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연구 데이터 수집 완료, 7개월 간의 심리상담

18_국내 최초 Emotion-Focused Therapy 실증 과정연구

by 로지

과정 연구 데이터 수집 완료, 7개월 간의 심리상담

18_국내 최초 Emotion-Focused Therapy 실증 과정연구




**본 편부터는 논문을 쓸 당시 남겨둔 기록을 중심으로 작성하기에,

말투나 시제가 섞여있을 수 있습니다. 고려하여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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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 진행되고 있던 날들이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연구는 물론, 센터 운영과 심리치료(업무)를 병행하고 있었던 그런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며칠 전, 유독 지친 날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처럼, 이렇게 계속 힘든 거라면… 상담 말고 다른 일은 뭐가 있을까?”




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꽤 낯선 생각이었다. 그 찰나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지도 교수 H였다. 평소에는 솔직히 말해 H의 존재를 크게 느끼며 지내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래도 힘들면 가서 물어볼 수 있는 연구자가 한 명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종류의 “든든함”이었다. 고맙고, 안심이 됐다.



H는 늘 말했다. 언제든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와서 물어보라고. 그런데 학생 입장에서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모르고 못하는 게 당연한 위치임에도, 이상하게 “그래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같이 올라온다. 힘든 일보다,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가고 싶은 마음. (그런 거 치고는, 힘들 때 더 자주 찾아갔다)


게다가 나는 H의 능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닮고 싶다고 느꼈다. (그 당시에는 그러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그래서 더 떨렸다. 그의 평가는 매번 긴장되는 순간이다. 예전에 너무 피드백이 듣고 싶어서, 시간을 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기대와 다르게, 돌아온 피드백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는 바빴던 탓이었는지, 내가 기대를 과하게 걸었던 건지, 그날은 실망과 시무룩함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바쁜 교수님을 내가 너무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한동안 거리를 두었다. 돌아보면, 나는 연구와 학업적인 부분에 대해 꽤 자주, 꽤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피드백을 요청한 학생이었다.


그러다 이번에도, 결국 나는 H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방금 전, 약 30분간 면담을 마치고 나왔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던 지점, 혼자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지 않던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연구를 진행하며 홀로 분투하고, 홀로 걱정하고 불안을 쌓아두기만 한 탓인지, 내 말은 자꾸 길어졌고, 표현은 망설임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H의 말투는 얼핏 들으면 조금 냉담하고 담담하다. 그래서 더 감정이 잘 묻어나지 않는 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아쉽기만 했던 그의 말투였는데, 그 담담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뭉클했다.



“그 걱정, 큰일 아니에요. 오히려 그 부분이 연구적으로 더 의미 있어요.”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아, 이게 진짜로 내 마음이 그렇게 힘들어하던 부분이었구나” 내 안의 감정이 크게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괜찮다는 말, 오히려 의미 있다는 말. 그 두 문장이 나에게는 너무 큰 위로였다.


면담을 마치고, H가 한 말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확인했다. 내가 정말 이 부분 때문에 계속 걱정했고, 힘들었고, 혼자 분투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방금, 조금이나마 안심했구나. 다시 한번, 일어설 힘을 얻었다. 그 순간은 정말 감사했다.


그래. 해오던 대로 나아가자. 이 불안함과 걱정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당연하다. 그러니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확인하고 다독이면서, 그대로 안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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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참 고독한 과정이다.

심리상담을 오래 해오면서, 이 고독함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상담은 어쨌든 “당사자 간의 작업”이다. 그 순간의 깊이는, 같은 상담자라 해도 결국 그 장면을 함께 통과한 사람만이 가장 잘 안다. 그래도 좋았다. 즐거웠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연구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고독의 결이 다르다. 연구 역시 혼자서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글을 쓰기 이전에, 연구를 설계하고, 실행하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마주하고, 좌절하고, 가끔은 기대했던 지점을 딱 만나 환희에 차기도 한다. 문제는, 이 경험을 여기까지 깊게 나누고 싶어도 진짜 그 연구에 애정을 걸고, 집착(?)까지 하고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끝까지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상담자이자 연구자이다. 박사과정을 시작해 졸업을 준비하는 이 기간 동안만큼은 분명히 그렇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는, 말 그대로 “연구자 모드”로 살고 있다.


심리상담 사례를 통한 과정 연구를 하고 있으니, 나는 상담자이자 연구자이고, 그 고독의 무게는 종종 두 배 이상으로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고독한 과정일 줄이야!”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연구의 규모가 석사 때보다 훨씬 커졌고, 이 짐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사람이 결국 나 한 명뿐이다 보니 그 무게가 훨씬 크게 다가온다.


외롭고, 고독하다. 그래도 나는 이 과정까지 함께 끌어안고 가기로 했다. 충분히 나를 다독이고, 이게 왜 의미 있고, 왜 가치 있는지 되새기면서, 중간중간 숨을 고르며, 그래도 꾸준히 나아가는 선택을 했다. 이 과정 덕분에 내가 연구를 통해 배우고 성장한 것이 정말 많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예상,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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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연구 1에 이어 연구 2의 데이터 수집이 마무리되었다.



이 말은 곧 “연구를 위해 직접 진행한 심리상담이라는, 그 소중하고 값진 데이터 수집의 한 고비를 넘겼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건 분석과 글 작업이다. 연구를 위한 상담이 일단락된 지금,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무사히 여기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에, 뭉클함이 올라온다.






“이 기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너무 값진 경험이었어요.”

“이번 심리상담 덕분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잘 살펴주고 싶어요.”

“처음에는 기대가 없었고, 과연 달라질까 싶었는데,
제 안에 힘이 생겼고, 혼자서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7개월, 300시간, 300회기 이상.
심리상담. 치열하고, 뭉클했던 과정.



처음 모집할 때는 정말 걱정이 많았다. “과연 참여자가 모일까? 이 조건으로, 이 구조로, 이 연구를 위한 상담에 누가 지원해 줄까?” 결과는, 기우에 가까웠다. 기대보다 5배 이상의 신청이 들어왔다. 참여를 희망해 준 이들이 그렇게 많았다.


상담 한 회기는 보통 50분(1시간)이지만, 간혹 1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중도 탈락도 있었고, 각 회기의 시작과 끝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다 합치면, 실제 소요된 나의 시간은 족히 600시간은 넘었을 것이다.


한 번의 상담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만 기본 1시간 이상. 상담 전에 오늘 다뤄야 할 지점을 정리하고, 상담이 끝난 후에는 그 회기를 되돌아보며 갈무리하고, 다음 회기에 이어갈 중요한 포인트를 검토하고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자책도 많이 했다. “조금 더 공감적으로 함께하지 못한 건 아닐까”, “내담자의 아픔에 더 오래 머물지 못한 건 아닐까” 내담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다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도 있었고, 내담자가 고통을 견디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마음을 굳게 먹고 버텨야 했던 순간도 많았다.


어떤 날은 몇 주 동안 “다음 회기에는 이 부분을 어떻게 작업해야 할까” 그 생각 때문에 잠들기 직전까지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다시 핸드폰을 켜서 메모장을 열고, 중얼거리듯 한 줄씩 적어 넣기도 했다.


“그래, 다음 회기에는 꼭 이렇게 함께 작업해 봐야겠다.”
“혹시 그 부분이 너무 힘들진 않았을까… 다음번에는 꼭 물어보고, 더 들으며, 위로를 건네야겠다.”
“이 부분은 너무 어렵다… 그래도, 피해 가지 말고 같이 보자.”



돌아보면, 내가 지금까지 상담을 해오면서 이 정도로 치열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참여자인 내담자만큼, 이 과정에서의 부담은 나에게도 상당했다. 연구를 위한 상담이라는 시간은 명확히 한정되어 있고, 설계된 조건 안에서 작업해야 한다. 거기에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초조함은 올라오고, 불안은 쉽게 진을 빼버린다.




나의 연구는 “상담, 그 자체”이다.


매주 자신의 상처와 괴로움을 마주하는 내담자들이 얼마나 용기 있는지 알기에, 나는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버티는 사람으로 서 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계속 곁에 두고 펼쳐보던 책들이 있다.


EFT 영어 원서 3~5권, 해외 연구 논문들, EFT marker와 task, case formulation 자료들을 프린트해, 벽에 붙여두고 틈날 때마다 읽고 또 읽고, 고민하고, 다시 표시했다.



내가 하는 상담은 정서중심치료, 즉 체험 중심, 과정 중심의 상담이다. 의자 작업, 사례 분석, 개입과 결과의 추적, 내담자의 정서에 같은 수준으로 머물며 자각하고, 내담자가 주저앉을 수 있는 순간을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야 하는 작업들.


이 모든 것에는 에너지가 아주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연구를 위한 상담만 한 것이 아니었다. 센터로 들어오는 (연구와 상관없는) 심리상담들도 꾸준히 있었다. 어떤 주간에는 하루 6 사례 이상을 6일 내내 진행하는 날도 있었다. 주말을 반납하고 센터를 오갔고, 사례를 고민하다 보면 끼니를 거르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한 번은, 마지막 상담을 끝내고,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서류를 정리하다가 손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무리가 왔구나.”





그때는 그걸 인정하고, 잠시 멈춰 쉬어갔다.


하지만, 한동안 쉬는 순간도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고, 긴장이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쉬는 것 역시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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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준비하고, 최선을 다한 상담이었지만 중도 탈락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생각이 많아졌다. 불안도 올라왔다.


“어디가 잘못된 걸까?”
“내가 뭘 더 해볼 수 있었을까?”




나의 한계를 계속 마주하면서도, 나를 깎아내리지 않고 지지하며 버티는 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하는 순간들이 한 번에 몰려올 때는 정말 아찔했다. 동시에, 이미 나는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중도 탈락과 조기 종결은 심리상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매번 나를 다시 다독였다. 계속 진행되고 있는 다른 사례들, 거기서 내가 보고 있는 변화와 과정들을 나의 버팀목으로 삼아 다시 일어났다.


아이러니하지만, 너무 사실인 지점이 있다. 에너지를 많이 쏟아 넣던 곳도 상담이었지만, 에너지를 다시 채워 넣는 곳도 상담이었다는 것. 나는 그들, 내담자 덕분에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 상담자로서도, 연구자로서도.


에너지를 많이 쏟아 넣던 곳도 상담이었지만,
에너지를 다시 채워 넣준 곳도 상담이었다






이제 이 연구는, 겨우 반 정도 왔다. 그럼에도 나는 알 것 같다. “왜 한국에는 이런 연구가 거의 없는지.”


위험부담이 크고, 심리적 부담도 크고, 시간과 에너지가 끝없이 들어가는 연구. 이런 연구를 기꺼이, 또 묵묵히 감당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길이 그렇게 만만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각오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각오와는 별개로, 사람은 지칠 수 있다. 좌절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나는 여기서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지친다면, 지칠 것이다.
좌절한다면, 좌절할 것이다.


다만, 그걸 부정하거나 덮어두지 않고
담대하게 마주하면서, 그 상태 그대로 안고 갈 것이다.



처음과 변함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연구가, 조금이라도 한국의 정서중심치료에 기여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 가치를 향한 나의 믿음에는 아직까지 일말의 의심도 없다. 적어도 한 명의 상담자, ‘나’라는 존재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그다음은, 다른 상담자와 내담자들에게 향할 것이다.


아직 중간밖에 오지 않았는데도, 이 7개월, 300시간의 과정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고, 달라졌다.





우울, 불안, 트라우마, 관계


내담자들이 가져오는 괴로움과 어려움 위에서 우리가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나는 이 과정에서 계속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렇게 경험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연구라는 방식으로 남기고자 한다. 그렇게 남겨진 연구가 다른 상담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연구가 다시 내담자에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내가 꿈꾸는 건 결국 하나다.

심리상담이 더 전문적인 과정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변화”를 안겨줄 수 있기를.

나의 모든 경험을 담대하게 마주할 것이다. 자신을 토닥이며, 즐기며,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기억할 것은
나는 여기에 왔다.

나는 했다, 그리고 하고 있다.

… 확인, 그리고 인정.



그 경험을 연구라는 방식으로 남기고자 한다.
그렇게 남겨진 연구가 다른 상담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연구가 다시 내담자에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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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위한 심리상담의 마지막 회기를 마치고, 연구 참여자(내담자)들이 건네준 말들은 내게 너무 귀했다.



“이 기회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너무 값진 경험이었어요.”

“이번 심리상담 덕분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더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잘 살펴주고 싶어요.”

“처음에는 기대가 없었고, 과연 달라질까 싶었는데… 제 안에 힘이 생겼고, 혼자서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위 말들 외에도 정말 많은 경험이 있었다. 순간이 있었다. 우리의 존재가 있었다. 이를 대신할 보상이 있을까.


연구가 아니었다면, 실제 심리상담 과정을 연구로서 통째로 담아내는 구조가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아직 연구는 “반”도 오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의 진심, 생생한 변화, 뭉클했던 순간 하나하나는 이미 나에게 너무 큰 선물이다.


이런 표현을, 이런 문장을 나에게 건네준 그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상담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과정이다. 상담자는 배운 것과 익힌 것을 바탕으로 내담자의 괴로움과 어려움을 마주하지만, 100% 예지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상담은 더 세심하고, 더 깊고, 더 치밀한 과정이 된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전혀 다른 경험이 올라오기도 하고, 순간의 감정이 변하기도 하고, 그 감정이 어느새 이 작업의 핵심이 되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주요한 변화의 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상담자 혼자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 내담자가 없으면, 이 모든 일은 성립하지 않는다. 상담자는 혼자 앞서 달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내담자와 함께 걸어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내담자와의 매 순간 관계와 연결이 중요하다. 이 연결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야 하고, 그럼에도 한순간에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다. 괴로운 지점, 깊은 수준의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는 곳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안은 커지고, 두려움도 커진다.


그 감정의 폭풍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내담자와 상담자, 둘뿐이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발을 내딛지 못하고, 발을 내딛지 못하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 있을 뿐이다.


내담자와 상담자는 서로를 의지하며, 믿으며, 느리고 무거울지라도 의미 있는 한 발자국을 함께 내딛는 동반자이다. 이 과정을 충분히 함께 통과하고 나면, 어느 순간 우리는 그곳에 도착해 있다.


고요하고, 평온하고, 약간의 흔들림이 남아 있을지라도 발과 다리, 몸에 힘이 느껴지는 자리.

거기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상처 내지 않으면서,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헐뜯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고, 눈물 흘리고, 머리와 마음으로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혼자서도 걸어갈 수 있는 기대와 힘을 진짜로 경험하게 된다.


그때가 오면, 상담자의 역할은 서서히 끝을 향해 간다. 이미 내담자가, “나는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담자들은 종종 말한다.


“상담자 덕분에, 당신 덕분이에요.”




상담자인 나는 늘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함께 지나왔어요.
그리고, 이건 당신이 해낸 거예요.
저 역시 당신 덕분이에요.”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