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집_part1 금지된 감각
어둠은 빛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소리와 냄새, 피부에 닿는 공기의 질감이 증폭되는 또 다른 세계였다.
요엘은 오두막 바닥에 깔린 곰 가죽 위에서 눈을 뜨지 않았다. 뇌는 아직 수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지만, 피부의 솜털은 이미 기립해 있었다. 오두막 틈새로 스며드는 밤바람의 결이 바뀌어 있었다. 바람은 본래 곡선을 그리며 흐른다. 나무를 타고 넘고, 바위를 감싸 안으며 부드럽게 맴돈다. 하지만 지금 요엘의 뺨을 스친 공기는 날카롭게 잘려 있었다.
누군가가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을 인위적인 직선으로 찢으며 들어왔다.
기계였다.
도시의 정비소 바닥에 고인 폐유 냄새와 냉각수의 비릿한 금속성 악취가 흙내음을 덮었다. 요엘은 호흡을 멈췄다. 횡격막을 아래로 고정한 채 폐 속에 남아 있는 최소한의 산소만으로 버텼다.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을 때릴 듯 크게 들렸지만, 그는 그 소리마저 삼켰다.
바스락.
아주 미세한 소리였다. 오두막 입구를 가린 가죽 장막이 살짝 들렸다가 내려앉는 소리. 쥐나 벌레가 아니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중력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인공 관절의 움직임이었다.
치이잉.
미세한 구동음과 함께 붉은 선 하나가 어둠을 갈랐다. 레이저였다. 그 빛은 오두막 내부의 먼지를 태우며 직선으로 뻗어왔다. 빛은 바닥을 훑고, 벽에 걸린 거대한 방망이들을 지나, 정확히 요엘이 누워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요엘은 실눈을 떴다. 붉은 점이 자신의 가슴팍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거리와 풍속, 습도까지 계산하여 탄환이 날아갈 궤적을 미리 그리는 죽음의 선이었다.
과거의 요엘이었다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거나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요엘의 몸 안에는 다른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구덩이 속에서 수천 번 방망이를 휘두르며 뼈에 새긴 기억.
직선은 빠르다. 하지만 직선은 멍청하다. 목적지까지 최단 거리로 가지만, 그 궤적을 수정하지 못한다. 이미 쏘아진 화살은 휠 수 없다. 그러나 곡선은 다르다. 곡선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돈다.
요엘은 오른손 옆에 놓인 나무 방망이의 손잡이를 더듬었다. 땀과 피에 절어 매끄러워진 그립이 손바닥에 착 감겼다. 차가운 나무의 온도가 신경을 타고 뇌수까지 전해졌다.
붉은 점이 요엘의 미간으로 올라왔다. 사냥개는 확신하고 있었다. 대상은 잠들었고, 무방비 상태이며, 처리 확률은 완벽하다고.
하지만 기계는 모른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인간에게는 행동보다 찰나의 순간 앞서는 의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요엘은 사냥개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그 기계 손가락의 모터가 수축하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고주파음을 들었다. 귀로 들은 것이 아니었다. 곤두선 전신의 신경망이 공기의 파동을 감지한 것이었다.
지금이다.
요엘의 동공이 어둠 속의 윤곽을 잡았다. 붉은 레이저의 발원지, 어둠 속에 웅크린 금속성 실루엣이 보였다.
놈의 중심축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격의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무게중심을 낮춘 자세였다. 오른쪽 옆구리가 비어 있었다.
요엘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일어나는 대신 바닥을 등지고 회전했다.
슈욱.
소음기를 통과한 탄환이 요엘의 관자놀이 옆 바닥에 박혔다. 흙이 튀어 올랐다. 찰나의 차이였다. 요엘이 있던 자리에는 이미 잔상만이 남아 있었다.
요엘은 척추를 축으로 삼아 바닥에서 팽이처럼 돌았다. 그 회전력은 고스란히 손에 쥔 방망이로 전달되었다. 팔로 휘드르는 것이 아니었다. 단전에 고인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회전하자, 방망이라는 위성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것이었다.
머리 위로 성자의 고리처럼 둥근 궤적이 그려졌다.
콰아앙.
둔탁하고 끔찍한 파열음이 오두막을 뒤흔들었다. 나무와 강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소리였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사냥개가 튕겨 나갔다. 요엘의 방망이가 놈의 소총을 쥔 오른팔과 흉부 장갑판을 동시에 타격했다.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원심력이 실린 방망이는 닿는 순간 멈추지 않고 대상을 뚫고 지나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사냥개는 인간형 드론이었다. 매끄러운 탄소섬유 골격 위에 센서와 장갑을 두른 도시의 살인 기계. 놈의 균형 센서가 요동쳤다. 예상치 못한 충격량.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물리적 타격이었다.
놈이 비틀거리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 했다. 붉은 레이저가 허공을 미친 듯이 그었다.
하지만 요엘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 시작된 진자운동은 멈추지 않는다. 방망이는 요엘의 몸 뒤로 넘어갔다가 중력의 도움을 받아 다시 가속도가 붙은 채 앞으로 쏟아졌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요엘의 시선이 놈의 머리통, 센서가 집약된 그 매끈한 돔을 찍었다. 시선이 닿자 의도가 생겼고, 의도가 생기자 근육은 알아서 길을 열었다. 흉곽이 열리고 견갑골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퍼억.
두 번째 타격. 수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기계의 머리통이 으깨졌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입력된 코드에는 고통이 없었으니까.
사냥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경련하듯 몇 번 팔다리를 떨다가 이내 붉은 안광이 꺼지며 고철 덩어리로 변했다.
후우. 후우.
요엘은 방망이를 늘어뜨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손바닥이 불에 덴 듯 뜨거웠다. 방망이의 진동이 팔뚝을 타고 심장까지 전해져 왔다. 그 진동은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환희였다.
내 몸이 해냈다. 네메시스의 계산 없이, 경로 추천 없이, 오직 나의 감각과 의도만으로 움직여서 살아남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손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것은 더 이상 도시의 부품이 아니었다. 이것은 무기였고, 도구였으며, 생명 그 자체였다.
짝. 짝. 짝.
느리고 건조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제법이군."
세라였다. 그녀는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오두막 가장 구석진 그림자 속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고양이처럼 빛났다.
"죽을 뻔했습니다."
요엘이 헐떡이며 말했다.
"아니. 넌 죽지 않을 거였어."
세라가 툭 내뱉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쓰러진 사냥개의 잔해를 발로 툭툭 걷어찼다.
"도시 놈들은 직선만 믿지. 최단 거리가 가장 빠르다고 착각하니까. 놈들의 계산식엔 곡선이 없어. 네가 방금 그렸던 그 궤적, 몸을 비틀어 만들어낸 그 나선형의 공간. 그건 놈들의 예측 범위 바깥에 있는 사각지대야."
그녀가 허리를 숙여 부서진 드론의 머리통에서 메모리 칩을 뽑아냈다. 그리고는 손가락 힘만으로 그것을 바스라뜨렸다.
"이놈은 정찰병이야. 네가 어제 구덩이에서 만들어낸 그 불규칙한 회전이 도시의 감시망에 아주 미세한 파문을 일으켰거든. 그걸 확인하러 온 거지."
"불규칙한 회전이라뇨?"
"도시의 모든 움직임은 예측 가능해야 합법이야. 언제 출근하고, 언제 밥을 먹고, 심박수는 얼마여야 하는지. 하지만 너는 그 규칙을 깼어. 예측할 수 없는 회전, 중력을 거스르는 움직임. 그건 기계에게는 바이러스고, 우리에게는 생명이야."
세라가 요엘의 어깨를 잡았다. 그녀의 손은 뜨거웠다.
"피 냄새가 나는군. 기계 기름 냄새도 역겨워. 씻으러 가자."
"어디로 말입니까?"
"생명의 가장 깊은 곳. 진짜 리듬이 시작되는 곳으로."
세라가 요엘을 이끌고 간 곳은 성채 안쪽, 흙벽으로 둘러싸인 둥근 돔 형태의 건물이었다.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둥. 둥. 둥.
규칙적이지만 기계적이지 않은 소리. 그것은 거대한 짐승의 심장이 뛰는 소리 같기도 했고,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끓는 소리 같기도 했다.
입구를 덮은 두꺼운 가죽천을 걷어내자 훅 하고 끼쳐오는 열기와 습기. 그리고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피와 땀, 그리고 양수가 뒤섞인 원초적인 냄새였다.
요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내부는 어둑했지만 중앙에 피워놓은 모닥불 빛에 의지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곳은 도시의 멸균된 산부인과 분만실과는 정반대의 세상이었다. 하얀 시트도, 차가운 금속 침대도, 규칙적인 신호음을 내는 심박동 모니터도 없었다. 마취 가스 냄새 대신 쑥을 태우는 매캐한 향이 가득했다.
천장에서는 굵은 밧줄들이 여러 개 내려와 있었고 바닥에는 푹신한 짚과 짐승의 털가죽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다. 밧줄에 매달려 깊은 스쿼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배는 터질 듯이 불러 있었고 온몸은 땀으로 젖어 번들거렸다.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떨리고 있었다.
"출산 중입니까?"
요엘이 당황해서 물었다. 도시에서 출산은 철저히 통제된 의료 행위였다. 산모는 마취되어 누워 있고, 의사가 메스를 들고, 기계가 아이를 꺼낸다. 고통은 제거해야 할 오류였고 효율적인 배출만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곳의 풍경은 달랐다.
구석에는 맹인 연주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아주 작고 부드럽게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산모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대신 그 북소리에 맞춰 골반을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돌리고 있었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잘 봐둬라."
세라가 요엘의 등을 떠밀며 속삭였다.
"이게 진짜 싸움이다. 방금 네가 몽둥이를 휘두른 건 어린애 장난에 불과해."
산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통이 찾아온 것이다. 도시였다면 비명을 지르거나 진통제를 요구했을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소리를 지르는 대신 입을 크게 벌렸다.
"하아아아."
그녀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낮고 굵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신음이라기보다는 노래에 가까웠다.
"입을 벌려야 해."
세라가 설명했다.
"우리 몸의 모든 구멍은 연결되어 있어. 입을 꽉 다물고 턱에 힘을 주면 아래쪽 자궁 경부와 골반도 같이 잠겨버려. 두려움이 문을 닫는 거지."
요엘은 산모의 턱을 보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턱에 힘을 빼고 있었다. 입이 열리고 목구멍이 열리자 신기하게도 아래쪽 골반이 더 넓게 벌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밧줄을 잡아당기며 상체를 세웠다. 중력. 그녀는 중력을 이용하고 있었다. 누워서 낳으면 아이는 산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서서 낳으면 중력이 아이를 아래로 당겨준다.
"흡!"
산모가 단전에 힘을 주었다. 밖으로 밀어내는 힘이 아니었다. 아이가 흘러나가는 길을 터주는 허용의 힘이었다.
그녀의 골반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척추가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며 아이가 내려오는 각도를 맞춰주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투쟁이 아니라 생명과의 치열한 합주였다.
미끄러지듯.
거짓말처럼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늙은 산파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를 받아냈다. 핏덩이가 털가죽 위에 놓였다. 탯줄은 아직 펄떡이며 어미와 아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정적.
요엘은 숨을 죽였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첫 공기를 들이마셨다. 쭈그러져 있던 폐포가 팝콘처럼 터지며 산소를 머금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핏덩이가 꿈틀거렸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신생아가 등 근육을 미세하게 떨며 머리를 들어 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무엇이 저 작은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가. 근육량? 아니다.
요엘은 아이의 눈을 보았다. 아직 초점도 잡히지 않은 혼탁하고 흐릿한 눈동자. 하지만 그 눈은 분명히 무언가를 향하고 있었다.
천장 틈으로 쏟아지는 한 줄기 하얀 별빛.
아이는 그 빛을 보고 싶어 했다.
보고 싶다.
그 원초적인 갈망이 뇌를 자극했다. 뇌는 척수를 통해 명령을 내렸다. 고개를 들어라. 등을 수축해라.
근육이 먼저가 아니었다. 시선이 먼저였다. 시선이 의도를 만들고, 의도가 움직임을 만들었다.
방금 전 요엘이 사냥개를 부술 때 썼던 바로 그 순서였다.
아이가 머리를 들어 올리려 했다. 연약한 목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 완전하지 않았지만, 그 움직임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었다. 빛을 향한 명백한 의도. 그것은 생존 본능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앎의 욕구였다.
"우리는 모두 저렇게 태어났어."
세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 빛을 보고 싶어서 고개를 들었고 소리를 듣고 싶어서 꿈틀거렸어. 그게 최초의 힘이야."
그녀는 요엘의 손을 잡아 펼쳤다. 방망이를 휘두르다 찢어진 물집과 굳은살이 보였다.
"도시는 이 본능을 잊게 만들어. 보지 마라, 가만히 있어라, 시키는 대로 해라. 그렇게 이십 년을 살면 인간은 스스로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린 고깃덩어리가 돼. 우리가 하는 수련은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아니야. 잃어버린 저 아이의 눈빛을 되찾는 거지."
요엘은 갓 태어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깊고 검은 눈동자.
그 눈 속에서 요엘은 47구역 지하에서 만났던 사내, 그리고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데오크반의 흔적을 보았다.
나는 저 눈을 잃어버리고 살았었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았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했고 분노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거대한 해방감이기도 했다.
산파가 아이를 들어 올려 어미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어미는 땀에 젖은 얼굴로 아이를 안고 웃었다. 그녀의 심장 소리와 아이의 심장 소리가 맹인 연주자의 북소리와 하나가 되어 돔 안을 가득 채웠다.
둥. 둥. 둥.
그것은 살아있음의 리듬이었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세라는 요엘을 성채 뒤편의 숲으로 데려갔다.
거대한 고목들 사이로 톱질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냄새와 쇠 냄새가 섞인 공기가 차가웠다. 작은 오두막 앞에는 수백 개의 나무 방망이들이 건조되고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꽤 까다로워. 말조심해."
세라가 경고했다.
오두막의 문이 열리고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앞치마를 두른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장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요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왼팔이었다.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길고 굵은 흉터가 지렁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살을 가르고 뼈를 드러냈던 수술 자국이었다.
"냄새가 나는군."
장인이 코를 킁킁거리며 요엘에게 다가왔다.
"도시의 기름 냄새와. 덜 마른 피 냄새."
그가 요엘의 팔뚝을 덥석 잡았다. 악력이 바위처럼 단단했다.
"뼈는 쓸만하군. 밀도가 좋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이름은 석이다. 방망이는 돈 주고 사는 게 아니다."
석이 작업대 위에 놓인 깎다 만 방망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내 뼈를 심어야 내 것이 되지."
요엘은 이해하지 못해 미간을 찌푸렸다. 석은 흉터가 있는 자신의 팔을 툭툭 쳤다.
"팔뚝 뼈를 조금 떼어낸다. 그리고 방망이의 심장, 그 무게중심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고 뼈 조각을 박아넣지."
요엘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뼈를 파낸 내 팔에는 방망이를 깎고 남은 나무 조각을 다듬어 채워 넣는다. 뼈와 나무를 바꾸는 거지. 그게 입문 의식이다."
미친 짓이었다. 생살을 찢고 뼈와 나무를 바꾼다니. 감염이나 부작용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야만적인 행위였다. 도시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나무와 신경이 연결된다."
세라가 거들었다.
"주인이 죽으면 방망이도 갈라져. 반대로 방망이가 부러지면 주인도 팔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지. 단순한 도구가 아니야. 신체의 연장이지."
석은 오두막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단 하나의 방망이만이 유리관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검은 흑단나무로 깎은 매끄럽고 육중한 방망이. 손잡이 부분에는 금색 실선이 상감되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놀랍게도 나무는 단 하나의 실금도 없이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주인이 방금 전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것처럼 윤기가 흘렀다.
"저게 데오크반의 것이다."
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가 사라진 지 이십 년이 넘었어. 도시의 심장부로 들어갔다는 소문만 남기고 증발해버렸지. 다들 그가 죽었을 거라고 했어. 하지만."
석이 유리관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보이나? 갈라지지 않았어. 나무가 아직 숨을 쉬고 있다. 그 말인즉슨 데오크반의 뼈가 아직 어딘가에서 살아있다는 뜻이지."
요엘은 홀린 듯 유리관 앞으로 다가갔다.
데오크반.
자신을 이 낯선 곳으로 이끈 미지의 존재. 어쩌면 이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사람.
그 검은 나무 속에 그의 뼈 조각이 들어있다.
찌릿.
요엘의 왼팔이 저려왔다. 착각일까. 유리관 속의 방망이를 보자 자신의 뼈가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반응했다. 설명할 수 없는 인력이었다. 마치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것처럼, 혹은 아주 오래된 기억을 마주한 것처럼 뼈가 울렸다.
"준비됐나?"
석이 오두막 뒤편의 육중한 철문을 열었다.
"따라와라. 네 뼈가 들어갈 관을 직접 골라야지."
철문 너머는 거대한 동굴이었다. 목재 건조실. 수천, 수만 개의 나무들이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톡 쏘는 송진 향과 묵직한 흙내음이 섞인 숲의 시체 냄새가 요엘을 덮쳤다.
"눈으로 보지 마라."
석이 앞장서며 말했다.
"눈은 껍데기만 본다. 네 뼈와 공명하는 놈을 찾아야 해."
요엘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붉은 자단목, 검은 흑단, 하얀 자작나무. 수많은 나무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요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들은 아름다웠지만, 요엘의 단전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그는 더 깊은 곳, 빛이 잘 닿지 않는 구석으로 이끌리듯 걸어갔다.
그곳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겉은 숯처럼 검게 탔고, 곳곳에 돌의 질감이 섞여 있었다. 나무라기보다는 화산 암석 같았다.
하지만 요엘은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우웅. 우웅.
귀가 아니라 뼈가 울리는 소리였다. 손끝이 닿는 순간 차가운 냉기와 뜨거운 열기가 동시에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이건."
"규화목이다. 돌이 된 나무지."
석이 다가와 말했다.
"벼락을 맞고 늪에 잠겨 수천 년 동안 돌이 된 놈이다. 불과 물, 그리고 땅의 압력을 동시에 견뎌냈지. 지독하게 무겁고, 지독하게 단단해."
요엘은 침을 삼켰다. 불에 타고, 물에 잠기고, 땅에 눌린 존재. 도시에서 불태워지고, 47구역의 어둠에 잠겼다가, 이제 막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자신과 닮아 있었다.
"들어봐라."
요엘은 양손으로 그 검은 덩어리를 잡았다.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횡격막을 내리고 척추를 세워 들어 올리자, 그 무게가 오히려 요엘의 뼈를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겁니다."
요엘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석은 씩 웃었다.
"각오해라. 그놈은 고집이 세서, 주인의 뼈가 무르다면 도리어 네 팔을 부러뜨릴 테니까."
"이놈을 돌리려면, 기계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석은 오두막 구석, 거대한 쇠사슬에 묶여 있는 기괴한 장치 앞으로 규화목을 굴렸다. 그것은 도시의 목공소에서 쓰는 매끈한 전동 선반이 아니었다. 거대한 강철 톱니바퀴와 육중한 플라이휠이 맞물려 있는, 마치 고문 기계나 공성 병기처럼 생긴 투박한 괴물이었다.
"잡아라."
석의 지시에 요엘은 규화목의 양단을 잡고 선반의 주축과 심압대 사이에 끼워 넣었다.
끼기긱.
석이 강철 핸들을 돌려 심압대를 조이자, 쇠가 비명을 지르며 돌나무를 물었다. 척의 강철 이빨이 규화목의 표면을 파고들며 단단히 고정되었다.
"물러서 있어라. 껍질이 터질 테니까."
석은 가죽 앞치마를 고쳐 매고, 바닥에 있는 거대한 페달을 밟았다.
쿵. 쿵. 쿵.
지하 깊은 곳에서 수맥이 흐르는 듯한 진동이 올라오더니, 거대한 플라이휠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전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땅의 중력과 관성을 이용한 원초적인 회전력이었다.
우우우웅.
육중한 규화목 덩어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릿하게, 이내 무서운 속도로. 검은 잔상만이 남을 정도로 빨라지자, 공기가 찢어지는 소음이 오두막을 가득 채웠다.
석은 일반적인 목공용 칼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텅스텐으로 특수 제작된, 끝이 다이아몬드처럼 예리한 정을 집어 들었다.
그는 칼받침에 정을 단단히 고정하고, 숨을 멈췄다. 그의 자세는 목수라기보다는 검객에 가까웠다. 다리를 벌려 지면을 움켜쥐고, 아랫배 웅덩이에 힘을 가두었다.
"시작한다."
콰아아앙.
석이 정을 규화목의 표면에 들이대는 순간, 톱밥 대신 시뻘건 불꽃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깎는 것이 아니었다. 갈아버리는 것이었다. 규화목의 표면에 붙어 있던 수천 년 묵은 탄화물과 퇴적층이 고속 회전하는 마찰열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 튀어 올랐다.
오두막 안이 용광로처럼 붉게 물들었다. 타닥타닥 튀는 불똥이 석의 가죽 앞치마와 팔뚝을 때렸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포 때문이 아니었다. 회전하는 돌나무가 뿜어내는 엄청난 척력을 온몸의 근육과 뼈로 받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끼아아악.
돌이 비명을 질렀다. 겉껍질이 벗겨지고, 울퉁불퉁했던 표면이 깎여 나가며 점점 원형의 대칭을 찾아갔다. 거친 사각형의 덩어리가 매끄러운 원기둥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마치 짐승이 털을 벗고 알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관능적이고 폭력적이었다.
"물!"
석이 소리쳤다. 세라가 기다렸다는 듯, 미리 준비해 둔 찬물을 회전하는 나무 위에 끼얹었다.
치이이익.
엄청난 수증기가 폭발하며 시야를 가렸다. 급격한 온도 차이로 인해 돌나무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며 더욱 단단하게 조여졌다. 안개 속에서 드러난 속살은 충격적이었다. 겉의 검은 숯덩이는 온데간데없고, 그 안에서 붉은 마그마가 흐르는 듯한 짙은 적갈색의 결이 회전하고 있었다. 굳은 피, 혹은 아주 오래된 심장의 색깔이었다.
석은 이제 정을 내려놓고, 거친 사포가 달린 샌더 대신 넓적한 숫돌을 들었다. 그리고 회전하는 방망이에 숫돌을 직접 갖다 대었다.
서걱, 서걱, 서걱.
불꽃은 사라지고, 고운 돌가루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방망이의 목 부분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잘록해졌고, 타격부는 육중한 볼륨감을 드러냈다. 무게중심을 완벽하게 맞추기 위한 장인의 감각적인 절삭이었다.
첫 번째 방망이가 완성되었다. 석은 멈추지 않고 바로 두 번째 덩어리를 물렸다. 똑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불꽃이 튀고, 물이 끓고, 돌이 깎여 나갔다.
마침내 두 개의 방망이가 나란히 작업대 위에 놓였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모양, 똑같은 무게, 똑같은 붉은 결을 가진 한 쌍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석은 방망이를 수직으로 세워 고정했다. 그리고 치과에서나 쓸 법한 정밀한 다이아몬드 드릴을 꺼냈다.
위이잉.
고주파 소음과 함께 드릴이 방망이의 가장 두꺼운 부분, 무게중심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었다. 타는 냄새가 났다. 나무 타는 냄새가 아니라, 뼈가 타는 듯한 노린내였다. 오차는 허용되지 않았다. 너무 깊으면 방망이가 부러지고, 너무 얕으면 뼈를 품을 수 없다.
툭.
드릴이 멈췄다. 두 개의 방망이 한가운데, 각각 새끼손가락만 한 깊이의 작고 어두운 구멍이 생겼다.
요엘의 뼈가 들어갈 자리. 영혼이 이식될 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