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_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들.
대학원을 구성하는 사람들 중 단연, 교수 외 가장 중요한 존재가 있다. 바로 학생들.
박사과정 동안, 직접적인 영향력을 따진다면 교수를 따라올 수는 없다. 그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은은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바로 같이 대학원에서 생활하는 석사 및 박사 학생들이다.
나의 박사 과정은 수많은 학생들과 나눈 경험에 물들었다. 때로는 그들 덕분에 힘을 얻기도 했으나, 때로는 그들 때문에 깊은 회의감으로 이 분야에 더 이상의 기대를 놓기도 힘든 때도 있었다. 지금 그 모든 이들을 나에게 더도 덜도 아닌, 탁월한 반면교사(反面敎師)였다.
반면교사(反面敎師): 남의 잘못이나 실패를 거울삼아 교훈을 얻는 일. 타인의 부정적 사례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삼가는 뜻
이번 글에선 그들과 겪었던 경험을 풀어보려 한다. 나에게 수많은 감정을 안겨준 그들과의 경험은 여전히 나에겐 즐거움, 영감, 의문, 후회, 실망, 좌절, 분노를 추억하게 한다.
요즘 애들은 참.. 그렇더라고요. 교수님,
말을 안 들어요. 제멋대로라니까요.
이렇게 주제를 내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 학위 연구를 보조할, 석사 애들이 필요한데,
앞서 언급만 하고 넘어갔던 그들, 박사학생 E, Y, H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너무 단발적이고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많았다. 확실히 충격적이었고, 역한 경험이기도 했다.
내가 처음 그들을 소개받았을 때는 박사 과정 초기였다. 그 셋은 학부와 석사 동문이라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셋이서 특히 자주 붙어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제 3자인 나에겐 그들은 친밀해 보이면서도, 서로를 의식하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뭐 그건 당연한 거겠지.
내가 박사과정에서 가장 깊게 확인한 사실(fact), '동 대학원 출신들의 텃세와 위계부리기'가 실제 한다는 확신은 그 셋을 보면서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E는 속을 알기 어렵고,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셋 중에 가장 많은 조건을 차지한 사람이었다. 자격증, 커리어, 학위 등 여러 면에서 그 셋 중엔 가장 조건을 많이 충족한 사람이었다. 겉으로 볼 때도 가장 차분하고 말투도 온화한 편이었으며, 셋 중엔 가장 유능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근거는 그와 같이 진행한 연구나, 여러 스터디, 수업, 개인적 대화에서 경험한 모습 때문이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영리할수록 더욱 교묘한 방식을 사용한다는 말. 그를 보면서 항상 그런 꺼림칙함이 들었다.
Y는 체면에 연연하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겉과 속의 간극이 가장 컸고, 특히 그게 다 티가 나기도 했다. 대외적인 자리에선 그는 말을 다듬고, 무게 있게 말하려고 했고,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선 그가 느끼는 불안이 가감 없이 흘러나왔다. 타인의 시선을 상당히 신경 쓰고 있었고, SNS에 꽤 매몰되어 있었다. 셋 중엔 가장 적은 조건을 충족한 사람이었기에 다른 둘, 특히 E를 신경 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안 보고 싶어도 보이는 느낌이었다.
H는 자기애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이건 나뿐 아니라 그를 대학원 수업이나 모임에서 본 사람이라면 똑같이 느꼈다. 그의 말투엔 항상 거만함이 듬뿍 담겨있었고, 무언가를 누구에게 알려주는 것을 엄청 좋아하는 게 노골적으로 보였다. 자신이 기반으로 하는 상담 이론에 있어서는 엄청 자부심을 보였는데, 문제는 그 자부심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과도했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부분이나, 궁금하지 않고 묻지 않은 것에 사족을 계속 붙이곤 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E와 Y는 내가 입학했을 때 이미 입학한 지 5년은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H는 그보다 덜했다. H는 내가 치를 떨었던 박사 과정생들 전체가 모이는 모임에 있었으며, "교수에게 주제를 받아야 하는데, 주질 않는다"며 다른 박사 학생들과 너스레를 떨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 이후에 전체 자리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H는 보지 않을 수 있었으나, 나머지 둘은 나와 같은 지도교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종종 만나게 되었다. 그게 악연의 시작이었다.
정확한 첫 만남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들과 한 두 번 정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은 나보다 10여 년 더 나이가 많았고, 학위 논문 주제는 아직도 정하지 못해서 졸업을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둘 모두 사설 1인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했고, 그 부분이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저 흥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 당시 E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센터를 정리하고, 공인중개사를 준비해보려 한다며, 상담 분야 쪽을 떠날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참 의아하고 씁쓸했다. E는 단연 심리치료 분야에서 갖출 말한 조건을 다 가지고 있었는데, 상담을 떠날 생각을 하며 센터를 내놓았다는 말에 한국에서 심리치료 분야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 말을 듣고 있던 Y는 자신도 센터는 있지만, 다른 분야의 사업을 구상 중이고 실행 중이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고, Y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다. 자신이 자격 1급을 준비하는데, 혼자서는 어려우니 같이 공부하면서 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같이 그룹 슈퍼비전을 듣자고 나에게 제안했다. 자격증 공부를 같이 하는 게 이해가 안 되던 나였기에, 왜 이걸 같이 공부해야 하나? 공부는 혼자서 하는 건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불안해하고 혼자서 하는 것에 걱정이 많은가? 하는 의문이 컸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1급 자격증에 의구심이 더 컸기에 크게 내키지 않았으나, 경험 자체는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수락했다. 그 이후로 약 한 달(4번 정도) 동안 Y와 슈퍼비전을 받으러 매주 한 번씩은 만나게 되었다.
그때였다. Y가 얼마나 불안이 높고, 체면에 연연하는 사람인지, 주변 사람들에 엄청 신경을 쓰며 SNS로 자기 이미지 관리에 힘쓰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원 동기와 후배를 신경 쓰고, 석사 학생들에게 비치는 자신을 엄청 신경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나누는 대화에서 그는 SNS에서나 주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사업이나 과업에 영향을 미칠지 그러면 어쩌지 하는 경계심과 불안을 계속 털어놓았다. 때로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주변 상담센터에 대해서도 크게 짜증을 내거나 불평하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웠고, 미숙해 보였고, 답답했다. 하지만 제대로 실망하기 시작한 건 그 이후였다.
실망한 첫 계기는 슈퍼비전에서 본 그의 태도였다. 그는 E와 H가 이미 1급 자격을 딴 상태를 의식하면서, 자신도 어서 빨리 자격증을 따야 된다고 느끼고 있었고, 나한테 자신이 왜 동기들과 다르게 자격을 따지 못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구구절절 읊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래는 1급을 따고도 남을 만큼 슈퍼비전을 다 받았는데, 기록을 놓치는 바람에 다 날아가게 되어 지금 다시 채우고 있다고 했다. 이 역시 나는 자신의 과오를 처음 보는 나에게 설명하는 그가 우스웠다. '그게 지금 자랑이라고 하는 말인가? 어쩌라는 거지'생각이 가장 컸다.
그리고는 슈퍼비전을 준비하는 동안 가장 참담했던 건 이것이었다. 격주마다 각자의 사례를 가져와서 슈퍼바이저라는 교육자와 자신의 사례를 공부하는 것이데, 그는 한 사례를 가지고 3번 이상 울어먹었다. 심지어 항상 가져오는 질문이나 사례를 공부한 흔적 없는 그의 태도가 너무 별로였다. 누가 봐도, 사례에 대해 고민도 하지 않고, 매번 이전 자료를 복붙 해서 만들어서는 슈퍼비전 항목만 채워가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돈 주고 슈퍼비전 횟수를 채우는 딱 그 수준이었다.
심지어, Y가 추천하며 제안했던, 슈퍼바이저라는 교육자는 동 대학원 출신이며, Y의 선배 격인 인물이었다. 그의 슈퍼비전은 밋밋했다. 딱히 교육자만의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았고, 누구든 줄만한 무난한 수준의 피드백을 주었다. 영감도, 딱히 큰 학습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끝에는 '이것도 학연에서 비롯된 낡은 관례의 단면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량이 부족한 교육자가 단지 같은 학교 출신,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소비되고 있고 있는 그런 경우 말이다.
그룹 슈퍼비전은, 개인 슈퍼비전과 다르게, 구성원들 각자가 자기 사례를 가져와서 나누고, 교육자와 이를 다루는 그 내용과 과정을 간접적으로 학습하고 배워 간다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그게 아니면 개인 슈퍼비전을 받는 것이 훨씬 득이 크다.
나보다 경력도, 경험도, 나이도, 많은 Y가 보여준 모습은 무엇 하나도 배울 점이 없었고, 오히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왜 저러나 몰라. 돈도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나누는 대화마다 다른 학생, 주변 상담센터를 경계하고 의식하는 그의 모습이 내가 정말 싫어하는 모습을 다 갖추고 있었다.
또 어느 날은 E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내용은 그러했다. '자신이 센터를 부동산에 내놓았는데, 주변에 인수할 사람이 있다면 소개해주면 좋겠다'였다. 나는 그의 제안이 정말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 당시 나는 그룹 슈퍼비전을 오가며 Y에게 센터 이사를 고민 중에 있다고 말했었다. 그 내용을 Y가 E에게 전달한 게 분명했다.
E는 이전에 대화에서 자신의 센터가 매우 작은 규모에 구조가 좀 이상해서 편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지금 나에게 이런 연락을 준다는 것이 그 센터를 나에게 팔아넘기고자 의도한 것이 너무 티가 났다. 더불어 그다음에 붙인 말이 더 가관이었다. "권리금은 너무 높지 않게 받을 예정이에요. 연계되고 있던 내담자도 함께 넘겨줄 예정이고요. 좋은 조건이라 할 수 있죠"
이 말을 듣고, 그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정말 터무니없는 말인 건, 권리금이라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위치에 있는 매물에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E의 센터는 소규모, 기형적인 구조이며, 특히 심리치료 분야는 내담자를 넘겨준다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되기 때문이다. 상담자를 선택하고 상담을 이어가는 건 전적으로 해당 상담자와 내담자의 1:1 체결과 같다. 그렇기에 다른 서비스 분야처럼, '연결해 준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소규모의 센터를 권리금을 받고 넘긴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그가 약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설명으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도 기가 찼다. 학교에서 이제 막 알게 된 사람에게 터무니없는 정보로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그 행태. 얼마나 학연을 이용해서 이득 추구를 하는지가 뻔히 보였다.
위계 부리기, 폄하하기, 선배라며 후배를 이용하기, 학위 주제 얻어내기 등 E와 Y와 몸소 보여준 여러 경우는, 여기 대학원에 뿌리 박혀있는 단면임을 이후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최고야. 내가 제일 멋져. 나는 잘났어
나를 주목해 줘! 뽐내고 싶어!!
H는 주로 같이 들었던 세미나와 수업에서 마주치곤 했다. 그가 입을 열기 시작한 초반은 납득되는 것도 있고, 괜찮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말이 많았고, 그가 말을 시작해서 끝을 향할 때가 되면 미묘하게 갑갑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특정 심리치료 이론을 기반으로 항상 설명을 이어가곤 했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음, 그럴듯하네'라고 느꼈으나 점점 뒤로 갈수록 했던 얘길 또 하거나, 메시지에 알맹이가 없음을 느끼면서는 '왜 저리 장황하게 포장해서 말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커져갔다.
아마 그의 말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태도가 가장 주요했다고 본다. 그는 항상 '내가 하는 말이 맞아. 나는 아는 게 많아'라는 식으로 설명하곤 했다. 이는 그가 갖고 있던 자격 1급, 슈퍼바이저 활동에서 비롯된 습관 같았다. 세미나에서 상담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용어와 개념을 화려하게 소개하듯 설명했고, 심지어 장황한 설명이나 개념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 때에도 자신이 아는 지식을 늘어놓는 것을 즐겨했다.
한 번은 석사 학생이 자신의 학위 논문을 발표하던 때였다. 대학원 박사 학생들 중 연구에 관심은 물론이고 역량이 있는 학생이 없었기에, 항상 학위 논문 피드백 시간은 형식적으로 진행되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학위 논문 발표 때, 내가 흥미를 가지고 경험이 있었던 연구 방법이 나왔고 나는 그에 대해 유일하게 피드백하던 박사 학생이었다.
마지막, 피드백 타임에서 H는 그 석사 학생에게 "이 발표 자료가 온라인에 올라와 있던가요? 자료를 미리 공유하는 게 기본 아닌가요?"라는 날 선 피드백으로 모두가 있는 가운데, 석사 학생에게 꼽을 주었다. 그의 피드백은 연구와 전혀 관련도 없었고, 그저 자신이 자료를 미리 보지 못해, 뭐라도 말하지 못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었던 게 언짢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발표 자료는 미리 올리지 않았던 관행이 맞았기에, 그의 피드백이 온전히 뽐내지 못한 자신의 짜증에서 비롯된, 위계 부리기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H가 자신의 역량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 비해 역량은 빈약하다고 느낀 경우가 있었다. 대학원 수업에서였다. 그때 그 수업은, 교수 C이 안식년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맡았던 수업 중 하나를 동 대학원 박사 졸업생 중 한 명에게 맡겼다. 이때 그 결정도 정말 학연 및 지연에서 비롯된 부적절한 처사라고 여겨졌다. 석사와 박사가 듣는 일반대학원 수준의 수업을, 주변 아는 박사 졸업생한테 툭하고 던져놓고 나간 꼴이었다. (이 졸업생은 앞서 언급한 Y와 내가 같이 슈퍼비전을 받았던 그 인물이었다.) 교수 C는 학연, 지연으로 유명했기에, 이런 행태가 엄청 놀랍진 않았다. 이게 한국 교육의 현 수준이었다.
심지어 그 수업을 맡게 된 졸업생은 수업의 주제를 IF* 심리치료 이론으로 내걸었는데, 그게 문제의 화근이었다. 왜냐하면 동 대학원 졸업생 출신 강사는 해당 이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활용하지도 못하는 사람이었고, 이를 빌미로 H를 데려와 실질적인 수업을 모두 그에게 의존했다. 그러곤 항상 "이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요. 이 부분은 저보다 H 선생님이 더 잘 알고 계시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매 수업마다 추켜세웠다.
즉, 그 졸업생은 무늬만 강사였고, 실질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건 H였다. 그 당시 H가 이 수업을 차지하지 못했던 건, 박사 학위 졸업장이었을 거라 확신한다. H 입장에선 자신을 뽐내고 싶었는데, 얼마나 유혹적이고 간절했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3개월, 한 학기 동안의 심리치료 수업에서 그 수업은 정말 최악이었다. 내용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H는 매 수업 자신이 아는 개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깊이가 정말 전공서를 읊는 수준이었다.
심리치료 이론을 배우고, 이를 적용할 수 있게 하는 수업은 정말 난도가 높다. 명 강사, 저명한 학자나 교육자도 어려운 것이 이런 종류의 수업이다. 왜냐하면 이론과 실제의 균형도 중요하고, 3개월이라는 시간이 긴 것 같으면서도 한 이론을 충분히 습득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교육은 참여자를 고려해야 한다. 해당 교육은 석사 1학기부터 박사 고학기까지 두루 듣는 수업이었다. 그렇다면 그 수준을 고려해서 커리큘럼을 계획했어야 하는데, 커리큘럼 수준 자체도 전공서 목차를 그대로 복붙한 수준이었다.
심리학 대학원 수업은 대부분이 PPT 발제로 이뤄진다. 원시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심리치료의 이론과 실제를 배우는 것이다. 이 수업도 그렇게 진행되었고, 개념이나 실제에 대한 이해도, 경험도 없는 석사 학생들이 돌아가며 ppt 발제를 했다. 그리고 매 발제가 끝난 뒤에 H가 해당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는데 그 수준이 너무도 얕았다. 아직 심리상담을 진행하지 않은 석사생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이 듣기엔 H의 설명이 되게 있어 보이고 대단해 보였겠지만, 나에겐 그 밑전이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매번 비슷한 개념과 용어를 쓰면서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했는데, 그 내용이 다양하지도 않았으며, 이용한 수업 교재도 한국어 번역서였기에 부정확한 번역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을 했기에 내용 설명도 기괴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한 번은 H가 석사 학생을 대상으로 IF* 심리치료를 시연했는데, 그 시간이 버티는 게 너무도 괴로울 만큼, 왜 저 상담이 그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지, 다른 이론과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즉, 한 학기 내내 이론에 대해 하나도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PPT 발표자료를 만들어가지고 와서 H가 한두 마디씩 덧붙이고 끝나는 식으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박사 학생인 나에겐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 낭비 수업이었다. 진심으로 그 시간도, 학비도 정말 아까웠다.
그리고 비윤리적으로 여겨졌던 건, 석사 학생을 대상으로 모두가 보는 가운데 한 회기 시연을 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이중 삼중 관계로 이루어진, 안전하지 않은 이 대학원 환경에서 이 시연이 꼭 있어야 했을까? 어떤 학문적인 목표와 의의가 있는가? 정말 시연이 필요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H의 시연은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다른 시연과 비교했을 때도 너무 미흡했다. 그 시연은 H가 자신을 뽐내고 싶어서 하는 퍼포먼스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한 학생을 노출시키고, 알고 싶지 않은 그 외 학생들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런 식의 교육을 감행했다는 것이 그 당시엔 너무도 실망스럽고 짜증은 물론 화가 나기도 했다.
자기 조망을 못하는 교육자가, 본인 역량을 넘어서는 교육 목표를 세우고 진행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안 그래도 열악한 한국의 교육 체계 안에서 이러한 행태는 도움은 커녕 역행시키는 행위이다.
대학원 수업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한 학기에 400만 원이 넘는 학비를 내고 듣는 수업이다. 이런 수준의 교육을 들어야 하는 이 상황이 참으로 개탄스러웠다.
내가 여기 대학원에서 경험한 가장 끔찍하다고 여겼던 관례는(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사람이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사람에게 슈퍼비전을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기 대학원 학생들은 그렇게 하는 게 자신의 윗학기부터 계속해오던 관례이기에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타 대학원에서 온 덕분에, 나는 이 관행이 얼마나 비윤리적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슈퍼비전은 한국의 심리치료 교육과정에서 제일 큰 비중, 약 95% 가까이 차지하는 방식이다. (역량이 충분한 교육자를 만난다는 가정하에) 슈퍼비전을 통해 상담자는 사례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조건은 '안전함'이다. 즉, 교육자와 학습자 간에 이중, 삼중 관계는 없어야 하고, 이는 발생할 수 있는 위계에서 비롯된 피해에서 학습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대학원은 기본적으로 수업을 최소 2년 내내 수업을 같이 들으며 그룹 과제, 실습 과제를 수행한다(1차 관계), 대학원에는 선-후배 관계, 박사-석사 위계가 존재한다(2차 관계), 연구 프로젝트 안에서 팀장과 팀원의 관계(3차 관계)를 맺는다. 여기에 이제 슈퍼비전이 추가된다면 최소 이중 관계가 된다.
내가 슈퍼비전을 받았던 사람과 같은 수업을 들으며 과제를 수행하고, H의 사례처럼 교육자의 위치에서 만난다면, 이건 삼중 관계로도 발전한다. 이중 관계 이상의 상황에서 이를 먼저 감지하고 예방해야 하는 의무는 슈퍼바이저, 즉 교육자에게 있다. 그럼에도 박사 학생들은 석사생을 대상으로 계속해서 장사를 해왔다.
이러한 행태를 슈퍼비전을 제공하는 박사 학생들은 물론, 심지어 이를 알고 있는 전공 교수들까지도 묵인한다.
여기 대학원에서만 내가 목격한, '박사과정 학생이 석사과정 학생을 슈퍼비전 하는' 경우는 수십 건이 훨씬 넘었고, 이는 몇 년간 계속 이어져왔으니 수백 건은 족히 넘겼을 거라 예상한다. 슈퍼비전을 제공하는 박사 과정 학생에겐 대학원이 잠재적 고객을 유치하는 장이 되는 셈이다.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비윤리적인지 당사자가 제일 모르고, 누구보다 열심히 눈과 귀를 막고 입을 가린다.
실제로 여기 대학원에서, 내가 목격한 상황은, 슈퍼바이저인 박사 학생이 그가 석사 학생에게 슈퍼비전을 통해 알고 있는 취약점을 가지고 이용해서, 위계를 부리는 경우가 그러했다. 석사 학생이 옳은 말을 하거나, 해도 되는 의견을 제시할 때 그러했다.
"00아, 네가 그 부분에 이슈가 있어서 그런가 본데, 네가 잘 몰라서 그런가 본데, 그러면 안 되는 거야."식으로 슈퍼바이지 학생의 의견이나 존엄성을 짓누르고 침범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글은 읽는 독자도 이점은 확실히 기억하길 바란다. 약자는 취약해지기 쉽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권위자는 자신의 힘과 위치를 이용해서 상대를 짓누르거나 사고를 왜곡시키기 쉽다(예, 가스라이팅, 위계, 권위주의). 약자 입장에선 자신이 겪고 있는 이 불합리한 상황이나 경험이 잘못되었다고 여기기 어렵다. 그 점 역시 권위자가 교묘하게 이용하는 부분이다.
학회 심리상담 윤리규정에 명시된 이중관계 금지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약자의 위치에서 취약해질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들에게 경악하고, 경계하고, 거리를 뒀는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은 여전히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대학원에서 강의도하고, 슈퍼비전도 이어가고 있다.
*본 주제는 다음 화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