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A는 얼마 전 연인과 헤어졌다. 꽤 오랜 시간 하나였던 그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거리에서도 그들은 하나였다. 그렇게 하나였던 그들이 이제는 둘이 되었다. 그러자 하나로 함께했던 공간이 그에게 아픔으로 다가왔다. 함께 걷고, 함께 웃었던 곳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된 A. A는 연인과 하나였던 그때의 기억에 아파했다. 그래서 A는 그때의 기억들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B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B는 그 친구가 좋아졌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연인이 있었기에 B는 친구로만 그의 곁에 머물렀다. 어느 날, 그 친구는 B에게 연인의 마음이 식어버린 것 같다는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B는 그 친구의 연인이 미웠다. 분명 그 친구의 연인 또한 그 친구가 누구보다 소중했을 때가 있었겠지만, 그는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잊어버렸다.
C는 오늘도 연인과 무미건조한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왔다. 이런 만남을 지속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을 하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C, 그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넘겨보다 그들이 연애 초반 찍은 사진을 봤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남산 철조망에 건 자물쇠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 순간 아찔함을 느낀 그는 초심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며 급히 연인에게 무미건조했던 자신의 모습을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유명한 드라마 대사 중에 그런 대사가 있었다.
"신의 계획 같기도, 실수 같기도 한 것"
나에게는 망각이 그와 같았다. A와 B, 그리고 C는 모두 나였다. 나는 잊히기를 소원하기도 했고, 잊어버린 누군가를 보며 분노하기도 했고, 잊어버린 내 모습에 자책하기도 했다. 나에게 잊는다는 건 축복이면서 저주였다.
망각이 없다면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 누군가에 익숙해져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망각이 없다면 세상이 더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럼 상실에 대한 아픔은 생이 끊어질 때까지 영원히 이어질 테니까...
신의 축복 같기도, 신의 장난 같기도 한 망각이라는 이 거대한 벽. 나는 그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