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음악 취향
한국 출국을 하루 앞두고 몽크투바흐에 갔다. 클래식 음악과 오래된 팝송을 틀어주는 압구정의 한 카페다. 나이가 들수록 정말 애정하는 취미는 같이할 사람들이 줄어든다. 혼자 가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대부분 아버지도 좋아하는 것이잖아? 나에게 DNA를 물려준,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비슷한 사람과 취미 생활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후 8시.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역시 나와 비슷한 사람이기에 즉흥적인 호출에도 잘 응답하신다. 1시간이 걸려 집에서 압구정까지 오셨다.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노래를 청해보라고 말씀드렸다. 고상한 클래식 음악을 기대했으나, 아니 웬걸, 아버지의 전화벨 소리인 윈터플레이의 집시걸을 신청하셨다. 평소 집에서 질리게 들은 노래다. 그 노래가 어딘가 촌스럽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게 아버지의 최애곡이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가요도 백지영, 김현정, 자우림과 같은 정열적인 노래를 좋아하신다.
아버지는 그 노래의 트럼펫 소리가 좋다고 하신다. 그리고 가사도 들어보라고 한다. 인형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마치 프랑스에서 인형극이 끝나고 길바닥에 버려진 인형을 연상시킨단다.
너무 시끄럽다고, 혹시 클래식 음악은 듣고 싶은 것이 없냐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또 저벅저벅 걸어가셔서 곡을 신청하고 오신다. 드보르작의 현악4중주 아메리카 2악장이다. 드보르작은 본디 동유럽 태생으로 뉴욕에 가서 생활했다. 그가 탄 배가 처음으로 뉴욕항에 진입했을 때 안개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음악이라고 한다. 드보르작은 뉴욕 생활 당시 향수병을 앓았다고 한다.
어우, 그런데 이 노래도 고음이 세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집시걸과 멜로디가 비슷하다. 스페인을 연상시키는 쨍한 느낌이 든다. 어딘가 음산하면서도 을씨년스럽고. 조금은 과하다.
나는 아버지가 피아노곡을 많이 들으시기에, 그런 잔잔한 음악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다음날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신청곡 이야기를 하였다. "그래, 너네 아빠는 그런 극적인 음악들을 좋아하더라. 내 취향은 아니야" 어머니에게 지금 가장 듣고 싶은 음악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베토벤의 비창이라고 한다. 여태 집에서 들었던 음악들은 어머니의 취향이었단 사실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음악 취향을 제대로 알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