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고 새겨야 할 우리의 상처
집에서 혼자 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 적이 있는지? 아무도 보는 사람 없지만 왠지 모를 남사스러움에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내며 스스로 민망해 했던 기억이 한 두 번쯤은 있지 않을까?
성해나의 <빛을 걷으면 빛> 중 '오즈'를 읽으며 오랜만에 마음이 시려지는 경험을 했다.
이야기 속에서 상처를 입은 이가 다른 이의 상처를 위로해 주는 모티브는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오즈>는 두 인물의 상처가 너무 맵다.
엄마의 죽음으로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진 '나'는 하우스 셰어링 사업을 신청해 독거 노인 '오즈'할머니의 남은 방에 세입자로 들어간다. 들꽃을 말려 압화를 만드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이던 할머니는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무뚝뚝한 '오즈' 할머니는 내 허벅지의 타투를 보고 할머니 가슴에도 타투를 해달라고 한다. 할머니의 가슴에는 'くそ (쿠소)' 라는 글씨가 아무렇게나 휘갈려져 있다. '나'는 할머니 심장에 박힌 인공 심장박동기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 가슴에 꽃을 조심스럽게 새겨 나간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망설이다 천천히 윗옷을 벗었다. 옷을 벗자마자 오른쪽 쇄골 아래 큼직하게 박힌 일본어가 먼저 눈에 띄었다.
くそ
가슴부터 갈비뼈까지 이어지는 여러 개의 문신들은 누군가 장난삼아 한 낙서처럼 형태도 엉망이고, 심하게 번져있었다 <p.204, 오즈>
늙고 주름지고 굴곡진 몸. 그 몸을 덮고 있던 유추하기 힘든 과거의 흔적들. 나는 휴대폰으로 할머니의 쇄골 아래 새겨져 있던 일본어의 뜻을 검색해보았다.
くそ (쿠소) 똥: 대변
검색 결과를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보다 잘못된 정보가 아닐까 싶어 다른 사이트에 들어가 뜻을 검색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존재를 저주하고 부정하는 뜻의 속어.
쿠소. 쿠소. 일어 발음이 반복적으로 들렸왔다. 이런 것을 할머니의 몸에 새긴 사람은 누굴까. 끔찍하고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p.299. 오즈 >
슬퍼서가 아니라
아파서 눈물이 났다.
사실이기에 읽어내는 과정이 불편해서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성해나는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아는지, 우리 역사의 가슴 아픈 상처를 이렇게도 슴슴히 풀어놓았다. 하지만 아픔의 깊이만큼은 오히려 선명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성해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