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교육 없는 교육기관, 학습 없는 학습자들로 둘러싸인, 암흑 속에서.
실망은 기대의 흔적이며
노력만큼, 절망도 깊어졌다.
실망이 점점 퍼져나가고, 좌절이 점점 쌓여갈 무렵이었다. 입학 후 1년을 거의 채워갈 무렵이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이렇게 회상을 하면서, 내가 박사과정 내내 얼마나 아쉬워하고 환멸이 차올랐는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스스로 다잡으며 충족감을 느끼던 순간도 더러 있었다. 메마른 사막에서 가랑비를 맞는 기분이 그럴까.
"조금이라도 좋으니, 작은 것이어도 좋으니, 제발..."
연구를 하기 위해 들어온 박사과정이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심리상담은 여전히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연구자의 정체성을 세워가는 과정이어도, 동시에 '나는 상담자'라는 정체성은 굳건했다. 그렇기에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일주일에 2~3일은 심리상담에서 내담자들을 만났다.
연구자와 상담자 양쪽을 오가며 균형을 유지하는 건 참 쉽지 않다. 때론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연구자일 땐 객관적이고 증거기반으로 사고하고 이해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면, 상담자일 땐 내담자의 경험을, 정서를 깊게 살피고 작업하는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역량이 필요하다. 그 균형을 계속 살피고 유연하게 오가는 것이 생각보단 참 쉽지 않다.
특히 연구는 논문식 글쓰기가 중요하고, 상담자로선 사례구조화에 필요한 통찰력을 요한다. 특히 나는 체험 및 과정중심의 Emotion 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하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 균형을 잘 잡고 적응해 간다면, 오히려 엄청난 강점이 된다. 상담에서 경험한 것을 연구로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측면은 물론, 연구 자체도 그 깊이가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도 그 같은 학자이자 치료자들의 논문과 저서는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고, 명성을 위한 책팔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제를 자유롭게 오가며 연결 짓는 그 경험은 때론 정말 황홀한 영감을 안겨준다.
나는 그들을 선망하며, 그들에게 빛나는 영감을 받는다. 진정으로 심리치료에 노력을 다하고, 대중과 내담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그들이 존경스럽다. 나 역시 그 과정에 기꺼이 함께 하고 싶다.
*소소한 기억:
교수 H는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어떤 연구인지, 무엇을 위한 연구인지 몰랐던 초기에는 그저 멋져 보였다. 그만의 연구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때론 그의 작업 과정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며,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메모장에 관찰한 그의 연구를 진행할 때 소소한 팁을 적어두곤 책상 한편에 붙여두곤 되새기곤 했다.
그는 관심을 가지고 자세하게 무엇을 가르치는 교육자는 아니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 작업을 할 때, 필요한 역량을 가르쳐주는 학습의 장은 없었다. 뭐라도 얻어가려면, 온전히 내가 노력하고, 묻거나 혼자 찾아봐야 했다. 모든 건 그저 학생의 몫이었다.
그는 항상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요"라고 무관심하게 말했다. 관심도 생기도 담기지 않은 그 말이 처음에는 부드럽고 다정하게만 들렸다. 질문에 열려있는, 그리고 물어보면 자세하게 정말 필요한 것을 알려줄 거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학기가 지나가고 해가 지나갈수록 그 말은 나에게 오히려 족쇄가 되었다.
질문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가이드, 맥락, 멘토링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런 가르침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피드백이 전혀 없는 와중에 학습자에게 물어보라고만 하니,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 무엇을 어떻게 물어봐야 하는지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H에겐 학습자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학습자의 교육엔 너무도 무심했다.
그 당시만 해도 지도교수에게 잘 보이고 싶고, 잘하는 것을 어필하고 싶은 박사 학생이었기에,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때마다 나는 머리를 쥐어 짤 수밖에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모르는데, 다 알려주세요"라는 말은 차마 교수에게 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전부 모르는 경우보단 어떤 특정 지점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맞다. 박사 정도면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건데 라는 자기 검열과 해볼 수 있는 노력은 최대한 해보고도 잘 안 풀리면 물어보자는 노력 중심적 태도가 나를 가로막았다.
당연히 여기엔 교수 H의 기여도 컸다. 연구에 필요한 과정 내내, H는 항상 시큰둥하게 "아,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어렵지 않을 거예요." 말했다. 별거 아니니까 잘할 수 있지?라고 말하는 교수의 피드백은, 주도적인 나에겐 "저렇게 별거 아닌 쉬운 거라고 하는데 당연히 혼자서도 해내야 하겠지, 교수가 박사 학생에게 두는 기준이 저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 강화되었다.
제일 최악은 교수가 요구한 과업을 해갔을 때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관심하게 "네 수고했어요"라고만 덧붙였다.
그는 언제나 아무런 피드백이 없었다. 분명 별로거나 아쉬운 점이 있으면 말할 법도 한데, 혹은 잘했던 부분이 있다면 언급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예, 혹시 어려운 건 없었어요?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 한 거예요? 이 부분은 이게 좀 부족하니 보완하는 게 좋겠네요 등), H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학생들의 결과물을 가져다가, 결국 자신이 모두 처음부터 뜯어고친 '완전 달라진' 결과물로 최종 마무리를 지었다.
학생들은 멀뚱히 기다렸고(실제로 석사 및 박사 과정, 어느 누구도 교수에게 자신의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묻지 않았다. 묻지 못한 게 맞을 수도), 교수는 그저 본인 할 것만 알아서 했고, 그렇게 항상 연구든 논문이든 마무리 됐다.
의존적이고 학구적 성장에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대학원생들에게 H의 방식은, 나무라지 않고 힘든 거 다 대신해주는 사람이니 얼마나 좋겠냐만, 나에겐 아니었다. 성장에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고, 부담감만 쥐어주는 격이니 더욱 최악이었다.
그는 항상 뭐에 쫓기듯 빨리빨리, 어서 빨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효율을 무엇보다 중시했다. 대화를 할 때도 항상 뭔가에 쫓기듯 바빠 보였고, 면담이나 일정을 잡을 때도 앞뒤 일정에 잠시 생긴 10-20분 정도를 활용했다. 대화도 항상 명확히, 구체적으로, 매우 인지적인 소통 방식이었다.
H는 마치 자신만의 일, 연구, 논문에 둘러싸여 그 밖과는 벽을 쌓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휴식 없이 매일, 논문, 논문, 논문... 끝없는 업무에 빠져 사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내가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소소한 기억:
H가 제안한 3개의 연구 중 첫 번째 연구를 위한 멤버들이 모이는 자리었다. 그 자리엔 석사생 J, 박사생 D, 그리고 아직 입학 전인 석사 예정생 G, 그리고 나와 교수 H. 이렇게 다섯이 모였다. (그때 만해도 아직 D의 실체를 경험하기 전이라 정이 털리기 전이었고) G는 걱정이 특히 많았는데,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얘기하는 자리에서도 상당히 불안해했다. 그리고 나는 수업에서 실망을 해가던 차, 첫 연구 미팅이었기에 나의 학습 동기는 상당히 높았다.
G를 보며, 입학 전에 학생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H가 제안했다는 것이 좋게 여겨졌다. 그래서 H에게는 물론 G에게도 긍정적인 감정이 컸다. 학생에게 연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교육자와 그 기회를 흔쾌히 적극 받아들여 노력하는 학습자라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렇게 첫 연구가 시작되었고, 틈틈이 연구의 방향을 잡고, 연구 설계에 따라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이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박사생인 나와 D가 석사생인 J와 G보다 좀 더 비중이 있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도가 있는 과업이 반가웠다. 내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때도 나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학습을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H는 "이 연구의 서론은 D 선생님이 맡고, 논의는 Y 선생님이 맡는 게 어때요?"라고 할 때도, 기꺼이 긍정하며 받아들였다. 실제로 연구의 서론은 논의에 비하면 상당히 쉬운 파트다. 서론은 배경과 필요성을 유기적으로 펼쳐내면 되지만, 논의는 결과와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을 선행연구를 뒷받침해서 풀어내야 하는 마무리 부분이다. 거기다가 H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영문 초록도 Y 선생님이 진행해 주세요. 어렵지 않을 거예요"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 당시 석박을 통틀어서, 영작에 부담이 없고 영문 초록을 몇 시간 만에 완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해외 출신인 H는 영어에 대해서는 되게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때만 해도 어려운 과업이 반가웠고, 그걸 나에게 맡겨주는 H를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에 비해 D는 항상 뒤로 물러나 있었는데, H가 제안하는 과업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교수의 지시는 거절하는 법이 없던 D는 "제가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님과 여러분들이 도와주실 테니 해볼게요. 하하" 라며 사족을 붙이곤 했다. 그때 만해도 나는 D가 그저 사회성 좋은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데 저렇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몇 주가 흐르고, 모두가 각자 해와야 할 부분에 한창 열중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박사생 D는 연구팀 단톡방에 "저기, 혹시 괜찮다면 다 같이 모여서 서론의 방향을 잡는 시간을 가져도 될까요?"라며 SOS 메시지를 올렸다. 그때 상당히 의아해하며 "왜 저러지?"라고 떠올렸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D가 맡았던 부분은 연구의 서론은 이미 여러 미팅을 통해서 방향성을 충분히 잡은 상태였다. 그 방향과 목적, 필요성이 명료했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고, 여러 차례 가졌던 연구미팅에서 주요 사항은 공유가 충분히 되었기에 서론에 필요한 가닥을 잡는 게 정말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D는 서론 뼈대를 잡는 게 너무도 어렵다고, H에게 칭얼대듯 "교수님 너무 어려워서 그런데, 도와주세요ㅠㅠ 만나서 직접 알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뭔가 혼자 하는 것에서 뭔가 막혀서 그런가 보다 의아하지만 그저 넘겼다. 하지만, 직접 만났을 때 D가 고민했다고 한, 어렵다고 한 부분은 너무도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스스로 노력한 흔적이 없는 D의 행태가 기가 찼다. 성의도 염치도 없다고 느꼈다.
연구 배경, 관련 주제와 대상에 관한 선행연구를 조금만 찾아보면 나올 수 있는 내용을 "서론 자체가 다, 그냥 다 모르겠고, 어려워요ㅠㅠ"라는 식으로 해보지도 않고, 남들에게 의존하는, 교수에게 칭얼대는 그의 모습이 끔찍했다. 실제로 석사에서 H에게 논문 글쓰기 특훈을 받았다고 자랑하던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아스러웠다. 그를 보며 "스스로 창피하지도 않나?"라는 생각을 하며 대리 수치심까지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그다음 상황이었다.
교수 H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언제나처럼 무관심한 표정과 목소리로, "첫 문단은....으로 작성하고, 그다음은.... 내용이 나오면 되고, 그다음은...."이렇게 너무도 모든 서론의 내용을 하나부터 열까지 본인이 문단 단위로 말해주며, 서론을 대신 써주고 있었다. 논문에서 서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수준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가장 기괴한 모습이었다. 교수에게 기생하는 D의 모습과 학습자가 뭘 모르는 건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전혀 관심 없고 그냥 본인이 모두 해버리는 H를, 너무도 충격적인 나머지, 나는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APA, 2017, Standards on Supervision & Teaching)
교육자(교수, 슈퍼바이저)의 책임과 의무:
교육자는 단순히 문단·형식을 교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자의 연구 역량·사고력·자율성을 성장시키는 멘토이자 감독자여야 한다.
다시 말해, 교육자는 학습자의 경험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닌, 학습자가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육은 대신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만의 역량이 될 수 있도록 그가 연습하고 터득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교육은 쉽지 않은 것이며 가치로운 과정이다. 대신해 주는 건 쉽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냥 해줘 버리면 골치 아프지 않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을 저버린 교수들이 너무도 많다. 한국엔 그러한 교육자가 너무도 많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학교로부터 무엇을 요구받고 수행하든, 일정이 바쁘고 체력 및 건강관리를 하지 못했든, 그건 그들의 몫이다. 그들은 교수라고 불리며 대학(원)이란 교육기관에 '자진하여' 지원해서 들어왔다. 그렇다면 기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건 어느 조직/기관에서도 동일하다. 그걸 교수들이 몰라서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택한 것이다. 교육자로서의 의무를 경시하겠다는 선택
연구만 하고 싶었다면, 연구원이 되어야 하고, 워크숍으로 돈을 벌고 싶었으면 사설센터 대표를 했어야 한다. 대학(원)이라는 교육기관에 들어와서 교육자인 교수를 하겠다고 했으면, 그에 따른 마땅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지키는 교수들은 너무도 극 소수다.
대부분은 이 핑계 저 핑계, 자기 합리화, 체면 세우고 유지하기, 돈과 명예를 최우선하기 등 교육자의 타이틀만 붙들고는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학생들의 학습과 성장은 가장 경시한다. 아마 교수로서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느꼈을 것이며, 가장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성취 과정일 테니 경시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학교를 위한다, 학생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하는 행태를 보면 그게 말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석사와 박사 과정을 분리해 둘 거면 그에 따른 응당한 변별력이 있는 교육과정과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일반대학원과 교육대학원, 특수대학원을 구분해서 운영할 것이라면 타당한 교육 목표가 실제로 이를 변별해야 할 것이다. 말만 연구 중심, 연구자를 양성하고, 실무자를 조력한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행동으로 이를 실천하길 바란다. 말은 누구나, 아무나 쉽게 뱉을 수 있다.
그냥 과정만 여러 개로 갈라치기해서 돈만 걷어들이는 그 잇속을 몰라서, 학생들이 아무 불만 없이 입학하고, 별생각 없이 큰돈을 들인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교수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라서 침묵한다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은 대중은 그렇게 무지하지 않다. 그저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 현실에 체념하면서도 묵묵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날 이후, 우리 모두는 다시 각자의 작업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맡은 범위가 상당했고, 그 내용도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상당히 혼자서 여러 시도를 했다. D를 보면서도 "저 사람처럼 염치없이 공부하진 말자"라는 마음이 컸다.
해당 연구는 논리나 작업 자체가 엄청 복잡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행연구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국내 연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국제 연구를 많이 살펴보게 되었다. 아무리 연구가 어려워도, 논리를 세우고 연구설계를 이해한 상태에서는 참고문헌을 계속해서 살펴보며, 그들의 연구와 본 연구의 차이를 고심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 보내면 그렇게 못할 수준의 어려움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했듯, 나는 연구를 1도 모르고 못하는 상태가 아닌, 심화 수준의 학습과 연습이 필요했었기에, 그 부분을 상급 연구자인 교수에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예를 들어 같은 참고문헌을 읽더라도, 아는 만큼 보이고, 이전에 해본 만큼 그다음에 해볼 응용 수준과 범위가 달라진다.
나는 그저 논문 글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필요했던 건, 알고 있는 것에서 조금 더 창의적이거나 좀 더 구체적인 설계를 계획해서 실행해 보거나, 머리로만 설계했던 연구를 실제로 진행하면서 마주하는 현실적인 요인과 어려움을 고심하는 것이었다.
해봤던 운동으로 예를 들어보면, 완전 기초적인 과정인 운동복 착용, 호흡법, 기본 스트레칭, 기본자세의 순서는 알고 있었다. 좀 더 나아가 어떤 자세나 운동법이 어느 근육에 도움이 되고, 식단에 따른 몸의 변화 메커니즘은 다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건, 특히 내 몸에 특화된 요인(관절 취약점이나 근육 모양 등)을 고려한 상위 운동법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기구 사용법이 아닌, 어떤 운동법을 어느 정도 빈도와 강도로, 얼마나 오래 지속해야지, 내가 바라는 건강이나 몸매에 도달해서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역량 강화가 내가 필요로 하는 경험이었다.
내가 박사과정에서 바라는 연구 역량 강화는 이 예시와 정확히 부합한다. 논문 글쓰기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연구 설계에서 어떤 지점이 고려되어야 하는지, 실제로 연구를 하면서 마주할 수 있는 기본적 사항은 이미 알고 있고 경험했다. 내가 하고 싶은 연구는 심리치료에 직접 연결되는 실제적이고도, 근거를 기반해서 밝히는 실증연구였기에 그러한 연구를 설계하고 실현하는데 필요한 연습이고 학습이었다. 내가 교수라는 상위 연구자이자 임상가(supervisor)에게 바라는 건 그 수준의 교육이었다.
그래서 박사 학생 D의 질문은 나에게 유치하고 성의 없게 보일 수밖에. D가 물어보는 수준은 대학원에 들어오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다. 내가 바라는 건, 질적연구에선 특히 어떤 지점이 결과나 논의에 드러나야 할지, 국내와 국제 학술지(SCI, SSCI급)에서 요구하는 연구의 수준에 비췄을 때 어떤 점이 보완하면 좋을지, 수많은 연구 방법 중에 연구하고자 하는 대상과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최신의 타당한 연구방법은 무엇이고 결과 제시나 결론 해석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핵심으로 잡으면 좋을지 등이었다.
내가 필요한 교육은, 이처럼 한 번만 고민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박사 수료 전까지, 약 2년(4학기) 동안에는 조급해하지 말고, 연구 실적에 눈이 멀지 않고, 졸업장에만 목매달지 말고, 역량을 튼튼하게 쌓아가자는 마음을 먹었던 거였다.
하지만 내가 놓인 이곳은 너무도 처참했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에, 나의 가치를 내던져 버릴 순 없었다.
상담센터 운영, 심리상담 진행, 일반대학원 주간 수업, 연구 진행 및 논문 작성, 그리고 혼자서의 분투의 시간. 교육자가 없는 학습을 병행해야 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계획을 세워서 나름의 자기주도학습을 계속해서 진행했다. 영어논문을 하루에 몇 건씩 읽는 건 기본이고, 참고문헌 양식을 고려한 논문 글쓰기 연습도 혼자서 매진했다. 교수가 알려주는 게 없으니, 교수가 혼자 완성해 낸 작업본과 내가 작업한 본을 양 옆에 펼쳐놓고 형광펜으로 한 줄씩 표시해 가며, 나의 문장이 어떻게 교정되었는지 찾아냈다. 내가 작성한 내용에서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찾아내고 연습했다. 연구실 책상이나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항상 쪽지로 "교수의 문체나 내용에서 배운 점"을 메모해 두고 논문을 읽고 쓸 때 참고하며 작성했다. 같은 연구 결과여도 어떻게 써야 더욱 의미 있고 탄탄한 논문이 되는지를 되새기며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익혀갔다. 나만의 빛을 조금씩 빚어갔다.
누가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았고,
그 누구도 이 과정을 대신해주지 않기에,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첫 학기부터 5년 후 마지막 학기까지,
나의 학습을, 나의 성장을 위한 걸음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