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와 심리상담, 이론과 실제가 어우러지다

20_결과 분석을 끝내고, 졸업 심사에 들어서기까지

by 로지

연구와 심리상담, 이론과 실제가 어우러지다

20_결과 분석을 끝내고, 졸업 심사에 들어서기까지




*논문을 쓸 당시 남겨둔 기록을 중심으로 작성하기에, 말투나 시제가 섞여있을 수 있습니다.

고려하여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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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과정 분석, 그리고 연구가 내 상담을 바꾸는 방식



문득 예전에 적어둔 연구 노트를 다시 훑었다. 그때의 나는 아이디어가 넘쳐났다. 새로운 것을 보는 건 잘하고, 무엇을 더 볼 수 있을지는 끝없이 떠올렸으니까. 그런데 지금 필요한 능력은 완전히 다르다. “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쌓인 데이터 속에서 정말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고, 그걸 연구의 언어로 다듬어내는 능력이다.


심리상담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한 회기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이 지나가는지를. 목소리의 떨림, 눈빛, 손목을 쥐었다 폈다 하는 작은 몸짓, 들숨과 날숨, 왔다 갔다 하는 생각들, 오래된 기억과 지금의 의미, 걱정과 불안… 이런 것들을 글 몇 줄로 옮기는 건 늘 역부족이다.


연구는, 조용한 노트에 혼잣말을 적는 작업이 아니다. 말이 되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주장에는 근거가 붙어야 한다. 서론에서 “이게 왜 필요한지”를 그토록 공들여 썼다면, 결과와 논의에서는 그 질문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도입과 결론이 따로 노는 연구는, 내가 생각하는 연구가 아니다. 이 연결을 유지한 채로, 상담 장면을 분석하고 서술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 정말.






요즘 나는 상담을 끝내고 기록지를 쓰는 수준을 넘어서, 연구를 위한 분석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작업을 하고 있다. 상담자가 했던 말, 내담자가 했던 말, 그 사이에 흘렀던 침묵까지 다시 꺼내어, 연구 설계와 방법에 맞게 재배열하는 작업. 이건 “내가 보기엔 어땠다” 수준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연구 목적에 맞게, 타인이 읽어도 이해 가능하도록, 논리적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부담스럽지만, 이게 연구다.


처음에는 긴장됐다. “이렇게까지 뜯어보면, 결국 자책만 더 늘어나는 건 아닐까?” 상담자라면 누구나 알 거다. 상담을 가장 날카롭게 평가하는 사람은, 소비자인 내담자가 아니라 상담자 자신이라는 걸. 내가 분 단위로 어떤 질문을 했고, 어느 순간 멈췄고, 무엇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가장 잘 기억하는 사람도 결국 상담자다.


그런데 웬걸, 실제로 분석을 시작해 보니 달랐다. 몇 달 전 진행했던 회기들인데도, 지금의 눈으로 다시 보면 훨씬 또렷하게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다. “아, 이때 이걸 한 번 더 붙잡았으면 이런 정서 흐름이 가능했겠구나.” “이 내담자의 정서 도식은 지금 내가 이해하는 EFT 언어로 보면 이렇게 설명되는구나.”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내담자와 나를 함께 이해하는 경험이 이어졌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여기는 조금 더 기다려볼 수 있었겠다” 싶은 순간도 있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들어갔어도 괜찮았겠다” 싶은 지점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예전처럼 나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이지는 않는다. “그때의 나” 역시, 그때의 나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에게 다정한 말을 더 많이 건네고, 실수를 찾기보다 성장의 근거를 먼저 본다. 그 자체가 이번 연구가 나에게 준 중요한 결과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말하는,
이 분야에 깊게 내려앉은 말.

“연구와 상담은 거리가 있다.
연구로 상담 역량을 키우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말한다. “연구와 상담은 거리가 있다. 연구로 상담 역량을 키우기는 어렵다.” 지금의 나는, 이 문장에 정면으로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상담의 실제를 다루는 연구라면, 상담자의 역량, 자기 이해, 내담자 이해가 동시에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론을 다루는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번역서와 원서를 “쑤셔 넣는” 단계에서, 자기 언어로 재구성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단계로 옮겨가게 된다. EFT에서 말하는 being creative는, 실제로 그렇게 길러진다.


아직 논문이 게재된 것도 아닌데, 나는 이미 연구를 진행하고 분석하는 이 과정 속에서 꽤 많이 달라져 있다. 그렇다면, 다른 상담자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상담실과 연구실을 서로 다른 세계로 떼어놓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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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과 글 작업, 그리고 한국 심리상담 장면을 쓰는 일



며칠 전, 지도교수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심사와 피드백이라는 단어를 잠시 잊고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의 시간이 이렇게 편했나?” 싶을 만큼,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즐거운 자리였다.


아직 심사 과정이 남아 있음에도, 연구와 상담, 사는 이야기까지 오가며 웃는 시간이 나에게는 꽤 포근하게 남았다. 졸업논문이 완성되면 그때는 술 한 잔 하자는 약속까지 나눴다.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기다려지는 약속이다.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참 그랬던 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2024년 하반기는 나에게 변곡점이었다. 정서중심 실습에서 경험한 어떤 순간 이후로, 나 자신에게 향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감각도 달라졌다. 사람과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더 입체적으로 변했고, “나만 버티면 된다”식의 태도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쓰는 박사 논문은, 나 스스로에게도 기대되는 지점이 있다. 요즘 내 하루를 제일 많이 차지하는 것은 연구와 논문인데, 신기하게도 이게 예전처럼 “괴롭다, 무겁다”는 감각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힘든 순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 과정이 나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붙들고 있는 길처럼 느껴진다. 나중에 2023년부터 2025년 사이를 떠올리면, 아마도 나는 이 시기를 따뜻하게 그리워할 것이다.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이런 것이다. “어제 고민하던 그 문단, 오늘 이렇게 이어 써보면 어떨까? 아, 이 부분은 저기 앞부분으로 옮겨야겠다.” 그리고 빨리 컴퓨터를 켜서 그 문장을 붙잡고 싶어진다. 맞다. 나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 의미를 느끼는 것에 몰두할 때 가장 살아난다. 연구와 글 작업은 그 기준을 통과했다.


글 작업은, 찾아내고 다듬고, 또 찾아내고 또 다듬는 과정이다. 데이터를 통해 발견한 것을 서론의 문제의식과 연결시키고, 이론적 배경의 흐름과 맞물리게 하고, 다시 논의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것. 이 호흡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지만, 동시에 충만하다. 요즘 내 마음 상태를 한 단어로 말하면, feeling fulfilled.




실무자-연구자 사이에서, 연구와 상담을 동시에 붙드는 일



석사 때 처음 들었던 개념 하나가 있다. 실무자-연구자 모형. 상담자가 현장에서 내담자를 만나면서도, 연구를 통해 자신의 이론과 개입을 점검하고 확장해 가는 모습. 말로 들을 때는 이상적이었지만,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컸다.


주변의 교수와 슈퍼바이저들을 떠올려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교육자는 많은데, 정작 연구 실적은 거의 없거나, 이미 너무 오래전에 멈춰 있다. 반대로 연구 실적이 풍부한 교수들은, 실제 상담 이야기를 하면 “내담자가 요즘은 그런 것도 힘들어하나요?”라는 반응을 보일 만큼 현장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강의에서 전달되는 내담자 이해는 글자와 개념 위주였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는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서양에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논의돼 온 내용을 한국어로 요약해서 발표하는 역할에 그쳤다. 그들의 연구 실적을 아무리 찾아봐도, 자신이 가르치는 심리치료 이론을 실제로 시험하고 확장한 연구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론을 소개하는 글”은 많은데,

“이론을 실제와 연결한 글”은 드물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아쉬웠다. 연구는 졸업을 위한 형식적 통과의례로, 상담은 자격증을 위한 실적 쌓기로 취급되는 풍경 속에서, 실무와 연구를 동시에 진지하게 붙드는 사람은 늘 소수였다. 그래서 늘 목이 말랐다.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실제 상담을 하면서, 그 상담 자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연구 주제가 이론과 실제를 동시에 가로지르고 있고, 분석의 대부분은 “실제 상담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시 읽고 묶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인지, 드디어 “전문성이 쌓인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문성이 쌓인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들기 시작했다.





연구에서 발견한 것, 경험한 것은 곧장 상담 과정으로 생생하게 이어진다. 반대로 상담에서 피어난 질문과 통찰은, 연구의 질문과 논의로 연결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실무자-연구자 모형의 실제다. 단지 슈퍼비전에서 나오는 피드백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그 결과를 다시 현장에 돌려보내는 순환.


그래서 나는 “연구와 실제는 별개”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연구 주제가 현장과 무관할 때, 연구가 졸업용 과제에 그칠 때, 그 말은 사실이 되겠지만, 그건 연구의 문제이지 연구라는 방식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네 달의 분석, 그리고 마침내 남은 것은 글


지난 몇 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상담과 연구, 연구와 상담.” 연구가 주요 과업으로 떠오른 뒤로,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그런 상태였다.


특히 최근 네 달은 연구 2, 즉 과정 연구의 분석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축어록을 읽고,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정서 흐름과 의미 상태를 한 줄 한 줄 분류하고 다시 합쳤다. 데이터에 깊게 잠수해 있는 동안에는, 마치 상담실과 연구실의 경계가 사라진 것 같았다. 상담에서 사용된 언어, 표정, 침묵이 분석의 코드가 되고, 분석의 통찰이 다시 상담자의 시선에 들어왔다.



정서중심치료 실증 연구를 한다는 의미는,



정서중심치료 실증 연구를 한다는 건, 말 그대로 상담의 연장선이다. 장점이기도 하지만, 에너지가 이미 많이 쓰인 상태에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된다. 상담과 연구가 유기적으로 돌수록, 양쪽 모두에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구조이기도 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어제저녁, 드디어 연구 2의 분석을 마무리했다. 분석자들과 “드디어 해냈다”는 마음으로 잠깐 환호를 나눴다. 홀가분함과 기쁨을 좀 더 오래 음미하기로 하고, 자기 전 노트에 지금의 감정을 손으로 적어 두었다.


이제 데이터 분석은 끝났다. 남은 것은, 어쩌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처음부터 이 연구를 시작하게 만든 질문, “정서처리는 언제나 선형적인가?”를 다시 꺼내어, 수집된 데이터와 분석을 통해 답을 구성해 가는 일. 이 여정을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일.


연구와 정서중심치료에 관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이 시간이 꽤나 즐겁다. “오늘은 이 부분을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주말 하루를 통째로 내어주면서도, 후회는 없다. 분명 나는 나중에 이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분명 나는 나중에 이 시간을 떠올리며,
추억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이제 남은 글 작업에서 나는, 한국에서 실제 내담자들과 만날 때 정서중심치료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 그 핵심을 풀어내는 데 집중할 것이다. 이 논문이 한국에서 EFT가 제대로 뿌리내리고, 실제 상담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이게, 이론을 사랑하고, 상담을 업으로 삼고, 연구까지 붙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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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