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멀리하게 된 대학원 학생들 完

13_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들.

by 로지

(3) 멀리하게 된 대학원 학생들

13_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들.


*본 주제는 이전 화부터 이어집니다.






다음에도 이렇게 공부 안 해도 되겠네~
굳이 열심히 안 해도 시험은 잘 보겠는데?


나한테 벌어진 일은 아니잖아.
그 사람이 나한테 해코지 한건 아니잖아.




내가 멀리하게 된, 단절한 사람은 E, Y, H, D 같은 사람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함께 할 때 즐거웠고, 마음이 편하기도 했으며, 보고 배울 점도 있었던, 그다음을 기대하게 되는,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몇몇 이가 있었다. 지금도 이들과의 시간이나, 그 당시를 회상하면 그때만큼 서글프진 않지만 씁쓸함이 흩어지는 기분이다. 아마 그들을 떠올리는 것도 여기 글이 마지막일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개인적이 싸움이 있었던 것보다, 나의 가치관이 그들의 말과 행동과 충돌했고, 나의 마음이 돌이켜지지 않았다. 아마 이 주제는 앞으로도 내가 이 분야의 누군가를 만날 때 종종 떠올릴 것이고, 그때와 같은 선택을 내릴지 혹은 다른 선택을 내릴지 궁금해진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그때의 그들과 선을 그은, 나의 선택을, 나의 마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의 기준은 분명했다. 나의 감정은 선명했다. 나는 온전히 나였고, 그랬다면 충분하다.










“The higher the rise, the harder the fall.”

“Don’t count your chickens before they hatch.”




앞서 언급한 지도교수 주도 하에 진행되었던 연구가 마무리 되고, 석사 입학 예정생이었던 G는 석사 1학기로 들어오게 되었다. 석사생 J 다음으로 연구실에 자주 오곤 했던 그는 나에게도 반가운 사람이었다.


그는 내성적이고 말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잘 웃고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불편하진 않은 사람이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박사생들에겐 실망하면서 멀어지는 동시에 석사생들과는 두루두루 지내던 나였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기에 G에게도 그러했다.


기본적으로 그와 같이 있을 때 마음이 편안했다. 좋은 사람이라 느꼈다. 그래서 그를 내가 지내던 석사생들에게 소개해준다던가,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그를 불러 다른 석사생들과의 수다에 초대하곤 했다. 무엇을 먹거나 무엇을 소개해주거나 할 때 자연스레 그를 불렀다.


또한, G는 자주 크게 불안했고, 오랫동안 깊게 우울하기도 했다. 그 사실은 같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그리고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느끼고 싶지 않아도 전해졌다.


근데, 그게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점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쓰게 만들었다. 오히려 주변 다른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별일 아니게 넘겼지만, 나는 자주 떠올리며 마음을 썼다. 겉으로는 "그러려니" 하더라도, 마음은 신경을 쓰곤 했다. 그래서 뒤로는 자주 그의 안부에 대해 떠올리고 걱정하기도 하며, 주변 다른 대학원 동료들(석사 및 박사 학생)에게도 같이 신경써보자고 말하곤 했다.


나는 모두에게 항상 다정한 사람은 아니다.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많이들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잘 챙겨 준다곤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쓰고 신경 쓰는 사람은 소수다. 나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내가 G를 좋아했던 점 중에 꼽으라면 단연, 성실함에 있었다. 그는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건 이미 처음 만났던 연구에서 알아차렸다. 이해력이 좋고, 책임감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볼 때마다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게 공부든, 자기 계발이든, 취미든 말이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뭔가에 빠져서 꾸준하게 몰입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영감을 줬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시간을 자주 보내며, 서로가 가진 가치관이나 일상에 대해 자주 나누었고, 대학원 밖에서도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곤 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그는 싫은 소리를 잘 못했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심히 어려워했고, 웃음으로 넘긴다던가 참고 버티며 넘기는 편이었던 거 같다. 이 점은 내가 가장 우려했던, 답답했던 점이었다. 나는 표현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표현이 없으면 오해는 생기기 마련이고, 생긴 오해는 풀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다르다. 다르기에 갈등은 빚어질 수밖에 없다. 갈등은 건강한 관계의 첫걸음이지만, 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희소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면서도 간과했었다. 나의 판단은 크게 틀렸다.



갈등은 진정으로 관계에 신뢰와 진정성을 다할 수 있는, 강단이 있는(굳세고 결단력 있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경험이란 사실을.





3학기가 넘어가던 차, 같이 연구실을 쓰던 석사생 한 명이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새로 입학한 박사 학생이 있다고 했다. 처음 연구실에 들어오던 W의 모습이 이제는 흐릿하다.


W는 유쾌하고 매우 외향적이었다. 그는 이미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그럴만하다고 느꼈다. 그와 같이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었다. 나 역시 그와 처음 만나서 몇 마디 나눠보고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몇 번의 대화를 나누었고, 오래간만에 만난 불쾌감이 없는 박사 학생하고의 대화였다. 그간 만난 박사 학생들은 비열했고, 약았고, 공부엔 관심이 없었기에, 항상 대화를 하고 나면 기분이 찝찝하고 미묘한 불쾌감이 남곤 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내가 경계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었다. W 역시 동대학원에서 학사, 석사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원) 같은 전공 출신과 결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석사 때 지도교수 아래로 박사 과정을 들어왔다고 했다. 내 안의 선입견이 꿈틀 됐다. "이 사람은 제발, 그런 사례가 되지 않길. 내가 봐왔던 여기 대학원, 썩고 썩은 동 대학원 무리들과는 다른 사람이길" 간절히 소망했다.




*소소한 기억:

W와 처음, 상담 이론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때 나는 실은 꽤 긴장했다. 그에게 가진 기대를 잃고 싶지 않았다. 매번, 항상 상담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나눌 때마다 느낀 좌절감을 그만 느끼고 싶었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매번 좌절하는 경험은 나를 가라앉혔다.

W에게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상담을 하는지 물었다. 그는 인간중심접근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다. 그 답변은 나를 긴장시켰다. 설마 했다. 반가운 마음과 불안함이 교차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인간중심이론을 바탕으로 상담을 한다는 사람들이 보여준 오만과 불일치는 나를 언제나 실망시켰다. 말만 인간중심이론을 한다고 하고, 실제로 인간중심이론을 공부하거나, 교육을 찾아 듣거나, 해외 저서를 읽거나, 고민하거나 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 대화에서 나는 그다음 질문을 삼켰다. W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 기회조차 가지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W는 박사과정에 "공부를 하기 위해" 입학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그리고 믿었다. 진심으로 믿었다. 그의 태도와 열정을 신뢰했다.



여기 대학원엔 이상한 관례가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졸업하기 얼마 직전까지도 존재했다. 그건 바로 석사 졸업생 또는 박사 과정생이 학기와 학기 사이 방학 기간에 '방중세미나'라는 명칭으로 약 2시간 정도 석사 입학 예정생과 석사 재학생들에게 '강의식' 시간을 갖는 거였다. 말이 좋아 강의지, 실은 강의라고 하기엔 질이 떨어졌다. 내 입장에선 박사 학생(특히 앞서 말한 세명, E, Y, H)들이 자신의 욕구를 챙기는 시간으로 보였다. 특히, 항상 강의에 목매던 둘이 바로 Y와 H였다. H는 앞서 말했듯, 자신을 뽐내길 좋아하고 누군가 자신을 치켜세워주는 경험을 좋아했다. 자기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소소한 기억:

박사생 Y가 진행한 '첫 회기 상담'을 주제로 한 시간이 있었다. 나 역시 중요한 내용이라고 여겼기에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청을 했다.

신청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Y에게 개인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은 왜 신청하셨죠??" 날이 서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일인가. 하지만 불안이 크고,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는 그에겐 나의 참석 자체가 위협이 되었던 거 같다. 그때 확신했다. 이 사람은 겁이 많구나. 엄청 불안하구나.

상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석사 생들에겐 자신이 하는 말이 뭐라도 좋아 보일 텐데, 뭐라도 조금 아는 사람에겐 자신이 하는 말이 부족할 거라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그 당시 나보다 상담 경력도 최소 5년 이상 앞서고 있던 사람이었음에도, 그 두려움은 너무도 컸나 보다.

난 그때도 지금도 생각했다. 청자가 누구든, 내가 나의 내용에 자신이 있다면 믿음이 있다면 겁먹을 필요는 없으며, 모르는 사람에게도 뭔가를 전달할 때는 아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만큼 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강약, 약강의 태도인가.

이 시간이 석사생 대상으로 영업하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실제로 어떤 이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이벤트나 사업을 홍보하기도 했다.) 정말 청자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일까? 정말 청자를 생각해서 진행되는 시간일까?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W 역시 방중 세미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쯤 G와 W, 둘과 자주 시간을 보내면서 친밀해진 때였다. W와 내가 시간을 보낼 때, G를 불러서 소개도 시켜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이미 친하게 지냈던 석사생 J, 갓 입학한 석사생 G, 유일하게 괜찮았던 박사생 W. 이렇게 넷이 자주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이들의 중심엔 내가 있었다.


G와 W는 성소수자(퀴어)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W는 자신을 페미니스트(feminist)라 정체화하며, 여성 인권에 있어서 매우 열정적이었다. 나와 J도 인권과 관련된 주제에 큰 가치를 두고 있었기에, 인권(퀴어, 여성, 사회 불평등) 우리 넷의 공통 관심사가 되었다. W가 진행한 방중 세미나 주제도 퀴어였다. 세미나가 시작되었고, W는 석사생들에게 소리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중에 그가 했던 말이 있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박사 과정에 들어왔지만 저는 정말 모르는 게 많답니다."

"저는 석사 학생 여러분들과 다를 것이 없어요."



나는 저 표현을 너무도 해맑게 외치는 그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떤 의미에서 저 표현을 사용했는지 알았기에,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마음으론 불편했다. 박사 과정은 석사 과정보다 진중해야 하며, 자신의 학문적 방향성과 깊이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말이 동시에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열악한 한국의 대학원 교육에서 저 말은 무책임하다. 모르는 것이 많다면, 알려고 노력해야 하며, 적어도 모르고 지나간 것이 자랑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심리학 대학원에 입학하는 많은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무엇은 연구하고 싶은지, 어떤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입학한다. 심지어 졸업을 한 이후에도, 이 직종이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 자신의 상담 전문성에 무엇이 부족한지 관심이 없다. 졸업장, 수료증, 자격증에만 혈안이 되어 부와 명예만 좇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적어도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안일한 태도는 정말 위험하다. 그리고 그게 마치 당연하고 타당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정말 부적절하다. W 역시 자신이 그렇게 여기더라도 그 말을 저렇게 공식적인 자리에서, 석사 학생들에게 당당하게 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태도를 갖춰야만 했다.


오히려 "저는 지금도 이렇게, 저렇게 노력해 오고 있어요. 우리 함께 해봐요"였다면 어땠을까?






다음에도 이렇게 공부 안 해도 되겠네~
굳이 열심히 안 해도 시험은 잘 보겠는데?




그 이후 G와 W 모두에게 실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G에게 더, 신뢰가 산산조각 나는 경험이었다.


넷이 이렇게 친밀하게 지내는 나날이 흘러가고 있을 때쯤, 다음 학기 수강신청 기간이었다. 나는 이때 마지막 학기였고, 연구에 도움 되는 수업을 마지막으로 수강하면서 수료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여러 선택지를 고민했다. 특히 연구 방법 중에서도 통계와 관련된 연구 방법 수업을 듣고자 했다.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주제였지만,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었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 당시 한 단계 더 심화 수준의 수업이 일반대학원에서 열렸으나, 그 수업을 듣기엔 기초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때 그 수업을 들었다면 실제로 정말 많이 배웠을 것 같으나, 정말 힘들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좀 더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는 (박사 학생들은 기피하는) '기본 통계 수업'을 신청하게 된다.




*소소한 기억:

앞서 여러 연구에서 기괴한 서론 글작업을 통해, 입만 번지르르한, 그러나 지도교수의 우쭈쭈를 받아오던, 박사 학생 D를 우연찮게 학교 복도에서 만났다. 그때도 어떤 수업을 듣는지,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선생님은 어떤 수업 들으세요? 저는 교육대학원 통계 수업 신청했어요."

"일반 대학원에도 통계 수업 있는데, 그건 안 들으시고요?"

"아~ 알죠. 근데 교육대학원 수업이 정말 쉽고 날로 먹기 좋아요. 왜냐면 기껏 해봤자 가장 어려운 것이 회귀분석이거든요 ㅎㅎ 완전 꿀이죠"

"..."


나는 다시 한번 D에게 한심함을 깊이 느끼면서,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저렇게 공부하기 싫으면 대학원은 뭣하러 다니는지'라고 생각했다. D는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는 쉬운 수업만 골라 들으며, 일반대학원 학생임에도 난도가 낮은, 과제와 시험이 현저하게 쉬운 교육대학원 수업을 듣고 수료했다.

D는 이후에도 지도교수 H 아래에서 여러 연구 과제를 진행하였고, (저자에 이름이 들어가며) 연구 실적을 쌓았고, 자신의 졸업 논문 주제도 지도교수에게 받았고, 심지어 천만 원 이상에 달하는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학위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보통은 자비로 학위 연구를 진행하며 규모가 엄청난 프로젝트를 제외하곤 몇 백만원 정도도 큰 지원이다). 하지만 연달아 터진 IRB 이슈와 그의 학위 연구 논문을 읽으면서, 정말 자신의 상담 전문성에 의미 있는 주제, 그리고 양질의 연구를 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이 역시 내가 경험한 심리학 대학원의 역한 단면이다.





해당 수업은 석사 학생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사 학생에겐 필수 수업은 아니었고, 석사 학생들은 졸업 필수 수업이어서 석사생들은 모두가 그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랬으니 W와 나는 예외적인 케이스였다. 박사 학생이었으니까.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그 수업을 G, W와 같이 들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혼자였다면 그런 실망은 할 필요가 없었겠지.


해당 통계 수업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해당 수업은 쉽지만은 않았다. 통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분석 방법의 공식, 원리, 그 이해를 수식적으로 개념적으로 공부하는 수업이었다. 교수는 이를 하나씩 천천히 설명해 주기 때문에 수업만 잘 따라가고 복습만 해도 중간 이상은 충분히 갈 수 있었다.


G와 W, 그리고 나는 같은 연구실에서 해당 수업을 듣곤 했다. 온라인 zoom으로 진행되었다. 솔직히 그 수업이 재미있진 않았다. 교수의 말투도, 내용도 지루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열심히 들었고, 혹시라도 놓친 것은 없는지 복습을 하며,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표시해 두고 여러 번 다시 보았다.


매번 수업을 들을 때, 조금 이해가 안 되거나 놓친 부분이 있을 때는 G와 W에게 묻곤 했는데, 그게 같이 수업을 듣는 큰 장점이었기에, 그들은 한결같이 "내내 졸았어. 하나도 생각이 안 나. 모르겠어. 나도 이해 못 했어"라며 학구적으론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오히려 그들의 태도를 보며 속이 터지고 답답했다. 그들은 항상 졸았고, 수업 내용이나 과제에 대해 토의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그들은 이해를 못 했다며 오히려 나에게 답을 되묻곤 했다.


그래도 그들을 이해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도 수업을 안 빠지고 매번 출석하는 게 어디냐 하는 마음이었다.


수업 외 시간에, 그들은 해당 수업의 공부와 시험에 대해 칭얼거렸고 걱정했다. 그래서 나도 마음이 자연스레 더 갔다. 그들이 놓친 게 있으면 설명해 주고, 시험 때도 나는 이미 다 공부하고 복습도 끝낸 내용이지만, 내가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그 둘에게 설명하는 시간을 따로 빼서 갖기도 했다.


나한텐 시간과 노력의 소모였으나, '같이 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자 앉아봐. 내가 설명해 줄게. 핵심만 짚어줄게"라며 그들을 주말에도 불러 같이 공부하곤 했다.


솔직히 수업 내용은 대학원 수준도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상담 전공 학생들은 통계를 기피하고 모르기에(실제로 그렇다), "나는 수학을 못해"식으로 지나가는 과목이다 보니, 기초적인 수준임에도 다들 어렵다고 말했다. 어렵다. 어려울 순 있어도, 그것이 기본적인 공부를 하지 않는 타당한 이유는 아니었다. 박사학생 D에 비하면 G와 W는 양호한 편이었으나, D는 너무 최악의 경우이니 그와 그들을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이후에 들었으나, 그 당시 상담 전공 석사 학생 중 일부는 부정행위를 해서 시험을 쳤다고 했다. 누군가가 보여주고, 다른 누군가가 베꼈다고 했고, 다른 심리학 전공생이 이를 보고 한심하게 여기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전해주었다.


그래도 G와 W는 부정행위 없이 놓친 부분을 나와 같이 보충하며 그렇게 그 수업을 한 학기 동안 함께 수강했다. 그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에겐 비효율적인 과정이었으나, 그저 그들과의 시간이 즐거웠다.


대망의 최종 시험이 다가왔다. 최종 시험은 주어진 수식을 가지고 수기로 계산해서 제출하는 과제였다. 나는 언제나 해오던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시험을 치렀다. 매번 공부했던 부분이었으나, 시험에서 다시 만나니 긴장되었다. 그렇게 쉽다고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할 만큼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갔던 때였다.


뒤이어 G가 연구실에 도착했고,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 당시 연구실엔 나와 G, 둘 뿐이었다)



"아, 할만하던데? 다음에도 이렇게 공부 안 해도 되겠네~"

"굳이 열심히 안 해도 시험은 잘 보겠는데?"




난 그 순간에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그렇게나 충격적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지만, 그 비아냥 거리는 말은, G가 내뱉을 말은 아니어야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적어도 본인들 공부를 열심히, 희생하며 노력한 내 앞에서 내뱉어선 안 됐다. 그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내가 그들에게 굳이 내 시간을 써가면서, 그들이 놓친 필기나 내용을 공유하면서, 나의 가치관을 억누르면서 그들에게 가졌던 진심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에겐 그 시간과 노력이 한없이 가볍구나.




더 열심히, 더 성실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다음엔 노력해보겠다는 말이 아니라, 저렇게 '그저 점수만 받으면 끝이야. 쉽게 쉽게 가자! 그거면 돼!' 식이었구나. 내가 G에게 가장 좋아했던 부분이 성실함이었기에 이 실망감은 더 컸을까. 그때도 그 이후에도, 나는 이 분노와 경멸, 배신감에 대해 되돌아보았다. 이토록 강렬한 감정이 드는 건, 내가 그에게 가졌던 나의 예상보다 컸던 기대였을까. 노력을 가볍게 만들어버리는 그의 오만이었을까.


그때 이후로 나는 G에게 마음에 분명한 경계가 생겼다. 복구되지 않는 어떤 선이 그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토록 많은 얘길, 서로에 대해 어떤 것을 중요시하고, 어떤 것에 뜻을 다하는지 이해하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그의 민낯이 나에겐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보통 저런 말을 하지 않았던 G였기에, 그의 표현이 더욱 나에게 꽂혀 들어왔을까. 아니면, 그제야 드러난 그의 진짜 속마음이 저거였을까. 과정을 가벼이 여기고, 노력보단 결과만 치중하는, 오만한고 나태한 태도.






“Et tu, Brute?”



나의 실망은 행동으로 드러났다. G를 보기도 싫어져버렸고, 그렇게 그가 있는 공간에 조금이라도 같이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 기류를 느낀 W는 나에게 찾아와 그 이유를 물었다. 나는 그때 W에게도 G에게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태도 역시 G와 다를 것 없이 한심했기에(예, 수업시간마다 졸고, 수업내용을 전혀 숙지하지 않는), 처음엔 그에게도 내 진심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 W가 진지한 대화를 하자고 요청했고, 단둘이 마주했을 때 "네가 어떤 마음이든 듣고자 해. 기다릴게"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조금 움직였다. 그래서 W에게 먼저 나의 심정을 전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W에게 진심을 털어놓았던 그 순간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던 거 같다. 이 순간을 가장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들과 진심을 나눌 수 있다고 오판했던 순간을.


그때 나는 크게 착각했다. G와 W가 차이를, 갈등을 담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누구보다 취약하고, 불안한, 진심을 나누지 못하고 회피하는 그 둘이었는데 말이다. 거기다 나와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가장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들을 진심으로 믿었던 순간을.
믿어도 된다고 잘못 판단한 순간을.




그때 W에게 이전에 하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너는 네가 인간중심이론을 기반으로 상담을 한다고 했는데, 너는 그 이론의 전문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



W는 말했다.

"나는 내가 나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해. 즐거울 수 있을 때 즐겁고. 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해."






“Betrayal never comes from your enemies.”




이때부터였다.

그들에게 갖고 있던 틀이 깨지고 산산조각 나던 순간이.



한국 심리학 대학원, 심리치료/심리상담 분야에 정말 많다. 그들처럼 생각하고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심리상담을 공부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론을 공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린 그다음을 묻지 않고 지나간다.




공부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전문성을 갈고닦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수업을 열심히 듣는다. 이론 공부를 성실하게 한다. 교육을 많이 듣는다. 수료증이 많다. 경력이 길다. 연구 실적을 낸다. 저자에 포함된다.....


나는 그저 궁금할 뿐이고, 실제로 경험하고 싶은 것뿐이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공부한다. 노력한다'라고 말하는 그 진심을 경험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런데 너무도 없다. 실체가 없다. 그들이 뭔가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중심이 없고 본질이 없다. 그래서 더욱 알 수가 없다.


의아하다. 답답하다. 혼란스럽다.

그들이 매번 말하는, 그 '노력'은 무엇인가?



자신이 공부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고, 이를 이해하고자 시간을 쓰지 않는 것인가.

기반으로 한다는 이론에서 말하는 개념이나, 연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가는 것인가.

개인으로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이,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전문가로서 필요충분조건인가.

심리치료에 관심을 둔다고 하지만, 실제 심리치료와 직접 연관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인가.

연구에 진심이라고 하지만, 연구에 참여해서 주체적으로 필요성과 임상적 함의점을 고심한적 없고, 자신이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지, 연구하는 무엇이 가진 의미를 떠올리지도 않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도대체 무엇이 그들이 말하는 공부인가.



W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인간중심이론, 정서중심치료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인간중심이론 저서나 연구에 대해 공부하거나 그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최소한 그 이론을 한다고 전문가 소개에 적어두었다면, 개인적으로 시간을 가지고 해당 이론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그저 그는, 인간중심에서 말하는 몇 개의 개념만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이 전문가로서 충분하다고 여겼다. 공부하겠다고 들어온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연구를 위해 심리치료를 위한 고민을, 노력을 하지 않았다.


G는 어떤가? 말할 필요도 없이 이미 그가 갖고 있던 공부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말 필요한 중요한 공부에서 그 과정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에서 이미 그가 얼마나 가볍고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임하는지 알 수 있다. 본인이 특정 대상을 위해 심리상담을 공부한다고 했다면, 그와 관련된 교육을 찾아들어야 할 테고, 사회학이 아닌 심리학에 들어온 목적을 잊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00 대상에 대한 관심은 관심일 뿐이다. 실제로 그들이 겪는 아픔과 괴로움, 고민에 도움이 되려면, 심리치료를 공부해야 한다. 왜 상담 전공에 들어왔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소소한 기억:

W에게 가장 크게 실망하고 절망했던 경험이 있었다. 앞서 말했듯 그는 페미니스트다. 가부장제, 성차별, 성불평등 구조를 인식하고 비판하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변화를 지향하는 개인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성별만이 아니라 여기엔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려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의지가 담겨있다.

어느 날 W는 나에게 대학원 소식이라며 인지심리학 전공에서 자행되는 사건을 말해줬다. 요는 그랬다. 인지심리학 전공은 심리학 전공 중 가장 위계적이라는 임상심리 전공과 악명을 공유할 만큼 유명하다. 선/후배, 박사/석사 위계가 끔찍할 수준으로 반복되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인지심리학과에 유명한 박사 과정생 S가 있었다. 그는 안 친한 사람, 친한 사람 가릴 것 없이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었고 사람들에게 병*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S는 왜곡된 사고를 했고,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이후 알고 보니 그는 심리학과 내에서 악명 높은 인간이었다. 그 역시 동 대학원 출신의 박사 학생이었다. 그와 직접 마주칠 일이 없었으나, 오랜만에 W를 통해 근황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인지심리 연구실에서 석사생 하나가 S에게 찍혀서, 그에게 각종 모욕과 언어폭력, 따돌림을 당해서 고소까지 고려할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그 석사학생은 S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녹음파일도 준비했다고 했다. (여전히 S는 동대학원과 학부 강의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기가 찼고,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인간이 아직도 대학원에서 떵떵거리며 활동한다는 것도, (인지심리학 교수는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라 방송에 자주 출현하곤 했는데 본인 연구실에) 저런 심각한 폭력이 자행되고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도, 아무도 이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 다는 현실도, 그리고 그와 계속 인연을 이어간다는 W의 스탠스였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배척하고 손절해도 모자를 판국에, S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그의 행보가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W에게 대놓고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어렵게.. 물어보았다. (그 전에도 간접적으로 물어봤었기에)



"아니, 근데 너는 S가 그런 만행을, 대학원의 최대 약자인 석사 학생에게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그와 어떻게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거야? 직접 말을 언급하지 못하더라도, 그와 관계를 이어갈 필요는 없잖아."



"음, S가 나한테 그런 행동을 한건 아니잖아. 나한테 벌어진 일은 아니잖아. 내 일은 아니잖아."



웃음기 없이 담담하게 말하던 그의 표정이 몇 년이 지났음에도, 선명하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참으로 충격적이다. 그런 말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교육을 듣거나, 자신을 소개할 때 퀴어나 여성주의를 빼지 않는 W를 보며, 정말 위선적이라고 느꼈다.




그가 내세우고 노력한다는, 사회적·문화적·정치적 변화를 지향한다는 태도는 무엇인가? 그저 말뿐인가? 성별만이 그의 요점인가? 그 대상이 여성이 아니라면, 그걸로 된 건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위계적 폭력은 별거 아니라는 것인가? 그게 그가 생각하는 인권이고 평등이라면, 내가 추구하고 실천하는 자유와 인권, 존엄성에 갖는 가치관과 너무도 다르다.


성별, 성별정체성, 인종 등 모든 것에서 소수자는 존재한다. 특정 항목에서 뿐 아니라, 인권 침해, 거기서 발생하는 존엄성의 침해와 불평등에 우리는 기민해야 한다. 그리고 옳지 않은 것에 행동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래서 소수자들은 연대가 중요하다. 왜 우리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실천을 하고, 시위와 (불매)여러 운동에 참여하고, 성명에 동참하고,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이겠는가?


나한테 벌어진 게 아니니까, 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직접 겪은 불평등이 아니니까, 내가 겪은 폭력이 아니니까. 성별과 관련된 폭력, 불평등과 침해가 아니라서??


그건 절대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게 그가 지향하는 방향이라면 나와 전혀 같지 않다. 그리고 그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W가 크게 실망스러웠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은 멀리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심리학회 산하,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 윤리규정 中

가. 전문적 능력

3. 상담심리사는 문화, 신념, 종교, 인종,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신체적 또는 정신적 특성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4. 상담심리사는 자신의 활동분야에 있어서 최신의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연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참여한다.

5. 상담심리사는 자신의 전문적 능력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정기적으로 전문인으로서의 능력과 효율성에 대해 자기점검 및 평가를 해야 한다.





나는 적어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일치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 동료를 곁에 두고 싶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가치를 이뤄가는 수많은 과정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고,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고자 연대하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불평등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고, 충분하거나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이를 위해 기꺼이 되돌아보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멀리 하게 된 대학원 학생들' 시리즈 끝.

다음 화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