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대의 나를 다시 만나는 밤
응칠, <응답하라 1997>을 기억하는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학창 시절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즈음이었다. 우연히 돌린 TV 채널에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눈매가 살짝 찢어진 한 남학생이 골목에서 자못 진지하게, 조심스레, 여학생에게 묻는다.
"만나지 마까?"
https://youtu.be/uIyvtFbS2gY?si=6MNVva6toudza8wt
그 길로 나는 <응답하라 1997>에 빠져들었다. 극중 응칠이가 대학을 간 1997년, 나는 고3이었다. 응칠이 나보다 딱 1년 빠른 셈이니, 우리는 거의 동시대에 고등학교를 보낸 셈이다. 쉬는 시간에 여고 1층 복도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삐삐 음성사서함을 확인하던 때가 생각났다. H.O.T 보다 젝스키스가 더 좋다며 다들 열광하는 1순위보다 2순위를 선호하는 나의 남다른 취향에 자부심을 가졌던 것도 생각났다.
이 드라마가 나를 십 여년 전 고등학교 교정으로 데려다 놓을 수 있었던 건 작품의 시대적 배경도 한 몫 했지만,무엇보다 드라마 중간중간에 나즈막히 흐르던, 당시 내가 듣던 발라드 때문이었다. 친구와 한 쪽씩 이어폰을 나눠끼고 야자 쉬는 시간에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들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단짝 친구와 파트를 나눠 이승환, 강수지의 <그들이 사랑하기까지>를 연습하던 그 겨울도 떠올랐다. 당시 같은 여고생인데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공부도 잘해서 유명했던 양파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https://youtu.be/NAMG7kxX9YQ?si=bz0ZTbhLvZ-zEprK
노래의 힘이다.
눈을 감지 않아도 나는 어느새 여고 교복을 입은 짤뚱한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있었다.
SBS에서 얼마전에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새 경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철저하게 가을 감성 및 40~50대의 향수를 공략했다. 20대 전후반의 어린 친구들이 이삼십 여년 전에 유명했던 발라드를 부른다.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르고,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부른다. 하지만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십대들이 불러주는 노래엔 코트 깃을 여미며 신촌을 거닐던 나의 겨울이 없다.
그래도 그들이 불러주는 발라드는 조용히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너는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이 노래를 들었니?"
덕분에 잠시나마 나의 청춘, 20대로 돌아가 본다.
https://youtu.be/IUSZzFpQv_0?si=H48b2NVfUw5VPNrV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지. 대학교 때.
첫사랑한테 차이고 나서.
이 노래 부르면서 많이 울었던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