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와 관계'를 돌보기 위한 30가지 QnA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바로 답하기 전에,
잠시 숨을 두 번 고르고,
주변을 살펴보세요.
한 손 또는 두 손을 가슴 쪽으로 올려두고
토닥토닥 네 번,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어 볼게요.
A.
최근에 “또 화가 치밀었는데, 차마 터뜨리지는 못했던 순간” 하나만 떠올려보세요.
우리는 대개, 분노가 올라오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먼저 다그치곤 해요.
“내가 너무 예민한가?”, “괜히 또 크게 느끼는 거 아냐?”
그래서 분노를 느끼는 나를 부끄러워하고,
‘좋은 사람, 정상이라면’ 화가 나지 말아야 한다고 평가해요.
하지만 분노는 많은 경우,
“이건 나에게 불공평하다”, “이 선은 넘어섰다”를 알려주는 정서예요.
미워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먼저 뛰어나오는 경보 장치에 가까운 때가 많아요.
한 번 떠올려볼까요?
내가 화가 났던 그 장면에서,
어떤 것들이 반복되고 있었나요?
늘 약속이 가볍게 깨지는 일,
나만 양보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상황,
내 마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되는 말투,
농담이라는 이름 아래 나를 깎아내리는 표현들.
분노는 종종 이런 것들을 지키려고 해요.
“내 시간과 에너지를 함부로 쓰지 말아 달라”는 권리 존중,
“내가 불편하다고 느낀 것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 달라”는 요청,
“나도 존중받고 안전하게 대우받고 싶다”는 바람.
혹시
지금까지의 당신은
‘그래도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야지’
‘이걸로 화내면 내가 더 나쁜 사람 될 것 같아’
‘여기서 나까지 불편한 티를 내면, 관계가 깨질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분노를 느끼는 나를 계속 설득해 온 건 아닐까요?
그래서 분노는 더 크게, 더 자주 올라왔을지도 몰라요.
“내 말 좀 들어줘”, “여기가 내 한계야”라고
계속해서 알려주려고 했을지도요.
우리가 할 일은
그 분노를 옳다, 그르다 재단하는 것보다 먼저,
“이 분노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이 무시당하고 지나가는지도 몰랐을까?”
이 질문을 조용히 던져보는 일일지도 몰라요.
분노는,
나에게 꼭 필요하지만 너무 오래 미뤄둔 권리와 한계를
다시 보여주려는 정서예요.
지금 이 순간 올라오는 이 분노가,
지키고 싶어 하는 나의 기준이 무엇인지,
천천히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래 답변은 여러분이 스스로 답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각색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라고 믿었어.
웬만한 일에는 참고 넘어가고,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스스로 달래 왔지.
그래서인지, 요즘 점점 자주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나한테도 낯설었어.
사소한 말투에 욱하고,
작은 약속이 어겨져도 속이 부글부글 끓고,
농담이라며 던진 말에도 눈물이 날 것 같았거든.
처음엔 당연히 이렇게 생각했어.
‘내가 너무 예민한가 보다.’
‘피곤해서 괜히 더 날카로워진 거겠지.’
그래서 더 열심히 눌렀어.
갑자기 분위기 흐릴까 봐,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나까지 화내면 내가 더 나쁜 사람 같아서.
근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
‘만약 이 분노가 없었다면,
나는 이 상황이 나한테 얼마나 불공평한지,
얼마나 반복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나는 꽤 오랫동안
내 시간을 함부로 써도 되는 사람처럼,
내 감정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사람처럼,
내가 참고 맞춰주는 게 당연한 사람처럼
나를 대하는 걸 허용해 왔던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분노가 올라올 때마다
‘지금 이 분노는, 내 어떤 권리를 지키려고 나왔을까?’라고 물어보려고 해.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내 시간을 대충 취급하지 않을 권리’
‘나를 깎아내리는 농담에서 빠질 권리’
‘불편했던 일을 불편했다고 말할 권리’
물론 그 자리에서 바로 다 말하지는 못해.
여전히 무섭고,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렵기도 해.
그래도 적어도 이 분노를
‘나를 망치는 감정’으로만 보지는 않으려고 해.
어쩌면 내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밀려나 있던 내가
이제야 “여기가 내 한계야”라고 말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르니까.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진 않아.
다만, 이 분노를 통해
‘내가 어디까지는 사랑받아도 된다고 믿고 싶은지’를
조금은 더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정서중심치료
로지 상담심리사, 심리학 박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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