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버티며, 나의 빛을 이어나가다.

09_자기주도 학습만이 유일했던 그 시간.

by 로지

치열하게 버티며, 나의 빛을 이어나가다.

09_자기주도 학습만이 유일했던 그 시간.





연구에 관심이 없는, 박사 학생이 있다는 게 놀랍더라고요

교수가 될 학생을 양성하고자 해요



이 말을 지도교수 H에게 들었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교수에게 본격적인 실망을 하기 전, 나는 그에게 종종 찾아가서 면담도 하고, 커피 챗(chat)을 가졌다. 말했듯, 친밀한 표현을 잘 못하고 냉소적인 편인 그였으나 학생이 면담을 요청하면 잘 받아주었다.


그날도 나는 H에게 근황이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연구에 대한 얘기도 곁들였던 거 같다. 박사 학생이락 지도교수와 항상 연구나 수업 얘길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고, 나 역시 소소한 대화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전체 모임이나 세미나 시간을 통해, 대학원에 들어오는 상담심리학 박사 학생들이(석사는 말하나 마나지만) 연구에 관심이 없다는 건 나는 이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연구에 관심이 없는, 박사 학생이 있다는 게 놀랍더라고요."라는 H의 말은 교수가 하는 말이어서 더욱 크게 들렸다. 그의 어딘가 씁쓸하고 냉소적인 말투가 겹쳐지며 말은 더욱 선명했다. 그 안에 담긴 그의 심정이 너무도 이해가 됐다.


'교수도 박사 학생들이 연구에 관심이 없고,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구나. 잘 알고 있구나.' 그때 느낀 첫 감정은 '안타까움과 씁쓸함'이었다. 나도 박사 학생들을 보면서, 저렇게 연구에 관심도 동기도 없는 사람들이 왜 대학원에 온 걸까 하는 답답함과 짜증을 크게 느끼는데, 매년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학생들을 대하는 교수는 얼마나 더 어이없고 허무할까.


그리고 H는 자신의 관심사나 생각에 대해서도 종종 지나가듯 말했다. 워낙 자신의 이야길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끔 그렇게 지나가듯 말하는 무게감 있는 이야기는 나에게 묵직한 흔적을 남기곤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의 동료나 배우자도 아니기에, 그의 학생으로서 그 얘길 듣고만 있었다.


동시에, '저는 그런 학생이 아니에요. 저는 정말 연구를 하고 싶은 상담자라고요!'라고 고요하게 외치곤 했다.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연구에 진심인지를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졌다.






"저는 교수를 양성하고 싶어요. 그런 학생을 양성하고자 해요"라고도 H는 말할 때가 있었다.


그 타이밍이나 맥락은 너무 뜬금없어서 '왜 이 말을, 지금 나에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인가? 아니면 나에게 그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목표를 말하는 건가, 여러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하지만, 교수의 의중보다 그 말은, 내가 무척 기대했던 교육자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엔 말이다. 앞서 교수가 말했던 박사 학생들이 연구에 동기를 가지지 않아서 아쉽고 놀랍다는 말이 떠올랐고, 그가 보기에도 학생들이 그런 동기와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 연장선으로, 그런 학생들이 박사 과정에 들어와서 성장하고, 교육과 연구(실무)를 병행하는 전문가인 교수를 양성하고 싶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반짝이는 의지인가. 나는 그때 그것이 그의 의지라고 믿게 되었다.






지금 그 대화를 천천히 돌아보면, 나는 지도 교수의 그 말을 들으며 나 좋은 대로 이해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만의 기대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유일한 직속 교육자인 지도교수의 말과 행동은, 박사 학생인 나를 그렇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에게 그는, 배우고 싶은 부분을 가진 교육자였다.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은 그가 쌓아온 연구 실적이나 평판이 아니었다. 그의 논문을 읽으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던 문장과 문단, 학술적 논리를 빚어내는 역량, 학술적 통찰력, 특정 상담이론을 해외에서 오래 공부해 왔다는 꾸준함, 사회 소수자나 약자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모습 등 나는 그런 H의 부분을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었고, 연구자로서 치료자로서 의미 있는 영감을 받고 싶었다. 그게 내가 그에게 학습자로서 기대했던 점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가 그런 점을 가지고 있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건 그의 부분일 뿐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나의 실제 경험은 그 기대를 무참히 깨트려 버렸다. 그게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증명했다. 지금까지도 이토록 선명한, 교수라는 교육자에서 비롯된 깊은 실망과 회의감은 그동안의 수많은 좌절의 흔적이다.


H가 그 순간 담았던 진심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겠지만, 혹시 정말 혹시라도 내가 그때 생각하고 느낀 것이 착각이 아니라 그때만큼은 그가 자신의 교육 철학에 대해 말만큼 진심이었다면, 혹은 내가 착각한 게 아니었다면, 나의 박사 과정의 경험은, 그와 나의 학구적 교류는 달랐을까?



학습자로서,

지금 느끼는 이 허무함, 씁쓸함, 부당함은 달랐을까?






*소소한 기억:

교수가 다 떠먹여 준 내용을 가지고 돌아간 박사생 D는, 모두가 각자의 것을 해서 만나기로 한 날에 모두에게 충격과 실망을 다시 한번 안겨주었다. 그 자리에서 놀라지 않았던 건 H 뿐이었다. H는 학생들의 배움과 학습에 관심이 없었다. 알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나와 석사 학생(예정생까지) 둘은 D가 작성해 온 서론을 열어보며 경악했다. 논문이라곤 도저히 볼 수 없는 수준의 글이었다. 달랑 몇 페이지에 담겨있는 건 제대로 된 인용도 없는, 문장 하나하나가 문체도 논문체가 아니고, 성의도 없이 문단이 죄다 끊겨있는 기본도 안된 글이었다. 박사 과정생이 작성했다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최악의 퀄리티였다. D도 팀원들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아니면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제가 DB 접근이 안 돼서요. 허허허허!"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들어가며 본인의 수치심과 죄책감을 덮으려 했다.

그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건, 인용할 참고문헌이 부족하다고 한들, 문장 퀄리티와 문단 간 연결이 이렇게나 뚝뚝 끊긴 건 설명이 안 됐다. 심지어, 본인이 징징거려서 모두가 시간과 노력을 써서 모인 미팅에서 이미 교수가 다 떠먹여 주고, 문단마다 핵심 아이디어를 다 알려줬다. 교수가 알려준 대로만 받아 적어서 글을 쓰기만 했어도 중간 이상은 갔어야 했다. 근데도 D의 서론 글은 논리나 글의 완성도가 너무도 떨어졌다. 읽는 사람이 "이게 뭔 말이야? 뭘 주장하는 연구지?"라고 느낄 만큼이었다. 성의가 없었다. 최소한의 노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비롯해 석사생 J와 G, 각자가 맡은 부분이 쉬웠겠는가? 각자가 맡은 부분이 가볍기만 했을까? 얼른 넘기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을까?


D를 제외한 모두가, 그룹 작업에서 최소한 맡은 바를 충실히 하고자 하는 책임감, 이 과정이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고 노력하는 기본 태도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J와 G는 연구나 논문은 아예 처음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룹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그 둘이 작업해 온 부분은 나에게 긴장감을 줄 정도로, 열심하고 싶어지는 동기를 주었다. 그 정도로 퀄리티가 충분했다.


박사 학생 D도 그래야 했다. 최소한 다른 논문도 열어보고 읽어가며 한 글자 한 글자 채워왔어야 했다. 하지만 D는 모두의 시간과 노력까지 이용하면서까지, 자신이 맡았던 부분에 대해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이는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팀원에게도 피해이고, 가장 크게는 박사 과정까지 들어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만이다. (실제로 지금도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당시 참여했던 동료와 회상하면서도 D의 글이 끔찍했다는 것만은 계속 회자될 정도였다.)


자신에게 기본도 하지 않는 D를 보며, 그때 나는 그가 느껴야만 했던 대리 수치심을 크게 느꼈다.






의존적인 학습자.

무관심한 교육자.

결과중심 교육자. 형식주의자.



교수 H는 그런 행태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조금도 짚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그저 우리 넷이 각자 맡아 완성해 온 글을 가져다가 1~2일 후, 교수는 완전히 다 뜯어고친, 다른 글로 작성해서 돌아왔고 그저 건네며 말했다.


"이 완성본대로 진행해 주세요. 나머지 작업(학술지 투고를 위한 그 외 행정작업) 알아서들 맡아주세요"



D는 그저 해맑고 즐겁게 "네!"하고 대답했지만, 나는 속이 거북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교수가 건넨 '통합본'은 우리가 작업한 내용과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랐다. 나는 결과만, 실적만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방식에 숨이 막혀왔다. 내가 작성한 부분 중 어떤 부분이 괜찮았고 별로였는지, 혹은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완성본이 도출된 건지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학생의 입장에선 무엇이 부족하고, 얼마나 미흡한지 모르고, 그저 교수라는 답안지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저 나의 답은 틀렸구나 잘못됐구나 하고 지나갈 수 밖에없다. 풀이는 없는 답안지와 빨간 줄만 가득한 시험지를 매번 마주하는 그런 끔찍하고 답답한 상황의 반복이었다. 심지어 심리학(심리치료) 연구와 논문은 절대 공식이 있는 학문이 아니다.


상위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한두 마디라도 해주는 것이 그리 어렵고 불가능한 영역인 건가? 학생들은 그 정도도 들을 가치도 없는 건가? 수많은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게 학습인가? 이게 교육인가?

교수를 양성한다면서, 도대체 어떤 교육자를, 어떻게 양성한다는 것인가?





소위 박사 과정은 배우러 들어오는 과정이 아니라, 교수와 협업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맞다. 난 매우 동의한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이, 그 체계가 과연 이를 가능케나 하나?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나마 한국보다 교육의 질이 높은 영미권이나, 그 정의가 적용될만하다. 질문 없고 의존적인 학습자와 교육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교육자로 가득한 한국의 경우엔 적용될 수 없다. 아직도 한국은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런데 입학하는 박사 학생들에게만 예외를 적용하는 건 말이 안 된다.



특히 한국의 심리학, 상담(임상) 심리학 전공에선 석사와 박사 과정을 통틀어서, 어떠한 학생도 연구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 충분할 수 없다. 충분할 수 없는 교육 체계이다. 연구에 대한 관심이나 동기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 입학하자마자 자기 주도적으로, 독립적으로 연구를 설계해서 실행할 수 있는 학생은 없다.



이런 한국의 궁핍한 현실을 아는 교육자라면 더욱 치열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한국 대학(원)에 재직하는 교원이기 때문이다. 하고 또 해도 모자란 판국에, 학습자가 더욱 홀로 서지 못하게 만들고 교수에게 더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행태는 학습에 치명적인 독이다. 그만되어야 한다.


** 대학원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 중 일부는 차마 여기 글에도 담지 못할 수준이다. 윤리적이지 않은 부당하고 때로는 끔찍한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모두 적을 수 없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이 답답하고 암담한 감정을 삼켜내는 건 언제나 약자의 몫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내 눈앞에서 버젓이 아무렇지 않게, 그게 마치 순리인 양 그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실망스럽고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르쳐주는 건 없으면서, 결과를 만들어와야 하는 뒤틀린 속박. 확실하게, 이건 교육이 아니었다.






*소소한 기억:

교수는 계속해서 여러 연구에서, 진행에 필요한 과업을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쉽게 넘겨주었다. 하나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었다. "이건 별로 어렵지 않을 거예요. R이 논의 한번 맡아서 써봐요", "영문초록은 R이 해보세요", "연구 프로젝트 관련 행정 서류인데, 어렵지 않을 거예요. 보면 알 거예요", "IRB 계획서 제출하는 건데, 샘플 몇 개 줄 테니 해봐요"

최소한 노력해보고자 하는 나의 적극성은 '어떠한 자세한 가르침이 없는' 척박한 환경에선 나의 목을 죄어왔다. 무엇을 모른다고 말해야 할지 몰랐고, 어느 정도가 박사 학생이 갖춰야 하는 역량인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주변(박사 및 석사 모두)엔 나보다 모르면 몰랐지, 연구에 관심이 없었고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박사생이 하라는 대로 따라가야겠다", "저 사람이 뭔가 리드해 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수동적으로 굴었다. 그런 과정에서 짧은 기간 안에 교수에겐 결과물을 해서 받쳐야 하는 길고도 긴 고행이 계속되었다.




H와 진행한 3개의 연구, 그리고 이후 국가지원금을 받는 연구 프로젝트 모두에서 이 방식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각자 맡은 부분을 할당했고("어떻게 쓰는지 알죠?", "이건 A 선생님이 맡고, 저건 B 선생님이 맡으면 되겠네요"), 각 학생이 맡은 부분을 해서 교수에게 제출하면, 아무 피드백 없이 교수는 항상 취합한 글을 가져가서 아예 다른 글로 재창조한 결과를 가져왔다.


H는 워낙 워커홀릭이었기에,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연구 업무와 글 작업을 병행하고 결과를 엄청난 속도로 뽑아내는 인물이었다. 즉, 엄청난 결과 중심에, 형식은 칼같이 지켜야 하는 인물이었다. (형식에 대해 얼마나 통제적인지는 이후 학위 논문 지도를 받으며 제대로 깨닫게 된다.)


여기에 정점은, 교수는 학생이 무엇을 어려워하고, 어떤 상태인지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에겐 아무 말 없으면 문제는 없는 거고, 아무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없는 거였다. 앞서 말했지만, 대학원에선 교수의 권한과 힘이 막강하기에 교수가 넘어가면 넘어가야 하는 거였다.



"모르는 거 있으면 질문하세요"

"그리 어렵진 않을 거예요"


위 표현이 H가 가장 자주, 많이 하는 말이었고, 어느 부분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학생들은 '뭐라도 했다'의 참여 경험만 가지고 연구에 투입되곤 했다. 나는 그 과정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 점점 숨이 막히다 못해 분노가 치밀었다.


분명 교수도 취합된 결과물을 보면, 학생들이 무엇을 어려워하고 무엇에서 미흡한지 분명 알았을 것이다. 모를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교육자로서 침묵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결과와 실적을 최우선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는 너무도 무책임하다.


무엇보다 이는 학생에게 학구적으로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생인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경험을 쌓았다고 할 수 있으려면 그 경험에서 뭐라도 배우고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자와 환경에선 어떠한 실질적인 역량은 함양될 수 없다. 연구 참여 이력이나 학술지 저자 이름 중 하나는 차지할 수 있겠지. 그게 전부다.



여기 사이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교수는 말했다. '자신이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에게 주고자 하는 건 연구비에서 학생들에게 많지 않지만 인건비'라고. 교수는 학생들이 주간 대학원을 다니면서, 금전적으로 어려워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한 달에 몇십만 원이라도 받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의도를 이해한다. 학생을 열정페이로 부리기만 하는 교수에 비하면 마음씨 따뜻한 교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학생을 위한다'는 자신만의 명목하에 학생(學生, A person who is receiving instruction in a course of study.)에게 기본이 되어야 하는 본질이 빠진다면, 그건 알맹이 빠진 배려, 곧 껍데기만 남은 선의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치를 떠는 것. 바로, 본질은 잃어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상태이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잊은 채 그저 보이는 것만 찬양하고 향유하는 것.



수십 수백 개의 연구실적을 갖고 있으나, 그 사람이 해온 실제로 연구의 내용이나 퀄리티가 자가 복제 수준이고,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은 너무도 뻔하고, 그 결과와 논의도 얕은 나머지 그 결과를 가지고 실질적으로 현장에 적용될 수 없다면?

직급이나 직함은 높으나, 모든 자격증은 다 갖추고 있으나, 그 사람이 실제 치료적 개입이나 임상 장면에서, 내담자의 변화와 상태에 관심도 없고, 치료자로서 실력이 형편없다면?

방송에서 이름을 날리고 수많은 강의에 나가고 있으나, 교수랍시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자행되는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행태에 대해 무지하여 피해가 생겨나고, 학생들은 실질적으로 배워가거나 함양되는 역량이 없다면?



그럼에도, 저자 이름에 들어가고, 실적이 생겨나고, 그걸로 된 건가?

자격증을 하나 더 추가하고, 학위 수여증을 챙기면, 그걸로 된 건가?

교수에게 빌붙어서 옳은 말 한마디 못하고, 대학 강의 한 자리 차지하면, 그걸로 된 건가?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마음에, 뭐라도 하나라도 배워가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쉽지 않았지만, 교수를 귀찮게 했다. 찾아가서 궁금했던 특정 부분을 물어보고, 교수의 완성본에 역 피드백(예, 이 부분은 이렇게 수정하라고 하셨지만, 이러한 이유에서 이렇게 작성해 보았습니다.)을 남겨보기도 했다.


동시에 혼자서는 교수의 완성본(논문)을 펼쳐놓고, 내가 작성했던 부분은 물론 다른 학생이 작성한 글도 펼쳐놓고 완성본에 들어가거나 들어가지 못한 부분을 단어나, 구문, 문장 단위로 표시해 가며 '이런 부분은 이 표현이 더 적절해서 수정된 건가?' 수없이 자문하고 궁금해하면서 치열하게 공부했다.


교수가 한두 마디 피드백만 남겨주었어도, 훨씬 수월하거나 더 많은 것을 묻고 배울 수 있는 과정을 혼자서 고군분투하려니 에너지가 2배, 3배 이상 소모되어 갔다. 거기다가 H의 글 스타일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형식적인 글(다채롭거나 표현적인 문체가 아닌)이었기에 논문에는 너무도 잘 어울렸지만, 내가 추구하고 필요로 하는 체험중심, 정서중심 연구와 논문(Emotion Focused Therapy 학자들의 문체)하고는 너무 달랐다. 그래서 그 차이를 고려하며 학습해 가는 것도 나에겐 또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 그럼에도 논문 글 작성 방식에 있어서는 H의 스타일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것도 H의 논문을 보며, 혼자 독학으로 알아차리고 정리하면서 공부해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