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_석사 학생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되다. 그리고, 알게 되다
지난 화에서 언급했듯, 첫 학기가 시작하고 처음 참여했던 박사 학생들 '전체'가 모이는 자리에서 환멸을 느끼고 난 이후론, 다짐대로 최선을 다해 박사 전체 자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체 모임이라 하면, 대학원에는 상담 전공 교수가 2명(H와 C)이었기에 교수에 따라 연구실이 나뉘어 있었다. 원로 교수 C의 연구실은 십 년이 훨씬 넘었기에 그만큼, 박사 수료생(학위논문을 쓰지 못해 졸업 못한 학생)의 수가 상당했다. 지금 2025년에도 졸업하지 못하고 수료 상태로 화석이 된 박사 학생들이 수두룩 하다. 졸업을 할 생각이 없는 건지, 할 역량이 없는 건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 테지만, 당시 내가 입학했을 때도 수료생이 10명은 족히 넘었다.
이러한 나의 행보를 나중에 듣고는 놀라는 대학원 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그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돼요?"
"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나중에 찍혀서, 불이익 생기는 거 아니야?"
"아휴..."
등등 여러 가지 반응이었다. 여전히 나는 그들의 반응을 사회적 맥락에서는 머리로 잘 이해하지만, 진심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들 반응의 핵심은 이후 혹여나 발생할 불이익, 또는 이익/기회를 놓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체면과 눈치였다.
좋게 표현한다면,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이익을 위한 자기 보호 장치를 마련, 즉 사회생활이다. 내 표현으로 하면, 도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자 그에 사로잡힌 자신을 억압하고 틀에 갇어버리는 어리석음이다.
사회생활, 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나는 심리학자이자, 전문 상담자이다. 그 뜻을 모를 리가? 나의 전문성은 사람들이 일상과 사회에 적응하여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적응적인 삶을 영위할수록 조력하는 데 있다. 그러니 내가 그 뜻을, 그 가치를 몰라서 혹은 하지 못해서 그런 선택을 한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나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즉 멀리할 관계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정말 의미 있는 사람들과 순간에는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그 삶의 방식에 대해 염려한다. 다시 말하면 특히 눈치와 체면이 매우 중요한 한국 문화에 익숙한, 관계 중심적인 가치를 매우 높게 가진 사람들은 나의 행보를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나는 그러한 그들의 모습이 참 흥미롭다.
나의 선택과 책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반응은, 나에게 가볍고도 너무 가볍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머리에 잠시라도 머물지도 못하고 날아갈 정도로.
나를 위해 걱정해서 하는 조언이다 공감이다 포장하지만,
그 본질은 본인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안을 진정시키려,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서, 그래서 위계(나이 부심, 학연 부심 등)만 부리고 능력은 없는, 학구심은 물론 연구에 관심도 없는 대다수 박사 학생들과 선을 긋는 건 나에게 딱히 큰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의 영향력은 1도 없다고 느낄 만큼, 간혹 미숙한 방식으로 텃세를 부리거나 눈 흘김을 느끼는 거 말고는 5년 내내 어떠한 불이익도 발생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나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영향력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내가 얻어갈 수 있었던 것이 있다면, 그들과 어울렸다면 느꼈을 역한 울렁거림, 억지로 짓고 있어야 했던 미소에 들어갔을 에너지,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해서 낭비되었을 시간 등을 들 수 있다.
다른 박사생들과 거리가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연구실이었다.
나는 석사 때도 그러했지만, 박사 과정 때도 대학원 연구실에 자주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를 하기로 결심해서 들어온 대학원이기에, 최대한 대학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원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 연구실도 그중 하나였다. 더우나 추우나, 냉난방이 갖춰져 있고 책걸상이 있는 낡은 사무실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래서 연구실에 자주 나가곤 했다. 상담 전공의 경우에는 연구실 출석을 의무화하지 않기 때문에 100% 자기 선택이다. 그래서 연구실은 텅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소소한 기억:
처음 사용했던 연구실은 사회과학 건물 3층이었다. 3층의 한 구석에 위치한 심리학과 연구실은 상담심리학을 포함해서, 임상심리학, 인지심리학, 사회심리학 등의 타 전공의 연구실이 모여 있었다. 특히 상담심리학은 임상심리학과 엮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연구실도 그중 하나였다.
첫 학기 시작에 앞서 연구실 자리를 선택하는 때였다. 건네받은 연구실 자리 배치표에는 존재는 하지만 선택은 할 수 없는 연구실이 2개가 있었다. 그 방에 대해 연구실 배치를 맡은 석사 학생에게 물어보니 "박사 선생님들만 들어가 계신 연구실인데, 계속 만석이여서요. 근데 실제로 그 자리에 어떻게 들어가시는지는 저도 잘 몰라서 설명을 드리기 어려워요"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독특한 체계구나 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두 개의 연구실은 앞서 언급한, 대학원을 떠나지 못하고 수료 상태로 남아있는 심리학 박사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는 연구실이었고, 실제로 그 방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름아름 기존 박사 학생들에게 잘 보여야(?) 입장권을 획득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입학한 순서대로(즉, 대학원에서 소위 높은 계급에 해당하는 박사 학생들 순서대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나 같은 막 입학한 학생은 넘볼 수도 없는 그런 신비로운 연구실이었던 것이었다.
이게 무슨...?
썩어 문드러진 위계의 악취를 맡게 되는 순간이었다.
풉-
아니, 학교에서 할 게 없어서 여기서 같잖은 위계를 부리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가정도 있고, 사회생활도 해보고, 나이도 지긋한 박사 학생들의 유치한 행태를 보면서 실소가 나왔다.
내가 첫 학기부터 5층 연구실로 옮겨가기 전까지 1년을 거의 매일 연구실에 나갔지만, 그 박사 전용 연구실에 드나든 학생을 본 경우는 한 손에 꼽았다. 실제로 연구실에 나오거나 머무는 박사 학생들의 수는 희박하다. 나오더라도 수업과 수업 사이에 잠시 휴게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프린터를 이용하기 위해 인쇄소처럼 사용하곤 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박사들만의 연구실을 제외해도, 수료하거나 재학 중인 박사 학생의 수는 많았기 때문에 석사 학생들과 연구실을 같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경우에도 박사생들은 자리만 맡아두고 사용하지 않았다.
또 하나,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여기 대학원만의 문화는 "박사 선생님들 먼저. 박사 선생님들 대신. 박사 선생님들 위해"였다. (이후 들었지만, 임상심리학과 인지심리학은 더 더 더 위계적이고 반항하거나 따르지 않으면 집단 괴롭힘까지 당한다고 했다.)
핵심만 설명하자면, 석사 학생들이 박사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는 규칙이다. 자세히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다.
매 학기 연구실 자리를 선택할 때도 박사 학생들 먼저 자리를 선택하고, 남은 연구실 자리를 석사학생들이 (석사 안에서도 고 학기 순으로) 나눠 갖는다. 연구실 비품을 신청해야 하거나, 연구실 물품이 고장 나거나 하면 박사 연구실의 비품임에도 석사들이 도맡아 이를 신청하고 친히 연구실 문 앞까지 배달해 준다. 발표를 하거나 무언 가를 정리해야 하는 것은, 박사 학생도 손발과 눈과 귀가 멀쩡함에도 석사 학생이 대신 정리해서 박사 학생에게 친히 전달한다. 가장 최악은, 박사 학생들은 석사 학생에게 반말을 하고, 석사 학생들은 깍듯하게 존대를 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러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앞서 언급한 학부-석사 동 대학원 출신 삼총사 S, Y, H가 그 정점에 있었다. "응, 그래 00아, 이건 네가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렇게 해봐"
위에 언급한 것 말고도, 고도하고 은밀하게, 여기에 하나씩 다 적기도 뭐 할 수준으로, 창피할 수준으로 박사 학생들은 석사 학생들의 노고를 이용하고 당연하게 여겼다. 그게 오랜 세월 대학원 안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이 모든 위계의 정점에 있는 교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그러려니 넘어가곤 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분개하는 일이 가장 가까이에서 매일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박사 학생들이 즐비한 연구실이 아닌 그들과 떨어져 있는 자리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연구실에 있는 동안엔 그들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들과 지내는 것이 규칙이라면, 지키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그들이 유지해 온 위계라면 따르지 않으면 됐다. 그렇게 매일 연구실에 나가면서, 만나게 된 인연이 바로 석사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조심스러웠다. 그들에겐 나 역시 다른 박사생들과 다를 것 없이 보일 테니 말이다. 즉, 나 역시 그들에겐 같이 있는 것으로도 불편함을 주는 존재일 것이고, 그저 관심도 부담이 될 터였다. 나는 나도 중요했지만, 위계 속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에 있는 석사 학생들에게 괴로움을 더 얹고 싶진 않았다.
그저 부자연스럽게 애쓰지 않았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친해진다면 친해지는 것이지, 일부러 부담을 주고 무리하게 엮고 싶진 않았다. 그냥 언제나 나대로 편하게 대해주면 맞는 사람은 가깝게 남을 테니까.
*소소한 기억:
나의 성격은 꽤 외향적이면서도 수줍은 편이다. 감정이 잘 드러나기도 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처음에는 잘 다가가는 편이긴 하다. 이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도 그랬는데, 신 입학하는 학생들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가가서 짐도 들어주고, 길도 설명해 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다.
대학원에서도 같았다. 1학기가 시작하면서, 연구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석사 학생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그들이 뭔가를 먹으러 갈 때 부담이 안된다면 같이 가도 되겠냐며 자주 다가갔다. 언제나 메시지 끝에는 "혹시 안된다면 괜찮아요!"라는 염려와 조심스러운 표현을 덧붙였다. 그냥 그들을 마주치는 게 그 당시에는 즐거웠다. 연구실 문을 열었을 때 누군가 있는 것이 좋았고, 누군가 있으면 그날은 더욱 오래 연구실에서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뭔가 필요로 하는 느낌이 들면, 챙겨주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에 챙겨주곤 했다. 내가 석사 과정 때 도움이 되었던 정보나 팁이 있으면 먼저 물어보고 알려주었다. 어느 날은 저녁 시간이었던 거 같다.
바로 옆 연구실에 인기척이 들렸다. 그 인기척에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석사 학생 두 명이 약간은 놀라고 어색한 모습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냥 반가웠다. 그래서 먼저 내 소개를 하고 인사를 건넸다. "저는 새로 입학한 박사 과정 Y에요. 반가워요! 저는 옆 연구실에 있어요."
그 이후에도 그들을 만났을 때 차를 한잔 건넨다던가, 내가 있는 연구실에 다른 석사 학생을 만나기 위해 온 방문객들을 반기면서, "혹시 누구 찾으러 오셨어요? 아~ 그 선생님 잠깐 자리 비웠는데 곧 올 거예요. 여기서 기다리셔도 돼요. 음.. 괜찮다면, 차 한잔 드릴까요? 저한테 맛있는 차나 커피가 있어요!" 잠깐의 인사는 나에게도 즐거운 순간이었다.
지금도 이때를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이때 그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적어도 석사 학생들은 내가 박사 학생들에게서 느낀 불편함과 불쾌함이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 당시에 첫 학기에 연구실을 같이 사용했던 석사 학생들은 2학기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이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더 배우고, 영감을 느꼈다. 그들의 태도는 나에게 귀감이 되기도 했다. J는 그중에서도 특히 나와 같이 연구실에 자주 나오던 석사 학생이었는데, 성실하게 자신이 할 것들을 집중하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여전히 선하다. 그들을 첫 학기에 만난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그 덕분에 에너지는 긍정적으로 감돌고 연구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후에 그들 중 몇 명은 "선생님, 말 편하게 하세요! 저는 괜찮아요"라고 먼저 말하기도 했는데, "저만 말을 편하게 하는 건 별론데, 그럴 거면 우리 같이 말 편하게 해요! 그런 게 아니라면 나도 계속 존대할래요"라고 답했다.
나는 여전히 존대에 대해서, 똑같은 관계(학생 대 학생)이라면 같이 말을 편하게 하던가 같이 높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에게 교육자도 아니고, 선배도 아닌데, 왜 그들만 나를 높여야 하는가? 그건 공평하지 않다. 그 이후로 나는 가까워진 석사 학생들과 상호 동의하에 말을 편히 하게 되었고, 가까워진 친구들은 선생님이라는 수식어 보다 나에게 별칭을 불러주곤 했다. 나는 참 그 별칭이 마음에 들었다.
석사 학생들과 하나둘씩 가까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고충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의무감이 아니라, 그저 조금은 도움이 되고 싶고 그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하면서, 나의 주변엔 박사 학생들보다, 오히려 석사 학생들이 더 남게 되었다.
나에겐 석사든 박사든 그 타이틀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우린 그저 이 대학원에 공부하고자 온 사람들일 뿐. 그렇다면, 각자가 목표하는 바를 각자 방식대로 서로 지지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내가 기대하고 바란 대학원 분위기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하고자 하는 공부를, 열심히 꾸준히 하는" 분위기. 그때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들과의 그 시간이 나에겐 어떤 무엇보다도 따뜻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이후, 석사 학생들이 겪는 부당함과 대학원 안에서 자행되는 비윤리적인 행태를 더 많이, 더 자세히 듣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박사 학생들의 이중적인 행태(석사 앞에선 체면을 세우고 교수 앞에서는 빌빌 기는 등), 교수의 무관심과 그의 편애, 그리고 교육자로서 공평하지 않은 처사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에게 필요한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절대 후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알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얼마나 어떻게 기울어져 있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회가, 다수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각자의 양심과 정의를 덮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틀린 건 틀리다고, 거기에 동조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진 않아야 한다.
부당함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고, 각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자기중심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건, 불편한 상황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잘 못된 것이 있다면 바로 잡는 것이고, 소리를 내지 못할지라도 불의에 굴복하지 않으며, 나의 가치와 정의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