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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마약과의 전쟁'이 촉발한 21세기형 사회주의 국가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볼리비아

by 남미가 좋아서

볼리비아는 21세기에 사회주의를 선언한 국가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쿠바와 베네수엘라와 볼리바르 대안(ALBA)이라는 연합을 구축하면서 사회주의 전선을 지키고 있다. 현대사에서 꽤나 늦은 시기에 사회주의를 천명한 독특한 국가다.


볼리비아가 사회주의를 채택한 배경은 다름 아닌 식물과 관련이 있다.

SSC_20230125175230_O2.jpg 코카잎. AFP 연합뉴스

바로 '코카'다.


1989년 부시 행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코카인 근절에 앞장섰다. 그리고 코카인 보급의 원인으로 원료 코카 생산지인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 등을 직격했다. 코카 재배 금지와 코카 파생상품 금수 조치를 시행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 정부의 조치를 따르는 편이었다. 1982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개혁을 단행한 이후부터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변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왔다.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정치적으로 귀속된 결정이 뒤따랐다. 이러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미국 정부는 볼리비아에 군대까지 파견해서 코카 작물을 불태우는 등 코카 근절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로 인한 볼리비아 농민들의 반감은 거세졌다. 코카잎은 안데스산맥 일대의 원주민들이 허기를 달래고 고산병을 가라앉히는 약초로 수천년 전부터 섭취해왔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생계의 위협을 받은 농민들은 '코카 재배 운동'을 조직했다.


이 코카 재배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 볼리비아에 21세기형 사회주의를 도입한 첫 대통령, 아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다. 그는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 운동이 제국주의적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국가 주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보았다. IMF와 미국 정부가 주도한 정세 개입이 농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에 신자유주의 vs 국가 주권이라는 정치적 구도가 확립된 계기였다.

foto_0000000320180111171300.jpg 코카잎을 들고 있는 아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

농민 운동 지도자였던 모랄레스는 이어지는 외세 혹은 외자 개입 사건들에 대항하면서 세를 키워나간다.


1999년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 백텔(Bechtel)의 자회사였던 투나리 워터스(Tunari Waters)에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지역의 물 공급 민영화 사업을 맡겼다. 그러나 이는 수도 요금의 급등으로 이어져 이듬해 '코차밤바 물 전쟁'으로 이어졌다. 대규모 시위와 시민들의 저항으로 투나리 워터스와 정부의 계약은 철회됐다.


2003년에는 정부가 천연 가스를 민영화하고 미국과 멕시코에 시장 가격 이하로 수출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다시금 대중 운동인 '볼리비아 가스 갈등'으로 이어졌다. 볼리비아 정권의 강경 진압으로 사상자가 발생했고 당시 대통령은 망명하는 신세에 놓였다.


두 차례의 갈등에서 모랄레스는 두각을 보였다. 그는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주의를향한운동(MAS)' 정당을 주도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전 대통령의 망명으로 선거 국면에 들어서면서 그는 주요 기반 시설 국유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2005년 볼리비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2006년 볼리비아는 쿠바와 베네수엘라와 함께 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대안(ALBA)을 창설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전선 구축에 참여했다. 광산, 전기, 전화, 철도를 비롯 천연자원을 국유화했고 농민과 원주민 권리 증진에 앞장섰다. 이에 따라 모랄레스의 사회주의 정권은 초반에 엄청난 성과를 보였다. 모랄레스의 첫 임기 동안 볼리비아는 재정 적자가 전무했는데 이는 볼리비아에서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GDP도 수백%씩 상승하기 시작했다. 문맹률과 빈곤율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그러나 볼리비아에서 그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대통령 임기가 2선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계속되는 꼼수로 대통령직을 4선까지 이어갔기 때문이다. 3선 때에는 대통령 임기를 2선으로 제한하는 헌법이 비준되기 전에 대통령에 취임됐다는 이유로 3선이 허용됐다. 4선 때에는 헌법을 개정하는 시도를 했다.


결국 볼리비아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전국적인 시위 끝에 2019년 11월 대통령직에서 사임했다.


다만 볼리비아에서 사회주의의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모랄레스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맡았던 루이스 아르세 장관이, 임시 정부 이후 이뤄진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대통령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중앙은행 출신의 볼리비아 관료로, 사회주의적 경제 모델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가지고 지고 있다. 모랄레스 정권 당시 경제 정책을 주도한 이도 그다.

PRU20230223020901009_P4.jpg 코카잎을 맛보고 있는 루이 아르세 현 대통령. 연합뉴

볼리비아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현재 선거 구도는 아르세 대통령과 전 모랄레스 대통령의 세력 갈등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즉, 볼리비아의 사회주의 흐름은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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