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_함께 만든 과정을, 함께 읽어내는 과정으로써 다듬어가다.
*논문을 쓸 당시 남겨둔 기록을 중심으로 작성하기에, 말투나 시제가 섞여있을 수 있습니다.
고려하여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분석에 들어가는 시기다. 공들여 섭외했던 분석자분들께 하나씩 연락을 돌리면서, 마음속으로만 몇 번이고 되뇌었다. 정말… 감사한 분들. 이 사람들 덕분에 내가 혼자서는 절대 못 할 일을, 같이 해낼 수 있겠구나 하는 든든함이 밀려왔다.
박사 졸업연구는 최소 두 개의 굵직한 연구가 들어간다. 연구문제도 둘, 설계도 둘, 분석도 둘이다. 그리고 이 둘은 하나의 논문 안에서 설득력 있게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라도 설계가 붕 떠 있으면, 논문 전체의 뼈대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나의 연구도 마찬가지였다.
연구 1과 연구 2는 서로 다른 설계와 분석 방법을 택했다.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연구자인 내가 먼저 길을 잃지 않고, 이 과정을 가능한 한 즐겁게, 의미 있게 걸어갈 수 있다면, 분석자들도 이 작업을 조금은 덜 버겁게 느끼지 않을까. 에너지는 많이 들겠지만 말이다.
데이터 수집 단계와 분석 단계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풍부한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에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도출하느냐”에 따라 연구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똑같은 상담 장면, 똑같은 녹취와 녹화 자료를 두고도,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렌즈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후아, 이 작업이야말로 연구의 심장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연구는 심리상담 그 자체를 샅샅이 살피는 연구다. 내담자의 경험만 보지 않는다. 상담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축, 바로 상담자의 경험도 함께, 다양하고 깊게 살펴볼 예정이다. “상담자와 내담자의 경험”이라는 이 두 축이 서로 어떻게 얽히고, 어떤 순간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또 어떤 순간에는 엇갈리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미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일이다. 진심이 담긴 연구인만큼, 분석 절차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고, 향후 방향을 계속 되새기면서 나아가야 한다. 언젠가 이 연구가 끝나면, 이때 사용했던 도구와 절차를 정리해서 따로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블로그에 올릴지, EFTcrew 카페에 올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연구 1은 합의적 질적 연구, CQR을 사용했다. 연구 2는 국내에서는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해외 도구, CAMS를 도입했다. 이 도구를 쓰기 위해, 몇 달 전부터 먼저 원 논문과 매뉴얼을 파고들었고, 해외 원작자에게 직접 연락해 사용 동의를 받았다. 일종의 약속이었다. “내가 당신들이 만든 이 도구를, 한국의 정서중심치료 연구에서 최대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쓰겠다”라는 약속.
이번 연구를 앞두고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다짐한 것이 있었다. “연구자가 주체적이지 못하고, 분석자에게 연구의 핵심을 떠넘기는 연구는 절대 하지 않겠다.” 주변에서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봐왔다. 자신의 연구임에도 연구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 애매하게 대답하는 사람들, 분석자에게 “알아서 해달라”는 식으로 책임을 넘기는 사람들. 분석이 막히면 “분석자가 잘 못해서”라고 툭 던져 버리는 태도까지. 나는 그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다.
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분석자들의 시간과 노력을 소중하게 아껴야 한다.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시간을 줄이려면, 연구자가 더 고생하고 더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연구자가 더 고생하고 더 준비할수록, 분석은 효율적이고 군더더기가 줄어든다.
그래서 분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나는 도구 설명과 안내, 매뉴얼, 참고 논문, 작업 예시를 최소 2주 전에 모두 공유했다. 분석자들이 어느 시점에 합류하더라도, “지금 내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자료 구조를 잡았다. 분석자의 일정이 안 맞거나, 도중에 생기는 빈칸은 연구자인 내가 메꾸는 것을 기본으로 했다.
분석자 입장에서는, 주어진 자료와 안내를 바탕으로 분석에 집중하면 되도록, 그 외 자잘한 행정과 운영, 파일 정리, 버전 관리, 회의 세팅 같은 자질구레한 부분은 내가 담당했다. 당연히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준비하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안내가 헷갈리지 않을까, 설명이 부족해서 중간에 막히지 않을까, 이 방법 자체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분석 시간이 길어질수록 구성원들의 에너지는 어떻게 챙겨야 할까.
보통 한 번의 분석 회의는 3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서 나는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팀원들의 표정과 목소리, 말의 속도, 집중력을 계속 살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을 넘겨 끌고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분석은 몇 주, 어떤 경우에는 몇 달씩 이어진다.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약속한 그 안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연구자인 나의 몫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주제,
내가 보고 싶었던 현상,
내가 연구하고 싶었던 과정.
이 과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에너지가 드는 즐거움. 연구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정말 어마어마하지만, 그 스트레스와 별개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은 너무 좋다”라는 감각이 분명히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주제, 내가 보고 싶었던 현상, 내가 연구하고 싶었던 과정.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그때마다 자부심을 느끼는 경험. 분석자와 감수자, 나의 연구에 시간을 내어 함께해 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정말 값졌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6시간 넘게 분석을 진행하고 나서야 겨우 자리에 앉아 이 기록을 적었다. 몸의 에너지는 살짝 내려갔지만, 마음은 벅차올랐다. 즐거움으로.
질적연구는 하면 할수록 늘 새로운 느낌을 준다. 나는 양적연구보다 질적연구를 선호하는 편인데, 연구 방법 자체의 “멋” 때문이기보다는, 발견하고 이를 정립하고 탐구하는 그 과정이 훨씬 더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실제 현상과 언어, 맥락이 그대로 살아 있는 그 지점을 붙잡아서, 서서히 개념과 구조로 다듬어 가는 과정. 이럴 때 보면, 나는 참 실무형이자 탐구형이 맞는구나 싶다.
분석팀 간의 신뢰와 팀워크도 큰 축이었다. 누군가와 협업하는 과정은 실제로 신경 쓸 것도 많고 변수도 많아서, 혼자 할 때보다 에너지가 배로 든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너지와 연결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연구자 입장에선 생각이 많아지기 쉽고, 같은 부분에서 너무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하거나, 반대로 주요한 포인트임에도 놓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오랫동안 하나의 데이터에 파묻혀 있으면, 눈앞의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것이 정말 어렵다. 그럴 때마다 나를 잡아주고, 지지해 주고, 이 연구가 가지는 의의와 의미를 알아봐 주는 분석팀의 따뜻한 눈길과 집중하는 태도가 큰 힘이 되었다.
어떤 분은 회의 중간에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이 연구는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거예요.” 또 다른 분은 “결과가 너무 기대되는 연구예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것도 딱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 말들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뭉클했는지 모른다. 이 말들이 지금도, 앞으로도 내가 연구를 놓지 않을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최근에는 분석팀 모두가 대면으로 모여 잠깐 커피타임을 갖기도 했다. 분석 모드에 들어섰을 때의 집중된 표정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서로의 안부와 어려움, 고민을 나누는 시간. 고독한 연구자의 길에 잠시 놓인 한 숟갈의 온기 같았다. 특히 요즘처럼 날씨가 쌀쌀해질 때는 더욱.
한편, 그 과정에서 지도교수와의 면담은 여전히 긴장과 안도,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올라오는 시간이다. 질적연구에서 감수자의 역할은 정말 크다. 데이터에 파묻혀 있는 연구자와 분석팀이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보지 못하는 지점을 감수자가 잡아준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정서중심치료 교육을 거치면서, 나 자신의 정서를 다루는 방식이 바뀐 탓일까. 교수 앞에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힘들었던 부분”과 “내가 필요한 피드백”을 더 솔직하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혼자 끙끙 앓다가, 겨우 겉모습만 정리해서 들고 갔을 텐데, 이번에는 연구 과정에서 느낀 막막함과 어려움까지 같이 들고 갔다. “이 부분은 하면서 너무 어려웠어요.”라고 진짜 그대로 말할 수 있었다.
스스로도 약간 놀랐다. 엥, 내가 이렇게까지 표현하다니.
그런데 마음이 훨씬 편했다.
그 덕분인지, 교수는 “이 부분은 어려울 수 있다”며 토닥이는 말을 여러 번 건네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푹 하고 풀어졌다. “와, 정말 많이 진행되었는데요? 수고 많았네요.”라는 한마디, “결과가 잘 나온 것 같다. 이 정도면 크게 수정할 건 없어 보인다.”라는 평가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연구자가 듣고 싶은 칭찬은 사실 단순하다.
“수고 많았다.” “의미 있다.” “잘하고 있다.”
이 세 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다.
2025년 새해, 감수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결과표를 새해 첫 이메일로 H에게 보냈다.
분석만 최소 두 달이 걸린 결과물이었다.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떨어지면 어쩌지”라는 공포보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돌아온 한 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네요. 이대로 진행하세요.” 모니터 앞에서 혼자 조용히 “오예”를 외쳤다. 이것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아직 남은 분석이 한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려 한다.
“아직 물이 반이나 있네.”
CQR, 합의적 질적연구는 이름처럼 “합의”가 전부다. 합의가 길어지면서, 각 분석자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어떤 분석자는 특정 부분에 강하게 꽂히고, 어떤 분석자는 처음과 다르게 태도가 느슨해지고,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분석자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채, 본인이 붙잡은 문장만 놓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토의는 의견을 제시하고 다르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흘려보낼 수 있지만, 합의는 그렇지 않다. 의견이 갈릴 때, 어떻게든 하나의 공통된 안을 만들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것이, 동시에 CQR의 타당도와 신뢰도를 지탱하는 핵심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가 CQR을 연구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면, 연구자 본인이 먼저 자신의 연구를 아주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어야 한다. 연구 도구에 대한 공부도 충분히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기나긴 자갈밭을 함께 걸어갈 분석자를 섭외해야 한다. “시간만 내주면 돕겠다”는 수준을 넘어, 이 연구가 가지는 의미를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그게 연구의 질을 좌우한다.
감수자 역시 분석자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는 다행히 박사 과정 안에 있기에, 지도교수라는 감수자를 둘 수 있었다. 상위 연구자가 없는 상태라면, 외부에서 감수자를 찾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도전일 것이다. 감수자는 세밀한 것만 보는 사람이어도 안 되고, 큰 그림만 보는 사람이어도 안 된다. 미시적인 부분과 거시적인 관점을 함께 볼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하다.
나 역시 데이터와 세부 내용은 연구자와 분석자가 더 잘 알고 있지만, 수개월 동안 수많은 데이터에 둘러싸여 살다 보면 거시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때 감수자의 피드백이 방향을 다시 잡게 도와준다. 지금의 질적 연구 결과표를 처음 버전과 나란히 놓고 보면, “우와, 이 정도로 달라졌구나” 하는 감탄이 나온다. 그 차이는 결국, 함께 걸어준 사람들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 위에 글쓰기가 있다. 길고 깊은 글을 이어가는 호흡과 컨디션. 의외겠지만, 나는 글쟁이가 아니다. 글자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책을 오래 잡고 있는 것도 힘들어서, 20대 중반에는 내가 혹시 난독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글자보다는 이미지를 좋아하고, 웹소설보다는 웹툰을 선호하고, 피곤할 때는 영화 자막을 읽는 것조차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런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와, 연구 글을 쓰고, 논문을 쓰고, 지금 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인생은 참 예측이 어렵다.
그래서 나는 글을 바로 써 내려가기보다는, 먼저 개요와 틀을 잡는 방식을 택했다. 논지를 여러 번 뜯어고치고, 내가 이 연구를 통해 말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계속 다듬었다.
칼럼이나 에세이도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그래도 재미가 크다. 반면 논문은 학술적 가치가 가장 중요한 글이다.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간결해야 하고, 학자와 전문가들의 냉정한 심사를 견뎌야 한다. 부담이 안 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나의 연구가 그저 나만의 트로피로 남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연구가 그저 나만의 트로피로 남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심리학, 상담 및 임상심리 학계를 포함해서, 심리학자, 상담자, 임상가, 그리고 언젠가는 대중에게까지 닿기를 바란다. 욕심과 목표가 큰 만큼 고집도 생기지만, 동시에 혼자만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쉽지 않지만 가치롭다는 느낌은 매우 선명하다.
이제 곧 두 번째 연구 분석으로 깊이 들어갈 것이다. 첫 번째 연구의 결과를 마무리 지으면서, 다음 연구의 분석을 시작한다. 그 사이에도 심리상담은 계속 병행되고 있다. 연구와 상담을 동시에 품고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처럼 연구에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는 시기는 내 인생에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훗날 이 시간을 떠올리면, 분명히 향수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오래오래 이 과정을 즐기기 위해, 항상 해 오던 대로, 나 자신을 잘 토닥이고 다정하게 돌봐주면서 나아갈 것이라고. 지쳤다면 지친 대로, 좌절한다면 좌절한 대로, 그 모든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함께 끌고 가겠다고.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과정을 한 호흡에 떠올리며 말하고 싶다.
나는 했다. 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갈 것이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