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논문 심사는, '연구'가 아니다.

21_대학원 속 정치. 그저 버텨내야만 생존하는 악몽의 연속

by 로지

대학원 논문 심사는, '연구'가 아니다.

21_대학원 속 정치. 그저 버텨내야만 생존하는 악몽의 연속




*논문을 쓸 당시 남겨둔 기록을 중심으로 작성하기에, 말투나 시제가 섞여있을 수 있습니다.

고려하여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박사 심사는, 연구가 아니다.

‘절차’의 언어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분석이 끝나갈 즈음, 논문은 전혀 다른 궤도로 옮겨졌다. 데이터와 씨름하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학원 홈페이지의 공지사항, 심사 일정표, 각종 신청서 양식, 마감일과 서류 제출 안내였다. “이 결과가 무엇을 말해 주는가?”에서 “언제까지 무엇을 어디에 제출해야 하는가?”로, 질문의 초점이 바뀌는 시기였다.


일반대학원 심리학과 박사과정 심사는, 석사 때와 구조부터 다르다. 심사위원이 다섯 명으로 구성되고, 한 번으로 끝나는 자리가 아니다. 먼저 비공개 형식의 예비 심사가 있다. 이때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연구의 전체 구조와 현재까지의 진척을 설명하고, 각 위원들의 질문과 요구 사항을 정리해서 이후 수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학과 전체 공개로 진행되는 최종 심사가 이어진다. 말 그대로, 논문이 학과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검증받는 단계다.




*소소한 기억:


교수들 간의 지독한 정치, 대학원 속 역하게 퍼져 내려오는 권위주의를 제대로 마주했던 경험이었다. 예비 심사가 있던 시기였다. 여기서 나는 잘못을 하나 하게 되었다. 이건 어떤 이유가 필요하지 않을 나의 책임이었다. 나의 졸업논문 심사 과정은 1차 비공개 심사가 화상통화로 있고, 그 이후 심리학과 모두에게 공개되는 대면 최종심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학원에서는 상세한 심사 과정에서 지켜야할 부분이나 조건 대해서는 자세하게 안내하지 않는다. 모두 교수와 학생의 재량으로 맡긴다. 재. 량.


1차 비공개 심사는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교수들에게 연구논문을 미리 송부하고, 심사 당일에 교수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형식이었다. 나의 실수는 바로 ‘심사받을 논문을 송부하는 방식’에서 발생했다. 당연히 최종심사 때에는 제본을 해서 모든 교수들에게 송부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최종심사 때는 이미 최종본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1차 비공개 온라인 심사는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만큼, 가장 먼저는 모든 심사위원에게 pdf 파일을 '한참 미리' 송부했다. 동시에 인쇄, 제본이 필요한지를 함께 물어보았고, 요청을 한다면 해당 교수들에게만 송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심사용 논문을 실물로 받아보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자원 낭비로 보는 경우도 있었고, 나의 지도교수만 하더라도 항상 pdf 파일로 논문을 받아보길 희망했기에, 그 흐름에 나 역시 안일하게 생각을 했다. 지도교수를 제외한 4명의 심사위원들 중 3명이 본교에 재직 중인 교수라는 것을. 그리고 그중에 2명은 원로 중에서도 원로인, 나이가 지긋하고 권위와 위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학교 행정처리를 항상 최소 5번 이상 확인함에도, 공지에도 나와 있지 않은 정보를, ‘알아서 교수들의 선호를 고려하여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건 학생인 나의 잘못이다. 처음부터 제본을 기본으로 준비했어야 함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도교수 H와 심사위원으로 들어온 상담 전공 원로 교수 C의 반응은 적나라했다. 지도교수 역시 1차 심사 전에 부리나케 연락해서 “설마 제본을 안 했어요?! 제본이 예의입니다.” 하며 역정을 냈다. 박사과정 통틀어 처음 보는 가장 격양된 H의 모습이었다.


원로 교수 C는 보법이 달랐다.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C 교수가 원래도 본교에서 체면에 힘주기로 유명하다고들 했고, 편애, 모두 앞에서 특정 학생을 콕 집어 꼽주기, 미소 지으며 비수 꽂는 듯한 장면을 나는 여러 번 목격해 왔다. 나에게는 소위 말하는 ‘꼰대의 전형적인 모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C 교수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1차 심사 때 분위기는 그야말로 냉랭했다. 그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전혀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C는 심사 전에 나에게 미리 외부 심사위원(타 대학교 소속)의 소속과 직급을 물었다. “00 교수는 어디에 재직 중이죠?” 심사엔 하등 상관도, 쓸모도 없는 개인정보를 굳이 확인해 갔다. 그리고 1차 심사 당일, 그 외부 심사위원에게 첫 순서를 던져놓고는 “저희 학교에선 외부인이 먼저 심사평을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라며,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외부 심사위원의 기분은 가볍게 짓밟고 지나갔다.


내가 경험한 대학원 졸업 심사 과정은 겉으로 볼 땐 학구적으로 포장이 되어 있을 뿐, 실상은 교수들의 역한 정치싸움이다. 그런 참상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도 매번 고역이다. 학생에게 하는 피드백은 은연중에 그 학생의 지도교수에게 향하는 견제와 비판도 같이 들어가 있다. 지도교수는 그래서 학생의 결과물이나 발언, 행동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운다. 학생의 체면이 곧 자신의 체면, 학교에서의 입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내 눈에는 교수 C와 H가 상당히 서로를 의식하고 견제하는 모양새로 보였다. 특히 H가 국가 연구과제를 여러 개 수주해 와서 진행하는 동안 C는 그런 대형 과제는 물론이고 어떠한 연구 과제도 따내지 못했고, 그전에도 상담 전공에서 억 단위 연구과제를 진행한 이력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한국의 고학력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었던 C에게는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지점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 한다.

그래서이기도 하겠지만, 매번 특히 H의 연구과제에서 파생된 주제를 가지고 졸업논문을 쓴 박사 학생들에겐(나 역시 그 양상을 비판적으로 여기지만) C만의 비꼬는 멘트가 빠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00 학생은 H 교수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그 주제로 쓴 논문이잖아요?”라는 말을, 심리학과 모든 교수와 학생들이 자리한 최종 논문 심사 자리에서 꺼냈던 때가 참 아찔하다. 그럴 때마다 아무 말 못 하고(안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침묵만 유지하는 H의 모습을 보면 참 여러 마음이 든다.


다시 돌아와서, 외부 심사위원은 지도교수의 추천이나 초대로 진행되기에 ‘H의 사람’이다. 외부 교수는 무슨 죄인가. 아무런 안면도 없는 타 대학 교수에게, 나는 그 장면이 은근하게 무시당하는 경험처럼 느껴졌다. 절대 유쾌할 수 없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역시 외부 교수가 극딜을 당하는 때에도, 너스레를 떨며 분위기를 풀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H는 그때도 침묵했다. 그렇게 시작된 1차 심사에서 나는 먼저, 나의 잘못에서 비롯된 ‘제본’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 시작했다. “발표에 앞서 제 불찰로 인해 교수님들께 불편을 드려,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한 명씩 돌아가며 심사평이 진행되었고, 대망의 C 교수 차례가 되었다. 역시 그의 시그니처 멘트가 흘러나왔다. “내가 000 학생이 잘 되길 바라서 하는 말이에요. 대학원 밖에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역시, 이럴 줄 알았다.. 그 당시 나에게, 언짢음을 표출하는 C의 모습은 꽤 신이 나 보이기도 했다.


C 교수의 잔소리 무대가 무려 40분 넘게 이어졌다. 어떻게 제본을 이딴 식으로 해올 수가 있느냐부터,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인지 모르겠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나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식의 말을 쏟아냈다.


정작 박사 졸업 연구와 전혀 상관없는, 그의 불쾌감만 담긴 문장들이 그의 연구 심사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듣는 나는 정말 고역이었지만, 그 얘기를 같이 듣고 있는 4명의 교수들도 그저 침묵하며 듣고 있는 이 순간이 참으로 생경했다.






박사 학생에게 발동되는 교수의 심리는, 노골적이다.

모른 척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 경험에서 교수들에게 실망하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의 언행과 시대착오적이고 권위적인 가치관에 있다. 요즘은 그나마 '꼰대'라는 단어로 함축할 만큼, 옳지 않은 구시대적인 행동이 질타를 받는다.


하지만 대학원은 사회의 흐름을 바로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H, C, 이 둘 모두가(과연 그들뿐이겠냐만) 각자 성격이 다르니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내가 경험한 많은 경우에서, 교수가 권위를 앞세워 학생을 압도하는 느낌은 공통적으로 있다.


잘못이나 실수가 발생한다면, 그 부분이 재발되지 않게, 무엇이 잘못인지만 설명해 주면 될 일이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이건 잘못하신 겁니다.' 딱 이 말이면 될 일이다.


나의 평소 예절이나 예의와 상관없는 일이며, 이 순간 외에 이러한 실수는 반복되지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수들은 학생을 향해 "내가 지금 혼내지 않으면 큰일 날 거야! 노골적으로 말해야 정신 차릴 거야!! 내가 바로 그걸 바로 잡아야 할 유일한 어른이야! 내가 하는 한마디가 전체를 바꿀 거야!!!"라는 식의 자기 역할 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대하고 왜곡된 자기상이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권위적인 교수들은 이 부분이 어렵다. 자신이 느낀 것에 대해 온갖 그럴싸해 보이는 이유를 가져다가 덕지덕지 붙인다. 그 모양새는 너무도 일그러졌고, 그조차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게 기본이다. 이것이 예의다. 누구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어려서 모른다." 등 본질은 흐리고, 그저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신의 체면과 위신은 높이려는 행태. 그것이 권력이고, 권위주의다.


"나 때는..." 이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당사자만 모른다. 당연히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상황도, 맥락도, 구성원도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러니 그 예시는 당연히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돌아보지 않으며, 이미 굳어진 관점을 고집한다. 잘못이라는 걸 알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그 모습은 여전히 선명하다.




지금 보면, H가 그렇게까지 “자신의 박사 학생이, 다른 심사위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예민해졌던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박사과정 구조 안에서, 타 교수의 평가는 곧바로 지도교수의 성과와 지도 역량에 대한 평가로 연결된다.


학생이 심사 자리에서 흔들리면, 학과 내부에서는 학생만 보는 게 아니라 “저 학생을 여기까지 이렇게 데리고 온 지도교수”를 함께 본다. 형식과 완결성에 민감한 H에게 타 교수의 코멘트는 쉽게 “학생에게 주어진 피드백”이 아니라 “내 평판과 지도능력에 대한 사건”으로 전환됐을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들어온 피드백을 본인이 다시 재해석하고, 우선순위를 매기고, 답변서의 문장과 톤, 제출 일정과 형식을 촘촘히 통제하려 들었던 것도 결국 자신의 불안과 부담을 낮추기 위한 움직임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겉으로는 내 논문을 ‘지원’ 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지도교수로서의 안전장치를 세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뒤에 더 자세히 이어지겠지만, 또 하나 느낀 건, H가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독립”이라기보다 “통제권 이탈”에 가깝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박사 후반부가 되면 학생은 타 교수 피드백을 스스로 소화하고, 필요한 건 취하고 아닌 건 거절하는 독립 연구자에 가까워진다. 그래야 건강하고, 올바른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사과정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연구자'를 길러내는 과정이다.

교수에게 '통제당하는 의존적인 꼭두각시'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교육이다.





하지만 H에게서 돌아온 말과 행동들은 대체로 그 반대 방향이었다. “내가 한 번 보고 보내요”, “이렇게 정리하는 게 안전해요”, “심사위원들이 이런 표현은 싫어합니다” 같은 문장은, 결국 학생이 타 교수 피드백을 근거로 혼자 결정하는 순간을 불편해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기록으로 남는 답변서, 형식, 부록, 제본, 제출 타이밍에서 흠이 생기는 걸 무엇보다 싫어했고, 그래서 나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학생의 역량 강화, 성장과 상관없이, “문제없는 제출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교수의 통제 욕구를 더 키웠을 것이다.


그 예민함은 다시 말하자면, ‘학생을 위해서’라기보다 ‘지도교수로서 자신의 평판과 책임을 방어하기 위한 반응’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일정과 형식을 먼저 정리해 가져가고, 타 교수 피드백을 짧고 명료하게 정돈해서 보여줬을 때, H의 표정이 갑자기 누그러지고 “이 정도면 됐다, 고생했다”라는 말로 급히 마무리하려 했던 장면들이 지금은 훨씬 더 선명하게 이해된다.







많은 행정절차. 학과와 대학원행정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끊임없는 과정



앞서 말한 두 단계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행정 절차가 끼어 있다. 심사를 신청하기 위한 기본 서류들, 연구윤리 관련 확인, 졸업요건 충족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 심사료 납부 안내까지. 겉으로 보면 한 번에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청–확인–승인–공지”가 몇 번이고 반복된다. 박사 심사의 경우는 석사 때보다 요구되는 서류의 종류도 조금 더 복잡하고, 학과와 대학원행정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야 할 일도 많다.


그래서 나는 꽤 이른 시점부터 졸업요건을 몇 번이고 다시 점검했다. 대략 1년 전부터, 학기마다 올라오는 심사 관련 공지를 볼 때마다 “이번은 아니지만, 다음에는 내 차례가 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표시해 두었다. 수료 여부, 필수 학점, 논문계획서 통과, 학술지 게재 실적 등, 박사 졸업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제대로 충족되어 있는지 여러 번 확인했다.


그때마다 “이번에는 아직 아니다”라는 아쉬움을 삼키고, 다음 학기를 기약했다.

이제는 그 기다림이 실제 일정으로 바뀌어 버린 상태였다.



절차를 준비하는 일 자체는, 사실 하나하나만 떼어 놓고 보면 어렵지 않다. 공지사항에 올라오는 안내를 차분히 읽고, 정해진 양식에 맞춰 서류를 작성해서 기한 내에 제출하면 된다. 다만, 이걸 “한 번에 몰아서” 하려고 하면 금방 벅차진다. 심사 일정은 학기 후반부에 몰려 있고, 그 시기에 글 작업과 수정, 상담, 기타 업무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미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공지가 올라올 때마다 하나씩 지워 나갔다.


이 시기에는 지도교수와의 연락 패턴도 바뀐다. 이전에는 주로 연구 내용, 분석 방향, 이론적 배경에 대한 논의를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면, 이제는 심사와 관련된 메일과 메시지가 훨씬 자주 오간다. 초고를 언제까지 어느 정도 분량으로 보낼지, 어떤 버전을 심사위원들에게 공유할지, 예비 심사와 최종 심사 사이에 어떤 수정 계획을 세울지 등, 일정과 형식이 대화의 중심이 된다.


심사위원에게 논문을 보내는 순간도 독특하다. ‘연구를 보여준다’기보다 ‘심사를 요청한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보내기 직전까지 제목, 목차, 초록, 표와 그림 번호, 각주와 참고문헌 형식까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결과의 완성도만이 아니다. “이 버전이 심사 일정과 행정 절차에 맞게 돌아갈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기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종 심사 공지가 학과 단체 채널에 올라왔을 때의 감각은 조금 복합적이었다. 입학 때부터 수없이 보아왔던,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심사 일정 안내’ 안에 드디어 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그 공지를 볼 때마다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서겠지”라는 막연한 느낌만 있었지만, 실제로 내 이름이 올라간 화면을 보고 있으니, 기대와 긴장, 이상하게도 묵직한 현실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박사 심사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연구가 어느 순간 “행정의 언어”로 번역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논문은 더 이상 연구자와 내담자, 데이터 사이에서만 오가는 텍스트가 아니라, 대학원 시스템 속에서 특정한 양식과 일정, 규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문서가 된다. 각 단계마다 “신청–검토–승인”이라는 행정이 있고, 연구자는 그에 본인의 작업을 맞춰 넣어야 한다.


이 과정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연구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일정한 방향으로 밀어주는 구조이기도 하다. 마감일이 있으니까 초고를 완성하고, 예비 심사 일정이 정해지니까 그전에 결과 부분을 정리하고, 최종 심사 날짜가 박히니까 논의를 본격적으로 써 내려간다. 절차가 없었다면 훨씬 더 오래 미루었을지도 모를 일들이, 행정 구조 덕분에 실제로 진행되기도 한다.


다만 분명한 건, 이 시점의 나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대학원 행정 시스템의 이용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데이터와 씨름하던 시간과, 공지사항을 읽고 양식을 맞추는 시간은 서로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요구했다. 한쪽에서는 정서처리의 비선형성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출 서류의 파일명을 학교에서 요구하는 형식에 맞게 바꾸고 있었다.


구조적·행정적·절차적 과정.

교수들 간 정치, 그들의 불안, 민낯.


심사 자리에서 오갔던 말들, 교수들의 피드백, 권위와 위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학생에게 어떤 도움과 한계를 동시에 남겼는지.



지도교수와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며 나의 연구를 지켜내며 다듬어 간,

그 시간은 지금도 끔찍하게 여겨질 정도로 나에겐 고독하고, 처절했던 시간이었다.

그 얘길 이어서 나눠보고자 한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