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의 기수가 꿈꾸는 것
인공지능을 상대로 승리했던 제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던진 승부수...AI에게 압도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한 수는 무엇인가 (p.17)
트렌드는 만들어 가는 것일까? 만들어 지는 것일까?
매년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대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다가올 해의 키워드를 미리 제시하는 책이다. 읽으면 지적 충만감을 살짝 채워주는 연간 사회문화 교양서라고나 할까.
동네 도서관에 죄다 대출 예약이 다 차 있어 3주나 기다린 끝에 빌릴 수 있었다. 서문 몇 장을 읽으며 쏟아지는 새로운 어휘들의 향연에 '이런 거 나만 모르고 있는 건가' 아차 싶으면서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른 장소에서 아는 척 좀 해볼까 하는 생각에 부지런히 노트에 정리해 해본다.
책에 나오는 키워드들은 이미 많은 곳에서 요약정리 되었을 터, 개별적으로 인상 깊었던 구절 중심으로 적어본다.
'물성매력' - 터치가 아닌, 손에 닿는 무게와 질감이 주는 물성의 안도감. 디지털의 편리함이 채워주지 못하는 정서적 공백을 물리적 감각을 통해 메우는 모습 (p.78~79)
휴먼인더루프- 인간의 머리가 방향을 정하고, 기술의 다리가 그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 답을 찾는다...미래에 필요한 핵심 경쟁력은 AI를 잘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AI의 가능성 중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가치를 창조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다.(p.157)
레디코어는 실패의 위험성을 줄여주는 안정감을 선사한다...레디코어의 현명함을 배우되, 의도적으로 빈 칸을 남겨주는 용기가 필요하다...완벽하게 설계된 삶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것이 충만한 만족감인지, 아니면 단 한 번도 길을 잃어본 적이 없는 삶에 대한 공허함일지에 대한 답은, 바로 그 빈 칸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달려있다. (p. 236)
근본이즘-아우라의 핵심은 '똑같다'가 아니라 '진짜다' 복제성이 아닌 '역사성'과 '진품성' (p.377)
아네모이아-자신이 경험한 적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p.396)
전력 질주하는 경마장의 말들처럼 각종 AI는 앞으로 치닿고 있고, 우리는 어느 경주마에 배팅을 할 것인지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아니, 경주마와 함께 달려야 하는 기수가 이미 되어버린지도...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한다, 따라가야 한다고 온 세계가 우리를 닦달하는 통에 정신히 혼미하다. 그렇다고 경주마에서 내릴 수도 없는 노릇.
경마장이 아닌 제주도에서 승마 체험을 하고 싶다. 나를 태운 말과 교감을 나누며, 제주도의 풍광을 느끼며 천천히 천천히.
손가락 끝으로 스윽 미는 것이 아닌, 느리더라도 직접 누르고 두드리는 것에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는 것, 원조에 열광하며 박물관을 찾고,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 과거에 향수를 느끼며 동경하는 것. 어쩌면 경마장의 후끈한 열기에 숨 막힌 우리가 제주도의 시원한 바다 바람과 푸른 초원을 동경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