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대가 계속 나에게 책임을 돌려요. 나만 문제래요."

13

by 로지

읽기 전, 안내

본 칼럼은 커플과 부부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도와드리기 위해 무엇을 알고 함께 노력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지양합니다.

본 칼럼은 시스젠더 이성애 커플만을 중심으로 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성별정체성, 성적지향성, 애정지향성을 존중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인물, 상황 등은 실제가 아니며, 이해를 돕기 위해 창작되었습니다.



SE-d52ed80c-3a1b-4994-a986-6e04217b663e.jpg




마주하기




어느 누구든 처음부터 갈등하지 않는다.



A와 B는 이미 몇 년을 함께한 커플이다. 여느 커플처럼 그들도 처음에 만났을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잘 보이기에 바빴다. 특히 처음에는 A의 대시가 정말 컸다. 이전 연애에서 상대의 무관심에 지치고 상처받아온 B에게는 A의 노력이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부분을 차지했다. B와 대화를 하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는 것은 물론, B와의 시간을 위해서는 기꺼이 퇴근 후 피곤함은 뒤로했다.



두 사람의 말하는 빈도는 때에 따라 달랐지만, A는 보통 뭔가 현실적인 조언을 주거나 지가 놓치거나 하는 것들을 딱딱 정리해서 논리 정연하게 말해주거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주는 편이었다. B는 그 모습에 안심할 때가 많았고, 자신의 속상함이나 이야기를 안 들어주는 것은 아니기에 때로는 원하는 만큼 자신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펴주지 않더라도,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만남의 기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1년, 2년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A와 B 둘 모두 뭔가 마음속에 까끌까끌 거리고, 당연히 처음처럼 서로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은 짧아졌다. 특히 둘 모두가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 생겼는데, "아.. 상대가 저렇게만 안 하면 괜찮은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라는 마음이었다.



둘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불편함을 조금씩 표현하긴 했으나, 예를 들면 서운한 표정 짓기, 말끝을 흐리기, 뭔가 기운 없는 듯한 모습, 피곤하다며 핸드폰을 잡고 있기, 짧고 냉랭한 반응 등 A와 B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서운함을 상대에게 표현하긴 했으나, 알아차려주길 바랐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의 반응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오히려 짜증 나고 보기 싫은 방향으로 향했다. 괜히 누가 먼저 말 한번 꺼냈다가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감정이 격양되기에 이 조차 포기하기 시작했다.



둘의 시간은 이전처럼 따뜻하거나 재밌지 않았다. 아직 서로에게 애정이 남아있는 건 확실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덮어주기엔 너무도 작게만 느껴졌다.



photo-1501772418-b33899635bca.jpg
photo-1618337353873-98e7d40ca4c7.jpg




인정하기



우리는 불편할 때 발을 빼고 싶어진다.

침묵하기 쉬워진다. 상대를 비난하기 쉬워진다.



A와 B는 고민 끝에 커플 심리상담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솔직히 비용도 시간도 부담되긴 했으나, 그래도 이렇게 불편함을 안고 지내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가장 큰 계기가 됐던 일이 있었는데, 며칠 전 결국 두 사람은 부딪쳤다. 참고 참아오던 것을 터트려 버렸다.



B는 자신의 서운함을 A에게 말했으나, A는 오히려 B의 그 서운함은 자신의 탓이 아닌 B가 피곤하고 부정적으로 상황을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B가 힘 없이 우울하게만 생각 안 하면 될 일인데, 문제는 없는데 항상 축 처져서는 자기 안에서 부정적인 회로를 돌리는 것이라고 짜증을 내며 말했다.



B는 속상했다. 안 그래도 서운하다는 얘길 꺼내기까지 많은 고민과 속앓이를 하다 하다, 그래도 조금은 나누고 풀고 싶은 마음에 얘기를 꺼낸 건데 '그건 속상할 일이 아닌데 내가 유별나고, 예민해서야'라는 식의 말을 들은 것이 상처였다. 뭔가 나만 문제이고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자신이 축 처져있고 기운이 없는 이유 중에는 A가 예전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뭔가 할 말을 꾹꾹 누르면서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 B의 탓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담실을 찾았고, 둘은 서로의 모습을 마주했다. 서로가 지금 상대에게 어떻게 하고 있고,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상담자를 통해서 마주했다. 상담자는 한 번의 상담으로 원하는 만큼의 변화된 모습을 바로 경험할 수는 없다고 했다.



둘은 처음에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상담자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이미 아는 얘긴데, 맞아요 우리는 그 부분이 달라요. 그래서 힘들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상담자는 말했다. "맞아요. 두 분이 어떤 부분 때문에 서로가 고통스러운지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 인정하지는 않네요"



그렇다 A와 B는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진심으로 인정하진 않았다. 불편하고 괴로운 일이니까 그냥 머리로만 알고 그냥 넘겨버렸다.



A는 상대에게 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B가 하는 말이나 표현은 지의 문제이고, B가 알아서 잘하면 힘들 일도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B가 서운하고 괴롭다고 할 때마다 '누구나 다 그 정도는 괴로워. 그렇게 여기는 게 네 문제야'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면 되는 일인데 왜 저렇게 며칠, 몇 주간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고 스스로 괴롭히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한두 번도 아니기에 옆에서 들어주는 것도 지쳐갔다. 피곤할 때는 더 그랬다. "또 저 얘기네, 또 저 표정이네.. 하..라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내 탓이라니?? 그게 왜 내 탓이야???" 답답하고 화가 났다.



B는 A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다. 자신을 좋지 않게 뭔가 부족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고 느꼈다. 항상 자신이 뭔가를 얘기할 때마다 눈빛은 텅 비었고, 뭔가를 말하고 싶지만 꾹꾹 눌러 담고 마음에 없는 말로 위로하고 빨리 넘기려고 한다고 느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하는 얘기가 이상하고, 내가 부족하고 문제가 있고, 잘 못했다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때론 약간 서운하기만 했지만 어떨 때는 너무 수치스럽기도 했다. 서러웠다. 조금만 더 잘 들어주고, 내 감정이 어떤지만 물어만 봐도 나는 이렇게 예민하게 굴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두 사람은 오래 만나온 시간만큼이나, 상담을 통해 두 사람의 행동이나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놓고 인정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오랫동안 서로를 향한 오해와 미움, 서운함을 마음에 안고 지냈기에 갑자기 변할 순 없었다.


가장 먼저 했던 시도는, 두 사람이 갈등하고 부딪쳤던 그 순간에 서로가 느낀 감정에 집중해서 이를 먼저 꺼내놓고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평가하기 전, 우선 자기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상대방의 말을 듣거나 행동을 볼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그게 자신에게 어떤 부분에서 괴롭고 고통스러웠는지를 인정하기, 그리고 꺼내놓기를 계속 연습했다.




photo-1507537362848-9c7e70b7b5c1.jpg
photo-1598316560463-0083295ca902.jpg




함께 노력하기




건강한 관계에선 책임을 상대에게만 전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만' 전가하지도 않는다.



커플 양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다 이해가 될 만큼, 타당하다. 그만큼 각자는 자신이 가장 맞다고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정말 중요한 사실이지만, 커플 모두가 인정하기 어려워하고 보지 못하는 큰 부분은 그 마음 아래에 은은하게 깔려있는 "내가 맞잖아. 쟤가 틀린 거라고!"라는 태도다. 이 태도는 "나는 잘못 없어, 상대가 잘못이야. 상대만 고쳐지면 되는 일이야"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이를 상대에게 강요하고 주장하는 방식이 다양해진다. 어떤 이는 겉으로 보기엔 부드럽고 다정하더라도 그 의도는 "그러니까 네가 달라지면 될 일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이는 논리적인 근거와 인용을 들어가며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한다. 누구가 그러더라, 뉴스에서 봤는데 그렇더라, 책에서 봤는데.... 등 엄청난 자료를 무장해서 상대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든다.




여기서 문제는, 갈등의 시작은 자신의 책임을 모른척하는,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갈등의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갈등의 시작과 원인을 상대방 또는 한쪽에만 두려는 모든 시도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이는 표현이 어땠듯 간에 의도가 무엇이었든,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든 애정하는 마음에서 했든 간에 소용없다. 오히려 이는 관계를 아프게 만든다.


만약 당신의 관계에서도, 당신이든 상대이든 "너만 잘하면 돼. 나는 문제없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관계를 악화시키는 도화선에 불을 붙인 사람이 된다.


어느 누구도 "네가 문제야!"라는 주제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개선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라면 그러겠는가? 설사 그 말이 정말로 논리적으로 객관적인 정보로 누군가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이를 공유하는 친밀하고 애정하는 대상이 비난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는데, 어느 누가 기분 좋게 이를 개선하고 싶어 지나? 그건 환상이다.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는, 커플이 같이 공유하는 불쾌한 느낌, 불편한 기류는 서로의 말과 행동의 내용이 아니라 그 방식에서 비롯된다. 즉 What 보다 How에서 더 많이 비롯된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이미 불쾌해진 마음은 절대 논리적으로 풀 수 없다. 이건 수학공식도 토론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부정하고 튕겨낼 것이다.



이 마음을 풀어주려면, 공감하고 이해하고 충분한 위로와 회복의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공감하고 이해하려면, 그리고... 그전에 둘 모두가 진심으로 이를 인정하려면? 나의 감정, 그리고 상대의 감정에 접촉해야 한다.

하지만 서로가 이미 불쾌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이는 둘이서 알아주기가 어렵다. 한쪽이라도 기분이 덜 상하고 이를 '먼저'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와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지 않다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커플 상담에서 가장 먼저 하는 시작이 각자의 감정을 먼저 충분히 알아주고 나누게 된다. 많은 커플들이 이 과정을 첫 회기를 포함한 몇 회기에 진행하면 "이미 아는 걸 왜 계속하는 거야?"라고 답답해하지만, 이는 중요한 준비운동이기에 그렇다.



준비운동 없이 본 운동으로 들어갔을 때 어떤가? 쥐가 나고 숨이 턱 하고 막히고 근육은 놀란다. 오히려 그다음을 망쳐버리고 만다. 하지만 준비운동을 잘하고 나서 본 운동에 들어가면? 준비 운동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본 운동이 잘되는 것에 만족하면서 기억한다. 그래서 준비운동의 중요성은 잘 잊힌다.



하지만 명심하자. 당신의 갈등은 1시간 만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 어려움은 일주일만 지속되지 않았다. 몇 년에 걸쳐서 수없이 많은 둘만의 대화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니 이를 풀어주기 위한 준비운동은 중요하다.



인정하기.

커플 사이의 갈등은 절대 한쪽의 책임이 아니다.



진정으로 갈등을 개선하기 원한다면, 두 사람 모두 이 갈등과 어려움에 나의 책임이 분명 존재하고, 기꺼이 이를 펼쳐서 함께 살펴보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그래야 두 사람이 기꺼이 서로에게 안전하게 기대서 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관계는 건강할 수 없다. 당신이 원하는 건강한 관계는 서로가 충분히 서로를 믿고 지지해 줄 수 있어야 가능하다.




pexels-ketut-subiyanto-4651067.jpg


#갈등 #대화방법 #감정 #교류 #교감 #인정하기 #부부 #커플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