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한 이유
아마 5년 전쯤 언젠가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셔서 침대에 털썩 눕더니 이렇게 말하셨다. "내가 왜 너희 엄마랑 결혼했는 줄 알아?" 집에선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집은 틈만 나면 클래식 음악 혹은 보수 종편 뉴스를 틀어놓는다). "평생 함께 클래식 음악 얘기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
가만히 듣고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시끄러워, 취했으면 잠이나 자!"
어머니는 연세대 작곡과를 졸업하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치열한 피아노 연습을 했던 결과라 생각한다. 덕분에 나 또한 다섯살 때부터 피아노를 비롯한 여러 악기를 배워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악기에 재능이 없어서 금세 어머니의 열정은 시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셨기에, 어머니든 아버지든 마음이 적적할 때면 피아노방에 들어가 피아노를 치셨다. 피아노방에는 곰팡이 떼가 묻은 악보집이 책꽂이를 빽빽이 메우고 있었다.
아버지가 왜 어머니와 결혼했을지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풍류를 즐겼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연애도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모범생이셨다고 들었다. 그런 둘이 아무리 선이라지만 어떻게 마음이 통했는지 항상 궁금했었다. 그게 어머니의 전공 때문이었다니, 참 아버지도 낭만을 좇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혼 초반엔 어땠으려나, 요즘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음악 얘기를 하는 모습은 잘 보지 못했다. 다만 가족 여행을 가면 언제든 차 안에서 클래식 음악을 튼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풍경이었는데 색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일상이 되기까지 많은 대화와 교류가 있었겠구나.
5년 전 그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하신 이유를 말하고선 낭만적인 말들을 이어가셨다. "쇼팽이 폐병에 걸려서 요양을 했거든. 그때 같이 살았던 여자가 있어. 빗방울 전주곡은 그 사랑했던 여자를 떠올리면서 만든 곡이야. 조르주 드상드라고..."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제발 술 마시고 들어오면 잠을 자..."
아무래도 두 분이 음악에 대해선 더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