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형 인간이구나

어머니의 대인관계

'나 헬스 가야 하는데!'


20대 중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시기. 애어른이었던 나는 집을 나서자마자 출근길에 다리를 접질렀다. 걷기가 어려워 우선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병원에 태워줄 수 있냐고 여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저렇게 말하시는 것이 아닌가. 섭섭함보단 되레 깨달음을 얻었다. 어머니는 이제 나의 후견인이 아니라 본인의 취미를 즐기는 한 명의 개인이구나.


사실 나와 동생이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무릇 다른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자식의 삶과 자신의 삶을 정확히 동기화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우리 학년에서 최초로 급식실에 가지 않고 도시락을 먹는 학생이었다 (이것이 나중에 유행이 되어 고3 중반즈음엔 학급의 절반의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오기도 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셨을 다른 어머니들께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머니가 무려 매일...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을 싸서 가져다 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매일 등교를 하신 셈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집에 다녀와서 중간고사 성적이 안 좋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당신이 더 절망하셔서 피아노방에서 우울한 피아노 곡을 치시던 모습이 선하다.


동생과 내가 대학에 간 이후로 어머니의 취미 활동은 눈에 띄게 늘었다. 등산, 달리기, 볼링, 역사 공부 등등 나가는 모임이 많아졌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시면서 어떤 교수님의 역사 강의를 듣는 모습을 보고 생경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 동창 모임에서 하는 역사 공부 모임이란다. 사회 생활을 완연히 즐기시는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 낯설면서도 보기 좋았다. 그런데 주목할 만했던 점은, 그 모임에 관여하는 정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디서든 리더는 아니더라도 총무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계셨다. 돈을 모으고, 갈등을 해결하고, 의견을 모으고, 참여도를 조사하고...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아직도 나의 초교/고교 학창시절 친구들 어머니들과 모임을 가지신다. 그리고 거기서도 리더와 비슷한 성격의 역할을 하시는 것 같다. 그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아직 분석이 잘 안된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실까? 집에 계실 때는 가족 구성원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일이 많다. 집안의 대소사도 아버지의 논리대로 결정될 때가 많아, 내가 개입해서 어머니의 논리를 구축해주곤 했다. 길거리에서도 다른 운전자와 시비가 붙으면 내가 나서서 해결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사회 생활을 하실 때는 다른 유형의 대인관계를 맺으시는 것 같다. 어머니는 리더형 인간인가? 아니면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시나?


무엇이 되었든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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