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직장 동료를 따라 화상 환자 전문 병원에서 진행하는 봉사 활동을 갔다가 깨나 귀여운 현지인 친구를 만났다. 대학교 3학년생이었는데 영어를 곧잘 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어. 외국에 나가서 언젠가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이 꿈이야."
"그래? 그러면 시앙스포라는 대학원을 알아봐. 아, 프랑스가 아니라 스위스를 가도 되겠다. 제네바에 있는 대학원들도 프랑스어로 수업한다던데."
"스위스? 왠지 모르겠는데 그곳은 내가 언젠가부터 가고 싶은 나라였어. 이유를 모르겠어. 그렇지만 마음 속 깊은 곳부터 정말 강렬하게 그런 생각을 해왔어. 우리는 이걸 'corazonada'라고 불러."
스위스에 가고 싶다는 그 친구는 내게 corazonada라는 스페인어 단어를 알려주었다.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명확한 이유 없이 가야만 할 것 같은 나라가 있는 상태가 corazonada란다. 그런 단어가 있다고? 호기심이 생겨서 집에 오자마자 사전에 검색해보았다.
세 가지 뜻이 나왔다. 우선 그가 의미한 것이 소의 내장은 아닐 것이다. 앞선 두 개의 뜻으로 보아 영어로는 hunch, intuition, impulse와 같은 단어와 상통하는 것 같다. 대강 직관이라는 뜻인가보다.
주변 사람들이 왜 내게 볼리비아에 가냐고 물어보곤 했다. 어떤 이유를 대야 할까? 내가 설명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종종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을 가진 이야기부터 시작할 때가 있다. 미국 교환학생을 가서 노숙인 체험을 했을 때의 이야기, 마태복음을 처음 정독했을 때의 이야기, 정치철학사 시간에 한나 아렌트를 공부했던 이야기, 페르세폴리스 만화책을 처음 접했던 이야기, 스피박이나 시몬 베유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의 이야기, 그보다 더 전에 우리집이 중학교 때 어렵게 살았던 이야기까지, 버전은 여러가지다.
중남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할 때도 있다. 아르바이트로 300만원을 모아 페루-볼리비아 배낭여행을 갔던 이야기, 그보다 전에 '반전과 역설의 대륙, 라틴아메리카' 책을 읽었던 이야기, 아니 그보다 전에 '라틴아메리카와 사회 문화' 교양을 여름 학기 계절 수업으로 수강했던 이야기,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에 심취했던 이야기, 체 게바라 자서전을 읽고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 열광했던 이야기, 영화 '코코'를 보고 펄럭이는 색종이 장식을 보고 싶었던 이야기, 남미와 동아시아의 경제개발사를 비교하는 논문을 읽었던 이야기,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이주민에 대한 영화를 봤던 이야기, 동성혼 합법화가 가장 많이 이뤄진 대륙이란 사실을 접했던 이야기, 영화 '포카 혼타스'를 좋아했던 이야기, 홍콩 영화 '해피투게더'를 보고 장국영과 양조위보단 브라질의 이과수 폭포의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했던 이야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보면 어디가 근원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라틴 아메리카라는 대륙에 한 번 꽂히기 시작하니, 그 이후로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심장이 뛰었고, 그렇게 더욱 관련된 콘텐츠를 찾아보고, 더 좋아하게 되고, 깊이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것을 corazonada라고 부르기로 했다.
최근 잔나비의 '슬픔이여 안녕'이란 노래를 들었다.
이젠 다 잊어 버린걸
아니 다 잃어 버렸나
답을 쫓아 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게 볼리비아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어느 순간 볼리비아는 맹목적인 목적지, 즉 정답이 되었을 뿐이었다. 내가 왜 여길 가야 하는지, 정말 가는 것이 내게 행복한 결정인지 확신이 없었다. '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corazonada의 힘을 믿어보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 내가 썼던 글들, 좋아했던 관심사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있다. 글을 읽을 때마다 볼리비아에 와야 했던 이유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나의 경험과 생각이 퇴적층처럼 쌓여서, 어떤 외부 자극이 들어왔을 때, 직관의 형태로 몸과 마음이 반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동안 직관의 힘을 무시했던 것 같다. 나의 더딘 이성의 사고회로에 의존하며, 내 안에서 끓어오는 감정 내지 열정, 충동들은 최대한 통제하려 들었다. 물론 겁쟁이가 되어버린 30대에 아마 그러한 직관적 발현들은 계속해서 이성의 끈으로 묶어두고 살 것이다. 그럼에도 순간적인 마음의 소리들을 긍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나를 이루는 지난 십년 간의 데이터베이스들이 겹겹이 쌓여서 직관이 발현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나에게 이런 직관을 선물해준 과거의 '나'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잘했어, 그 동안 많은 데이터 베이스를 쌓아왔구나, 참 많이도 돌아다니고 경험하고 읽고 쓰고 느끼고 생각했네, 참 대견하다.' 과거의 나를 긍정하니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