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에보 모랄레스, 그리고 메타인지

태극기 집회를 떠올려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제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인물이다. 그러나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만큼은 그 존재를 여전히 현재진행형 권력처럼 해석한다. 이미 제도 정치에서는 끝난 인물임에도, 그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의 상징”이다.


볼리비아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사회주의를 내걸고 한때 국민적 영웅으로 불렸던 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이야기다. 그는 장기 집권 끝에 불법 선거 논란으로 권력에서 밀려났고, 지금은 공식 권력의 중심에 있지 않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미 뒤안편에 선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의 팬층은 여전히 두텁다. 아니, 오히려 더 결집된 느낌도 있다.


요즘 그 지지자들이 에보 모랄레스의 근거지인 코차밤바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코카 재배 농민들이 모여 있는 지역, 다시 말해 그의 정치적 뿌리가 만들어진 공간이다. 지지자들은 에보 모랄레스 가면을 쓰고 거리를 다닌다.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가 체포된 것처럼, 에보 모랄레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미군에 잡혀갈 수 있어서, 그런 납치 작전 과정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누군지 헷갈리게 한다는 전략이란다.


하지만 국제 정세라는 프레임으로 한 발만 물러나 보면, 이 공포는 꽤 과장돼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볼리비아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볼리비아는 미국 외교에서 핵심적인 전략 국가도 아니고, 트럼프가 집요하게 주시할 만한 자원이나 지정학적 매력도 크지 않다. 게다가 에보 모랄레스는 현직 대통령도 아니다. 지금의 대통령은 오히려 친미 성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볼리비아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가면 시위는 대외 감각과 메타 인지가 부족한 결과물이 아닐까. 국내 뉴스에 따라 자국 정치의 언어로만 사회를 해석하면 “우리가 주시하는 인물과 현상이 세계에서도 중요할 것”이라고 쉽게 착각하게 된다. 내 볼리비아 친구도 트럼프가 에보 모랄레스를 잡아갈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고 진지하게 믿고 있다. 마치 태극기 집회에서 박근혜의 존재감을 아직도 과잉 해석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이래서 국내 뉴스만 읽어서는 안 된다. 국제 뉴스를 함께 봐야 한다. 그래야 주변 정세 속에서 내가 속한 집단의 위치와 그 현실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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