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채꽃 명소는, 엉덩물 계곡
샛노란 유채꽃이 피어나는 2월에 제주도민이 되었다. 나는 원래 붐비지 않는 곳을 좋아해서 관광지를 피해 다니는 편이고,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녔다.
유채꽃은 봄 제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벚꽃처럼 '오래 자리 잡은 벚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 아니라 '봄마다 파종하여 꽃밭을 조성'하시기 때문에 봄에 밭 주인 분들이 유채 씨를 심으시면 그 밭은 유채꽃밭이 된다. 생명력이 강해서 어디서든 잘 자라고, (한 달 넘게) 비교적 오랜 기간 피어있기 때문에 한두 송이는 들꽃처럼 주차장, 길가 등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동네 길가에서 보이는 유채꽃들을 예뻐하다가 뉴스 기사에서 중문의 "엉덩물 계곡"이라는 유채꽃 명소 사진을 보았다. 사진으로 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으로 보면 어떨까 싶어 달려가 보았다.
우........ 와........!!!!!!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엉덩물 계곡의 모습이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는 샛노란 유채꽃이
계곡을 가득 채워 입체적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계곡 위의 다리...!
"명소는 명소구나!"
엉덩물 계곡은
큰 바위가 많고 지형이 험준해 접근이 어려워
언덕 위에서 노래만 부르다 엉덩이를 들이밀고
볼일만 보고 돌아갔다고 해 엉덩물이라 불렸다고 한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나지만 물은 별로 없는 계곡이다.
엉덩물 계곡의 큰 장점은,
"입장료가 없고 산책로가 있는 계곡이라는 점"이다.
또 산책로의 위, 아래쪽에 모두 주차장이 있다.
(전용주차장은 아니지만 주차공간이 있어서 좋다)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며 자연스럽게 유채꽃을 만나기 정말 좋은 곳이다.
제주도에 오면 아이들이 자연 속에 풀어만 두면
"초록 풀밭"에서 뛰어놀고, "꽃밭"에서 꽃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감상하게 될 거라 상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우리 아이들은 자연 그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숲 놀이터, 산책로 등 관심을 끌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자연을 누비며 놀았고, 그냥 꽃밭이나 오름에는 달콤한 간식 같은 보상이 없으면 가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꽃을 보러 잘 정돈된 꽃밭에 가는 것보다는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엉덩물 계곡" 같은 꽃 명소에만 즐거이 따라나섰다. 산책로를 따라 끝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이 아이들에겐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웠나 보다.
한 달 후에 가보니 이렇게 초록 줄기가 많이 자라나 초록 초록한 풍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노란 유채꽃들이 남아있어 아름다웠다. 엉덩물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중문색달해수욕장과도 이어져 아름다운 바다를 만날 수도 있어서 엄마가 오셨을 때 함께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엉덩물 계곡.
2월 중순부터 유채꽃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 시작하고 언제 꽃이 피는지 궁금해 기웃거리게 되는 곳.
유명한 곳을 피해 다니던 내가 변했다.
왜 유명한지 궁금해하고,
'이래서 사람들이 갈 수밖에 없구나'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짓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관광명소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