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생이 되다. 그리고, 박사 학위논문 주제를 정하다.

15_연구의 처음부터 끝, 혼자 온전히 책임지다.

by 로지

수료생이 되다. 그리고, 학위논문 주제를 정하다.

15_연구의 처음부터 끝, 혼자 온전히 책임지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지도교수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오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나는 아직 지도교수 H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미 실망하고도 충분했을 텐데도 그때는 그러지 않았다.


"연구 프로젝트는 아무래도 H도 처음이고, 학생들도 처음이고 하니까 부족할 수밖에 없어. 교수에게 더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야. 그래도 수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본인이 1 저자인 교수인데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이렇게 스스로 응원했다.

그때까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한다.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아, 교수에게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크게 바닥을 칠 줄은 예상하지 않았다. 바라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고, 나의 얘기는 아니길 간절하게 바랐다.


내가 그간 봐왔던 교수의 전문적이고 학구적인 모습은 그저 허상이었음을.

내가 고민하고 고심해서 들어온 박사과정이 이렇게 실망스러울 줄은.

나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알지 못했다. 혹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photo-1501290741922-b56c0d0884af.jpg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하나의 것으로 쉽게 옮겨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연구, 연구, 연구... 이렇게 말해오곤 했다. 나는 연구 경력이 많지 않고, 역량이 출중하지도 않았고, 연구는 여전히 나에게 어려웠다. 논문을 읽는 것도 이제야 익숙해졌지, 실은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었다.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을 쓴다는 건 참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엄청난 글 작업은 물론이고, 그 글을 채우기 위한 연구 research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용이 괜찮지 않으면 글만으로 안되고, 글 또한 괜찮지 않으면 잘 진행된 연구라도 빛을 바랄 수 없다. 특히 형식과 규칙을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갖춰, 학술적 지식을 서술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나에게 여전히 넘어야 할 큰 산 같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연구를 위한 이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연구에 끌리는 건, 단연 글 작업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궁금한 것,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탐구하고 싶은 것을 연구하고 싶었다. 그 사실 하나가 정말 너무도 많은 마음과 정신을 요하는 일이다. 우선은 나의 마음이 어디로 끌리는지, 나의 심리치료에서 가장 궁금하고 필요한 것, 나아가 나의 전문성과 연결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대답할 수 있다.




pexels-cottonbro-3832034.jpg



나의 마음이 어디로 끌리는지,
나의 심리치료에서 가장 궁금하고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의 전문성을 어디에 연결 짓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아야 했다.




2년간 재학생 신분으로 (상담센터 운영 및 심리치료 실무를 병행하면서) 학교 수업에 열정을 쏟았다. 그리고 박사 수료생이 되었다.


하나를 진득하게 집중하고 머무르고 싶었다. 원래 타고난 성향은 동시에 여러 가지를 떠올리고(아이디어 뱅크) 당장 행동으로 옮겨야 마음이 편하다(충동성이 높고 적극적인 행동파). 하지만 이 분야에 들어온 뒤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여전히 도전적인 부분도 있지만, 나의 성격을 보다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박사과정도 그랬다.

나는 연구를 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연구'에 있어서만큼은 온전하게 여기에 내 에너지와 정신, 진심을 모두 담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학위 연구의 본격적인 시작은 수료생이 된 직후부터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주제를 고민하고(이미 이전부터 많은 안을 떠올리긴 했다), 선택을 내리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예상보다 훨씬 더 쉽지 않았다.


항상 연구를 놓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 잡긴 했으나, 스스로 때론 부끄럽게도 느껴질 만큼, "아니 연구를 하지도 않고 말만 하는 거야??"라는 잔소리를 나 자신에게 던지곤 했다.


내가 말하는 '연구'란, 교수나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어떠한 무엇이 아닌, 연구 아이디어부터 실행, 분석, 운영, 글 작업까지, 모든 것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는 연구를 의미한다.


진짜! 내 연구.

"정서중심치료 Emotion-Focused Therapy 연구를 하고야 말 거야!"라는 진심은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진짜 실행에 옮겨야 할 때였다. 출발하면 멈출 수 없는 출발선 앞에 선 기분이 들었다. 긴장감과 설렘, 그 오묘한 감각.



pexels-efrem-efre-2786187-34649064.jpg



2년간 재학생으로서 숱한 경험을 하며, 무사히 수료한 나 자신을 위한 쉼을 갖고도 싶었다.


그래서 수료 후, 약 6개월은 이를 기념하며 나의 연구 자아에게는, "곧 찾아갈게~ 조금만 기다려!"라는 인사로 거리 두기를 했다. 그리고 23년이 되고 새해를 기념하며 "이제는 진짜 시작하자"라는 마음으로, 실제로 내가 수행할 수 있는 정서중심치료 EFT 연구를 계속 뒤졌다.


석사 때부터도, 자료 하나는 기깔나게 수집했던 나였다. 국내 자료는 너무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희귀해서 보통 나의 저장소에는 해외 연구 위주로 쌓여갔다. 이번에도 다를 것은 없었다.






한국 심리치료 분야엔, 연구들이 자가 복제를 하는 것처럼 정말 기존에 있었던 설계로 그 내용을 조금만 바꿔서 복제되듯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연구의 핵심은 연구문제이다. 그럼에도 대상만 약간, 척도만 하나 둘 정도로 기존의 선행연구의 설계를 거의 복제했다시피 가져와서 진행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정말 참신한 내용이나, 난도가 있는 시도라던가, 가치가 높은 논의가 메마른지는 너무 오래되었다.


실제로 한국의 (특히 임상 및 상담) 심리학 연구들은 최신 방법이나 트렌드는 곧잘 따라가지만, 본질을 다루고, 한국 심리치료에 꼭 필요한 실증연구가 상당히 부족하다. 대부분은 척도를 사용한 양적연구, 해외 척도 번안 연구, 문헌연구, 프로그램 개발연구 등이다. 이러한 연구 설계가 무조건 별로라는 건 아니다. 다만, 이미 너무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오래전부터 고착되었다.

양적 자기 보고 설문 중심, 단기간 사전·사후 비교, 프로그램 개발 논문이 과도하게 많다.




특히, 여기서 자기 보고 척도만으로 효과를 판단하는 연구가 많다. 국내 메타·동향 논문들도 실제로 대조군 없는 사전–사후 또는 준실험 설계가 다수였다고 밝혔다. 표본과 맥락의 생태 타당도가 낮다. 많은 심리치료 연구가 대학생 편중 표집, 단기 집단프로그램 중심이라 실제 진료현장(복합적인 문제, 공병, 약물 병행)의 복잡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심지어 과거 2000–2009년 분석에서도 대학생 대상, 프로그램·도구 개발 주제가 상위 비중이었다.


국내의 동향을 리뷰한 연구에서도 한국은 특히 성과·프로그램 연구 편중이 뚜렷하고 과정연구는 매우 적다고 밝혔다. 이 구조에서는 “무엇이, 누구에게, 언제, 왜 효과적인가”를 놓치게 된다. 변인 관찰, 코딩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고, 최근 동향에서도 성과·과정 연구 비중이 줄었다.


문제의 핵심은 “양적” 그 자체가 아니라 연구 설계의 질과 질문의 초점이다. 정밀한 양적·혼합 방법으로 치료 동맹, 공통요인, 과정 변수를 함께 다루면 임상 효용이 커질 수 있음에도 그런 연구는 찾아볼 수 없다. 국내 연구들은 “평균 효과가 있는가”에는 답하지만, “현장에서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적용할지”에는 정보를 거의 주지 못한다.





또 하나는 요즘 특히 갑자기 더 늘고 있는, 융합 연구이다. (나의 지도교수 H도 여기에 매몰되어 있다. 그의 연구도 아래의 취약점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융합연구 또한 심리치료에 꼭 필요한 본질이 빠져있다. 내가 교수 H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오게 된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



하나, 문제·이론보다 기술이 앞선다. 장비·앱·AI를 “붙이는” 수준에서 끝이 난다. 심리치료 이론과 메커니즘 통합이 약해 임상적 질문에 직접 답하지 못한다. 국내 정책·평가 보고서들도 융합연구가 ‘다학제 초기 단계’에 머물고 방법론·학문적 기반이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둘, 평가·심사체계가 융합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전통 학문 중심 지표와 단기 성과 위주 평가가 형식적 협업을 부추기고, 실패·중간목표 조정 같은 융합 고유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개선 필요성이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셋, 근거 수준이 낮다. 디지털·VR·앱 기반 개입은 소규모·단기·자기 보고에 치우쳐있다. 특정 맥락(입원·고위험군)에서는 효과가 작거나 연구 자체가 드물다. 그래서 더욱 구조화된 치료적 실무로 이어지지 못하고, 1차 의료 현장도 근거 부족을 이유로 활용을 주저한다.


넷, 과정·충실도·치료자 효과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사용량·증상 점수만 보고(그것도 자기 보고인 경우가 태반이다), 치료 과정 지표, 충실도, 부작용 보고는 빈약해 임상 의사결정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관련 국내·국제 리뷰·가이드도 이런 보고의 필요를 강조한다.


다섯, 연구 팀의 운영 리스크. 학제 간 인지 격차·거래비용·공저자 공헌 배분의 불투명성이 협업 품질을 떨어뜨린다. 국제 연구는 이미 이러한 구조적 난점을 반복적으로 보고했지만, 한국의 국내 연구는 아직도 초기에 머물러 있다. 또한 융합 과제에는 다양한 분과/전공 인원이 참여하기에 지위·기회 불균형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이는 팀 구성·의사결정·성과 배분의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이미 내가 직접 보고 겪었다. 지도교수 H의 연구과제에서 수없이 봤다. 그러나, 교수는 신경도 쓰지 않거나 그럴 역량도 없었다.



위 내용은 지금 당장 논문 DB를 검색해 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많은 연구가 쏟아져도, 그 결과들은 실제 임상 장면에서 바로 적용할 수 없다.



pexels-weekendplayer-132340.jpg



심리치료는 실제적이다. 다시 말해, 실제 사람에게 적용하고, 반응이 있고, 시간이 소요되며, 깊이 있는 변화가 나타나며, 임상 수준의 경험을 다룬다.


인류, 사람은 매우 복잡한 대상이다. 우리 자신만 떠올려 봐도 바로 납득이 될 것이다. 사람은 매 순간 반응하고, 감정을 느끼며, 생각한다. 복합적인 유기체이다. 때론 논리적이지만, 동시에 충동적이고, 모순적이다.


이런 대상을 연구하고 탐구하고, 이들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심오한 그들의 경험을 임상적이고 치료적인 부분에서 살펴보고 설명하며 예측하기도 한다.




상담심리학(임상심리학)은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우리(심리학자 겸 치료사)는 사람을 그냥 만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는 학술적, 임상적, 실제적 토대가 필요하다. 이 토대는 계속되어야 하고, 순환을 이루며 흘러가야 한다. 그게 연구와 실제의 시너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심리학 연구들은 너무 뻔하고, 흐름을 뒤따라 가지 못한다. 항상 최신의 트렌드만 허겁지겁 따라가고 있지, 그 내용과 깊이를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답답할 때가 많다.


"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고찰이나 설명이 없지?
왜 이 부분은 연구하지 않은 거지?
이 부분이 정말 핵심인데 왜 이것만 빼고 다른 결과에만 집중한 거지?
실제 심리치료에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너무 아쉽다.
정말 심리치료 실무에서 필요한 내용을 다루는 연구는 찾아볼 수 없는가?"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심리치료 연구를 읽으면서 항상 궁금했고, 답답했다.



pexels-ds-stories-6991813.jpg



열악한 국내 (연구 및 교육) 상황을 알기에, 우선은 해외에서 진행된 연구들을 두루 살폈다.


해외는 정말 여러 가지 설계와 도구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EFT 정서중심 관련 연구들은 나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에서 진행해보고 싶은 설계도 많았고, 자료도 풍부했다. 하지만, 그런 연구는 볼륨(연구비, 참여자 수, 연구자 수 등)이 너무도 컸다.


나에게 영감과 함께, 좌절감도 같이 따라왔다.



국외 연구를 분석한 다음은, 국내 연구였다. 생각보다 정서와 심리상담에 대한 연구가 꽤 있었다. 하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앞서 내가 말한 의미 있는 수준의 연구는 없었다.


국내에서 그나마 정서 관련 연구를 진행한 굵직한 연구자는 몇 있었다. 그들의 연구를 지겹게 읽었고 모아두기도 했다. 그래야 내가 연구할 때 그들의 것을 인용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차별점을 확실하게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구는 나의 방향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어줬다. 그들의 연구들은 국내 연구의 빈 공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 6개월 넘게 연구 주제와 설계를 고민했다. 2023년 3월쯤, 드디어 확정할 수 있었다.


"그래 이 연구로 하자!"



연구비도 없고, 멘토도 없고, 지원받을 어떠한 자원도 없는, 박사 수료생 연구자로서, 처음부터 어마무시한 연구를 할 수는 없었다. 나의 현실을 직시했다.


국내의 인문 및 사회과학 전공자라면 공감하겠지만, 우리는 참 연구비 및 각종 지원 복이 없다. (해외처럼) 장기 프로젝트로,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학위 연구에 진심을 다하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조금의 연구비 지원이나 교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진행한 적은 들어보질 못했다. 연구자는 가난했다. 심지어 심리상담 분야의 상담자들은 처우가 좋지 못하다.


나는 기꺼이 연구비(각종 비용), 시간, 노동력을 자급자족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 연구의 첫 번째 투자자가 되었다.


그래도 예상 비용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할 수는 또 없었다. 비용과 시간을 따져서 거기에 무게를 두고 싶진 않았다. 나에겐 이 연구가 그 자체로 너무 중요했다. 즉, 나 자신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은 연구주제를 골랐다.


나의 기대만큼 실행되어 결과까지 얻는다면, 정말 깊고 큰 성장은 물론 이후 두고두고 뿌듯할 수 있는 방향을 택했다. 그런 연구주제를 확정했다.



나는 이때를 '연구시작'이라 부르기로 했다.



pexels-cup-of-couple-6963115.jpg


...to be continue.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가명이며, 사용된 이니셜 또한 실명을 기반으로 하지 않습니다.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본 글은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 구조적 성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