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열병과 뿌리

힘의집_part1 금지된 감각

by 방덕 김주현

그날 밤, 요엘은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오두막의 차가운 바닥도 요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그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악몽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감염으로 인한 발열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간이 하나의 육체 안에서 충돌하는 지질학적인 사건이었다.


요엘의 30년이라는 짧은 생체 시간과, 규화목 조각이 품고 있는 수천만 년의 지질학적 시간이 혈관 안에서 격렬하게 부딪혔다.


꿈속에서 그는 나무였다.


발은 땅속 깊이 박혀 움직일 수 없었고, 팔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하늘이 갈라졌다. 도시의 인공 조명이 아닌, 태초의 번개가 내리꽂혔다.


콰광!


몸통이 타들어 갔다. 살이 찢어지는 고통. 하지만 그는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나무였으니까. 그는 그저 타오르며 견뎠다.


그는 쓰러졌다. 차가운 늪이 그를 덮쳤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진흙이 입과 코를 막고, 엄청난 무게의 퇴적층이 그를 짓눌렀다. 1년, 10년, 100년, 1000년. 시간이 흐르지 않고 쌓였다. 압력이 세포 하나하나를 터뜨리고, 그 빈자리에 광물을 채워 넣었다. 그는 죽어가면서 동시에 영원해지고 있었다.


'무거워...'


꿈속의 요엘은 신음했다. 그 무게는 물리적인 돌의 무게이자, 동시에 죄책감이었다. 도시에서 편안하게 살았던 죄, 아버지를 잊고 살았던 죄, 그리고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이곳까지 이끌어준 누군가의 희생에 대한 무게.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것은 보였다. 칠흑같이 검은 흑단 방망이 두 자루.


사내는 말없이 방망이를 요엘에게 내밀었다. 받으라는 뜻이었다.


요엘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닿으려는 순간, 사내의 방망이가 웅웅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요엘의 팔뚝에 박힌 나무 조각들도 같이 울었다.


공명.


두 개의 파동이 하나로 합쳐졌다.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가 아니라 뼈로 전해지는 진동이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너의 뼈 속에 있다.'


요엘은 눈을 번쩍 떴다.


아침이었다.


열은 거짓말처럼 내렸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머릿속은 수정처럼 맑았다.


그는 왼팔을 들어보았다. 붕대 위로 희미하게 배어 나온 핏자국. 그는 주먹을 쥐었다 펴보았다. 손가락 끝까지 신경이 연결된 느낌이 생생했다.


그런데 달랐다.


팔의 무게가 달라져 있었다. 물리적으로 나무 조각 두 개가 들어갔을 뿐인데, 왼팔 전체가 마치 납덩이를 매단 것처럼 묵직하게 땅으로 처졌다. 중력이 요엘의 팔을 더 강하게 잡아당기고 있었다.


"일어났나."


세라가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이 들려 있었다.


"사흘을 꼬박 앓더군. 죽는 줄 알았다."


"사흘이나... 말입니까?"


"나무가 네 몸에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었어. 규화목은 고집이 세다고 했잖아. 네 혈관을 타고 온몸을 한 바퀴 도는 데 꽤 시간이 걸린 거지."


그녀는 차를 건넸다. 쓴맛이 혀를 찔렀지만, 곧이어 단전이 뜨거워졌다.


"마셔. 그리고 나가자. 네 파트너들이 기다리고 있어."


쌍둥이의 탄생


작업장 앞에는 완성된 한 쌍의 방망이가 놓여 있었다.


석이 마지막 칠을 끝낸 상태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탕에, 안쪽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듯한 붉은 핏빛이 감돌았다.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손잡이 부분은 요엘의 손아귀 모양대로 미세하게 굴곡이 져 있었다.


두 자루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크기, 무게, 붉은 결의 흐름까지 쌍둥이처럼 똑같았다.


요엘은 침을 삼켰다.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그것은 운동기구가 아니었다. 두 명의 과묵한 전사가 그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잡아봐라."


석이 턱짓했다.


요엘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양손을 뻗었다. 손끝이 나무에 닿는 순간, 왼팔의 상처 부위가 찌릿하게 반응했다.


그는 두 손잡이를 동시에 꽉 쥐었다.


"큭...!"


엄청난 무게감이 손목을 타고 어깨까지 치고 올라왔다. 단순히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방망이 두 자루가 요엘의 양팔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땅으로, 중력의 중심부로.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무게가 싫지 않았다. 왼팔에 심어놓은 나무 조각들이, 양손에 쥔 방망이와 보이지 않는 신경망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몸 안의 회로가 완성되어 전기가 통하는 듯했다.


몸의 좌우 균형이 강제로 맞춰졌다.


"이름을 지어줘야지."


세라가 말했다.


"이름을... 지어줍니까?"


"당연하지. 네 뼈가 들어갔잖아. 너의 분신이야. 이름이 없으면 부를 수 없고, 부를 수 없으면 다룰 수 없어."


요엘은 두 개의 방망이를 들어 올려 빛에 비추어 보았다. 검은 표면 아래로 흐르는 붉은 결. 벼락을 맞고, 물에 잠기고, 땅에 눌려 만들어진 역사.


"이그니스."


요엘이 무심결에 뱉었다.


"불이라는 뜻이군."


"네. 불에서 태어나, 돌이 된 불입니다."


"하나는 이그니스, 그럼 다른 하나는?"


세라가 물었다.


"아니요. 둘이 합쳐서 이그니스입니다."


요엘은 두 방망이를 나란히 모았다.


"불은 나눌 수 없으니까요. 이 둘은 하나의 불꽃입니다."


석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아. 이제 그놈들을 시험해봐야지. 세라, 그곳으로 데려가라."


"알겠습니다."


세라가 요엘에게 눈짓했다.


"따라와. 이그니스가 진짜 눈을 뜰 수 있는 곳으로 갈 거야."


속삭이는 숲


세라가 데려간 곳은 성채에서 한참 떨어진 깊은 숲이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이상했다. 도시의 조경수들처럼 가지런하지도 않았고, 헤테르 주변의 거친 나무들처럼 제멋대로 자라지도 않았다. 모든 나무가 거대하고 곧게 뻗어 있었는데, 가지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수천 명의 수도승들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 같았다.


그리고 고요했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바람 소리만이 나무 사이를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뭇잎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는 '속삭이는 숲'이야."


세라가 발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이곳의 나무들은 예민해. 땅의 진동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생명체의 '의도'에 반응하지."


"의도요?"


"누군가 살의를 품고 들어오면, 나무들은 가시를 세우고 길을 막아. 하지만 순수한 호기심이나 수련의 의도를 가진 자에게는 길을 열어주지."


세라는 숲의 한가운데, 둥글게 터가 닦인 공터로 요엘을 안내했다.


"여기서 해봐. 이그니스와 너의 첫 번째 대화를."


요엘은 공터 중앙에 섰다. 발밑의 흙이 부드러웠다. 그는 양손에 이그니스를 들었다. 각각 20kg에 달하는 무게가 양어깨를 짓눌렀다. 도시의 헬스장에서라면 덤벨을 드는 것처럼 근육을 수축시켜 들어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방망이들은 통제하려 들면 저항할 것이라는 걸.


'맡겨야 한다.'


요엘은 눈을 감았다. 시각을 차단하고, 촉각과 고유감각에 집중했다.


왼팔의 나무 조각. 양손의 방망이. 그리고 아랫배의 웅덩이. 네 개의 점을 잇는 선을 상상했다.


그는 어깨의 힘을 뺐다. 그러자 이그니스가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툭 떨어지려 했다.


요엘은 그 낙하를 막지 않았다. 대신 무릎을 굽히며 그 낙하에 동참했다. 방망이가 바닥을 스치기 직전, 그는 골반을 살짝 틀었다.


아주 작은 의도였다. '돌아라.'


그러자 떨어지던 방망이가 바닥을 치지 않고,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뒤로 올라갔다. 진자운동이었다.


오른손의 방망이가 뒤로 넘어가자, 왼손의 방망이가 앞으로 나왔다. 시소처럼, 혹은 걷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교차였다.


"그래, 그거야."


세라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방망이는 등 뒤로 넘어가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요엘은 그 가속도를 이기려 하지 않았다. 대신 흉곽을 열어 방망이가 지나갈 길을 터주었다.


위팔뼈가 안쪽으로 회전했다. 견갑골이 미끄러졌다. 척추가 파동쳤다.


붕. 붕.


두 개의 방망이가 교차하며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요엘의 머리 위로 검붉은 궤적이 8자 모양을 그리며 이어졌다. 무한대의 기호이자, 완벽한 보호막인 헤일로였다.


그 순간, 요엘은 느꼈다.


숲이 반응하고 있었다.


그가 방망이를 돌릴 때마다, 주변의 나뭇잎들이 같은 박자로 흔들렸다. 사사삭. 사사삭. 마치 수천 개의 탬버린이 요엘의 리듬에 맞춰 반주를 넣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방망이를 돌리는 것이 아니었다. 방망이가 나를 돌리고, 내가 숲을 돌리고, 숲이 다시 나를 돌리고 있었다.


경계가 사라졌다. 피부라는 경계가 무너지고, 요엘의 신경이 방망이 끝까지, 아니 저 숲의 나무들까지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요엘의 팔은 더 이상 사람의 팔이 아니었다. 나무의 가지였고, 바람의 통로였다.


이것은 훈련이 아니었다. 대화였다.


요엘은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이로웠다.


공터 주변의 나무들이, 요엘이 그리는 원의 방향을 따라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바람은 없었다. 오직 요엘이 만들어낸 '의도의 소용돌이'가 거대한 나무들을 춤추게 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 먼지들이 요엘의 궤적을 따라 회전하며 빛나고 있었다.


"보이나?"


세라가 다가왔다. 그녀의 눈에도 경이로움이 서려 있었다.


"네가 만든 파동이야. 네 뼈와 나무가 공명해서 만들어낸 힘의 장이지."


그녀는 요엘의 땀 젖은 등을 두드렸다.


"이제 시작이다. 그 파동을 더 크게, 더 멀리 보낼 수 있게 되면, 너는 도시의 벽조차도 리듬으로 무너뜨릴 수 있을 거야."


요엘은 천천히 회전을 멈췄다. 방망이를 내려놓지 않고, 양쪽 어깨에 걸쳤다. 차가운 나무에서 뜨거운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나의 뼈. 나의 나무. 나의 이그니스.


그는 숲의 깊은 곳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움은 없었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양손에 쥔 무게가 요엘을 땅에 단단히 박아주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이 세계에 뿌리를 내렸음을 느꼈다.


진짜 지도를 찾으러 갈 준비가 끝났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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