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한국 심리치료, 나의 심리치료에 필요한 연구는 무엇일까..
지금 이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이다. 박사를 졸업한 지금도 말이다.
실제 심리치료에서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가?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할 때, 그 모습은 어떠한가?
그 직전과 직후엔 어떤 느낌이 스쳐 지나갔는가?
...
정말 오랫동안 스스로 물었다.
수많은 질문에 내가 대답했던 말을 기억한다.
골똘히 고찰에 잠겨있던 순간이 생생하다.
박사과정 내내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때로는 내가 불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곁에 머무르곤 했다. 답하기 힘들 때도 있었고, 답할 때 영감이 가득했던 때도 있었다.
박사과정 중반을 지나가면서, 수료가 다가오면서 생각이 더욱 많아졌던 때를 기억한다. 그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다만, 답할 수 있는 것보다 질문이 많아질 때마다 조급함과 답답함이 같이 찾아왔다. 분명 내가 잘못하고 있거나, 게으르거나,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심리학, 그중에서도 상담심리학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한국으로 한정 지어 보면 너무도 단조롭다. 그중에서도 내가 기반으로 하는 이론인 EFT(정서중심치료)로 한정하면 더욱 소수의 연구만 남는다.
매번 DB에서 정서중심치료를 검색하면 수천 건에 이르는 연구들이, 한국으로 한정하면 그 수가 몇 건 안 될 정도로 떨어지는 검색결과를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뭔가 갈증이 더욱 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대가 들기도 했다. 없다는 건,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많다는 의미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나만의 빛을 키울 수 있는 기회도 함께 그렸다.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한 그 느낌. 탐구하고 밝혀내고 정리하고 적용해 볼 수많은 가능성을 함께 마음속에 그렸다. 그럴 땐 신기하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찾아보고 읽고 싶은 연구가 줄지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때도 많았다.
한국엔 수천 명의 심리치료 전문가, 즉 상담자가 있다. 저마다 각자 이론을 바탕으로 상담을 진행한다. 모두가 다른 내담자를 만나고, 하루에도 한국만 해도 수백 건은 족히 넘어가는 상담이 진행되고 있을 거라 장담한다.
상담자로서, 수많은 경험을 공유하고 그 순간에 내담자와 함께 존재한다. 많이들 상담을 결과로만, 즉 증상의 완화, 수치의 증감, 사람들의 후기 등으로만 논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 순간에 발생하는 경험은 너무도 깊고, 넓고 심오하기까지 하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 언어와 문화를 넘어, 시대와 세대를 넘어, 여기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게 가능했던 건 수많은 실제(practice)와 이를 연구함으로써 정립한 이론(theory)들 덕분이다. 실제는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연구는 실제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렀다.
누구나 알법한 심리학 이론이나 개념은 그렇게 탄생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상담심리학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 과정이 이어가는 것에는 실제와 이론(연구)이 너무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 끈을, 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심리상담을 실제로 진행하는 치료자로서, 계속해서 경험하는 공통점과 차별점을 탐구하고 남기고자 하는 연구자로서, 이 마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한국에서 정서중심치료 Emotion Focused Therapy는 너무도 척박하다. 실은 많은 상담이론이 한국의 연구에선 척박하다. 상담은 실용, 응용 학문임에도 한국에서 진행되는 연구의 대부분은 심리치료의 과정 전반을 다루지 못하고 있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관여되는 이 변화와 치유의 과정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을 충분히 곁에서 살피려면 실제 진행된 상담을 기반으로, 실제 진행하는 상담과정, 상담자, 내담자, 각자의 경험 등을 면밀하게 살펴봐야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상담 및 임상 연구는 숫자, 프로그램 개발, 척도, 자기 보고식, 문헌에만 머물러 있다. 그래서 여전히 탐구되지 못한 영역이 방대하다. 하지만 상담은 실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오고 가는 생생한 경험이다. 그래서 그에 맞는 설계, 방법, 대상, 분석, 그리고 해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열악하다.
선행된 연구가 워낙 없다 보니, 막막함은 더욱 커졌다. 보통은 선행연구에서 아이디어를 얻거나, 발판을 삼아서 그다음 연구를 계획한다. 하지만, 앞서 나아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기에 더욱 막막하고, 염려와 두려움이 컸다. 때때로 '내가 정말 뭔가를 할 수 있긴 할까?'라는 회의감도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 상담자로서의 의미, 내담자들과의 순간, 그 경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느꼈던 그 떨림과 벅차오름을 기억했다. 그 순간은 나에게 깊은 원동력이 되어준다. 길을 잃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빛을 보여주었다.
나는 간절하게도 진심이다.
치료자로서, 바로 심리상담에서 적용하고 고찰할 수 있는 결과를 만나고 싶다. 글자로만 머물러 있는 지식이나 내용이 아니라, 실제 내담자를 마주하고 앉아서 나눌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하다. 그런 연구를 간절히 바란다. 실제적이고 증거를 기반으로 밝혀진 그런 연구결과 말이다.
이 간절함은 나 자신에게도 전해져서, 나의 학위논문 주제를 결정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어떤 EFT 연구를 할까, 실제 상담에서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한국의 EFT 기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라고, 이후 더 다양한 연구에 영감을 주길 바랐다. 우선은 나 자신에게 설득력이 있길 바랐다. 자신에게도 설득력이 없는 연구는, 타인에게 절대 닿지 않을 거라 여겼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발간했을 때, 그 내용이 나의 상담에 실제로 정말 깊게 스며들어가 있길 바랐다.
연구를 통해 심리치료 역량을 높이는 건 물론이고, 나아가 그 내용이 그 과정이 나에게 그다음 발걸음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박사 연구는 한번 시작하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도 훨씬 넘어갈 텐데, 그 시간과 과정이 허무하길, 가볍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고민은 박사 수료 전부터, 그리고 수료 이후 1년간 지속되게 된다. 그동안 어떠한 진전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소망만큼 "당장 연구를 시작하자!"로 이어지진 못했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개인의 만족 수준과 그 평가도 영향을 주었지만, 박사 학위 연구는 지도교수의 승인이 치명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학생인 내가 이 연구를 하고 싶다고 주장해도, 지도교수가 볼 때 "그건 안된다. 부족하다. 별로다"라고 하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나 역시 지도교수와 수차례 면담을 가졌지만, 그때마다 교수는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이건 무슨 개념이죠? 이게 무슨 이론이죠? 선행연구는 어떤 것들이 있죠?..." 등으로 피드백을 주었다. 당연히 교수 입장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았겠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교수 H는 학생의 학구적 성장이나 학습에 무관심했기에, 이는 여김 없이 나의 연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도움을 주고, 동기부여가 있어도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과정이, 박사과정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허락된 자원은, 나의 학구적 갈망, 심리치료(정서중심치료)에 향하는 일관된 진심, 숱한 좌절에도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었다.
그렇게 고독하고, 처절하지만, 가장 불타올랐고, 자유롭게 반짝이는 과정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