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본다'를 시작하며

있어 보이지 않아도 괜찮은 관람 후기를 위해

by per se

깜깜하지만 나름의 결의가 넘치는 글 머리에 선 지금, 3년 전쯤(언제부터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부터 불이 붙어 다녔던 전시 관람의 몇몇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당연히 별 것 없었습니다. ‘좋다’와 ‘별로다’ 혹은 ‘이건 뭐지’의 느낌 정도였죠. 오히려 그래서 거리낌도 편견도 없이, 내가 사는 서울권 전시라는 전시는 거의 다 보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아... 솔직하게 말하자면, 사실은 지금도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마음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관람 후기의 거의 전부입니다. 주로 평일 오후의 호젓한 갤러리, 그 안 어떤 작품들 앞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한 두 번의 ‘좋다, 너무 좋다’는 단순하고 분명한 기쁨.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 행복감이 근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실망감이나 후회를 압도했기 때문에, 조금 다른 색과 모양의 그 마음, 그 기분을 또 느끼기 위해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물론, 그 이상으로 아무 감흥도 얻지 못할 때도 많죠.


그렇게 다니다 보면 유명한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유명한 이유가 있구나 싶을 때도 있었고, 이런 작은 갤러리에 어떻게 이런 멋진 작품이 있을까 싶기도 했고, 첫눈에는 그냥 그랬던 작품들이 도슨트의 설명을 듣거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난 뒤 달리 보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작가길래 이런 작품을 만들까 싶기도,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싶기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싶기도... 그렇게 생각의 가지가 멋대로 자랐습니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면 이 가지들이 정리되었을까요? 나는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닌데...

돌아보니 저의 감상에는 객관적 평가보다 주관과 경험이 관여하는 영역이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전혀 관련 없는 것을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 식견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면 알고 싶어 진다는데, 적어도 저는 아닌가 봅니다. 나의 귀차니즘에 알고자 하는 욕구가 덤벼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저에겐 브로셔에 적힌 ‘어느 정도의 정보’ 면 전시를 보기에 충분합니다. 공부를 하고 내 감상에 평가의 비중이 늘게 되면, 이런 순수함으로 즐길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알고 싶은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알고 싶지 않은 것은 그대로 둔 채 재미만을 좇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라 해도, 어쩌겠나요. 내가 그게 좋은데.

다만 늘 마음 한편에 두었던 한 가지 아쉬움은 이 ‘좋음’이 이대로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좋음이 끌어당기는 추억이나 기억, 사소한 상념들, 어쩌다 뜻밖에 접하는 경험이나 정보들이 이대로 증발한다고? 인스타그램에 살짝 좀 있어 보이려고 많은 것을 축약한 채 짤막하게 남긴 감상만이 박제되고, 내가 기억을 더듬으며 오래 음미할 증거가 그걸로 끝이라고? 내 기억력은 이렇게 날로 쇠하고 있는데?


그래서, 다소 이가 맞지 않는 생각의 조각들도 어떻게든 잘 정리해서 담아두면, 뜻밖의 모습으로 나를 비추어 더 좋은 관람을 향해 이끄는 빛이 되어 줄거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일기를 쓰는 삶과 쓰지 않는 삶이 다른 것처럼, 자라지 않는 생각이라도 정리해 넣어두고 펼쳐보면 책가도(冊架圖)처럼 멋진 한 폭의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작품까지는 아니더라도 나 혼자 보러 다닌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거 하는 기록 역할을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반대로 조금 욕심을 내본다면 작품을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놓고 함께 즐길 파티원을 끌어들여 함께 감상을 나누길 기대합니다.


다 떠나 제 이야기가, 별 역할은 못할지라도 부디 쏠쏠한 재미가 있게 읽히길 바랍니다. 제가 작품을 보고 마음속 가득 ‘좋다, 나쁘다’만 채우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