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스 Oct 28. 2019

꿈을 이뤘을 때 기분이란

아직도 실감은 안 나지만, 그 ‘순간’들이 있다.

나의 첫 비행은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는 비행이었다. 알을 깨고 막 나온 병아리처럼, 비행기 안의 환경 그 모든 것이 낯설었다. 트레이닝 때 배운 지식은 하나도 기억 안 났다. 뇌는 일시 정지되어 있었고, 그저 동료들이 하는 걸 따라 하고, 시키는 거 하면서 보딩(Boarding) 준비를 했다. 그러다 슈퍼바이저의 기내 방송이 들렸다. “Cabin crew, Customers’ on board.” 그리고, 내 시야 저 편에서 한 손에는 캐리어를, 한 손에는 비행기 표를 든 사람들이 슬며시 들어왔다. 순간, 가슴속부터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와 눈물이 흘렀다. 아, 내가 정말 승무원이 됐구나! 합격 때도 울지 않았고, 남들 다 운다던 트레이닝 졸업식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첫 손님을 보고 울다니. 나는 그렇게 훌쩍훌쩍하면서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Good morning, Welcome on board!”






준비생 시절 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만큼 엄청난 감격을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런던에서의 생활을 접고 히드로 공항에서 남자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는데, 그건 단지 남자 친구와 정말 떨어져서 생활해야 한다는 슬픔에서 이지 결코 꿈을 이뤘다는 감동 때문은 아니었다. 2년 동안 숱하게 면접에 낙방하고, 의도치 않게 입사가 3개월 정도 미뤄지는 과정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꿈을 이루고 난 ‘기쁨의 눈물’을 흘린 기억은 첫 손님을 맞이할 때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승무원으로 삶의 현장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결국, 승무원도 수많은 직업 중 하나고, 먹고살아가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 아닐까.



개인적으론, 트레이닝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기에 졸업 후 비행에 투입된 것 자체가 일단 너무 좋았다. 우리 회사 트레이닝은 좀 빡세다. 총 7주 과정이고 크게는 안전 교육, 응급 처치, 서비스에 관한 지식을 배운다. 조금 더 세분화해서 비행기 기종에 대해서도 배우는데, 한 기종에도 두세 개 정도의 ‘형제’들이 많다. 그럼 또 차이점을 외워야 한다. 트레이닝은 짧은 기간에 외울 거는 엄청나게 많은데, 매일매일 수업 시간 전에 구두(verbal)로 전날 배운 내용을 테스트를 한다. 게다가 일주일에 적어도 2번은 공식적인 시험이 있다. 준비생 시절,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으니 승무원 시켜만 달라던 무적의 ‘I CAN DO IT 스피릿(Spirit)’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것이었다. 트레이닝 중반부터는 체력이 바닥나, 하루빨리 트레이닝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비행이란 건, 감격의 순간을 느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엄청 바쁘다. 트레이닝 졸업을 하고, 어떤 친구들은 하루 쉬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비행에 투입됐다. 승객이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승무원은 바쁘다. 자리 하나하나 정리돼있는지 점검하고, 헤드셋 같은 기내 용품들을 배치한다. 뭐 이상 한건 없는지, 기내 시스템들은 잘 작동하는지도 점검한다. 어쩔 땐, 이런 업무를 하고 있는 와중에 승객들이 들어올 정도로 시간이 부족하다. 손님이 타면 더 바쁘다. 자리를 바꾸고 싶은 손님, 물 달라는 손님 등등 요구사항이 다양하다. 어떤 손님은 도움이 필요해 짐을 들어드려야 하고, 시작부터 기대치에 못 미치는지 불평을 하는 손님도 응대해야 한다. 모든 게 ‘동시에’ 일어난다. 우리가 해야 하는 필수적인 업무를 하면서도, 이렇게 실시간으로 (거짓말 같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처리한다. 비행 내내 쉴 새 없이 바쁘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착하고 집, 혹은 호텔에 가서 씻고 자기 바쁘다.



그럼에도, 내가 승무원이란 사실에 감동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가끔 누군가에게 내가 승무원이라는 말을 해야 할 때. 종종 입국 카드나 일반 서류상에 직업을 적는 란이 있다. 영어로 Cabin Crew라고 그 란을 채울 때 또 가슴이 울렁인다. 그러면서도, 아직 내가 승무원이란 사실이 낯설다. 바르셀로나에서 체류할 때 한식당을 찾았다. ‘관광 오셨나 봐요.’ 친절한 종업원이 말을 건넸다. ‘아, 제가 승무원이라서 레이오버로 잠깐 들렸어요.’ 왠지 모르게 쑥스럽더라. 아직 햇병아리 승무원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꿈을 이뤘을 때 기분이란, 생각만큼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못했다. 다만, 사소하게나마 그런 순간들이 있다면 희열감 보단 내가 꿈을 이룬 것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온다. 비행한 지 몇 달, 몇 년이 흐르고 나면 비로소 내가 정말 승무원이라는 사실이 와 닿을까?

작가의 이전글 유통기한 있는 인연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