 순간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한 해 전이었나 그보다 전이었나, 금호 미술관의 그룹전에서 그 앞을 한참 서성였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좀처럼 이 작가의 개인전을 만나기 힘들었는데 드디어, 만났습니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인쇄소 골목을 한참을 걸어 엘리베이터가 없는 갤러리에 올라가니 그야말로 내 몸에서 촛농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광광 소리를 내며 세게 틀어진 냉풍기 앞에 서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땀을 식히며 고개를 돌리다 초가 있는 이 작품을, 다시 만났습니다.
사실 이 초는 이 정도 밝은 방에서는 별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굳이 텅 빈 테이블 위에 초 하나만 켜진 이유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늘 그렇듯이 이 초에 내 나름의 이입을 할 뿐입니다.
저는 특정한 상황이나 기분일 때, 이 촛불이 있는 그림이 떠오르곤 합니다. 내가 여기에, 이렇게 서서,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싶을 때죠. 그다지 시청자가 많지 않은 숏폼 대본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로 살면서, 이따금 하는 생각입니다.
인생 대부분을 제가 쓰는 대본만큼 짤막한 돈을 받고 글을 써내려 갔고, 그만큼이라도 돈이 되지 않는 글은 거의 써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해가 기울면 따박따박 찾아오는 그림자처럼,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왔습니다. 그 그림자는 꿔 준 돈 받으러 온 사람처럼 집요하게 나를 땅바닥으로 잡아 이끌었습니다. 아니, 여전히 그렇습니다. 나는 성실하게 내 불을 지피며 살았는데,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그저 그리 잘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일까, 너무 내향인이라 인맥도 없고 사교성도 변변치 않아서일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프리랜서로 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감당해야 할 불안이라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막연히 누군가 나를 찾아주길 기다리는 시간은, 저 촛불이 창을 보고 서 있는 시간과 닮아 보였습니다. 저 밖은 어두워지는 걸까요? 그럼 그리 밝지 않은 내 촛불이라도 제대로 제 빛을 찾아, 누군가 읽어줄 글을 다시 쓸 수 있을 텐데요. 반대로 저 밖은 밝아오는 걸까요? 그럼 나는 금세 소용이 없어질 텐데, 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마음으로 다시 보는 이 작품은 내 마음이 그대로 형상화된 것 같습니다. 다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불안은 저 커튼 뒤에 있죠. 차라리 나조차도 모르게 가려두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언제까지고 저렇게 기다릴 것 같습니다. 금세 밝아져 내가 소용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어두워져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리면서.
그런데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니,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노랗고 따뜻한 빛의 이면에 있는 어둠. 그 어둠에도 색조가 있습니다. 그저 까만 것이 아니었죠. 깜깜한 밤 검푸른 산의 목소리, 투명한 유리가 만드는 가벼운 그림자- 어디서 빛이 새어 나오는지 속을 알 수 없는 짙은 초록의 밤하늘. 아, 이 작가는 어둠을 잘 그리는구나. 빛만큼 잘 표현하는 것이 어둠이구나. 작가 본인의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어둠의 시간도 이렇게 잘 그리려나,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나의 어두운 시간도 그저 암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색감, 이런 터치로 그려져 나름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책 없이 끌려들어 가는 우울의 늪에서 어둠이 있기에 빛이 있다는 말은 아무런 구명줄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내 분량의 삶을 버리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면 손에 잡히는 대로, 무엇이라도 잡고 나와야 합니다. 요즘 저에게 구명의 손길은 어떻게든 내 퍼즐과 맞춰보는, 좋은 작품이 내민 낯선 조각입니다. 내 조각이 나에게 없다면 세상 어디에라도 있다는 마음으로 맞춰보는 거죠.
그렇게 얼마 전 18만 원이나 주고 자판을 갈았던 노트북을 폅니다. 자판이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행위였습니다. 그렇게 돈을 들여,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씁니다. 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사람은 많아도 아마 저 같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나라도 어둠 속에 더듬더듬, 내 자국을 읽고 또 읽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발견되고 읽힐, 알맞은 곳에 알맞은 빛을 피워낼 나를 위해서요.
사실 이 작품들을 그린 정보영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기쁨의 에너지가 토대가 되지 않는 그리기는,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의 우울이나 불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이게 미술 작품 감상의 묘미겠죠.
내 멋대로의 빗나간 해석과 자기 연민에 충실한 감정 이입으로, 작가와 나 각자의 퍼즐의 이가 들어맞는 순간 느껴지는 쾌감이라는 게 있습니다.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처럼 한없이 작은 나에게도, 누구에게나 처럼 공평하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자유니까요. 오로지, 관람객이라는 이유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