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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비난 없이 바라보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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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

아픔을 비난 없이 바라보게 되다







"실은 제가...
이런 얘기까지 상담에서 할 줄은 몰랐어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최근 몇 주간 3개월 넘게 본 내담자들과 종결을 가졌다.


그들은 서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지만, 그들이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상담자인 나와 나눈 상담에서의 변화/경험은 놀랄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실은 내담자의 변화는 상담자는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경험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거지, 정확히 예언 같은 결과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담은 과정이다. 내담자와 상담자가 빚어가는 고유한 과정.




보통 상담에 오면 힘들고, 괴로웠던 것들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엔 개인차가 크다. 저마다 다른 경험을 했고, 경험의 종류는 물론 그 깊이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픔을 이겨내고 싶다고 온 사람, 자신에 대해서 이해하고 싶어서 온 사람, 무기력하고 우울함에 잠겨서 온 사람... 정말 다양한 상태에 있는 채로 상담에 찾아온다.


상담자인 필자가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어떤 아픔이 어디 있는지"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이 그들에게 안전한 지이다. 아무리 자신이 준비가 되어서 상처를 열겠다고 왔어도, 아픔이 어디에 있다고 정확히 안다고 해도, 그걸 그냥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은 간절하다. 그래서 그만큼,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겪을지 또 다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긴 더욱 어렵다.


내담자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또 다른 고통을 당연하게 인내해야 한다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안정감, 아픔과 상처를 마주할 수 있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살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하다. 꽤나 고집적이다. 이는 상담자를 위한 것이 아닌, 내담자를 위해서다. 그래서 타협은 없다.


그래서 어떤 내담자는 처음에 찾아와서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상담자는 물론 상담 자체에 대해서 답답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심지어 불쾌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조기 종결(합의 없이 상담이 끝나버리는 종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중심상담, 정서중심치료 저서와 연구에서도 빠지지 않는 chapter가 있다면 therapeutic relationship이다. 여기서도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 형성을 가장 우선시하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번에 만났던 내담자들도 트라우마(외상), 정서적 어려움, 정서조절, 불안 등을 호소하며 찾아왔다. 그리고 저마다 상담자인 나와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는 상담 관계를 먼저 맺었다.



상담을 끝낼 때, 한 내담자는 말했다.


"진짜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도움이 되긴 하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때론 믿지 않았던 것도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부분을 말하는 나를 발견했어요."



이 말은 한 내담자는, 상담이 끝나는 시기에는 상담자에게 정말 큰 신뢰를 보여주었고, 상담자의 말이나 표현이 자신은 두렵지 않다고 했고, 자신의 어떤 부분에 대해 말하든 평가받을 걱정되지 않는다 했다. 어떤 관계에서도 이보다도 짧은 시간 내에 비난받지 않을, 평가받지 않을 신뢰를 경험한 적은 없었다 했다.


여전히 마주할 아픔이 남아 있지만... 최소한 상담을 통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아픔은 물론 자신을 비난하고 미워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열어 보인다는 것
아픔과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


특히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을 오래 경험한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도 자주 상처받은 사람... 이들에겐 상담 관계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자신의 아픔을 덜어내고 싶은 마음에 왔으나, 낯선 이에게 자신의 경험은 물론, 자신이 (누군가에게) 지금까지 상처받고 평가받고 비난받았던... 부분을 꺼내 놓는 건 상당히 걱정되는 일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상담자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이전에는) 어떤 이도 나의 아픔에 대해 관심 갖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고 "네 잘못이야"라고 비난했다면, 어느 누가 거리낌 없이 바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건 정말.. 부담이자, 때론 커다란 공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안정감을 또 한 번 강조한다.


이 과정이 때론 따끔하고 쓰라릴 수 있음을, 하지만 언제든 버겁고 괴롭다고 느낀다면 잠시 쉬어갈 수 있고, 그 자체를 먼저 알아주고 보살펴주고 지나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과정엔 절대 혼자가 아닐 것임을. 상담자인 내가 당신과 그 순간에 어떻게든 버텨낼 것임을.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표현한다.


한 번은 그랬다. 아픔을 무조건 꺼내 보이겠다고 했던 내담자가 있었다. 상담자인 나는 우려되었고 마음이 쓰였다. 이미 그 사람은 지쳐있었고, 마음은 너덜너덜했다. 정말 한 모금의 숨이 남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기에 그건 허락할 수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내담자를 보고 있노라면 나라도 지금이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단호한, 부드럽지만 단단한... 안정감, 보호가 필요할 때였다.


상담은 나를 다시 한번 상처 입히는 곳이 아니다.


아픔을 다룰 때 따끔하고 쓰라릴 수 있다는 의미이지, 그 말이 또 다른 상처를 내야지만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밀어내고 고독하게 내버려 두는 일이다. 다시 한번 깊이 숨어들 거가 고 싶게 만드는 일이다. 그건 아니다. 그건 자신을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 내담자는 더 이상 상처를 거칠게 파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이 순간에 얼마나 처절하고 간절한지, 고통스러운지 그 자체를 나누었다.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그냥 그 감정이 그렇구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마구잡이로 막 우다다다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정서, 감정은 어디에 고통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도와주는 신호이다. 상담자는 그 신호를 감지하는 감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담자가 보이는 고통의 신호를 감지하고, 이를 내담자와 살펴보고 머무르고 마주하는 사람이 상담자이다.


고통스러운 순간, 그 내담자는 그 고통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는데, 거기서 빨리 넘어가려는 내담자와 함께 존재하며, 바로 넘어가기보다 얼마나 그 부분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는지 위로하고 살펴보는, 다정하게 머무르는 작업을 했다.


이는 쉽지 않다. 쉽지 않기에 우리가 같이 해야 한다. 상담자만이 아니라, 내담자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뭐에 대한 것인지까지 당장 다룰 수 없어도 괜찮다. 우선은 그 감정 자체가 어떤 모습인지, 자신에게 어떻게 경험되고 있는지만 나눠도 충분하다.


항상 그 부분에서 내담자는 겪었을 것이다. 타인에게서 비롯된 비난을, 공격을.....


"네 잘못이지, 네가 민감해서야, 네가 문제니까..."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머무는 것 자체가 상처 자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이해하는 상담자는 그 정서, 감정 자체를 함께 존중하며 안정감을 주려 노력한다.


그 감정이 과거에 무엇에 연결되었고, 애착이 어쩌고... 그래서 이게 어떤 부분에 의해서 이렇게 나타났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전혀.


그 순간엔 내담자의 취약하고 처절했던 고통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긴장감과 두려움 등을 우선 함께 머문다. 얼마나 혼자서 그 순간이 공포스러웠을까, 얼마나 얼어붙을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홀로 참아내고 견뎌냈을까..



"여전히 그럼에도 괜찮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엔 혼자 견디고 참아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린 지금 이 순간에 같이 있어요. 함께 하고 있어요. "



상담을 끝낼 때, 한 내담자는 말했다.

"내가 그 정도로 거기에 아픔이 있다고 알지 못했어요.. 참 힘들었던 순간이지만, 지금은 내가 그 아픔을 무시하진 않아요. 예전처럼 넘어가진 않아요. 지금은 조금이라도 들어주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나를 비난하지 않고, 상처를 탓하지 않고
다정하게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상담자로서 가장 큰 보람이 느껴질 때는, "상담자 덕분에, 상담 덕분에 뭔갈 알았어요"보단, "당신이 최고의 상담자예요"보단, 내담자가 이전에 참 어려워하고 두려워했던 감정을 조금은 혼자서도 마주하고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것, 그래서 자신을 예전처럼 미워하거나 괴롭게 보지 않는다는 것.


이를 진심으로 상담자에게 직접 말하는 내담자의 모습을 볼 때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감정, 의견, 생각 등은 말할 수조차 망설이고 힘들어하던 내담자가, 이제는 상담자 앞에서 직접 자신의 말로, 자신의 표현으로 진심을 담아 진솔하게 말하는 이 모습을 볼 때이다.


(실제로 필자와 상담을 했던 내담자들은, 그 말이 때론 상담자의 의견과 부딪치거나 갈등이 있을지라도, 그에 대해서 솔직하게 직접 나눈다.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는 표현은 물론, 그 외 다른 표현도 기꺼이 표현한다. 단,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말이다. 착각하면 안 된다 모욕적이거나 공격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이미 그 모습이 변화를, 내담자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직접 경험하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상담자로서 그 순간이 가장 뭉클하고, 가장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담자가 조금은 더 평안할 수 있다고 여기는 믿음이다.


이 경험을 한 당신을, 난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역시 처음에 내가 믿었던 대로였구나" 하는 안심의 마음을 가지고 당신에게 끝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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