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집_part1 금지된 감각
요엘이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밤새 누군가가 전신의 근육을 해체해서 모래와 쇳가루를 채워 넣고 엉성하게 꿰매 놓은 것 같았다. 어제 마신 차의 열기는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차갑고 묵직한 통증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일어났나."
세라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그녀는 이미 가죽 갑옷을 갖춰 입고 오두막 한구석에서 묵직한 나무토막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몸이... 말을 안 듣습니다."
요엘이 쉰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혀뿌리까지 근육통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
"당연하지. 평생 2차원 평면에서만 살던 몸을 3차원의 중력장으로 끌고 들어왔으니까. 네 신경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거야."
세라는 손에 들고 있던 젖은 수건을 요엘에게 던졌다.
"닦고 나와. 오늘은 돌을 들지 않아. 돌보다 더 교활하고, 더 정직한 놈을 만날 거니까."
요엘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아랫배의 웅덩이, 그곳에 아주 미세하게 남아있는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겨우 몸을 지탱했다. 오두막 밖으로 나오자 눈부신 아침 햇살 아래 세라가 가리킨 벽면이 보였다.
그곳에는 기묘한 모양의 나무 덩어리들이 걸려 있었다. 요엘의 허벅지보다 굵고 팔 길이만한 거대한 나무였다. 손잡이 부분은 가늘었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급격하게 굵어져 마치 거대한 물방울이나 눈물방울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나 골라봐."
세라의 말에 요엘은 가장 작아 보이는, 그래도 10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나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그냥 들면 될 거라 생각했다.
"흡!"
들어 올리려는 순간 요엘의 손목이 꺾일 듯이 비틀렸다.
"으윽!"
단순한 몽둥이가 아니었다. 돌은 무게가 중심에 뭉쳐 있어 몸에 붙이면 그만이었지만, 이 나무는 무게가 손잡이에서 가장 먼 끝부분에 쏠려 있었다. 지렛대의 원리가 요엘의 손목 관절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요엘은 전완근이 터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겨우 나무를 수직으로 세웠다. 식은땀이 흘렀다.
"무겁지."
세라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훨씬 더 거대한 방망이 두 개를 가볍게 집어 들며 말했다.
"돌은 정직해. 드는 만큼 들리지. 하지만 이 나무는 살아있어. 네가 힘으로 제압하려 하면 네 관절을 부러뜨리려 들 거야. 무게가 끝에 있다는 건, 움직이라는 뜻이야. 멈춰 있으면 널 공격하지만 움직이면 널 도울 거야."
그녀는 방망이를 어깨에 툭 걸쳤다.
"따라와. 힘의집으로 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성채 중앙 광장 옆에 위치한 돔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흙냄새와 함께 심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둥... 타닥... 둥... 타닥...
가죽 북의 울림이었다. 단순한 타격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심장 박동처럼 공간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처럼 생겼다. 중앙 바닥은 주변보다 1미터 정도 낮게 파여 있었고 그 팔각형의 구덩이 안에서 수십 명의 사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양손에 요엘이 든 것과 같은 나무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움직임은 요엘이 도시의 체육관에서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방망이를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방망이는 그들의 등 뒤로 사라졌다가 다시 어깨 위로 솟아오르기를 반복했다. 마치 거대한 시계추처럼.
붕. 붕. 붕.
수십 개의 거대한 나무들이 허공을 가르며 내는 소리는 북소리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북이 울리면 방망이가 떨어지고, 북이 쪼개지면 방망이가 솟아올랐다.
구덩이 가장 높은 곳, 제단처럼 꾸며진 자리에는 한 맹인 노인이 앉아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그의 표정은 마치 신탁을 내리는 사제처럼 엄숙했다.
"도시는 소음을 만들지만, 우리는 리듬을 만들지."
세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저 북소리가 들리나? 저게 바로 우리의 심장 박동기야. 저 소리가 멈추면 우리도 멈춘다."
그녀는 요엘을 구덩이 가장자리로 데려갔다.
"들어가. 그리고 기억해. 들어 올리는 게 아니야. 흐르는 거야. 소리에 몸을 맡겨."
요엘은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열기가 후끈했다. 그는 양손에 방망이를 쥐고 어깨에 올렸다.
'떨어뜨리라고?'
그는 도시에서 배웠던 어깨 운동 동작을 떠올리며 방망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뒤 등 뒤로 넘기려 했다. 하지만 방망이가 머리 뒤로 넘어가는 순간 엄청난 무게가 요엘의 어깨를 뒤로 잡아당겼다.
"어어!"
요엘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질 뻔했다. 어깨 인대가 뚝 하고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황급히 방망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쿵 소리와 함께 주변의 리듬이 아주 잠시 흐트러졌다. 맹인 연주자의 북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봐, 도시 놈. 박자를 무시하면 다친다."
옆에 있던 한 사내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어깨는 마치 갑옷처럼 단단해 보였지만 방망이를 쥔 손은 깃털을 쥐듯 가벼워 보였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게... 제멋대로 움직입니다."
"네가 방망이를 끌고 가려고 하니까 그렇지. 방망이는 춤을 추고 싶어 하는데 네가 멱살을 잡고 있잖아."
사내는 자신의 방망이를 다시 어깨에 올렸다.
"잘 봐. 방망이가 네 머리 주변을 도는 거야. 하지만 돌리는 건 네 팔이 아니야. 북소리다."
"다시 해봐."
세라의 목소리였다. 요엘은 다시 방망이를 잡았다.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긴장감 때문이었다. 그는 사내의 조언을 떠올렸다. 북소리에 맞춰라.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방망이를 어깨 뒤로 넘겼다. 이번에는 팔 힘을 빼고 중력에 맡기려 애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망이가 통제 불능 상태로 떨어지며 요엘의 종아리를 강타했다.
"악!"
요엘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정강이뼈가 울렸다. 북소리는 여전히 둥둥거리고 있었지만, 요엘의 몸은 그 리듬 밖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틀렸어."
세라가 다가와 요엘의 팔을 잡았다.
"너는 지금 소리를 귀로만 듣고 있어. 그러니까 박자가 늦는 거야."
그녀는 요엘의 팔꿈치를 잡고 안쪽으로 비틀었다.
"위팔뼈를 능동적으로 안쪽으로 돌려. 팔꿈치가 하늘을 찌르듯이. 그래야 어깨 관절이 잠기면서 등 뒤로 떨어지는 방망이의 무게를 견갑골과 광배근, 그리고 아랫배의 웅덩이가 받아낼 수 있어."
그녀는 요엘의 흉곽을 툭 쳤다.
"그리고 가슴. 가슴이 죽어있어. 방망이가 뒤로 갈 때 흉곽은 반대로 열리면서 그 공간을 만들어줘야 해."
요엘은 다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위팔뼈의 회전, 흉곽의 확장, 골반의 회전.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시의 기계들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움직여줬다. 하지만 이 나무토막은 요엘이 완벽하게 협응하지 않으면 단 1센티미터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때였다. 제단 위에 앉아 있던 맹인 연주자가 북채를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정확히 요엘이 서 있는 방향을 향했다.
그가 다시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까보다 훨씬 느리고, 묵직한 박자였다.
둥... (침묵)... 둥... (침묵)...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기다려주듯이, 리듬이 요엘의 호흡에 맞춰 느려졌다.
"기회야."
세라가 속삭였다.
"연주자가 너를 위해 길을 열어줬어. 저 빈 박자 속에 몸을 던져."
요엘은 숨을 골랐다. 북소리가 느려지자,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백. 그 텅 빈 공간이 요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둥.
요엘은 그 첫 번째 타격음에 맞춰 무릎을 굽히고 아랫배를 튕겼다.
위팔뼈를 안쪽으로 돌리며 방망이를 등 뒤로 넘겼다. 북소리가 만들어준 긴 공백 동안, 방망이는 천천히 등 뒤에서 호를 그렸다. 요엘은 서두르지 않았다. 억지로 당기지 않았다.
방망이가 등 뒤 가장 깊은 곳, 최저점을 지날 때였다.
둥.
두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그 타이밍은 절묘했다. 방망이가 막 올라오려는 찰나의 순간과 북소리가 정확히 맞물렸다. 요엘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골반을 튕겼다.
붕.
방망이가 솟아올랐다.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팔이 아프지 않았다. 대신 발바닥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하나."
세라가 처음으로 카운트를 셌다.
"느꼈나? 리듬이 네 신경을 대신해주고 있어."
요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믿기지 않았다.
"뇌는 예측을 사랑해."
세라가 설명했다.
"불규칙한 움직임은 뇌를 피곤하게 만들지. 계산해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리듬은 패턴을 만들어. 뇌가 다음 박자가 언제 올지 알게 되면, 긴장을 풀고 근육에게 미리 신호를 보내지. '준비해, 지금이야'라고."
그녀는 북을 치는 연주자를 가리켰다.
"저 소리가 네 신경계를 대신해서 타이밍을 잡아주는 거야. 네가 생각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소리가 오면 몸이 먼저 반응하게 만드는 거지. 그게 파흘라반이 되는 첫걸음이야."
"계속해. 멈추지 마."
연주자의 북소리가 아주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요엘은 다시 방망이를 뒤로 넘겼다. 하나, 둘, 셋.
처음에는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억지로 끼워 맞췄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되고 북소리가 빨라질수록, 요엘의 몸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기 시작했다.
서른, 마흔, 쉰.
북소리와 방망이의 궤적이 하나로 겹쳐졌다. 상완골이 돌아가고, 흉곽이 열리고, 골반이 도는 그 복잡한 과정이 '둥' 하는 소리 하나에 압축되어 자동적으로 튀어 나왔다.
'생각이... 사라진다.'
백 번을 넘어가자 요엘의 머릿속에서 잡념이 씻겨 내려갔다. 민 현장관의 얼굴도, 47구역의 공포도, 탈출의 긴박함도 희미해졌다. 오직 리듬. 그리고 등 뒤에서 흐르는 무게감. 그것은 일종의 무아지경이었다.
요엘은 깨달았다. 왜 도시가 그토록 단순 반복적인 리듬 운동을 통제했는지. 왜 모든 운동을 수치화하고 불규칙한 변수로 채웠는지.
명상.
인간은 일정한 리듬 속에 몸을 맡길 때, 뇌의 논리 회로를 끄고 더 깊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그곳은 AI가 침범할 수 없는 직관과 본능의 영역이다. 도시는 인간이 그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우리는... 춤추는 법을 잊게 만들어졌구나.'
요엘의 아랫배 웅덩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방망이는 이제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요엘의 신경을 외부 세계, 아니 중력장 전체로 확장시키는 안테나였다.
"삼백."
세라의 카운트가 끝났다. 하지만 요엘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방망이가 그리는 궤적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스스로가 회전하는 뼈가 된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극도의 몰입 상태, 시각과 청각이 차단되고 오직 고유감각만이 극대화된 그 순간. 요엘의 손끝, 방망이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그 접점에서 기묘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그것은 촉각이 아니었다. 정보였다.
방망이 손잡이 표면에 새겨진 미세한 요철들. 처음 잡았을 때는 그저 미끄럼 방지를 위한 거친 홈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진자운동의 원심력이 극대화되고 리듬에 맞춰 요엘의 신경이 방망이 끝까지 확장되자, 그 요철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마치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읽듯, 요엘의 손바닥 신경이 방망이의 표면을 스캔했다.
'...찾아라...'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귀로 들은 것이 아니었다. 뼈를 타고 뇌로 직접 전달된 진동이었다. 요엘은 깜짝 놀라 방망이를 놓칠 뻔했다. 리듬이 깨졌다. 쿵 하고 방망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북소리가 멈췄다. 무아지경의 상태가 깨지고 다시 구덩이의 소음과 열기가 밀려왔다.
"왜 멈췄지?"
세라가 다가왔다.
"방금... 뭔가 느꼈습니다."
요엘은 떨리는 손으로 방망이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땀과 손때에 절어 검게 변한 나무. 자세히 보니 손잡이 부분에 아주 미세하게,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느꼈나?"
세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녀는 요엘이 쥐고 있던 방망이를 가져가 손잡이 부분을 보았다.
"이 방망이는 300년 된 박달나무로 만든 거야. 그리고 이 문양은 아주 오래전 이곳을 다녀간 데오크반이 남긴 흔적이지."
데오크반. 요엘의 심장이 곤두박질쳤다.
"데오크반이... 여기에 메시지를 남겼다고요?"
"그는 알았던 거야. 언젠가 도시가 모든 기록을 검열하고 삭제할 것이라는 걸. 그래서 그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 AI가 절대로 해독할 수 없는 방식을 택했어."
세라는 방망이를 다시 요엘에게 건넸다.
"글자가 아니야. 감각이다. 멈춰 있으면 그저 나무토막일 뿐이지만, 올바른 리듬과 궤적으로 움직일 때만 손바닥의 신경을 통해 읽히는 파동이지. 오직 춤추는 자만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요엘은 다시 방망이를 쥐었다. 소름이 돋았다. 이곳 힘의집에 있는 수많은 돌과 방망이들. 그것들은 단순한 운동기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조들이 남긴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인류의 역사, 잃어버린 기술, 그리고 AI에 대항할 수 있는 비밀들이 이 무거운 물건들 속에, 그리고 그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다시 돌려."
세라가 명령했다.
"네 신경이 그 파동을 완전히 해석할 때까지 멈추지 마."
요엘은 다시 방망이를 잡았다. 이번에는 두려움이 아닌 거대한 호기심과 사명감이 그를 지배했다.
맹인 연주자가 다시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둥... 타닥...
요엘은 그 소리에 맞춰 다시 진자운동을 시작했다. 위팔뼈를 안쪽으로 돌리고 방망이를 등 뒤로 던졌다. 흉곽을 열어 길을 터주고 골반을 돌려 에너지를 증폭시켰다.
이제 요엘의 눈에 방망이는 나무토막이 아니었다. 그것은 루스탐의 유산이자 데오크반의 기록이었다. 방망이가 머리 뒤를 돌며 그리는 원. 그것은 성자의 머리 위에 뜨는 빛의 고리처럼 보였다.
나의 몸이 중심이 되고 도구가 위성처럼 돈다. 내가 우주가 되고 방망이가 별이 된다.
요엘은 등 뒤로 넘어가는 방망이의 무게를 온전히 느꼈다. 그것은 짐이 아니었다.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안내자였다. 등 뒤에서 흐르는 진자의 궤적 속에서 요엘은 희미하게나마 데오크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연결하라. 끊어진 것을.'
그것은 도시에 의해 끊어진 인간과 자연, 몸과 마음, 과거와 미래의 연결이었다. 요엘의 회전은 점점 더 빨라졌다. 이제 구덩이 안의 다른 사내들조차 훈련을 멈추고 요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100년도 안 산 풋내기의 방망이에서 수백 년을 산 파흘라반의 기백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훈련은 지옥이었다. 하지만 요엘은 웃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은 다 까져서 피가 맺혔지만 그 피가 방망이의 손잡이에 스며들며 더욱 단단한 결속력을 만들어냈다.
훈련을 마치고 지하수가 고인 냉탕에 몸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달아오른 근육을 식혔지만 요엘의 신경은 여전히 윙윙거리고 있었다. 그는 물속에서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겉보기에는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피부 아래 근육 깊은 곳에 새로운 신경의 길이 뚫렸다는 것을.
"웃고 있군."
세라가 다가와 욕조 난간에 걸터앉았다.
"미친 건가, 아니면 깨달은 건가."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요엘이 물 묻은 얼굴을 닦으며 대답했다.
"방망이가...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북소리가 길을 알려줬고요."
세라는 미소를 지었다.
"들었구나. 뼈의 소리를."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잎사귀를 꺼내 요엘에게 주었다.
"씹어. 통증을 줄여줄 거야."
요엘은 잎사귀를 씹으며 물었다.
"데오크반은 왜 이런 방식을 택한 겁니까? 그냥 기록으로 남기면 더 쉬웠을 텐데."
"기록은 조작될 수 있어. 도시는 이미 역사를 수천 번도 더 고쳐 썼지. 하지만."
세라는 자신의 단단한 팔뚝을 들어 보였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리고 리듬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데오크반은 믿었던 거야.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리듬을 탄 자만이 그 진실을 읽을 자격이 있다고."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설 속 파흘라반 루스탐이 태초의 기원이라면 데오크반은 그 전설을 현실로 끌어낸 사람이야. 그는 이 세상 어딘가에 진짜를 숨겨뒀어. 그리고 그 지도는 바로 이 고대운동 속에, 우리가 흘리는 땀방울 속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지."
요엘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찌릿했다. 자신이 들고 있는 이 방망이 하나에조차 단서가 있다면 저 시장에 있는 수천 개의 돌, 그리고 전설의 루스탐의 돌에는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진실이 담겨 있을까.
"내일은 더 무거운 걸 들 거야."
세라가 선언했다.
"네 신경이 준비됐어. 이제 20kg이다."
요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굶주린 짐승처럼 더 큰 무게를 원하고 있었다.
그날 밤 요엘은 오두막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랫배의 웅덩이가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며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뇌는 잠들었지만, 낮 동안 깨어난 신경들은 여전히 파수꾼처럼 깨어 있었다.
그때였다.
바스락.
아주 미세한 소리. 바람 소리에 묻힐 법한 소리였지만 요엘의 신경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리듬이 깨진 소리였다. 자연의 소리가 아니었다.
요엘은 눈을 번쩍 떴다.
오두막 입구의 곰 가죽이 살짝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낯선 붉은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횃불의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시의 빛. 인공적인 레이저의 빛이었다.
'왔구나.'
세라가 경고했던 도시의 사냥개.
요엘은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 옆에 놓인 방망이를 잡았다. 오전까지만 해도 무겁게만 느껴졌던 그 나무가 지금은 마치 자신의 연장된 팔처럼 가볍게, 그리고 서늘하게 손에 감겼다.
그는 숨을 죽이고 위팔뼈를 안쪽으로 돌렸다. 어깨 관절을 잠그고 흉곽을 열어 공격 준비를 마쳤다. 곰 가죽이 젖혀지고 매끈한 금속성 슈트를 입은 그림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요엘은 망설이지 않았다. 낮에 들었던 북소리를 떠올렸다.
둥.
그 리듬에 맞춰 요엘의 몸이 회전했다.
붕.
어둠 속에서 방망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직선이 아닌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의 궤적을 그리며. 여기는 힘의집. 직선이 죽고 진자가 지배하는 땅. 그리고 요엘의 방망이는 이제 막 첫 번째 실전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