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멀리하게 된 대학원 학생들

12_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들.

by 로지

(2) 멀리하게 된 대학원 학생들

12_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들.


*본 주제는 이전 화부터 이어집니다.





이렇게 주제를 내려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제 학위 연구를 보조할, 석사 애들이 필요한데,


요즘 애들은 참.. 그렇더라고요. 교수님,
말을 안 들어요. 제멋대로라니까요.




E와 Y의 일화 중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다. 이들에게 가장 환멸을 느낀 사건은 앞서 언급한 소소한 일들 이후에 일어났다.


박사 학생들이 모이는 자리는 최대한 피하려 했다. 하지만 심리학과 상담 전공 전체 모임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었으나, 종종 지도교수와 함께 소규모로 3~5명의 박사 학생들이 모이는 자리는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E와 Y를 포함하여 나까지 3명, 그리고 지도교수 H가 함께 모이는 자리였다. 우리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카페로 옮겨갔다. 거기서 지도교수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연구 과제에서 파생된 연구 주제 2개를 언급하며 그 둘에게 "두 분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그 순간에 "이건 무슨 대화인가? 에이, 설마 교수가 박사 학생한테, 학위 논문 주제를 주는 건 아니겠지??"라고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아니라 다를까, 나의 끔찍한 예상이 맞았다. 그 순간 E와 Y는 민망한 미소와 함께 기쁨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주제를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정말요!!"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저자세로 교수에게 의존하는 그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박사과정을 통틀어 가장 끔찍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입학한 지는 5년은 이미 지나간 그 시점에, 아직까지 대학원을 전전하면서 자신의 학위와 함께 고이 남을 학위 연구를 지도교수에게 5분 만에 받아가는 꼴이라니.


애초에 이들은 왜 박사 과정에 들어온 거지? 자신이 하고 있는 심리상담과 전혀 관련 없는 연구 주제를 자신의 학위 연구로 진행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저들한테 학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저 졸업장이면 된 건가? 주제부터, 설계, 방법, 결과 해석까지 지도교수에게서 나온, 자신의 고민은 전혀 담기지 않은 그 연구가 그들에겐 어떤 의미인가?


그렇게 주제를 주는 교수는 생각이 있긴 한 걸까? 학생들이 연구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어려움이 있다면 그 어려움을 같이 풀어갈 생각은 안 하고, 그냥 툭하고 다 던져주면 그걸로 된 건가. 교수 역시 학생의 학습이나 성장이 아닌, 그저 자신의 과업에 투입할 인력이 필요했던 걸까.


아무리 심리상담에 마음이 떴다고 저렇게 해도 되는 건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어이가 없고, 회의감이 몰려들었다. 이게 내가 기대했던 교육인가?





*소소한 기억:

지도 교수 H와 석사 학생 한 명, 그리고 나까지 셋이 소소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당시에 지도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여러 가지 연구가 계획되어 있었고, H는 계속해서 또 다른 연구 과제, 그다음 연구 과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종종 그렇게 H가 진행하는 혹은 진행할 연구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H의 연구 주제는 심리치료나 심리상담에 직결되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이 부분이 의문이었으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 예상은 크게 빗나갔음을 바로 알 게 되었다. H는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심리상담에 흥미가 없어요. 재미가 없달까.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래서 심리상담 전공 교수를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어요."


이 순간 너무 충격적이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심리학 상담전공 전임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인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의 지도교수라니...! 그 순간 느낀 좌절, 실망, 허탈 등의 감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그때 가장 후회되는 말을 H에게 건넸다. "무슨 말씀이세요 교수님. 교수님 같은 분은 상담 전공에 꼭 계셔야 해요!" 나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갔다. 다급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아직 H에 대한 애정과 그가 학생들의 (학습이나 교육은 아니더라도) 생계와 처우를 신경 쓰는 희소한 교수라고 생각하고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지금에서 돌아보면 그 말은 너무도 후회하는 말이다. 그때 적극 그의 의견에 힘을 보탰어야 했다. "맞는 말이세요. 심리상담 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으로 가시는 게, 심리상담에서 전문성을 쌓고자 하는 학생에게도 적절할 거예요" 이 말을 그때 그에게 하지 못했던 것이 이토록 후회될 줄이야. 진작 그때부터 지도교수에게, 나는 기대를 거두었어야 한다. 그는 더 이상 심리치료, 심리상담에 관심이 없고, 그 말은 심리치료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더 이상 필요한 교육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일 테니.






E와 Y는 그렇게 지도교수에게 박사 학위 주제를 받아간 뒤, 시간이 흘렀다.


그 둘을 포함하여 4명의 박사 학생과 지도교수 H가 모이는 자리였다. 그 당시 지도 교수는 여전히 연구 과제를 하나씩 가져오고 있었다. 나 역시 연구 과제에 참여하기 시작할 때여서 여전히 생소했다. 보통 상담 및 임상심리 전공에서는 교수 주도하에 석사 및 박사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연구 과제는 드물었다.


지난 모임에서 느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말들이 오가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고급 브런치 가게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먹다가 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지도교수와 E와 Y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역하고, 메슥거렸다. 분명 맛있는 음식이었음에도 맛을 음미할 수 없었다.




*소소한 기억:

지난 대화에서 E와 Y는 본인들이 하사 받은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혼자서는 벅차니, 보조 인력이 필요하다고 교수에게 징징거렸다. 나는 그 말도 이해가 안 됐다. 그들이 요청한 건, 분석을 하는 분석팀이나 추가 연구자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본인들이 해야 함에도 하기 싫기에 부릴 수 있는 인력을 붙여달라는 의미였다. 나는 그들의 뻔뻔함에 한번, 부적절한 요청에 또 한 번 실망했다.

그들이 말하는 그런 인력은 당연히 석사 학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정확히 그 의미로 말했으며, 교수 역시 단번에 알아듣고는 말했다. "그럼 E 선생님한테는 석사생 A를, Y 선생님한테는 석사생 M을 붙여줄게요" 눈앞에서 벌어지는 (석사 학생) 인력 거래의 현장이었다.




이 순간 지도 교수는 "요즘 애들은 원래 그런가요?" 식의 주제를 꺼내던 차였다. 나는 이전 E와 Y가 교수와 나누던 대화가 순식간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이때다 싶었는지, E와 Y는 지도교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조심스러워하는 제스처를 만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맞아요 요즘 애들이 좀 그런 거 같아요. 석사생 A와 M도 좀 그런 거 같아요. 지금도 연구 진행하면서, 시킨 일도 잘 안 하고, 말을 잘 안 듣는다니까요. 애들이 좀 그런 거 같아요"



나는 앞서 말했듯, 그 당시에 석사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었기에, 그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교수는 E와 Y의 말을 고 지곳대로 받아들이며, "걔네가 그래요? 역시.. 애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라며 동조했고, 금세 대화는 MZ들은 이래서 어렵다, 까다롭다, 피곤하다, 나때하곤 참 다르다 등의 석사 학생들에 대한 폄하와 깎아내리기로 가득 찬 대화가 이어졌다.


속이 거북했다. 일단 첫 번째로는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을 애초에 왜 석사 학생들에게 시키는 건지, 본인의 학위 논문이면 선행논문 관련 논문 찾고 정리하는 건 저자인 E와 Y의 몫이다. 본인이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도대체 누구한테 잘못을 돌리는 건가? 기본을 모르고 지키지도 않으면서, 뒤로는 교수에게 가서 석사 학생들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험담을 하는 게, 그들이 그렇게 '00 대학 심리학과의 자부심, 학연을 귀하게 여기는 가치'인 건가.


특히 Y는 '그래도 우리는 심리학과인데, 교육학과 하곤 다르다. 심리학과만의 자부심이 있다'라고 말하곤 했다. 도대체 어떤 자부심인가? 박사랍시고, 석사생들을 쉽게 여기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게 그 자부심인가?


박사 학생들의 말만 듣고 수긍하는 교수도 이해가 안 됐다. 교육자라면, 그리고 특히 석사 학생들의 처우를 그토록 걱정하고 신경 쓰는 교수라면, 눈앞에서 자행되는 박사 학생들의 만행을 그대로 두고 지나가는 게, 언급이나 교정도 없이, 그냥 방치하는 것이 교육자로서 정말 맞는 일인가? 옳은 일인가?


애초에 자신의 학위 논문 주제를 교수에게 받아 그대로 쓰는 주제에, 석사 학생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인가? 본인 노력으로 연구 주제를 정하지 않았으면, 다른 것이라도 본인이 책임지고 온전히 해내야 하는 게 맞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들의 비틀린 사고방식과 이를 고지곳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교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은 일은 그다음에도 이어졌다.


속이 거북한 박사생들과 교수의 모임을 뒤로하고 연구실로 향했다. 그때 느낀 역겨움이 가시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그 당시 연구실을 석사 학생들과 사용하고 있었고, 거기에는 석사생 A와 M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둘은 뭔가 조급해 보였고, 걱정은 물론 초조해 보이기까지 했다. 뭔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을 앞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A는 단호하게 어떤 결정을 내린 직후였고, M은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나의 예상대로) 그 둘은 E와 Y의 연구에 이용당하고 있었고, A는 E가 시킨 과업을 다 수행하기엔 이미 맡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에 더 이상 보조 인력으로 참여가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E가 작정하고 교수한테 A에 대해 폄하했던 게 이해가 됐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어렵게 E에게 전했다고 했다. 하지만 M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 Y가 시킨 일들이 너무 과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렇지만 박사 학생의 지시를 거절한다는 것에 걱정이 많아 보였다.


내가 가장 답답했던 건, M은 특히 Y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했고, 그래서 더욱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속이 터졌다. 실제로 이때 Y는 전화를 걸어, M에게 자신의 연구 보조로 참여하는 일이 (본인 자신의 득이 아닌) M에게 얼마나 귀하고 도움이 되는 경험일지를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기가 찼다. 그렇게 뒤에서는 자신의 연구를 도와주는 석사생들을 까고 다녔으면서, 필요하니까 저렇게 구슬려서, 마치 그 일이 당사자인 석사생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설득하는 그들의 위선에 헛웃음이 났다. 이때 나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들에게, E와 Y가 저지르고 다니는 만행을 말해줘야 하나, 정말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날 필요가 없는, 그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해줘야 하나, 정말 정말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이때 A와 M에게 그 말을 전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A와 M이 경험할 수도 있는 상처였다. 앞에서는 좋은 말을 해주던 '선배'가, 뒤에서는 권위자인 교수에게 자신의 험담을 신랄하게 했다는 얘길 듣는다면..? 그들이 느낄 괴로움을 먼저 떠올렸다. 때론 알면 좋은 것도 있겠지만, 굳이 지금 이 시점에 안 그래도 마음이 복잡할 때, 그런 사실을 알게 되는 건 그들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그들의 선택이 달라질거라고 믿는 기대는, 나의 것이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존재도,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들이 내리는 결정의 책임도 그들의 몫일테니.


그래서 E와 Y의 위선과 기만은, 나만 알고 삼키기로 했다.


이 고민이 특히 더 괴로웠던 이유는, M은 E와 Y를 좋게 여기며, 정말 그들이 자신을 위해준다고 여기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들이 자신을 정말 진심으로 고려해 주고 신경 써준다고 믿고 있는 M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불합리하고 부당한 대화가 오가는 그 순간에 듣고만 있었던 나 자신에게도, 생각이 많아지며 속상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바라는 나의 모습은 불의에 기꺼이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위한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속상함과 안타까움은 너무도 컸다.

그 순간에 조금이라도 바른 소리를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것이 여전히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라니. 많은 고뇌를 했고, 한동안 박사 학생들과 교수가 하하호호 가벼이 넘기는 그 장면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를 기점으로 나는 박사생 E와 Y가 보여준 말과 행동을 통해, 더 이상 지낼 가치가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계속된, 박사 학생들이 저지르는 위선을 포함한 납득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고 들었으며, 나의 결심과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주제는 다음 화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