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와 같은 삶
올곧음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사람,
"피고인 윤석렬을 파면한다"의 최종 선고를 내린 문형배 판사의 에세이집이다.
에세이, 수필의 특징 중의 하나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점이다. 삶과 경험에서 느낀 자신의 깨달음이나 생각을 자신만의 문체로 특정한 형식없이 써 내려간 글. 그게 바로 수필이고 에세이다.
에세이는 쉽다. 멋스러운 문장으로 문학적 기교를 많이 부리지 않아도, 치밀한 구성과 전개로 독자들의 도파민을 자극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말, 그냥 하는 게 에세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어렵다. 문학적인 포장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글에 고스란이 작가의 생각과 삶이 투명하게 담긴다. 그래서 어떤 에세이는 나무에게 참으로 미안해진다. 혼자 일기장에 쓰고나 말 것이지, 저걸 누구 읽으라고 나무를 베어 책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경우가 있다.
또 에세이에서 작가는 배우가 되면 안 된다. 글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책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서 정작 현실에서는 주변 동료에게 거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면 안 되지 않은가. 자신의 편안함을 최우선하는 행동을 취하면서 책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너그러움을 지닌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한다면 그건 에세이, 수필이 아니라 소설이다.
문형배 판사의 '호의에 대하여'는 에세이집에 가장 적확한 표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나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그의 강직함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식물에 '리비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식물의 생산량은 식물에 최소량 존재하는 무기 성분엥 지배를 받는다는 법칙이다. 정치, 사회, 문화 분야도 마찬가지다. 평균적인 게 우리 사회에서 성장, 발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부분잉 우리나라의 성장 발전을 결정한다.(p.49)
"조삼모사" 중
여기서 누가 아침에 세 개를 받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결론적으로 역사의 진보를 믿는자가 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변화해야 하며, 그 변화가 내일은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므로 오늘 당장 보상 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p.80)
"작은 세상이 대안이다" 중
성공이 클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욕망이 덜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내 재산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가난한 사람이 덜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큰 세상이 효율성이라는 단일한 가치로 빌딩을 이루는 반면, 작은 세상은 다양한 가치로 숲을 이룬다.(p.90)
받은 것이 있다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니, 사회에 갚으라는 스승 김장하의 말을 2025년 4월 4일, 문형배 판사는 헌법재판소에서 실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