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은 모르지만 좋았어요

<나 혼자 본다>1. James Turrell: The Return 展

by per se

James Turrell: The Return 展

페이스갤러리 (Pace Gallery)

20250614~ 20250927 (*사진 촬영 불가)


솔직히 이상하고, 낯설고, 이게 도대체 뭘 말하자는 것인가 궁금해지는 전시가 많습니다. 자주, 많이 본다고 잘 알게 되지는 않는 작품들- 그런 작품들이 미래 미술계 풍토를 건강하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처럼 소양이 부족한 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운 게 사실이죠. 진작 나가고 싶었는데, 갤러리에서 모두가 열심히 보고 있어서 망설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하거나, 외향인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전시들, (내 눈에) 미적으로 아름답지도 않은데 애써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작품들은 여전히 감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감수하고 낯선 형태의 관람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찾을 때죠. ‘여기 와서 이걸 안 봐? 다시 올 것도 아닌데 봐야지’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일본 나오시마의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중 <미나미데라>에서 만난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사전 정보 없이 관람하길 좋아하는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문 앞에서 암흑 속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안내받았을 때부터, 노부모님을 모시고 그곳에 간 나를 원망했습니다.

‘이게 뭐 하는 곳인가’라는 부모님의 눈빛을 모른 척, 더듬더듬 반 발씩 앞으로 향하면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 뒤, 갑자기 들이닥친 어둠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건 언제 나올까’ 되뇌며 얼마간 기다렸을까. 눈앞에 아스라한 빛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온 것인지, 어둠에 적응한 눈이 처음부터 있었던 빛을 찾아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아련하고, 뭉근하고, 어딘가 서글픈 빛을 보고 있자니 얕은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제목은 <Backside of the moon>. 볼 수 없는 것을 본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하며 그곳을 나섰을 때, 부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좋다. 이런 것도 작품이 되는구나.” 설명할 수 없는 좋음- 어쩌면 충만한 전시 관람의 기쁨이란 이 한 마디로 정의되는 것 아닐까요.


제임스터렐의 작품 <Backside of the moon>(1999)이 있는 나오시마의 미나미데라(南寺). 직접 촬영. 내부 촬영 불가.


그 뒤로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라면 이 기억을 품고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전시 외에 다른 전시로 만났던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은 이런 느낌을 주지 못했습니다. 떨어진 빗물이 그려내는 듯 형형색색의 빛이 천천히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찬란한 동심원은, 아름다웠지만 대단한 감동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치열한 네이버 예약을 뚫고 관람한 페이스갤러리의 <the return> 전시의 1,2층 작품들 또한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긴 뭐가 있길래’라는 마음으로 예약을 했음에도 관람인원 제한으로 또 기다려서 입장한 3층. 이곳에서 마침내, 나오시마에서 발견한 감동과 비슷한 느낌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분명 평면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빛의 변주, 그 빛줄기를 따라 탄생하고 사라지는 공간들, 그리고 파고드는 또 다른 빛의 연속... 지각의 확장이란 게 이런 것일까요. 다음, 또 다음은 어디에서 어떤 색의 빛이 나올까 기대하면서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손대면 직각을 이루며 벽 모서리가 만져질 것 같고 그 모서리를 넘어서면 다른 차원의 또 다른 공간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발을 붙이고 있어도 대지 않은 것 같이, 유영하는 느낌으로 분명 저 너머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렇게 약 30분간의 시간이 쏜살처럼 지나갔습니다.

<The wedge> (2025)/ 페이스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저에게는 갤러리를 나섰을 때 ‘아, 현실로 돌아왔구나’라는 기분이 드는 전시가 좋은 전시입니다. (반대의 경우 ‘이제 뭐 먹으러 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전시가 그런 전시였습니다. 전부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일부나마 내가 잠겨 있다 나온 작품이 있다면, 그 하나만으로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대부분의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의무에 사로잡혀 보내는 날들 속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작품이 있다면요. 땡볕에도, 혹한에도 그런 작품을 만나길 기대하며 전시를 보러 가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전시 관계자분들께는 어쩐지 죄송하지만) 작품을 살 수는 없더라도, 시간과 돈 모두 가난한 이들을 빠르고 쉽게 멀리 바래다주는 한 토막의 휴가가 거기 있으니까요. 왜 거기서 휴가를 찾느냐 묻는다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좋아서'라고 말할 겁니다. 더 좋은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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