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아껴 읽게 만드는 책.
'넷플렉스를 왜 보나,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고 청룡 영화제에서 화사의 남자, 박정민이 <혼모노>를 두고 말했다.
박정민의 말에 또다시 동의하게 만든 책.
성해나의 <빛을 걷으면 빛>이다.
사람마다 감동을 받거나 재미를 느끼는 책의 포인트는 다르다. 나는 작가의 섬세한 문장에 감동을 받는다.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을 때로는 치밀하게, 때로는 담백하게 그려내면서 눈 앞에 장면을 생생하게 띄워주기도, 인물의 안타까운 상황에 내 맘까지도 쓰라리게도 만드는 작가의 필력. 그래서 나는 한국 소설을 읽는다.
<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이 책은 <혼모노>와 마찬가지로 성해나의 중단편 모음이다. 교보에서 책을 찾아보니 '세대와 관계에 대한 사려 깊은 탐색'이라는 겉표지 문구가 들어온다.
'괸당'은 아버지의 시신을 고향 땅에 묻기 위해,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 당숙 부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대를 거슬러 같은 아픔과 상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매정하게 돌아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관대하면서도 누군가에겐 한없이 매정한(p.171)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른 작품이 하나 있다. 중2 천재교과서에 수록된 공선옥의 <일가>라는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먼 친척, 가깝다고 멀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이 거리 안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어디까지 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당춘'은 취업을 준비하던 젊은이 둘이 삼촌의 부탁으로 시골에 내려가 시니어 액티브(senior active)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유트브 제작법을 가르치며 겪는 일이다. 대충 시간이나 떼우고 용돈벌이나 하러 내려갔던 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배우려는 집념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봐봐, 할머니가 풀뿌리를 조심스레 들췄다. 잎사귀는 모조리 떨어지고 줄기는 시들었는데, 뿌리만은 땅 밑에서 생생히 월동하고 있었다. 잔뿌리는 사방으로 뻗치고 번지고 엉켜가며, 살아 있었다. 언땅에 뿌리내린 그 풀들을 할머니는 '숙근'이라 불렀다. 누가 남은 씨를 밭가에 던져두고 간 모양인데 그게 저 혼자 뿌리내려 용케도 겨울을 버틴 모양이라고. 그녀는 갸륵해했다.
죽은 것처럼 봬도 이렇게 다 살아있잖아. (p.266)
배우고 싶고, 알고 싶고, 해보고 싶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여전히 살아있음의 반증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