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수는 시간이 많은가 보죠?"

16_이론은 깊어지고, 심리치료는 더욱 정교해질 수 있는 연구를 목표하다

by 로지

"그 교수는 시간이 많은가 보죠?"

16_이론은 깊어지고, 심리치료는 더욱 정교해질 수 있는 연구를 목표하다





아무래도 이 에세이에, 내 연구 내용 그 자체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건, 이 에세이의 방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주의하고 있다. 자세한 논문 내용은 학위논문에 담아두었다.

내가 여기 에세이에서 담고자 하는 내용은, 연구를 하는 동안 경험한 감정, 생각,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건 학위 논문에도, 저널(학술지)에도 담지 못한 이야기이다. 연구 못지않게 중요한 이야기.




지난 편에서 학위논문 주제를 확정하는 그 과정을 상당히 짧게 함축했다. 실은 실제 연구가 본격 시작한 시기가 연구 주제를 확정한 이후 약 1년이나 더 소요되었다. 이를 미뤄보면 예상했겠지만, 그 과정 동안 (그의 무관심과 비아냥,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건 교육자 역량 부족이었다. 이것들과 고독한 사투를 벌이며, 나 역시 스스로 혹독한 부정적 평가를 하며 숱한 갈등을 겪었다.




01. 연구 분야의 미스 매치

애초에 연구에 관심이 없거나, 연구하고 싶은 분야나 주제가 없는 학생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보통은 대학원 입학 후 지도교수의 연구 주제에 자신을 끼워 맞춰 부품의 역할을 하고 졸업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교수 H의 경우에도 석사 박사 할 것 없이 학생들은 대부분이 H의 연구과제에서 파생된 주제를 가지고 졸업논문을 썼다.

자의식과 주체성이 있는 학생들은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 나를 포함한 몇몇 학생들은 이에 따라 자신의 학위 논문을 진행했다. 이때 중요한 건 지도교수의 역량과 태도이다. 그리고 학위논문 과정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

입학하고서야 알 수 있었지만, 나와 H와의 연구 핏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맞지 않았다. 그 사실을 학위 연구를 본격 시작하면서 더욱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입학할 때부터, 석사 때부터 '정서/감정'에 가장 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H의 연구실에 지원했을 때 그의 연구 중 '정서'와 관련된 연구가 있는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수가 적지 않았기에 이를 나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지원했던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마주한 건, 심리치료 이론이나 실제에 깊이 있는 고찰을 하지 않는(못하는), 정서/감정에 연결된 주요한 임상적 지점들을 가벼이 여기는 지도자였다.



*소소한 기억:

박사 과정에 입학 한지 얼마가 지났을까, H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국내 학술지에 게재한 '정서'관련 연구에 대해 물었다.


"교수님, 이전에 진행하셨던 00000 연구를 정말 관심 있게 읽었는데, 그 내용을 좀 더 듣고 싶어요."


H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아 그거, 같이 했던 000(1 저자)이 좀 특이한 사람이었죠. 별거 없어요. 갑자기 그 사람이 연락해서는 같이 논문 하나 쓰자고 했는데,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이었죠."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H는 연구에 대한 내용은커녕, 자신에게 그 연구를 제안했던 다른 학교의 교수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평을 끝으로 대화는 끝났다.



또 한 번은 H가 기반으로 하는 심리치료 이론에 대해 물었다.


"교수님, 000에 계실 때 많은 경험을 하셨을 텐데, 그때 어떠셨어요?"

(실은 좀 더 자세하게 물어봤지만, 여기서는 개인정보여서 생략했다.)


H의 대답은 심드렁했다. "별거 없어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요."


그는 항상 자신의 경험을 축소했다. 자신이 경험하고 이뤄온 것에 대해, 자신의 역량에 대해 별거 아니고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의 경험은 큰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처음엔 이를 겸손이라 여겼으나, 5년 내내 동일하게 그러는 모습을 보고, 그저 무기력하고 스스로를 항상 축소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02. 상담에 '관심 없는' 상담심리학 교수

지도교수가 내가 기반으로 하는 심리치료 이론(EFT)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학자나 실무자라고 해도 모두가 똑같은 이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기에. 하지만 그는 좀 심각했다. 상담 관련 주제의 우선순위가 너무도 낮았다. 심리치료에서 중요한 본질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나는 H를 자주 찾아갔다. 때로는 논문을 들고 가서 면담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적으로 식사나 차를 마시곤 했다.



*소소한 기억:

친한 석사 학생 한 명과 H를 찾아갔다.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하러 카페에 들어갔다. 우리 셋은 한편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와중에 H가 수주해 온 연구 과제와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박사에 입학한 뒤로 H의 연구 방향은 점점 심리치료, 심리상담과 멀어지고 있던 터였다. 납득이 잘 안 되는 설계에, 그럴듯한 방법을 섞은 연구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참신하긴 했다. 왜냐면 그런 혼종의 주제는 없었으니까. 학생 입장에선 신기한 연구들이었다.

융합연구에 더욱 몰두해 가는 그의 연구들은, 심리치료는 살짝 거드는 수준, 심리치료 이론과 실제는 살짝 발가락을 담그고 있는 수준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심리치료에 관심이 큰 학생이었기에 "그 연구에선 000 심리치료 이론, 혹은 개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거예요?" 등 심리치료가 연관된 부분에 대한 질문을 했다. 정말 궁금했다. 그래도 교수 급 연구자인데 뭔가 생각이 있어서 하는 거겠지 기대했다.


H는 대답했다.


"뭐 그냥 0000 개입을 적용해 보는 거죠, 뻔하죠 뭐. 근데 저는 심리상담에 마음이 안 가더라고요. 이제 상담엔 관심이 없어요. 재미없달까. 뻔하달까. 오히려 요즘은 이런 융합 연구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 말은 심리학 분과 중 응용심리학인, 상담심리학 전임교수 입에서 기대했던 말은 아니었다. 상담 교수가 상담에 관심이 없다니??


H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자신이 상담 교수를 그만두고, 다른 전공 교수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날은, 내가 나의 학위 연구 설계를 더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였다.


국내에는 EFT 연구가 제대로 이뤄진 경우가 없기에 주로 해외 연구와 논문을 찾아서 H를 찾아갔다. 그에게 EFT의 핵심적인 주요 연구, 개념, 연구 설계 등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이거 어디에 실린 연구죠? 0000? 아, 근데 이론 명칭으로 된 학술지는 좀 떨어지는 곳인데"

"Action tendency? 이 개념은 뭐예요? 움직인다는 건가?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의 피드백은 언제나 구체적인 부분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평이 대부분이었다. 구체적인 부분이 있다면 글의 형식, 문제 해결에 관한 것이었지, 학문적/이론적 깊이에 대한 내용은 언제나 부재했다.

당연히 내가 가지고 간 연구가 최신 연구도 있다 보니, 상담 이론이나 실제에 관심이 없으면 모르거나 생소할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모르는 것에 대해, 혹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물어야 하는데, 그보다는 마치 해당 선행 연구나 설계가 미흡하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말이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H가 그런 평을 할 수준의 연구자나 학자는 아니다. 그가 진행한 연구 실적과 그 내용의 깊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학자의 기본 태도는 자신이 모르는 분야와 주제에 대한 겸허함이다. 근데도 이렇게 다른 학자들의 연구나 학술지를 저런 식으로 평가나 하고 앉아 있다니!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불쾌했다.

능력 있는 학자일수록, 연구를 진심으로 대하는 전문가일수록 그에 맞는 태도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H가 보여준 모습은 처참했다. 그의 전문성이 재조명되는 순간이었다.


H는 상담심리학 분야에서 이뤄지는 연구, 개념, 흐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았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학생이 찾아와 개념을 설명해 줘도 자신이 이해가 안 되면, 연구나 개념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냐는 식으로 행동했다.

이때를 떠올려보면 오히려 교수와 면담을 하고 오면, 가닥이 잡히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무관심한 딴지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졌고 이는 연구 진행을 더뎌지게 만들었다.





03. 교수의 자격지심

자격지심(自責之心)

자기 안의 열등감이나 부족감 때문에, 상대가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위축되거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나의 박사 연구 주제는 한국에서 진행된 적이 없는 방법으로 설계된, EFT 심리치료 이론에 주요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과정 연구였다. 그래서 계획하는 단계부터 (해외의) 원 저자에게 도구 사용 승인을 얻거나 관련 피드백을 듣는 것이 중요했다.

당연히 H는 나의 연구에 대해서 무지한 건 물론 무관심했기에, 이 과정도 내가 혼자 찾아보고 실행했다. 하지만 H는 지도교수였기에 그에게 연구 관련 업데이트는 매번 잊지 않고 했었다.


"교수님, 최근에 000에게 도구 사용 승인을 얻는 과정에서 연락을 취했는데, 그분이 먼저 제 연구에 피드백을 해주고 싶다고 선뜻 말해주었어요. 현재 과정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 돼요."



"그 교수는 한가한가 보네. 그 교수는 시간이 많은가 보죠?"


그게 H의 반응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저 잠시 당황스럽기만 하고, 그 고민 자체에만 집중이 되어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답변은 삐죽한 방어적인 반응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학자는, 여러 콘퍼런스는 물론, 저서 지필, 연구소 운영 등을 병행하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캐나다에서 전임교수로 활동하는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피드백을 줬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나 역시 항상 지도교수의 무관심에 익숙해 있던 터라, 저명한 학자이자 실무자에게 다정한 피드백이 왔다는 것 자체가 소중했다. 자신의 학생이 잘 되길 바라는, 잘 성장하기 바라는 교육자라면 격려해 줘도 모자랄 판인데.


H의 자격지심은 방어적인 반응을 만들어 냈다. 자신이 주지 못하는 피드백을 누군가가 주려는 그 자체가 거슬렸던 걸까? 학생 입장에선 값진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임에도 저렇게 굴 필요가 있을까? 그 학자가 바쁘다면, H보다 훨씬 더 바쁠 텐데 말이다. 그에겐 그저 심드렁하고 거슬리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그 학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이런 것이 학구적인 교류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는 낯선 타지 박사 학생이 보낸 이메일 하나에 다정하게 먼저 제안을 해줬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했다.





04. 일관되지 않은, 교수의 언행

본격 학위 연구가 시작되기에 앞서, H는 자신 연구실 학생들에게 IRB(연구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먼저 우선시해야 함을 공지했다. 그 당시 나를 포함해서 모든 석사 및 박사 학생들은 IRB 승인 절차를 위한 준비를 했다. 모든 연구는 IRB 승인이 있고나서부터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요한 절차를 H는 갑자기 공지하고 시행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는 H가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의무적으로 요구했던 바였기에 이때부터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좋다. 그건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중요한 항목이기에 처음은 어렵고 힘들지라도 도입되면 좋은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도 필수라고 생각했던 부분이어서, 나는 입학하자마자 박사과정 1학기부터 관련 교육이나 도서관 교육을 다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양식이 다르고, 그와 관련해서 학교마다 이를 신청하고 결과를 받는 과정이 다 달랐기에 이를 항상 정리해서 저장해 두었다.


IRB는 오프라인 교육부터 온라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학교 도서관이나, 게시판에 항상 홍보글이 대대적으로 달리곤 한다. 그래서 이를 찾아 참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심리학 전공생들은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얼마나 학생들이 비자발적이었으면, 상담 전공 C 교수가 상담 전공생 모두에게 IRB 교육을 꼭! 필참 하라는 강제적인 공지가 내려왔다.


IRB 절차는 크게 어렵진 않았으나, 그래도 이제 진짜 내 연구를 위한 단계라 그런가 마음가짐이 달랐다. 컴퓨터에 연구마다 챙겨두었던 샘플 파일을 보면서 준비했고, 연구 문제가 2개 이상이기에 그에 따라 각각 IRB를 준비해야 했다. 각 연구 계획서의 글작업은 물론 관련 서류를 각각, 타이밍에 맞춰서, 따로 챙겨야 했기에 부단히 신경을 썼다.




하지만 역시나 실망스럽고 부적절했던 부분이라면, H의 지도 방식이었다. 그는 모든 학생들에게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선 IRB를 받으세요. 모르면 물어보세요."라고 공지만 하고, 샘플 파일만 던져줄 뿐이었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신경 써야 하는지 등을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이럴 거면 왜 물어보라는 거야? 말만 물어보라는 거지 제대로 설명도 안 해줄 거면서"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는 그 노골적인 사실 하나를 알아차리는 게 쉽지 않았다.


얼마나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지 보여주는, 그리고 그저 과업 중심적 지도자가 보여주는 형식적인 대처였다. 연구에 관심이 없고 무지한 심리학 전공 학생들에게 IRB는 생소한 과정이며, 정기적으로 열리는 IRB 교육도 듣지 않던 터였으니, 갑자기 내려온 과업을 잘 따라갈 수 없던 건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다행히 나는 석사 시절부터 IRB 교육은 정기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구에 관심이 있었기에 참여해 왔다. 하지만 실제로 IRB 승인을 받는 절차는 처음이었고, 대학(원)마다 그 절차와 운영방식이 상이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지도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 하지만 H는 신경 쓰지 않았다.



H는 그저, "어렵지 않죠? 별거 아니니까 보고 따라 하세요~" 식으로 학생들에게 공지했다.


이 과정에서 몇 달이나 소요되었다. 정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다행히 준비했던 IRB 절차가 문제없이 승인이 났고, 비로소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그런 건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 IRB로부터 H의 연구실에만 엄중한 전체 공지가 내려왔다. 매우 엄중한 경고 조치였다. 내용은 그러했다. H의 연구과제에 참여하거나, 거기서 주제를 받아 학위논문을 진행하는 박사와 석사 학생들 중 다수가 IRB 규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다는 공지였다. IRB 보고 및 제출 등에서 반복적인 위반이 발생했고, 이후 총괄 책임자인 H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중에 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모든 박사 학생에게 IRB는 이제 필수입니다."라고 했던 H의 실제 적용 방식은 학생별로 달랐다. 모든 학생에게 공정함을 추구한다고 자부했던 그가 얼마나 개인에 따르게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학생은 H의 연구 과제에서 파생된 주제로 진행해서 졸업한 박사 중 하나였다.


이뿐만 아니라 H가 항상 말하곤 했던, "상담심리학 박사 과정에 들어오려면 최소한 상담 경험은 있어야죠"라고 했던 말 마저 지키지 않았다. 내가 입학한 이후 들어온 박사과정 학생이 있었는데, 심리상담 학회도 잘 모를 정도로, 심리상담의 기본조차 모르는 석사 전공도 아예 다른, 타 전공 출신 사람이었다. 심리치료도 모르고 경험도 없으며, 그저 "저는 연구 실적을 많이 쌓아서 이후 상담 전공 교수가 되고 싶어서 입학했어요"라는 처참한 생각도 (박사 학생) 당사자에게 직접 듣게 되었다.



이것이 H가 나에게 말했던 "나는 교수가 되기 위한 학생을 양성하고 싶어요"라는 의미였나?

H는 점점 신뢰하기 어려운 교육자가 되었다.



그의 연구과제가 계속 진행됨에 따라 많은 학생들은 그 과제에 투입되었고, 내 눈에는 그저 H는 자신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인력을 유치하는 (연구자도 아닌, 치료자도 아닌) 권위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학문적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교육자도 없고, 고리타분한 형식만 강요하는 대학원 연구실에서, 제대로 된 심리상담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이 뜬 구름 잡는 일처럼 여겨졌다.


이토록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나의 연구를 놓을 순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뭐라도 해야 나의 연구를 지켜내야 했다. 그게 내 목표이자 꿈이었으니.





가장 원하는 연구 주제를 선택한 뒤, 그다음으로 또 다른 연구 주제를 하나 더 구상해야 했다. 나의 메인은 다른 박사 연구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큰 연구였으나(그 연구 자체만으로 최소 1년은 잡고 진행할 수준이었다), H는 언제나 형식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내용보단 형식, 과정보단 결과, 깊이보단 개수였다. 그래서 연구 1 주제를 하나 더 고안하는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솔직히 EFT 주제를 고르기까지 많은 에너지를 쏟은 뒤였고, "여기에 뭘 또 하라는 거야?"라는 마음에, H의 피드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힘없는 박사 학생이 이를 무슨 수로 절대권력인 교수의 말을 거부하겠는가. 그래서 연구를 하나 더 구상했다. 요구를 받은 거지만, 이 연구는 나의 연구이다. 그러니 최대한 나에게 납득이 갈 수 있는 주제를 찾고 설계하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메인 주제에 앞서, 내가 보려는 심리상담의 과정은 무엇이고, 그것이 누구에게 더 도움이 될지, 심리치료에는 어떻게 기여할지... 그래서 이때 온전히 2~3주간은 영어논문에 파묻혀 지냈다.


연구는 그냥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말이 되어야 하고, 말이 또 되어야 하고, 또 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왜 그걸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상담 관련 연구라면, 이것이 어떻게 상담으로 연결이 될지도 그 목적과 의의가 있어야 한다. 이게 상담자든 내담자든, 상담 그 자체든 간에 뭐에 의미가 있는지 정리해야 했다.






시간은 흘러, 연구 1의 예비 설문지를 작성하는 단계로 이르렀다. 이를 구상하기까지 읽은 국내 논문만 수십 건이다. 설문지는 참여자가 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에, 국외 연구보단 국내 연구를 참고했다. 나의 대상자들은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려면 그들과 비슷한 특성을 측정한 선행연구의 설계를 참고해야 한다.


언제나 창의적인 작업은 골치 아팠다. H의 피드백을 거치면서 처참하게 뜯어고치는 과정이 계속되었다. 그의 피드백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구체적이었다. 내가 놓친 부분을 확인하고 수정/보완을 할 지점에 대한 표시 정도였다. 그 외에는 여전히,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주관적인 감성평이었다. (예, 이해가 안 돼요. 애매해요. 뭔 말이죠? 빈약해요 등) 그렇기에 그 외는 다 내 몫이었다.


그 역시 당연하다고 여기며 하나씩 묵묵히 해나갔다. 예비 설문을 만들 때 이론적, 실제적 측면은 무엇이고 선행연구에선 어디까지 진행이 되고 있는지, 본 설문 이전에 문제는 없을지, 연구자가 놓친 부분은 없을지.


연구자의 딜레마에 빠져서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살피고 또 살폈다. 시간은 흘러 최종 문항까지 도달하게 되었고, 처음과 비교했을 때 훨씬 간결해졌다. 과정 하나하나에 소소한 성취감을 쌓아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늘고, 발전했는지 말하긴 어려웠지만 처음보다 조금씩 성장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 혼자 견뎌내는 고독한 과정이기에, 그 순간 하나하나를 충분히 알아주고 스스로 격려해 주었다.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