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나 중요한 관계에서 상대에게 맞추다 결국 ...

'정서와 관계'를 돌보기 위한 30가지 QnA

by 로지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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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애나 중요한 관계에서 상대에게 맞추다

결국 ‘내가 사라진 느낌’이 들 때,

'나를 유지한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바로 답하기 전에,

잠시 숨을 두 번 고르고,

주변을 살펴보세요.






A.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맞추게 돼요.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에요.



함께 시간을 맞추고, 취향을 나누고, 양보도 하고,

“우리”라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가는 건 관계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어느 순간,

“우리”만 남고 “나”는 어디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이런 순간들일 수 있어요.

원래는 좋아하지 않던 취미인데, “나도 좋아”라고 말하며 따라가다가,

어느샌가 “도대체 나는 뭘 좋아했지?”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



피곤한데도, 힘들다는 말을 삼키고

늘 상대 일정에 맞추다 보니

내 하루의 리듬이 전부 깨져버린 느낌이 들 때.



하지 않아도 될 설명과 해명을 반복하며

“이렇게까지 해야 사랑받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스치는데,

곧장 “그래도 내가 참는 게 낫지”로 덮어버렸던 기억들.



관계 안에서 나를 유지한다는 건,

상대를 밀어내거나 이기적으로 살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런 모습에 가까워요.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 감정과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먼저 알고 있는 것.



그중에서 최소한 몇 가지는

관계 안에서도 계속 가지고 가겠다고 정해두는 것.



예를 들면,


“이만큼의 쉬는 시간은 지키겠다”

“이 부분은 농담처럼 넘겨짚지 않겠다”

“이 이야기는 진지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같은 것들.





혹시


혹시 지금까지의 당신은

“어차피 나 하나쯤 맞추면 되지”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해야지”

“이 말 꺼냈다가 분위기만 망칠 거야”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감정들을 조금씩 뒤로 미뤄두지 않았나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 관계에서 나는 어디까지 허용된 사람이지?”

“나는 도대체 여기에 얼마나 존재해도 되는 거지?”라는 허무함과 공허가 밀려왔을지도 몰라요.


관계 안에서 나를 유지한다는 건, 결국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에요.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이 관계 안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거나 필요로 하는지,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부터는 힘든지.



그리고 그중 아주 작은 일부라도


말과 행동으로 꺼내보는 것.


완벽한 표현이나 멋진 언어가 아니어도 돼요.



“오늘은 좀 쉬고 싶어”

“이 농담은 나에겐 조금 불편했어”

“나는 이런 방식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겠어”



한두 문장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어요.



당신이 완전히 사라지는 관계는,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여도


안쪽에서 당신을 천천히 닳게 만들 수 있어요.



관계 안에서 나를 유지한다는 건,


나만 고집하며 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이 관계 속에서도 나는, 나로 남아 있겠다"라는


작고 구체적인 선택을 조금씩 쌓아가는 일에 가까워요.








*아래 답변은 여러분이 스스로 답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각색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맞춰주는 사람’이었어.



약속 시간도, 장소도, 대화 주제도


상대가 편한 쪽으로 먼저 생각했고,


그걸 나름대로는 ‘성숙한 사랑’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



근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내가 힘들 땐, 여기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나?’



피곤해도 ‘괜찮아’라고 말했고,


섭섭해도 ‘내가 예민한가 보다’라고 넘겼고, 맞춰주다 보니,



상대는 점점 ‘당연히 그래줄 사람’으로 나를 여기게 된 것 같았어.


그때부터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



분명 둘이 있는데,


나는 점점 투명해지는 느낌.



함께 있는 시간인데도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내가 지금 웃고 있는 건지,


그냥 분위기에 맞춰 움직이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요즘은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해보려고 해.



정말 피곤한 날에는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하고 쉬고 싶어’라고 말해보기.


가기 싫은 자리가 있을 땐 ‘이번엔 나 쉬고 싶어’라고 조심스럽게 꺼내보기.


농담처럼 들리지만 상처가 되는 말에는 한 번쯤 ‘그 말은 나한텐 좀 아프게 들려’라고 말해보기.



이걸 한다고 해서


상대가 언제나 잘 이해해 주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적어도,


이 관계 안에서 나를 완전히 지우지는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은 조금씩 지켜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마 내가 바라는 건, 서로만을 위해 희생하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모습으로 서 있을 수 있으면서


그 둘이 함께 있는 자리야.



그렇게 ‘우리’라는 이름 안에서도


나는 계속 나로 남아 있을 수 있기를 바라.



그리고 그게,


내가 이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작은 시작인 것 같아.”




#정서중심치료




로지 상담심리사, 심리학 박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https://linktr.ee/semicoloncoun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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