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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비난했다.
언제가 처음인지 알기가 어렵다.
아마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괴로운 감정을 계속해서 연달아 느끼는 것부터였을까.
불안, 두려움, 분노, 원망, 울적함..
감정이 계속 쌓이다 못해 합쳐지고 결국에는 어떤 모양인지도 알기 어렵게 덕지덕지 서로 엉켜 붙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처음에는 누군가를 향하던 감정이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모습...으로 번져갔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고통의 근원은 내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 주, 한 달... 몇 년, 수십 년에 걸쳐 나를 갉아먹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너무도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비난의 말, 평가의 목소리, 어딘가 짜증이 나있고 싫증이 났다는 톤의 목소리가 곁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런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있던 가벼움도 앗아가진다. 나는 다시 우울한 굴에 들어가 버리듯 그 안에서 벗어날 힘을 잃는다.
스스로 비난하며 지쳐있을 당신에게
위 문단을 적으면서 지금껏 필자가 상담을 통해 만난 내담자는 물론, 때론 나, 그리고 다른 주변의 누구의 감정을 마음으로 그려가며 적어보았다. 그 마음이 너무도 공감이 되면서도 얼마나 큰 고통일까 잠시 가늠해 보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말은 정말 잔인하다. 그 고통은 이뤄 말하기 어렵다. 타인이라면 잠시 연락을 끊을 수도 도망칠 수라도 있지, 나 자신에게서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상담에 와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나눌 때, 빠지지 않는 한 가지 중에 하나가 자기 비난이다. 우울하던, 불안하던, 분노하던, 슬퍼하든 간에... 찰나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자신에 대한 비난은 어디서든 툭 하고 튀어나온다.
이런 목소리, 이 비난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당연히 개인차는 있겠지만 첫 번째는 조건적 존중에서 시작되곤 한다. 꼭 어릴 때 과거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특히 그 누군가가 나에게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되는, 인정받고 위안받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그 사람이 나에게 건네는 존중은 어느 무엇보다 강한 자극이자, 위안, 보상... 이 된다.
그 덕분에 나는 존재할 가치를 느끼기도 하고,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나는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야라는 중심이 된다.
여기에 다른 상황이 겹쳐지면 더 단단하고 치명적으로 변한다. 결과를 중심으로 평가받는 환경, 물질적 성취가 가장 큰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 필요 이상의 지나친 경쟁 등 이러한 환경은 이미 약간은 형성된 삶의 가치, 삶의 의미를 만든다.
그럼, 다시.
있는 그대로의 존중과 인정이 아닌, 특정한 조건(보통은 물질적, 평가적 기준 등)을 만족시켜야지만 존중을 받고 안정감을 경험한다. 인간은 시행착오의 존재이다. 처음부터 어떤 존재든 간, 어느 누구도 100% 모든 조건과 기준에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면 결과는?
평가. "너는 도대체 뭐가 문제니? 다른 사람들은 다 해내는 걸 왜 못해??"
비난. "너는 정신머리가 글러먹었어. 배가 불렀지. 네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 네가 그 모양이라 모두가 떠나는 거야 너는 실패작이야"
여기서 오는 부담과 괴로움,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다.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 자기 자신에 대한 고민은 자신에 대한 의심부터...... 결국엔 자신을 비난하는 상태까지 이른다.
이는 실제의 사실과 다름에도 이를 견디고 고통을 받는 당사자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 바꿀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다. 그러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더욱 커진다. 바뀔 수 없다는 난 이미 늦었고 실패했다는 생각, 고통스러운 감정은 합쳐져서 나라는 사람을 더욱 갉아먹게 된다.
시작된 자기 비난은, 자리 잡고 습관이 되며 고착되어 계속해서 어떤 경험을 하든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한 번의 겹이 씌워져서 받아들인다. 바로 부정적이고 평가적인 겹.
"저 사람의 말은 거짓이야"
"내가 잘할 리가 없어. 이건 우연이야"
"내가 문제야. 나만 없으면 돼. 내가 모든 원인이야"
"지금은 저렇게 말하지만, 분명 뒤에선 다른 마음일 거야."
정서중심치료(EFT)에서는 이에 대해서 단순한 감정으로만, 생각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경험은 여러 부분들이 구성하고 있는데, 감정은 물론이고 어떤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신체적 반응까지 이 모든 것이 전체로 구성된 틀(정서도식, emotion schemes)이 된다.
이 틀이 깨지지 않는 한, 대체할 무엇이 없는 한 비난의 고리, 자기 비난은 멈출 수가 없다. 그리고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감정은 계속 당사자를 괴롭히고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어떨 때는 한 번에 앗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씩 갉아먹는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우울해요. 불안해요"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너무 화가 나요"
"이 감정만 안 느끼면 되는데 이걸 못 하겠어요. 이 감정만 없으면 되는 건데!"
감정은 잘못이 없다. 당신의 그 느낌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 태도가 오래 자리 잡았기에 지금 나의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인 감정까지도 부정하고 거부하며 이 틀에서 계속 돌게 된다. 그리고.. 고통은 반복되고 계속해서 커지며 쌓여가게 된다.
이 틀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지 못한다면 바꾸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 틀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떠나기 위해서는 그곳에 닿아야 한다. 도착하지도 않은 곳을 떠날 수는 없다.
그래서 정서중심치료(EFT)에선 고통스럽다고 호소하는 그 감정(정서)부터 따라가며 마음속에 자리 잡은 틀과 그로 인해 스며 나오는 고통을 살펴보며 따라간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당신이 나와 함께 하는 이 과정에서 기억해야 될 사실 하나.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무리 좌절스럽다 할지라도...
당신은 여전히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당신은 괜찮다.
"소용없잖아요"
"상황이 바뀌지 않잖아요"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여전히 그대로잖아요. 뭐가 바뀌는 거죠?"
"그래서 지금 상황이, 그 사람이 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필자가 상담자로 가장 많이 보고 듣는 당신의 표현이다.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가? 누가 이런 말을 대놓고 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입 밖으로든 마음속으로든 하는 말이다.
표현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래 몇 년간에 걸쳐서 마음속에서 자신에게 했던 비난과 다른 상담자의 말이 바로 믿어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받아들여지지 않고, 믿어지지 않고, 때로는 거부감까지 느껴지는 당신을 바라본다.
이해한다. 공감한다.
필자가 말하는 이 변화의 과정은 한 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당신의 반응은 당연하다. 절대로 나만큼은 당신의 그 말을 부정하거나 비난하지 않겠다. 당신 안에 맴도는 비난의 말은 여기까지 만으로 남겨두겠다.
필자는 실제로 상담을 진행할 때 그 말이 올라올 때, 그 자체를 무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알아주고 알아차리고 잠시 옆에 둔다. 절대 밀쳐내거나 짓누르거나 반박하지 않는다. 그 비난의 말도 당신의 일부이지 않은가? 그러면 그 부분까지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수십 번 수백 번 쌓여온 비난은
한 번의 공감과 위안으로 녹아내리지 않는다.
똑같은 시간은 아니더라도, 여러 번에 걸쳐서 녹아내린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동안 받지 못한 상처에 다가가고, 이전에 충분히 받지 못했던 안전함을 제공받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안정감을 경험한다.
항상 울부짖고, 거세게, 거칠게 요구하거나 소리쳐야지만 겨우 얻어냈거나... 혹은 그럼에도 얻지 못하고 받지 못한 이해와 인정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경험할 수 있음을 느낀다.
낯설다.
이게 뭘까 싶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어색함과 거북함이 들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느낌인데도 마음을 놓고 받아들이기는 너무 괴롭다. 바라던 것을 앞에 두고 몸에 두르고 있음에도 도저히 내 옷 같지 않고 뭉클함과 허탈감에 눈물이 흐른다. 목이 메고 심장이 쿵쿵 뛴다.
당연하다.
괜찮다.
그 느낌을 허용해 주자.
전처럼 꾹꾹 눌러 담고 밀어 넣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괜찮다... 괜찮다.. 어색하고 부끄러운 느낌이 순간에 들더라도 그 조차 괜찮다. 감정은 언제나 당신을 해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어떤 부분이 가장 따끔한지, 뭉클한지,... 깊게 와닿는지 알려주는 것뿐이다.
필자는 당신과 그렇게 교감하고 안정감을 공유한다. 실제로 경험한다.
안정감은 주장한다고 거칠게 다룬다고 생기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하나는, 상담에서 어떤 뛰어난 조언이나 해결책을 머리로 알게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아마 저명한 학자나 누군가가 강연을 통해 전달한 짧은 시간 동안 전달한 방법이나 해결책을 들은 우리 모두는 당장에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그랬나?
강연, 토크 콘서트, 수업, 교육 등...
당신은 그 시간 한 번으로 있던 고통을 한 번에 말끔하게 씻어냈는가?
사주, 예언, 해석 등...
당신은 그 한마디 말을 들은 뒤로, 이전의 고민과 어려움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는가?
그 답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다. 당신의 경험을 부정하지 말고 바로 보자. 솔직해지자.
상담자인 필자도 그래서 과장하지 않는다. 항상 첫 회기에 내담자를 마주하면서 꼭 안내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한 번의 상담으로 당신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그토록 그 변화를 원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진심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상담은 과정이다.
그리고, 당신의 고통도 과정에서 생겨났다.
이를 망각하고 그저 당장의 결과나 변화를 쫓는다면, 당신은 다시 자기 비난으로 돌아갈 직행노선을 탄 것과 같다. 자기 비난은 그러한 과정으로 마음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평가와 결과/해결 중심적인 조건적인 존중에서 비롯되었다.
당신이 견디고 고통받았던 그 과정을 잊는 순간, 그 고통을 이해하는 기회는 점점 멀어진다. 즉, 진정한 변화와 멀어진다.
진정한 변화, 즉 오랫동안 당신 곁에서 당신이 다시 흔들리고 괴롭더라도 나를 잃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누구보다 굳건히 믿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자원이 되어줄 중심. 그것이 진짜 변화이다.
당신이 그토록 바라고 필요로 하는, '변화'이다.
자기 비난에 오래 노출된, 익숙해져 버린 사람은 분명 여전히 긍정적인 부분이 자신에게 있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의 현재, 즉 비난으로 얼룩져있는 익숙한 현실을 흔들고 무너뜨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믿고 싶음에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다.
두근거리고 떨리는 그 느낌.
하지만, 필자 또한 상당히 질긴 사람이다. 당신에게서 여전히 경험하는, 바로 내가 경험하는 긍정성을 당신에게 전달할 것이다. 내 힘이 닿는 때까지, 내 경험이 더 이상 안 느껴질 때까지, 나의 믿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당신이 아무리 그렇게 말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느껴요 00님의 여전히 긍정적인 부분이요.
알아요. 지금은 나의 말이 거짓 같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걸요.
하지만 그렇다는 것이 실제 제가 여기서 00님에게서 보는,
여전히 갖고 있는 긍정적인 부분이 없다는 의미는 아닌걸요.
필요할 때까지, 앞으로도 저는 계속 전할 거예요.
당신이 가진 부분은 비난 외에도 정말 많고 여전하다는 것을요.
그러니... 괜찮아요. 난 지치지 않을 테니까요."
상담에서 필자가 내담자에게 이를 표현하고 나면, 대부분은 음... 어이없어하는 표정일까 아니면, 침묵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무표정으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기도 한다.
괜찮다. 상담자인 필자가 이런 말을 당신에게 전하는 이유는 당신의 어떤 반응이나 말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진짜 여전히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건 당신과는 다른 존재가 경험하는 무엇에 대한 표현이다.
자기 비난으로 고통스러운 당신에게 전한다..
그럴 수 있다.
어느 누가 그런 마음 하나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그럼에도 당신은 자신을 놓지 않았다. 자기 비난의 마음, 그 생각은 단기간에 자리 잡지 않은 만큼, 단기간에 갑자기 없앨 수 없다. 대신, 조금씩 건강한 방향으로 녹여낼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 있다면, 당신이 이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 자신의 감정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 나의 상처에 뭉클한 감정, 그동안 애쓰고 노력한 나에 대한 인정,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지금. 그렇다면 분명히 변화는 곧 찾아올 것이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괜찮은 부분이 있다.
때로는 고통받고 어려움을 마주할 뿐이지, 그 의미가 나의 다른 괜찮은 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여전히 스스로도 여전히 괜찮은 부분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비난하는 또 다른 부분이 <나>의 전체가 되어버리는 느낌을 받을 때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러니 우린 여전히 괜찮고 이를 잃지 않았다.
바로 여기 지금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상담에선 우리가 함께 같이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깊게 자리 잡은 고통을 보듬어주고 돌봐주는 과정을 갖는다. 쌓인 것이 있다면 덜어내고 엉킨 것이 있다면 풀어내면 된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우리는 함께이며, 그리고 여전히 당신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