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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Dec 06. 2023

지난 3년, 판데믹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승무원에서 간호사가 되기로 한 이유

중동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던 2020년, 코로나19 판데믹의 영향으로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항공업계에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얼마나 힘들게 얻은 꿈의 직장인데, 한 순간에 잃어버리다니. 모든 게 믿기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함께 동고동락하던 플랫 메이트들, 배치 메이트들은 망연자실하며 울고 또 울었다.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갈까, 서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앞두고 훌쩍이던 도중, 루마니아 출신 치과의사였던 내 플렛 메이트는 눈물을 닦으며 결의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나는 프랑스로 갈 거야.”


승무원이란 직업은 특별한 자격 요건을 요구하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낮다. 그래서 비행을 시작하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크루들을 만날 수 있다. 그중, 내 플렛 메이트였던 A는 직접 아는 케이스 중 가장 고학벌자(?)가 아닐까 싶다. 이 친구는 루마니아에서 치과의사를 하다, 자유롭게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승무원이 되었다. 간절함의 정도가 ‘승무원만 꿈이던 사람’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이 직업에 만족하던 친구였다. 어찌 됐던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충격과 그 배신감은 똑같이 느꼈고, ‘다시는 승무원을 하지 않겠다’며 본업인 치과의사로 복귀하겠다고 했다.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로 가서 치과의사를 하겠다는 A의 말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 친구의 경우엔 국적이 EU 국가 중 하나인 루마니아니 유럽 내 어디든 취업에 있어 제한이 적긴 하지만, 어쨌든 ‘의료직종’이라면 ’면허‘와 ’의지‘만 있으면 해외 어디든 정착할 수 있겠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몸소 느꼈다. 플렛 메이트 A는 현재 프랑스에서 치과의사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 일을 통해 나의 ’직업관‘이 바뀌었고, 그동안 억눌려 있던 나의 ’적성‘을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승무원은 나한테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공항만 밟아도 좋아‘라는 마음으로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동기가 유일했지, 나의 적성은 서비스업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무원이 되고 나선 정말 기뻤고, 내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행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 자체는 흥미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앞으로 무얼 하며 살까 고민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던 와중 판데믹이 덮쳤고,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경기가 어려우면 언제든 추풍낙엽처럼 잘려나갈 수 있다는 걸 몸소 겪었고, 플렛 메이트 A를 보며 ‘전문직’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판데믹을 거치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경험한 사람들은 공감할 거다. 판데믹을 통해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생각하는데, 당시 간호학과 21학년도 편입 경쟁률이 역대 최고점을 찍은 것이 방증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지금 한국에서 불고 있는 의대 열풍과도 일맥상통할지 모른다.


적성에 안 맞았던 이유

나는 사실 학구적인 편이다. 지식을 배우는 걸 좋아하고, 그걸 통해 내가 성장하고 커리어로 삼을 수 있는 걸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승무원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특정 회사에 속해 그 회사만의 procedure에 따라야 하는데, 개인의 어떠한 ’성장‘과 연관이 없다. 서비스 교육에서 테이블 세팅 시 냅킨과 컵의 위치, 아이스 음료에 얼음 큐브를 몇 개 넣어야 하는지 등을 암기하고 평가를 받으며 회의감을 느낀 적이 많다.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점점 적어지고, 앞으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쉬는 날이면 집에 틀어 박혀 영어 공부만 하게 되었다.


그냥 ‘내 적성’에 안 맞았던 거다. 비행하면서 진짜 누가 봐도 이 일을 사랑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하던 동료들이 있었다. 한 러시아 동료는 비즈니스 크루인데, 정말 그 느슨한 chilling out 하며 일하는 기내 분위기에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을 장착한 친구였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자상했고, 절대 무례하지 않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는 친구였다. 당시 그 비행에서도 칭찬 레터를 받았던 것 같은데, 나중에 들어보니 매 번 비행에서 그런 칭찬레터를 받을 정도로 동료에게나, 승객에게나 인정받는 친구였다. 이런 동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아, 역시 나는 서비스직은 아닌가 보다’ 생각을 했다.


환경적인 이유

겉으로만 화려한 삶에 대한 회의감도 컸다. 일을 하며 만난 동료들은 직접적으로 ’업무’ 자체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다들 컸다. 이국적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예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게 참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좀처럼 이런 동료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인스타에 업데이트되는 화려한 사진을 보며 피로감을 느꼈고, 결국 나는 인스타그램 사용을 중단했다.


개인적인 이유

낮아져 있는 자존감, 나의 왜곡된 자아상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승준생 시절을 거치며 나도 모르게 참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아무래도 타인에게 보이는 게 중요한 직업이다 보니, 외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서 남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며 자존감이 낮아진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타인을 바라볼 때 외형적으로 남들을 평가하는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선 자존감을 높여야 하는데, 매일 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화려하게 인생을 즐기는 동료들 사이에서 이런 인간상에 대해 피로만 더해져 갔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나는 21학년도 학사편입에 합격해 간호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정리되며 동료들은 회사로 차츰 복귀했지만, 나는 가지 않기로 했다.


승무원과 간호사는 정말 다른 직업이다. 그런데 내가 승무원으로 일을 했던 경험이 임상에서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실습을 통해 많이 느꼈다. 항공 서비스업에서, 그것도 외국에서 일한 경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한 층 더 성장시킨 것 같다.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거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했고, 타인을 배려하며 상냥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간호학과 임상실습에서는 한 환자를 선택해 이 환자에 대한 간호진단을 내리는 케이스 보고서를 작성한다. 환자에 대한 정보는 EMR(환자에 대한 모든 기록)을 통해 얻을 수 있지만, 환자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필요하다면 직접 간호사정을 진행해 볼 수도 있다. (청진기로 폐음을 듣는다던가, 신경학적 사정을 한다던가 등) 이렇게 종합적으로 정보를 얻어 최종적으로 환자에 대한 간호진단을 내리게 된다. 나는 환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거에 어려움이 없었고, 라포(rapport)를 쌓으며 원하는 정보들을 쏙쏙 뽑아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만든 보고서는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더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얻었던 것 같다. 실습은 따로 누가 학생 간호사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리는 형태가 아니다. 자기가 ‘알아서’ 병동을 돌아다니며 간호사들이 어떻게 임상에서 일을 하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 누가 시켜주길 기다린다면 말 그대로 ‘병풍’으로 아무것도 보지도, 배우지도 못하고 실습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간호사, PA, 인턴, 레지던트, 의사 선생님 등 참 많은 분들을 귀찮게(?) 핸 것 같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이 보고 배웠다 생각한다. 궁금한 건 물어보고, 뭔가 도와드릴 게 없는지 물어보며 드레싱 도구를 가져다 드리고, 드레싱 보조를 하는 별거 아니지만 그런 경험을 하며 ’참 열심히 한다‘고 인정받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이 먼저 불러주셔서 환자들 드레싱 교체를 하며 사용되는 소독약의 종류와 드레싱 순서를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간혹 학과 동기들이랑 친해져 한때 승무원으로 일했다는 걸 알게 되면 ’아, 그래서 말투가 그랬구나!‘라는 말을 듣곤 한다. 나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내 말투가 상냥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뜨끔하는데, 나는 정말 서비스업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대 초에 카페 알바를 하면서 나의 불친절한 태도 때문에 손님이랑 싸운 적도 있고, 승무원으로 일할 땐 진상 승객 앞에서 ‘내가 참는다’는 모습을 기어코 보여주며, 누가 봐도 마지못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서비스 마인드가 없었다. 일이 너무 하기 싫어 짜증이 나 있는데, 기내에서 카트를 내 성질대로 밀고 다니다 승객들 무릎을 몇 번이고 찧은 적도 있다. (진짜 세게 부딪혔는데 괜찮다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정말 죄송’은‘ 했다…)


나는 그냥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거겠거니 생각했는데,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듣게 된 계기가 있었다. 시뮬레이션 수업이라고, 임상현장을 그대로 재연해 간호사로서 실제 상황이라 생각하고 환자와 동료 의료진과 상호작용하며 간호 술기를 하는 수업이 있었다. 시나리오 상황에서 팀원들과 함께 간호사로서 행동한 장면을 영상 녹화해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환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지목해 “간호사 안 하고 코디네이터 해도 되겠어요.”라고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어쩌면 서비스 분야에서의 경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좀 더 ‘상냥한 사람’으로 변화시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코디네이터는 간호사 중에서도 환자의 입원생활을 보다 전문적으로 돕는 특정 간호직무를 말씀하시는 듯하다.


쓸모없는 경험은 정말 없는 것 같다. 비록 당시 서비스업을 할 땐 정작 서비스직의 마인드가 없었고, 그걸 배우고 적용하려 노력하지도 않은 미성숙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성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승무원처럼 ’친절할 필요가 없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편의‘를 중요시하는 직업이 아니라 ’생명‘을 중요시 하고, 임상적 판단으로 환자를 최상의 상태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성이 중요한 직업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으로서’ 상냥함과,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태도는 간호라는 분야의 전문가로 환자를 대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 선택을 결코 후회하진 않는다. 승무원은 누구에게나 추천하는 매력적인 직업이다. 다시 시간을 돌려 승준생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간호학과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 마음먹은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 목표일 만큼 한국을 다시는 오고 싶진 않았지만, 다시 이곳에서 공부하게 된 3년(학사편입)이란 시간을 버틴 걸 각오할 만큼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생각한다.


이 브런치의 시작은 승무원이란 키워드였고, 그 덕분에 감사하게도 이 분야에 대해 궁금해하던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 같다.


이제는 간호사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브런치를 시작할까 한다. 간호학과에서 배우면서, 참 부끄럽지만 그동안 내가 알던 간호사의 이미지가 실제 간호사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스스로 간호사 직업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됐다. 앞으로 임상에서 부딪히며 ‘진짜 간호사의 모습’을 나의 시각에서 펼쳐볼까 한다. 또, 곧 있으면 국가고시고, 면허를 취득하자마자 영국 간호사 면허 전환을 진행할 거다. 그렇게 되면 이 브런치는 앞으로 영국 임상에서 경험하는 간호사로서의 이야기로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은 ‘전직 승무원’이란 타이틀을 유지할까 한다. 면허가 나오고, 직접 임상에서 일을 하게 될 때야 간호사라는 타이틀이 걸맞을 것 같다.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하던 시간도 어느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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