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도 아빠가 있다?!

아빠가 된 사나이 1화

by 방덕 김주현

얼마전 서울공항에서 열린 ADEX 서울 국제 항공 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 다녀왔다.

마침 아이들에게 비행기도 보여주고 싶었고 블랙이글스의 곡예비행도 보여주고 싶었다.

블랙이글스의 곡예비행이 하이라이트 였는데 막상 이때 아이들은 피로를 못이기고 웨건안에서 잠들어버렸지만.

참 기억에 남은 하루였다.


IMG_3504.jpeg 2025 ADEX 에서 두 아들과 함께


"요엘, 아빠도 군인 경찰이었어."

"나도 군인 경찰 할래"


".... 하지마...."

"왜?"


"음... 이야기 하자면 길어."


20여년 전 나는 공군 헌병으로 입대했다. 06년 2월 군번으로 27개월간의 군생활은 육해공 본부가있는 계룡대에서 했다. 당시에 본부에 있는 헌병이었던 만큼 각종 행사 전문 헌병으로 키워(?)졌는데 덕분에 각종 군행사에 행사초병으로 중장기 파견을 많이 나갔다. 군대에서 가장 큰 행사였던 국군의 날은 물론이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성남 서울공항에서 진행되는 에어쇼까지(지금의 ADEX). 20년 전이랑 행사복은 어찌나 달라진것도 없고 똑같던지. 항공기 앞에 초병을 서던 헌병 한분께 아이들과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했다. 나도 오래전에 여기 똑같이 초병이었다고 말하자 경례해주더라. 참 짠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옛날 생각도 나고.나 또한 2007년 에어쇼 행사에서 많은 관람객들과 사진을 찍어주었다. 본래 계룡대 본청 건물에서 근무하면서 항상 장군들이 다니는 곳이라 평일에는 항상 행사복을 입고 근무했었다. 4성 장군들이 쉴틈없이 오고가는 그곳은 매일이 행사에 준하는 근무지였기에 큰 행사 파견에 항상 1순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IMG_3984_2.jpeg 2007년의 에어쇼에서 방덕. 당시 병장.

덕분에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쓴다. 지금은 형이라 부르는, 당시에 같이 파견 갔던 부사관 양하사님이 찍어준 사진. 에어쇼에서 유일하게 건진 사진인데.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날 행사 정리 막바지에 그래도 사진하나 남겨준다고 형님이 찍어주셨다. (싸이월드에 올려두고 나중에 보니 다 날아갔더라. 그런데 양형님이 다시 찾아주심 )


누군가에게는 군대는 너무나 기억하기 싫은 공간과 시간일진데, 나 또한 상당부분 그러하다. 하지만 동시에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많은 추억과 결정적인 사건도 있다.



IMG_3992.jpeg 둘 중에 나는 누구인가. 유독 나랑 얼굴이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맞기수 고참과.
IMG_3989.jpeg 우리 5 생활관. 잘 찾아보면 여기 육식맨도 있는데. 말주변과 디테일이 참 보통은 아닌 친구라 생각은 했다. 사람 인연이란게 참 재밌다.


에피소드1)

처음 자대배치 받았을때는 살얼음 같았지만 위에 무서운 형님들이 다 제대하고 나서는 천국처럼 변했다. 병장이 되고 나서부터 우리 생활관은 밤마다 누워서 병장이고 이병이고 나발이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낄낄 거리다보면 결국 아침이 되어서 뜬눈으로 근무에 나가곤 했다.


아빠가 된 사나이에 왜 갑자기 뜬금없이 군대냐라고 한다면. 아빠로서의 추억을 이야기하고자함도 있지만. 나는 군대에서 무한한 아빠의 사랑도 경험했기에 그것이 너무나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자대배치 처음 받는날 정말 살얼음 같고 무서웠다. 그런데 한없이 천사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긴장하고 신병대기실에서 앉아있는데 밖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키큰 상병 한명이 우릴 불러냈다. 자신의 이름표를 가르키며 읽어보란다.


"김00.."

"음~ 아니아니. 아. 버. 지!"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알고보니 1년 차이나는 같은 달에 입소한 군번끼리 아빠 아들 군번으로 정해서 잘 챙겨주는 일종의 군대문화인데 유독 이 부대는 그 아빠 아들 유대감이 돈독했다. 심지어는 공군이라 군생활이 길어서 할아버지 손자도 있었다. 말년 병장이던 할아버지 기수들은 무한한 커버를 쳐주면서 아들들과 손자를 악의 무리에서 구해냈고 할아버지가 제대하자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들은 아버지들이었다. 아무 대가없이 정말 무한한 애정을 주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항상 따듯하게 안아주고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주고 잘 못해도 위로도해주고, 참 이상한 경험이었다. 겨우 한살 차이나는 형들이 어찌된일인지 현실 아버지도다 더 잘해줬다. 그것도 여러명이었다.

이병때는 수면부족에 항상 시달렸는데 내가 근무지에서 살짝 졸았던 일이 있었다. 그때 나대신 아버지가 불려가서 고참에게 몇대 맞기도 했다. 나대신 다른사람이 체벌받는 일은 참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괜찮다고 웃어넘겼다. 그런 일들로 인해 휴가를 나가서도 만날정도로 친해졌었다. 이후로도 밤마다 찾아가면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고 전화도 시켜줬다.(당시 공중전화는 상급자가 데리고가야만 사용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상병이 되어 아들을 받았고 그 아버지의 이미지가 내가 아들 기수를 대하는 기준이 되었다.


물론 아버지들도 좋았지만 다른 고참 후임들도 참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감사하게도 아직 어리고 부족했던 나를 좋아해준 형님들이 아버지가 기수가 아니더라도 나를 짜세(전반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불러주는 은어)로 불러주며 많이들 아들 삼고 싶어했다. 아버지도 아닌데 아버지라 부르며 친해진 형님들 그리고 리얼 아버지들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고 가끔 보기도하면서 지낸다. 물론 어딜가나 빌런 총량의 법칙이 있기에 빌런도 종종 있었다. 덕분에 그들의 뒷담화가 우리가 모일때 항상 우리의 안주거리다.


아버지 역할의 경험은 일종의 상담치료 테라피로도 쓰이는 사이코 드라마같은 효과를 주었던것 같다. 삭막했던 군대에서 유일하게 따듯한 온정을 경험했다. 군대 자체는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1년차 아버지 문화 만큼은 지나고 보니 정말 좋은 문화였다.





에피소드2)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아있는 가장 강력한 기억이 있다.

과장하면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을 수 도있는.


대대원들 모두가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나이지긋하신 한 원사님이 계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 마음은 순수하셨는데 세대차이가 컸기 때문이라, 그분의 위치상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한다. 간부는 병사의 주적이었으니까.)

말년 병장시절 하루는 내가 야간 당직대 근무를 서는데 마침 그 분도 당직사관이셨다. 평소 서로 말도 잘 안하고 딱히 크게 교류할 일은 없었는데 갑자기 대뜸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현아. 계속 봐왔는데 너는 참 선한 얼굴을 가졌다. 눈 빛이 참 선해."


그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살면서 처음들어본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무표정하게 있으면 눈이 찢어진 상이라 남들이 보기엔 마치 인상을 쓰고 살아온것고 같았다. 그래서 시비걸린 적도 많았고 오해를 산적도 많았다. 멀리서 사진을 찍으면 항상 양끝 눈고리가 올라가서 화난 고양이 상으로 찍혔다. 나 스스로도 나는 그런 상이구나 하고 그게 곧 나이며 오히려 사람들 기선제압하고 좋지뭐 하며 받아들이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내 얼굴이 선하다니. 나로서는 정말 충격적인 말이었다.

나를 이렇게 봐주는 사람도 있구나. 누군가에게는 나의 얼굴에서 선함이 묻어나올 수 있구나 싶었다. 마치 어른이 '넌 나쁜아이가 아니야' 라고 말해줘서 아이가 조심씩 달라지듯이.

나 또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부터 정말로 얼굴이 변했다.

우연히 찍힌 사진에 내 얼굴에서 이전에는 없던 '착함'이 조금씩 보였다. 나에게도.

아. 나에게도 있었구나.

이자리를 빌어 원사님께 참 감사하다는 말씀들 드리고 싶다. 어떻게 지내실지.

말 한마디의 힘을 알게해줘서 감사하다고.





우리 아들들이 자라는 중에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할까.

아빠의 경험은 이러했는데, 아이들은 어떤 문화를 경험하고 어떤 말들을 들으며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까.

나를 있게한 경험, 인연들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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