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렀을 적에 이전에 개와 고양이처럼 앙숙마냥 다투던 토론학회 오빠를 만났다. MBTI가 똑같아서 죽이 잘 맞으면서도 절대 안 맞던 사람이다. 둘 다 술을 좋아해서, 술자리에서 늘 함께했지만, 만날 때마다 사회 문제로 싸웠다. 그는 자유시장경제를 기본값으로 두고 세상을 봤고, 나는 공동체와 연대를 이야기했다. 말은 공동체주의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꽤 사회주의적인 색채도 섞여 있었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반골 기질이 있어서 경제학도인데도 계획 경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을 다루는 수업들(마르크스를 가르쳐주던 홍훈 교수님의 수업들)에선 학급 1등을 하곤 했다. 학과에서 공부 안하는 이미지였던 내가 갑작스레 1등을 할 때마다 학급 친구들은 놀라곤 했다.
그랬던 나지만, 이번에 그 오빠를 만났을 때는 싸울 일이 없었다. 이 나이에 친구를 붙잡고 사회 문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어진 데다, 솔직히 말하면 내 관점이 그 오빠 쪽으로 꽤 이동해 있었다. “야, 너 이제야 말이 통한다?”우리는 웃으면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쿠바와 볼리비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직접 다니며 사회·경제적 현실을 눈으로 보면서, 내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책으로 배운 사회주의는 현실에서 꽤나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볼리비아에서 느낀 건, 대외 감각이나 글로벌 시장에 대한 인식이 둔감하다는 것이다. 인구가 고작 1,200만 명 남짓인 나라가 내수시장 중심의 공기업 위주의 경제를 추구한다. 작은 경제가 안으로만 돌면, 성장은 구조적으로 막힐 수밖에 없는데 그 문제의식이 거의 없다.
또 볼리비아에선 기업의 상당수가 공식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로 운영된다.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는 인구가 80%에 육박하는데, 이런 탈세 구조가 오히려 물가를 낮춰준다고 믿는다. 수공예자들이 세금 없이 저렴하게 물건을 팔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서민에게 이롭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소상공인 위주의 비공식 경제 구조는 수출에 불리하다. 시장 확대, 자본 축적, 설비 투자 등이 모두 불가능하다. 경제 규모가 커질 통로 자체가 막혀 있는 셈이다.
수입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칠레 등에서 불법으로 대거 들어오는 의류에 대해 한번 친구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불법 수입이라 관세를 안 내고, 그래서 물가가 낮게 유지되니 좋다는 것이 아닌가. 자국에서 의류를 대량 생산해서 단가를 낮추고, 그걸 수출하고, 국고를 쌓고, 소비력을 올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겠다며 짐짓 놀랐다.
내륙국인 볼리비아. 가끔은 대외적 현실과 감각에서 벗어난 인식들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중국처럼 내수 시장 규모가 크면 이해를 하겠다만... 인구 1,200만명 국가에서 안타까움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