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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인 사람은 '공감'을 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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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

감정적인 사람은 '공감'을 잘할까?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
왜 그렇게 예민한 거야?





우선 글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고백하고자 한다.



상담심리사이며, 심리학자인 필자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기 전까진... 괴롭고 힘들었던 때도 있었고, 자책과 후회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었다. 주변에선 이런 나를 힘들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당연히 한 번에 달성된 것이 아니다. 지금은 내가 가진 이 '부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다루고 있으며, 평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할 땐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효능감도 경험하고 있다. (상담자로서는 정말 최적의 자원이 되어주고 있다)



잠깐, 당신에게 "감정적인"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혹시 부정적이고 꺼려지고, 미숙하고 좋지 않은 어떤 느낌을 주는가? 그렇다면 그건 항상 그렇지 않다는 말을 시작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런 선입견은 사실 당신의 탓이 아니다. 한국 문화에선 오래전부터 "정서" "감정"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후손들에게, 사람에서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지금 현대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국 문화에선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정돈치 못하고 이성적이지 않음으로 여겨져 왔다.



정서와 감정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경험 중 하나일 뿐인데도, 이를 경험하는 것에 치를 떨거나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에 필자는 측은함이 든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는 문화와 사회에서 추구하는 바를 따라왔을 뿐, 100% 개인이 온전히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에 따라 조금 더 정서적으로 더 열려 있는지, 덜 느끼는지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정서적인 기질이 더 차지하고 있느냐 덜 차지하고 있느냐이다. 기질과 성격적인 측면이지, 정서 감정 그 자체가 누가 못하고 잘못되고 문제가 아니다. 정서적으로 더 또는 덜 경험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정서에 척박한 환경, 한국 문화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받아왔다. 억압해 왔다.

그저 정서적으로 더 느끼거나 예민한 것임에도, 손가락질을 받았다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죄악시하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는 것처럼 평가받았기에... 이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에까지 많은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는 것에 거리낌을 느낀다. 불편해한다. 뭔가 아닌 것을 하는 것 같은 자책을 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래서 꼭 전하고 싶다.

특히 한국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현대 심리학에선) 정서는 그저 경험이다. 당신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 생각, 감각, 행동,... 정서. 그저 수많은 당신을 구성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그 말은 즉, 정서는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정서/감정일 뿐이다. That's it.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정서는 실은 개인에게 중요한 신호이다. 어떤 부분이 이상이 있는지, 혹은 어떤 부분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틀어지면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고, 내가 바라고 필요한 것을 경험하면 고양되고 기분 좋은 느낌을 느낀다. 이 신호를 제대로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다. '문제'라고 여기는 불쾌함을 경험한다.




정서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서와 감정의 경험에 대한 선입견이 궁지로 몰았던 것이다.

정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그로 인한 감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 문제를 만든다.






감정적인 사람은
공감을 잘할까?



사람들은 참 모순적이다. 이건 당신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필자도 포함해서 모든 인류가 그렇다.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특별하기도 하고 재미있다. 방금 직전까지도 당신은 감정적이야! 하던 사람도 이를 잘 다룬다고 보이는 누군가에겐 사람의 말을 참 잘 들어주시네요. 공감을 잘하는군요!라고 감탄을 하기도 한다.



재밌지 않은가? 때로는 감정적인 부분을 드러낸 사람에게 비난의 말을 하던 사람도, 정서적으로 미흡하다고 느끼는 주제 앞에서는, 정서적인 강점, 역량, 능력 앞에서 이를 중요하게 평가를 한다. 감정적이라고 눈살을 찌푸릴 때는 언제고, 감정을 잘 다루는 능력 앞에서는 웃어 보이며 그 능력을 얻고 싶어 한다.



필자의 요지는 바로 이것이다. 정서 영역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부분이다. 즉, 정서적으로 더 잘 경험하고 풍부하게 느끼는 것(감정적인 것)과 이를 잘 다루는 기술/연습/역량이 뒷받침이 될 때, 비로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서를 잘 다루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서 형성되고 학습된다. 몇몇 사람은 말한다.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만 강조한다. 이는 매우 제한적인데, 감정은 조절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적절하게 다가가고 충분히 경험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조절해야 한다.




감정은 무작정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하게 다가가고
충분히 경험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조절한다.



방법만 알아가지고 무조건 막 적용하려고 한다면, 이는 마치 무작정 감정을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복종시키는 것과 같다. 정서는 살아있는 유기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무작정 존중도 없이 통제하려고만 들면 오히려 더 말을 듣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이런! 빨리 없어져라, 사라졌으면 좋겠어. 딴 생각해야지. 영상을 봐야지", "그래! 술로 잊는 거야 그냥 마시고 누군가한테 하소연해야겠다!" 등 이런 방법으로 감정을 대했다면, 그건 그냥 이해하지 않고 통제만 하는 행동이다. 그건 건강한 조절 방법이 아니다.



누가 당신에게 와서 갑자기 들어주지도 않고, 본채 만채하다가 들이닥쳐서는 나한테 위협적으로, 강압적으로 명령한다면, 듣고 싶은가? 따르고 싶은가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반항하고 싶고, 삐죽하고 서운하고 억울할지도 모른다.



감정은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반응한다. 우리가 느끼고 필요로 하고 경험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 부분이다. 매우 세심하고 예민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은 물론, 적절한 때와 정도가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부분은 간과한 채, 쏟아지는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려고만 든다. 제어하려고만 한다. 그건 소용이 없다.



더욱 감정을 날카롭게 만들고

더욱 정서를 눌려 터지게 만든다


감정을 통제하려고만 들고

조절하려고 뒤흔들기만 하는 시도는

오히려 정서/감정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정서와 감정,


이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충분히 경험하면서 머물고, 올바른 건강한 방식으로 대하는 연습이 충분히 된 사람만이 가능하다.



충분하게 경험하고, 가까이에서 머물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바로,... 공감



심리학 분야에서 "공감"을 향한 관심과 열정은 여전하다. 지금도 수십수백 건의 연구와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한 연구에선 지난 몇 년간 공감과 관련된 연구/출판물을 조사했는데, 13,800 건 이상이라고 보고했다.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잘하고 싶어 하고, 어떻게 하면 공감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분투한다.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건강하게 더불어 살 수 있도록, 각자의 웰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감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강조한다.



공감의 조작적 정의(연구에서 연구자가 설정하는 정의)는 학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중심상담 및 정서중심치료 상담자인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공감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구분할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경험에서 기꺼이 경험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교감이며, 여기에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오늘 글에서 공감에 대한 얘기까지 나누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정서적인 사람일수록, 감정적인 사람일수록 정서(감정)를 잘 다룰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단, 이를 충분히 허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러니 조바심으로 결론으로 가지 않길 바란다. 그전에 당신이 다시 깨닫길 바란다. 감정이라는 경험은 부정적인 것이 아닌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경험이며, 감정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머물고,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전처럼 애써서 통제하려고 하면서 괴롭지 않을 것이다.


이는 수많은 연구와 상담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이다.



정서(감정)는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경험할 수 있을 때, 조절할 수도 표현할 수도 있다.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는 "방법을 알면 다 해결될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전부다"라는 것이다. 이는 매우 큰 착각이다.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면, 감정으로 고통받고 어려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방법은 오히려 간단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가 감정과 관련해서 괴로워하고 어려워하는 건,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머리를 가득하게 메우는 이 느낌을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몰라서다. 어떻게 이해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다가가야 하는지 경험해 보지 않아서다.



항상 들어온 말은 "참아. 그럼 지나갈 거야" "너만 힘든 거 아냐. 다들 그래"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왜 그렇게 유난이야?" "그러려고 하지 마. 안 하려고 노력해 봐 그럼 돼".... 이런 말들. 이해하긴커녕 오히려 감정을 더욱 헤집고 찢고 짓이기게 하는 말들. 타인들. 상황들. 사회...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의 감정을 건강하게 대해주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었겠나?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여기 바로 여기서부터

당신과 내가 함께 그 연습을 해가는 것이 바로 시작이다.


당신이 자기 자신을, 감정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아프고 괴로웠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을 잘 들어주고 싶고 돌보고 싶다면, 가장 나답게 편안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그 마음만 놓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우선, 여기서 시작이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허용해 주고 바라봐 주는 것. 조심스럽고 어색할 순 있어도 괜찮다. 그건 당연하다. 우선 위협적이지 않고 안전하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보자. 혼자서 때로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그렇다면 당신과 내가 상담에서 함께 연습해 볼 수 있다. 그게 바로 상담에서 필자가 상담자로서 당신과 함께 분투하고 연습하는 과정이다. 이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미 수십수백수천의 사람들이 이를 경험했다.



당신의 정서는 처음부터 괜찮았다.

당신의 감정은 지금도 여전히 충분하다.

우리는, 모두가 함께 이 과정을 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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